법륜스님의 법문/7. 육조단경

[법륜스님의 '육조단경'] 제28강 유통을 부촉하다 1

상원통사 2021. 11. 16. 15:35

오늘은 육조단경 마지막 강의, 열 번째 강의시간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대사께서 세상에 머무심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법해(法海) 상좌가 앞으로 나와 재배하고 여쭈었다.

 “화상께서 멸도에 드신다면 의법(衣法)을 누구에게 부촉합니까?”

 “내가 대범사(大梵寺)에서 설법을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동안의 설법 초록이 유행하여 법보단경(法寶壇經)이라 하고 있으니

  너희들은 이것을 수호하고 서로 번갈아 전수하여 널리 모든 중생을 제도하라.

  그리고 다만 이에 의지하여 설법하라. 그러면 정법(正法)이라 할 것이니라.

  이제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도 법의는 전하지 않는 것은,

  너희가 이미 신근(信根)이 순박하고 무르익어서 결정코 의심이 없고 큰일을 감당할 만하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선조 달마대사께서 부촉하신 게송의 뜻에 의하여도 법의는 전하지 않는 것이 옳으니라.

큰 스님께서 열반에 드신다면 달마조사로부터 전해 내려온 그 발우와 옷은 누구에게 부촉합니까 하고 물으니,

이제까지 설법한 것 가운데서 요지를 모은 것을 이름하여 법보단경이라고 하니,

이것을 서로 전수하고 의지하여 수행하고 설법하라, 그러면 정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마조사 이래로 정법의 징표로 발우와 옷이 전수되어 내려왔는데 이제 더 이상 전하지 않겠다.

이미 너희들이 마음을 깨쳐 한 점 의혹도 없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그 옷을 징표로 삼을 게 뭐가 있겠느냐,

이 옷은 잘못하면 상에 집착한 사람들에 의해서 분쟁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

 

  게에 이르기를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 법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 건짐이라

  한 꽃에 다섯 잎이 피니         / 결과 자연이 이루리라> 하셨느니라.”

달마조사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부처님의 바른 법을 전하여 어리석은 중생을 건지기 위함이었다,

한 꽃이란 달마조사를 말하고 다섯 잎이란 것은 혜가·승찬·도신·홍인·혜능을 말합니다,

다섯 잎이 피니 결과 자연이 이루리라, 혜능 대에 이르면 선불교가 널리 퍼질 것이다,

이 게송의 뜻에 의해서도 이제는 더 이상 옷을 징표로 삼을 필요는 없다.

 

 대사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만약 종지(種智)를 성취하고자 할진대 모름지기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를 통달하여야 하느니라.

  만약 일체처에서 마음이 상()에 머물지 않고, 또한 저 상 가운데에 있으면서 밉고 사랑하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또한 취하고 버림도 없으며 이익이 되나 이루어지나 허물어지나 등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야

  편안하고 한가하고 평온하고 고요하며 허공처럼 비고 통하고 또한 담박하면 이것을 일상삼매라 하느니라.

종지란 궁극적인 깨달음이란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선의 종지라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곳에서 마음이 어떤 모양을 짓거나 그 모양에 집착하지 않고, 상을 짓더라도 밉고 사랑하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좋다고 취하고 싫다고 버리지 않고, 나한테 이익되거나 손해되는 데도 개의하지 않고,

그 마음이 늘 고요한 상태에 있는 것, 허공처럼 텅 비어 걸릴래야 걸릴 수 없는 상태를 바로 일상삼매라고 한다.

 

  만약 일체처 행···와에 마음이 순일(純一)하고 직심(直心)이면

  도량(道場)을 옮기지 않고 참으로 정토(淨土)를 이루리니 이것을 일행삼매라 하느니라.

가나 오나 머무르나 마음이 순일하고, 앉으나 누우나 마음이 순일해야 된다,

앉아서 좌선하다가 허리가 아파 눕더라도 마음은 순일해야 되는데,

앉을 때는 그래도 용을 쓰다가 누우면 수행을 포기하고 그냥 자버리면 안 된다.

한 상황에 부딪혀 자기가 생각한대로 안 되면 좌절하고 절망한다는 것은 경계에 끄달리는 것이다,

앉으나 서나 일을 하나 밥을 먹으나 마음이 순일해야 된다. 그것이 일행삼매다,

그러면 저 서방정토로 땅을 옮기지 않고 바로 이 자리에서도 정토를 이룰 수 있다,

산속으로 가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 머리털 깎지 않고 이름도 바꾸지 않고 바로 그대로 정토를 이룬다.

  만약 어떤 사람이 위의 두 가지 삼매를 갖추면 마치 땅에 종자를 뿌리면 싹이 트고 자라나서 과일이 여무는 것과 같이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나의 이 설법은 비유하면 비가 내려 널리 대지를 윤택하게 하는 것과 같고

  너희의 불성은 모든 종자가 흡족히 비를 만나 모두 피어남에 비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뜻을 이어받는 자는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것이며 나의 행에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묘과(妙果)를 증득하리라.

(~~ 여기까지 강의 생략)

 

  내 게송을 들어라.

  마음 땅(心地)이 모든 종자 머금었으니    / 널리 비 내리니 모두가 싹이 튼다.

  문득 꽃의 뜻을 깨닫고 나니                 / 보리의 열매는 어느덧 익었으리

마음의 땅이 모든 종자를 머금었으니, 우리들의 일심 속에 일체만법이 다 갖춰져 있으니,

비가 내리면 모두가 싹이 튼다, 부처님과 역대조사의 가르침을 만나게 되면 자연히 싹이 트게 된다.

깨닫고 나니 보리의 싹이 자라서 열매가 열리는 게 아니고, 깨닫고 보니 이미 보리의 열매가 열려있다,

깨달음은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고, 깨닫고 나니 내가 본래부터 부처였음을 알게 된다,

악몽을 꾸다가 깨니 무서움이 없어졌구나가 아니라, 깨어보니 내가 본래부터 편안한 잠자리에 누워있었구나,

 

 대사께서 게송을 설하시고 다시 말씀하셨다.

 “이 법은 둘이 없으며 그 마음도 또한 그러하며 그 도는 청정하여 또한 모든 상이 없나니,

  너희들은 부디 삼가 고요를 관하거나 그 마음을 비우려고 하지 말라.

  이 마음은 본래 청정하여 가히 취할 수 있거나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각각 스스로 노력하여 인연 따라 잘 지내거라.” 이에 대중이 예를 드리고 물러섰다.

마음은 본래로 청정한 것이니 마음을 청정하게 하려고 애쓰지 마라,

마음이란 것은 본래로 고요한 거니 고요를 관한다든지 고요해지려고 애쓰지 마라,

제법이 공한 줄 알면 이미 본래로 고요해 있는 거다,

 

 78일 대사께서 홀연히 문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신주(新州)로 돌아가고자 하니 속히 배와 돛대를 준비하라하셨다.

 이에 대중이 슬퍼하며 심히 굳게 만류하니 다시 말씀하셨다.

 “제불이 세간에 출현하셨다가 열반을 보이시는 것을 대개 오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가는 것이 이치에 당연하기 때문이니

  나의 이 몸도 반드시 돌아갈 곳이 있느니라

 대중이 여쭈었다. “스님께서 이제 가신다면 언제 다시 돌아오십니까?”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니 올 때는 입()이 없느니라

큰 스님께서 열반하시면 언제 다시 이 세상에 또 오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뭇잎이 떨어져 땅으로 돌아가면 올 때 싹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형상에 집착하니 또 잎으로 오는 줄 생각하지만,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니 올 때는 입이 없느니라.

 “정법안장(正法眼藏)은 누구에게 부치십니까?”

 “도 있는 자가 얻고 마음 없는 자가 통하느니라.”

길을 아는 자가 얻고 마음에 어떤 상도 짓지 않는 자가 바로 여기에 통하리라.

 

 “()에 난()이 없겠습니까?”

 "내가 멸한 뒤 56년이 되면 마땅히 한 사람이 와서 내 머리()를 가져가리니 내 예언을 들어 둬라.

  머리 위로 어버이를 봉양하고    / 입 속에 밥을 구하네.

  만(滿)의 난()을 만날 때에      / 양류(楊柳)가 관()이 되더라.”

 하시고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간 후 70년이 지나면 두 보살이 동방에서 올 것이니 하나는 출가인이고 다른 하나는 재가인이다.

  동시에 교화하여 나의 종()을 건립하고 가람을 일으키며 법사(法嗣)를 흥왕케 하리라.”

후에 난이 없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내가 멸한 후 56년이 지나면 누가 와서 내 머리를 잘라갈 것이니 조심해라,

이런 얘기는 했을 리가 없겠지만, 후대에 이런 사건이 진짜로 생겼습니다.

김대비라는 신라 스님이 조사를 너무나 공경해서 그 머리를 잘라 신라로 가져와 하동 쌍계사에 모셨습니다.

그런 것을 미리 다 알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리 알 수도 있겠지요,

그렇더라도 죽은 시신의 머리 잘라가는 게 뭐가 중요하다고 그걸 예언하겠어요,

이런 건 난에 속하지도 않지요, 전쟁 나고 백성이 수없이 죽어가는 것을 난이라 할 수 있지

죽은 시신의 뼈다귀 훔쳐가는 것을 난이라 한다면 이건 이미 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런 게 바로 후손들이 아직도 상에 집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물었다. “위로 불조께서 이 세간에 응현하신 이래 전수되어 내려온 지 몇 대가 되온 지 모르겠습니다.

 바라옵건대 가르쳐 주십시오.”

초기 선불교에서는 정통성 시비가 있었습니다.

교종은 화엄경, 법화경, 열반경, 금강경 등 경전을 수행의 근거를 삼으며 이것이 부처님 말씀이라 하니 그 자체가 정통성이 됩니다,

그러나 선은 경전에 의거하지 않고 '바로 마음을 깨닫는다' 이렇게 주장을 하니,

'그런 근거가 어딨느냐, 경전에 그렇게 하라는 근거가 없지 않느냐'고 반박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이 말을 떠나 별도로 마하가섭 존자에게 전수되었고,

그것이 아난다 존자 상나호수 존자 등을 거쳐 보리 달마대사에 이르러 해동으로 왔다,

이런 주장을 하게 되었고 이렇게 전해져 내려온 것을 법맥이라 합니다.

 

 “옛적에 부처님께서 세간에 응하신 것은 이미 수 없이 많아 가히 헤아릴 수 없거니와

  이제 7불을 위시하여 말한다면 과거 장업겁(莊嚴劫)에는 비바시불과 시기불, 비사부불이며

  지금 현겁(賢劫)에는 구루손불과 구나함모니불·가섭불·석가모니불로서 7불이 되느니라.

불교에서는 우주가 성주괴공(成住壞空), 이루어지고 머무르고 흩어지고 사라진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머무르는 기간이며, 앞으로 흩어져서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과거에도 이 세계는 이루어지고 머무르다 흩어져 사라졌는데, 그 때를 장엄겁이라 합니다.

그 과거 장엄겁의 성주괴공 중 머무르는 주겁(住劫)에 일천 부처님이 출현하셨고,

현재의 겁(現劫)에도 또 머무르는 주겁에 일천 부처님이 출현하신다는 겁니다.

현겁에 출현하시는 일천 부처님 중 지금까지 네 분의 부처님이 출현하셨는데,

그 네 번째 부처님이 석가모니불이고, 다섯 번째 출현하실 부처님이 미륵불입니다.

그렇게 일천부처님이 다 출현하시면 이 세계는 흩어지고 붕괴되어서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미래(미래성숙겁)의 주겁에 다시 일천 부처님이 출현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과거세 현재세 미래세를 삼세라 하고,

삼세에 삼천 부처님이 출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삼천 불전을 짓고 삼천 배를 하는 겁니다.

삼천 배를 하는 것은 그 부처님 한 분 한 분께 예배를 한다 이런 뜻입니다.

한 부처님께 절을 한 번 밖에 안하는 것이니 삼천 배를 할 때 대충 해서는 안 되겠지요.

과거 칠불이란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일곱 부처님을 말합니다.

, 과거 장엄겁의 998, 999, 1000번 째 부처님과, 현겁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까지 네 부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에서 부처님으로 연결되는 법맥을 불타원류(佛陀源流), 부처님의 흐름이라 하고,

부처님의 제자로부터 제자로 법을 계승하여 다음 부처님까지 연결되는 것을 조사원류(祖師源流)라 합니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사이는 아주 오랜 시간이 경과되는 그런 긴 시간입니다.

 

(제29강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