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6강에서 계속)
5. 오분향과 참회법을 전하다
그때에 대사께서는 광주(廣州) 소주(韶州)의 2군을 비롯한 사방의 선비와 백성들이
모두 산중에 모여 청법하고자 함을 보시고 이에 법좌에 오르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오라. 선지식아, 이 일은 모름지기 자성(自性)으로부터 일어나
일체시에 스스로 생각 생각 그 마음을 조촐히 하고 스스로 닦고 스스로 행하여 자기 법신을 보며 자기 마음 부처를 보아
스스로 제도하고 스스로 경계하여야 비로소 얻는 것이니 구태여 이곳에 올 것까지 없느니라.
그러나 이미 먼 곳에서 이와 같이 와 이 곳에 함께 모였음은 이는 모두가 다 인연이 있음이다.
이제 모두 꿇어앉아라. 먼저 자성(自性) 오분법신향(五分法身香)을 전하고 다음에 무상 참회를 주리라.”
유명해지기 전에는 대중이 청하면 산에 계시다가 도시로 나가 법문을 하셨는데,
이제는 거꾸로 사람들이 산으로 몰려와 법문을 원하니 혜능대사께서 말씀을 시작합니다.
“자기 공부 자기가 하는 것이니 산까지 올 필요도 없고, 중 찾아다닐 것도 없고, 절에 올 것도 없지만,
한 마음 내어 여기까지 왔으니 이것 또한 인연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신자가 되려면 참회를 하고 계를 받고 삼귀의 하고 사홍서원 익혀야 합니다,
이런 건 일상적으로 늘 하고 있는 것들이지만 바른 이해를 위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먼저,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하고 예불을 하는 오분법신향에 대해 설명하고,
다음에 우리가 지난 세상에서 지은 잘못에 대한 참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사홍서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삼귀의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들이지만 그 하나하나에는 다 깊은 이치가 들어있습니다.
늘상 한다는 것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오히려 늘상 하기 때문에 지금은 가장 덜 중요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대중이 일제히 꿇어앉으니 대사께서는 말씀하셨다.
“첫째는 계향(戒香)이니 자기 마음 가운데에 그름(非)이 없고 악함이 없고
질투가 없고 탐냄과 성냄이 없으며 또한 빼앗고 해치는 마음이 없는 것이 계향이요,
계향이란 자기 마음 가운데 그름도 악함도 질투도 탐냄도 성냄도 없으며
또한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을 해치는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은 행하고 마땅히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은 행하지 않는 게 계입니다,
남이 내게 해꼬지 하면 싫을 것이고, 누가 나를 죽이려 한다면 원한을 가질 것입니다.
원한을 가지면 세세생생을 두고 원수를 갚겠다는 복수심에 불타게 되는데,
그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고 다른 생명도 또한 그럴 것입니다.
생명을 해치면 그 생명이 원수 갚겠다고 나를 따라다닐 것이니, 이것은 곧 나의 미래의 재앙이 될 것이니 행하지 않는 게 좋다,
바로 이렇게 마땅히 행하지 말아야 될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이 계입니다.
악하고 질투하고 탐내고 성내고 빼앗고 해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두려워 가까이 가기가 겁나지만,
나를 도와주고 사랑하고 거짓말 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해주는 사람과는 함께 있고 싶다,
이런 사람에게서 풍기는 향기를 계향이라 합니다.
입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을 바로해서 이 몸을 청정히 하겠나이다’ 이런 바램이 있을 때 그게 진정한 계향입니다.
둘째는 정향(定香)이니 모든 선악 경계나 형상을 보고 자기 마음이 어지럽지 않는 것이 정향이요,
정이란 바깥 경계 형상에 끄달리지 않고 자기 마음이 고요한 것을 말합니다.
심리가 불안한 사람, 고요하지 못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나도 덩달아 불안해지지만,
고요하게 있는 사람에게 가면 나의 온갖 고민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게 됩니다.
부처님 당시에, 누가 찾아와 부처님께 묻지만 아무 대답도 안 하십니다.
씩씩대고 왔다가 고요히 앉아 계시는 부처님 옆에 한참 앉아 있다가 보면 문제가 다 없어져 버립니다.
뭐 땜에 내가 씩씩댔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것이 정의 향기, 고요한 속에서 풍기는 향기입니다.
셋째는 혜향(慧香)이니 자심이 걸림이 없어 항상 지혜로써 자성을 비춰 보아 모든 악을 짓지 아니하고
비록 많은 선을 행하더라도 마음에 집착하지 않으며 위를 공경하고 아래를 보살피며 외롭고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혜향이니라.
지혜라 하니까 굉장한 것인줄 알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 모든 것에 다 일체중생의 은혜가 깃들어 있구나,
밥 한 톨, 옷 한 벌에도 만민의 노고가 깃들어 있고 물 한 방울에도 천지의 은혜가 깃들어 있구나,
이런 걸 훤히 꿰뚫어 보는 게 혜향입니다.
부처님의 갖가지 법문은 다 우리에게 이런 눈을 뜨게 해주는 가르침입니다.
동산이다 하니까 그냥 동산인줄만 알았더니 동네 밖에 나가서 보니 동산이 아니구나,
서쪽에 서면 동산이 되고 동쪽에 서면 서산이 되는구나, 이것이 혜, 깨닫는 겁니다.
넷째는 해탈향(解脫香)이니 마음에 반연(攀緣)하는 바가 없이 선(善)도 생각하지 않으며 악(惡)도 생각하지 아니하여 자재무애한 것이 해탈향이요,
해탈이란 자유입니다, 세상이 나를 속박하는 줄 알았더니 내가 나를 속박하고 있구나,
탐진치 삼독에 속박되고 계정혜 삼학의 법에 속박되고 또 선에 속박된다,
이렇게 자기가 만든 어떤 카테고리 안에 갇혀 살다가, 탁 차고 나와서 걸림 없는 것이 해탈입니다.
다섯째는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이니
지혜로운 사람과 같이 있으면 좋습니다.
계를 지키고 선하고 마음도 고요하지만 얘기해보면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을 보면 속이 터지지만,
얘기도 시원시원하게 하고 사물을 바로 보고 지혜가 있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툭 트입니다.
해탈이란 자유자재하고 탁 트인 사람을 말합니다.
계를 지킨다는 것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고, 고요하다는 것은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고, 지혜롭다는 것은 남을 답답하게 안 하는 겁니다.
지혜와 해탈은 조금 다릅니다.
지혜란 매사에 밝은 것이고, 해탈이란 자유로운 것, 걸림이 없는 겁니다.
잘못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 툭툭 털고 걸리지 않는 것을 해탈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자심에 이미 선악에 반연하는 바가 없다 하더라도 공(空)에 잠겨 고요를 지켜서는 아니 되니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욕심도 화낼 일도 없이 해탈로 끝났더라도 목석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눈물 흘릴 줄 알고, 배고픈 사람 보면 밥해줄 줄도 알아야 하고,
남편에게 구박당하고 와서 울고 불면 등 두들겨 주고 같이 울어줄 줄도 알아야 한다.
(제18강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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