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7. 육조단경

[법륜스님의 '육조단경'] 제18강 좌선법을 가르치다 3

상원통사 2021. 10. 27. 09:39

(~~ 제17강에서 계속)

 

 모름지기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야 하며 자기 본심을 알아서 모든 불법 이치에 통달하며 빛을 화(和)하여 사물을 접하되

 아(我)도 없고 인(人)도 없어 바로 보리(菩提)에 이르러 참 성품에 변함이 없는 것이 해탈지견향이니라.

 선지식아! 이 향(香)은 각자 안에서 풍기는 것이니 결코 밖을 향하여 찾지를 마라.

세상사 배울 것 배우고 할 것 하고 울 것 울고 웃을 것 웃으면서도 고요를 유지하되

고요만 유지하는 게 아니라 늘 중생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해탈지견이다.

이 모든 것은 다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자기 내면에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제부터 너희들을 위하여 무상참회(無相懺悔)를 주어서

삼세(三世)에 지은 죄를 멸하여 삼업(三業)이 청정하게 해주리니, 선지식아, 내 말을 따라서 함께 일러라.

“제자들이 전념(前念)·금념(今念)·후렴(後念)의 염념중(念念中)에 어리석고 미혹한 데 빠지지 않아지오며,

 이제까지 지은 바 악업인 어리석고 미혹하였던 죄를 모두 다 참회하오니 바라옵건대 일시에 다 소멸되고 다시는 영영 일어나지 않아지이다.

 제자들이 전념·금념·후렴의 염념중에 교만하고 진실하지 못 한데 물들지 않아지오며

 이제까지 지은 바 악업인 교만하고 속이고 하던 모든 죄를 모두 다 참회하오니 바라옵건대 일시에 소멸하여 영영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지이다.

 제자들이 전념·금념·후렴으로 염념중에 질투심에 물들지 않아지오며

 이제까지 지은 바 악업인 질투 등 죄를 모두 다 참회하오니 바라옵건대 일시에 소멸하여 다시는 영영 일어나지 않아지이다”하라.

 선지식아! 이상을 무상참회라 하나니 어떤 것이 ‘참’이며 어떤 것이 ‘회’일까?

 참이라 함은 이제까지의 지은 허물을 뉘우치는 것이니 이제까지의 지은 모든 악업(惡業)인 어리석고 미혹하고 교만하고 속이고 질투하는 등

 죄를 모두 참회하여 영영 다시는 일으키지 않는 것 이것이 참이며,

 회라 함은 미래의 허물을 뉘우침이니 지금부터 이후의 짓는 바 악업인 어리석고 미혹하고 교만하고 속이고 질투하는 등

 죄를 지금 미리 깨닫고 모두 다 영영 끊고 다시는 짓지 않는 것, 이것이 회이니 이 까닭에 참회라 하느니라.

참회라고 하는데 이란 어떤 것이고 란 어떤 것이냐,

지금까지의 지은 허물을 뉘우치는 것을 참이라 하고,

그 경험을 통해 앞으론 이런 일은 안해야 되겠구나 하고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회라 한다.

 

 범부는 어리석고 미혹하여 다만 전(前)허물만 뉘우칠 줄 알 뿐 미래의 허물을 뉘우칠 줄 모르나니

 미래의 허물을 뉘우치지 않음으로 앞의 허물도 멸하지 아니하고 또한 뒤의 허물이 생기나니

 이미 앞 허물이 없어지지 않고 뒤 허물이 생기니 어찌 참회라 할 것이냐.

범부는 지나간 것을 뉘우칠 줄만 알았지 그걸 경험삼아 앞으로 올 것을 막을 줄을 모른다,

이렇게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사실은 앞의 것도 제대로 참회가 안 된다,

또 앞의 것이 제대로 참회가 안 되니 뒤에 또 그것을 되풀이 하게 된다,

그래서 회개하고 잘못을 저지르고 회개하고 잘못을 저지르고 이렇게 되풀이 한다,

잘한 것만 공부가 되는 게 아니라 잘못한 것도 경험을 잘 돌이키면 그것 또한 큰 공부가 됩니다.

잘하고서도 잘했다는 생각에 빠지면 앞으로 큰 후회할 일을 만들 수도 있고,

잘못한 것도 잘못했다는 생각에만 빠지게 되면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니 잘못한 데 빠지거나 옹호 하지 않고 잘못한 그대로 알고 뉘우치고

그 경험을 살려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겠구나, 이렇게 다시 자기 공부를 삼아야 됩니다,

인생을 사는데 잘못했다고 그렇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과거의 잘못을 잘 돌이키면 앞으로 몇 배 더 큰 잘못의 위험을 미리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선지식아. 이미 참회를 마쳤으니 이제 선지식과 더불어 사홍서원(四弘誓願)을 발하리라.

 각각 모름지기 지극한 마음으로 바로 듣거라.

“자심중생(自心衆生)이 가없으나 맹세코 제도하리다.

 자심번뇌(自心煩惱)가 끝없으나 맹세코 끊으리다.

 자성법문(自性法門)이 한없으나 맹세코 배우리다.

 자성불도(自性佛道)가 위없으나 맹세코 이루리다”하라.

 선지식아, 부처님은 어찌 <가없는 중생을 맹세코 제도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더냐고 한다면

 이는 이 혜능이 말하는 제도의 뜻을 잘못 아는 것이니라.

 선지식아, 중생이라 함은 마음 가운데 중생이니 이른 바 저 삿되고 미혹한 마음, 속이고 망령된 마음, 착하지 않은 마음, 질투심 모질고 독한 마음 등

 이러한 마음이 모두 다 중생이니 각기 모름지기 자성으로 스스로 제도하는 것, 이것이 참 제도니라.

 어떤 것이 <자성을 스스로 제도한다>하는 것일까?

 즉 자기 마음속의 사견(邪見)·번뇌·우치(愚痴) 등 중생을 정견(正見)을 가지고 제도하는 것이니라.

 이미 이 정견이 있으니 반야의 지혜로 하여금 우치·미망중생(迷妄衆生)을 쳐부수어 각기 스스로 제도하는 것이니

 삿된 것이 오면 바른 것으로 제도하고, 미혹한 것이 오면 깨달음(悟)으로 제도하고, 어리석음이 오면 지혜로 제도하며 악이 오면 선으로 제도하나니

 이와 같이 제도하는 것을 참된 제도라 하느니라.

 또 <번뇌가 끝없으나 맹세코 끊는다>함은 자성의 반야지로써 허망한 마음을 쳐없애 버리는 것을 말함이요.

 또 <법문이 한이 없으나 맹세코 다 배운다>함은 모름지기 자기의 성품을 보아 항상 정법(正法)을 행하는 것을 말함이니 이것을 참으로 배운다 하는 것이니라.

 또 <위 없는 불도를 맹세코 이루겠다>함은 이미 항상 능히 하심(下心)하고 참된 바름(正)을 행하며

 미(迷)와 각(覺)을 함께 여의어 항상 반야를 내며 진(眞)도 제하고 망(妄)도 제하여 즉시에 불성을 보아 언하(言下)에 불도를 이룸을 말하는 것이니

 항상 수행을 생각하는 이것이 원력법(願力法)이니라.

자심중생, 가없는 중생을 남김없이 건지리라 하니까 바깥에 있는 중생만 자꾸 생각하는데

정말 한없는 중생은 자기 마음속에 일으키는 번뇌다,

자심번뇌, 번뇌는 끊으려 한다고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에게 돌이켜 자기 속에서 허물을 찾으면 저절로 끊어지게 된다.

자성법문, 스스로에게 한없는 법문이 있다,

원효대사도 해골바가지 물 먹고 스스로 깨치고 나니 법문이 다 자기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성불도, 불도도 마음밖에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상이 상 아닌 줄을 알게 되면 그게 바로 부처를 보는 거다,

형상 지어진 모든 것들이 텅 비고 꿈같고 아지랑이 같은 줄 알게 되면 바로 불도를 이루게 된다.

 

 선지식아, 이제 네 가지 크고 넓은 원을 발하였으니 다시 선지식들에게 무상(無相) 삼귀의계(三歸依戒)를 주리라.

 선지식아, 깨달으신 이족존(二足尊)께 귀의하며 바르신 이욕존(離欲尊)께 귀의하며 정(淨)하신 중중존(衆中尊)께 귀의하라.

 금일부터 이후는 깨달은 이를 스승을 삼고 다시는 사마(邪魔) 외도(外道)에 귀의하지 아니하며

 자성삼보(三寶)로써 항상 스스로 증명을 삼아라.

 선지식에게 권하노니 자성삼보에 귀의하라.

 불이라 함은 깨달음(覺)이요 법은 바름(正)이요 승은 청정(淨)을 말함이니

 자기 마음이 깨달음에 귀의하여 삿되고 미혹한 것이 나지 않으며 욕심이 적고 족함을 알아 능히 재색(財色)을 여읨을 이족존(二足尊)이라 하는 것이요,

 자기 마음이 바른 것(正)에 귀의하여 생각 생각 가운데 사견이 없으므로

 곧 아상(我相) 인상(人相)으로 스스로를 높이 떠받치거나 탐애(貪愛)와 집착이 없는 것, 이것을 이욕존(離欲尊)이라 하는 것이며

 자기 마음이 청정에 귀의하여 일체 진로(塵勞)와 애욕 경계에 자성이 전혀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을 중중존(衆中尊)이라 하느니라.

 만약 이와 같은 행을 닦는다면 이것이 스스로 귀의하는 것인데도 범부는 이 도리를 알지 못하고 종일토록 삼귀의계를 받나니

 만약 불에게 귀의한다고 말한다면 불이 어느 곳에 있는가?

 만약 불을 보지 못한다면 무엇에 빙거하여(의지하여) 귀의한다는 것인가? 말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삼귀의, 삼귀의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겁니다.

귀의불 양족존(歸依佛 兩足尊), 지혜와 자비가 갖춰지신 깨달으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여기서 양족이란 지혜와 자비, 지혜와 방편을 말합니다.

귀의법 리욕존(歸依法 離欲尊), 법에 귀의합니다, 모든 욕심을 떠나 내 마음이 고요한 것이 법이다

법에 귀의한다, 법이란 모든 욕심을 떠나는 겁니다.

얻으려는 생각을 떠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내 마음 고요한 것이 바로 법입니다.

내 마음 깨달으면 부처요 내 마음 고요하면 법이요 내 마음 청정하면 승이다.

귀의승 중중존(歸依僧 衆中尊), 승단에 귀의합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청정한 승단을 존중한다,

여기서 은 승단, 스님들을 말합니다.

자성삼귀의, 자기 마음을 깨닫고 자기 마음을 고요히 하고 자기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이 삼귀의입니다.

 

 선지식아! 각자 살펴보아 마음을 잘못 쓰지 않도록 하라.

 경문에 분명히 말씀하기를 <스스로의 부처님께 귀의한다> 하였고 <다른 부처님께 귀의한다> 하지 않았으니

 만약 자불(自佛)에 귀의하지 않는다면 의지할 곳이 없으리라.

 너희들은 이미 스스로 깨쳤으니 각각 모름지기 자심삼보(自心三寶)에 귀의하여

 안으로 심성을 고르게 하고 밖으로 다른 사람을 공경하면 이것이 스스로 귀의하는 것이니라.

 

 선지식아, 이미 자기삼보에 귀의하였으니 다시 각각 마음을 가다듬어라.

 내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일체(一體)이면서 삼신(三身)인 자성불(自性佛)을 말하여

 너희들로 하여금 밝게 삼신을 보고 스스로 자성을 깨닫게 하리니 모두 나를 따라 일러라.

 “자기 색신(色身)의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에 귀의하오며

  자기 색신의 천백억화신불(千百億化身佛)께 귀의하오며,

  자기 색신의 원만보신불(圓滿報身佛)께 귀의합니다.”

 선지식아, 색신은 이것이 사택(舍宅)이니 여기에 귀의한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앞서 말한 삼신불(三身佛)은 자성 가운데에 있는 것인데 세간 사람이 다 가졌건만

 자기 마음을 미혹한 까닭에 안으로 성품을 보지 못하고 밖으로 삼신불을 찾아 헤매어 자신 가운데의 삼신불을 보지 못하느니라.

 너희들은 자세히 듣거라. 너희들로 하여금 자신 중에서 자신에 삼신불이 있음을 보게 하리라.

 이 삼신불은 자성으로부터 남(生)이요, 밖에서 얻는 것이 아니니라.

(~~ 여기까지는 강의 생략)

 

 어떠한 것이 청정법신(淸淨法身)인가?

 세간 사람의 성품이 본래 청정하여 만법(萬法)이 자성으로부터 남이라,

 만약 일체 악한 일을 생각하고 헤아리면 곧 악한 행이 나오고 일체 착한 일을 생각하고 헤아리면 곧 착한 행이 나오나니

 이와 같이 모든 법이 자성 가운데에 있는 것이 마치 저 하늘이 항상 맑고 해와 달이 항상 밝으나

 구름에 덮이면 위 하늘은 밝고 아래는 어둡다가도 문득 바람이 불어 구름이 흩어지면 위아래가 함께 밝아 만상이 모두 나타나나니

 세간 사람의 성품도 이와 같아서 항상 들떠 있는 것이 마치 저 하늘의 구름과 같으니라.

불에는 삼신(법신, 보신, 화신)이 있는데 그중 법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구름이 끼면 해가 안 보이다가 사라지면 다시 보이지만, 사실은 늘 밝게 빛나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자성, 우리들의 본심도 그렇다,

한 점 미혹이 일어나 경계에 끄달리면 어리석었다가 정신 차리면 또 사라진다.

 

 선지식아! 지(智)는 해와 같고 혜(慧)는 달과 같아서 지혜(智慧)가 항상 밝건만,

 밖으로 경계에 착하여 망념의 뜬 구름에 자성이 덮이므로 자성이 명랑하지 못하나니

 만약 선지식을 만나 참된 정법을 듣고 스스로 미망(迷妄)을 제하면 내외(內外)가 명철하여 자성 가운데에 만법이 모두 나타나니 견성한 사람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이것이 청정법신불이니라.

 선지식아, 자심이 자성에 귀의하는 것 이것이 진불(眞佛)에 귀의하는 것이니라.

 이 스스로 귀의한다 함은 자성 가운데의 착하지 않은 마음과 질투심과 교만심,

 오아심(吾我心)과 허황한 마음과 남을 업수이 여기는 마음과 거만한 마음과 삿된 소견과 아만심과 모든 경우에 일체 착하지 않은 행 등,

 이 모두를 버리고 항상 자기 스스로의 허물을 보며 남의 호오(好惡)를 말하지 않는 것이 이것이 스스로 귀의하는 것이며

 또한 항상 하심(下心)하고 널리 공경하면 곧 성품을 보아 일체에 통달하여 다시는 막히거나 걸림이 없나니 이것이 스스로 귀의하는 것이니라.

(~~ 여기까지는 강의 생략)

 

 다음에 어떠한 것을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이라 하는가?

 만약 만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성품이 본래 허공과 같으나 한 생각 헤아리면 이것이 변화니라.

 악한 일을 생각하면 화하여 지옥이 되고 착한 일을 생각하면 화하여 천당이 되고

 독해심(毒害心)을 화하여 용(龍)이나 뱀이 되고 자비는 화하여 보살이 되고

 지혜는 화하여 높은 경계가 되며 우치는 화하여 낮은 세계가 되나니 자성의 변화가 심히 많으니라.

 미혹한 사람은 이 도리를 깨치지 못하고 생각마다 악을 일으켜 항상 악도에 떨어지느니라.

 그러나 만약 한 생각을 선으로 돌이키면 곧 지혜가 생기리니 이것이 자성의 화신불이니라.

바닷물이 고요한 것과 같지만 한 번 바람이 불면 수 만 가지 파도를 일으키는 것처럼

한 생각을 일으켜 모양을 짓기 시작하면 삼라만상이 가지각색으로 옳고 그르고 깨끗하고 더럽고 온갖 게 다 벌어진다 ,

이런 갖가지 경계 따라 몸을 나투는 것을 화신이라고 한다,

 

 원만보신(圓滿報身)이란 무엇일까?

 비유해 말하면 한 등불이 능히 천년 동안의 어둠을 밝히듯이 한 지혜가 능히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애느니라.

 지나간 일은 생각하지 말라. 이미 지났으므로 가히 얻을 수 없느니라.

 항상 뒤를 생각하라. 생각 생각 두렷이(圓) 밝게 하여 스스로 본성을 보라.

 선과 악이 비록 다르나 본성은 둘이 없으니 둘이 없는 성품, 이것이 실다운 성품(實性)이니라.

 이 실다운 성품 가운데서 선악에 물들지 않는 이것이 원만보신불이니라.

 자성이 한 생각이라도 악을 생각하면 만겁 동안 쌓은 착한 선(善)종자가 없어지며

 자성이 일념(一念)이 선을 생각하면 항하의 모래수 같은 수 없는 악이 모두 없어져 곧 무상보리에 이르나니,

 생각마다 자성을 보아 본념을 읽지 않는 것이 보신이니라.

(~~ 여기까지는 강의 생략)

 

 선지식아! 법신이 사량(思量)하면 이것이 즉 화신불(化身佛)이요,

 생각마다 스스로 자성을 보는 이것이 보신불이며

 자성 공덕을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닦는 이것이 참된 귀의니라.

 가죽과 살로 쌓인 이 육신은 곧 색신(色身)이고 색신은 사택(舍宅, 삿된 집)이니 색신에게 귀의한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다만 자성의 삼신을 깨달으면 곧 자성불을 아느니라.

 

 이제 나에게 한 무상송(無相頌)이 있으니 너희들이 능히 외고 마음에 지녀라.

 그러면 언하에 누겁(累劫)동안 미혹하여 지은 죄가 일시에 소멸하리라” 하시고 송을 이르셨다.

 

 미(迷)한 사람 복을 닦고 도는 안 닦고      / 복만을 닦으면서 도라고 하네.

 보시하고 공양함은 복은 많으나             / 마음속 삼악(三惡)은 짓고 있으니

 복을 닦아 지은 죄를 없애려 해도           / 후세에 복은 받고 죄는 또 남네.

 

어리석은 사람은 뭔가에 집착해 얻으려는 생각에서 투자하듯이 복을 짓는다,

이렇게 욕심으로 얻으려는 마음으로 행하면 복은 받는다 하더라도 나중에 또 죄는 죄대로 받는다.

 

 다만 마음 가운데 죄연(罪緣) 없애면        / 각자 성품에 진참회(眞懺悔)되니

 대승법 깨달아서 진참회하고                 / 사(邪, 잘못된 길) 없애고 행바르면 즉시 무죄라.

 학도자(수행자)는 어느 때나 자성 관하라  / 즉시에 제불들과 동일류(同一類)되리.

 

 우리 조사 바라심은 돈법(頓法) 전하여    / 모든 중생 견성하여 한몸 됨이니

 오는 세상 누구든지 법신 보려면           / 모든 법상(法相) 여의고 마음 씻어라.

 노력하라 살펴라 노닐지 마라.              / 뒷생각 끊어지면 한세상 가네.

 대승을 깨달아서 견성하려면                / 경건히 합장하고 지성 다하라.

여기서 조사는 달마대사 이후 오대조사이며, 돈법이란 단박에 깨닫는 법을 말합니다.

법신 보려면 모든 법상을 여의어라, 도를 이루려면 모든 법이라고 하는 상을 버려라,

 

과거에 쌓아왔던 그 모든 번뇌를 놔버리면 새로 태어나게 된다,

여러분들이 새 몸을 받고 새로 태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에 얽매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어릴 때 받은 상처, 어제 일어났던 일, 이런 걸 붙들고 있는 것은 전생을 짊어지고 있는 거다,

노력하라 살펴라 노니지 말라는 부지런히 하라는 말인데,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것은 업을 짓는 겁니다.

경계에 끄달리지 말고, 텅 비어 할 것도 없는 그런 삶으로의 길을 놓치지 말고 가야 합니다.

 

 선지식아! 누구나 모름지기 이 게송을 외어라.

 이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언하에 견성할 것이니 비록 내게서 천리를 떨어져 있더라도 항상 내 곁에 있는 것과 같으려니와

 만약 이 말 아래 깨치지 못하면 비록 나와 얼굴을 맞대고 있어도 천리를 떨어져 있는 것이니 어찌 힘들여 먼 데서 찾아오랴.

 수고들 했다. 잘들 가거라.” 하였다.

때에 함께 한 대중이 대사의 법을 듣고 깨치지 않는 자가 없었으니 모두가 환희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