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7. 육조단경

[법륜스님의 '육조단경'] 제6강 법을 깨닫고 법의를 받다 3

상원통사 2019. 12. 10. 15:12

(~~ 제5강에서 계속)

 

 

내가 말씀드렸다 어느 곳을 향하여 가오리까?”

오조 말씀하셨다 ()를 만나면 머물고 회()를 만나거든 숨어라

이런 대목은 흠이지요, 이런 것은 후대에 가미되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육조대사께서 실제로 사회현에 머물고 숨어 지냈다 하더라도, 이런 것은 빼는 게 공부하는 수행자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엉터리로 수행하는 사람은 이런 말에 현혹되어, 어디 숨고 들고 하라고 예언하는 게 불법인 줄로 오해하게 됩니다,

목숨에 대한 집착도 놔버려야 되는 데숨을 장소를 일러주는 이런 게 조사의 문답에 들어갈만한 것이겠습니까?

   

3경에 의발을 받아 들고 또 말씀드렸다,

제자는 본시 남중 사람이라 이곳 산길을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강구(江口)로 빠질 수 있습니까?”

오조 말씀이 너 걱정할 것 없다. 내가 너를 전송하리라하신다.

오조와 함께 곧 구강역(九江驛)에 이르니 마침 배 한 척이 있었다.

조사께서는 나에게 배에 오르라 하시고 노를 잡으시고 친히 저으셨다.

내가 말씀드리기를 화상께서는 앉으십시오. 제자가 마땅히 노를 젓겠습니다.” 하니

오조 말씀이 내가 마땅히 너를 건네 주리라하신다.

내가 여쭈었다

미혹한 때는 스님께서 건네주셨거니와 깨친 다음에는 스스로 건너겠습니다.

  건넌다는 말은 비록 하나이오나 쓰는 곳은 같지 않습니다.

  혜능은 변방에 태어나서 말조차 바르지 못하옵더니 스님의 법을 받아 이제는 이미 깨쳤사오니

  다만 마땅히 자성(自性)으로 스스로 건넬뿐입니다.”

여기에는 제자가 스승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구구절절이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할 때는 스승에게 절대 복종을 해야 합니다.

절대복종이란 노예 같은 그런 복종이 아니라, 자기라는 것을 내려놓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를 확연히 내려놓고 자기 본 성품을 보고 흔들림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스승은 제자를 세속적인 제자가 아니라 도반으로 동등하게 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자는 깎듯이 예를 갖추는 게 도리이고, 이게 깨달음의 세계에서 행해야 하는 바입니다.

또 스승으로부터 배워 깨쳤으면 스스로 서야 되고, 힘이 닿으면 스승을 도와야 됩니다.

이건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도 자식이 스무 살쯤 되면 독립시키십시오,

그래야 효자가 되고 부모 고마운 줄 알고 세상에 나가 자립하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식은 성인이 되면 자립하여 자기를 유지시켜 나가야 되고, 힘이 닿으면 부모를 봉양해야 됩니다.

그것이 자연 만물계의 원리이고 그것이 예부터 내려오는 인간의 도리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40이 되고 50이 되어도 아직도 부모에게 의지해서 살고,

60이 되어도 80된 부모 죽는 것만 쳐다보고 유산이 얼마나 올까 그런 궁리만 하고 있다면,

이것은 자식된 도리로서 맞지 않는 것이고 부모 또한 자식을 잘못 키워서 그런 것입니다.

스무 살이 넘으면 더 이상 부모한테 의지하면 안 됩니다,

부모에게 조금이라도 의지하려거든 부모가 고마운 줄 알고 살아야 합니다,

또 부모는 자식이 자립할 수 있도록 빨리 정리해주어야 합니다,

세상의 인륜도덕이 어긋나는 것은 자식만이 아니라 부모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억누르니 자식은 크지 못하고, 자식은 그것이 의지심으로 바뀌어 평생 부모에게 매달려 살아가게 됩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 밑에서 공부해 마음에 증득한 바 있으면 그 다음부터는 독립을 해야 하고,

그리고 힘이 되면 스승을 받들고 봉양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스님들이 80, 90 된 스승을 등에 업고 불사금 모으려 하고, 거기 의지해 한 자리를 하려고 합니다.

이런 게 제자가 스승에게 예를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옳다. 이후로 불법이 너로 말미암아 크게 행할 것이다.

  네가 간 3년 뒤에 나는 세상을 떠날 것이니 너는 이제 잘 가거라.

  힘써 남쪽으로 향하여 가되 속히 설하려고 서두르지 말라. 법난(法難)이 있으리라하셨다.

3년 뒤에 세상을 떠나리라 했는데 이 예언은 틀렸습니다, 홍인대사는 15년 후에 떠났습니다.

  

내가 오조께 하직하고 발을 돌려 남쪽으로 향하매 두 달 반 만에 대유령(大庾嶺)에 이르렀다.

 

(오조께서 돌아가시어 수일을 상당(上堂)하지 않으시니 대중이 의심이 들어 나아가 물었다.

  “화상이시여 어디인가 환후라도 계십니까?”

  “병은 없다. 의법이 남으로 갔느니라

  “누구에게 전수하셨습니까?”

  “능한 자가 얻었느니라여기서 대중은 곧 알아차렸다.)

뒤에서 수백 명이 쫓아왔으니 의발을 빼앗으려는 것이었다.

혜능대사가 떠나고 나서부터 5조 홍인대사는 법좌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왜 법좌에 안 오르시냐고 물으니 법은 이미 남쪽으로 갔다고 하고,

누구에게 법을 전수하였냐고 물으니 능한 자가 얻었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부엌에 있던 그 놈이구나하고 잡으러 간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한 중이 있었는데 속성은 진()이요, 이름은 혜명(惠明)이라 하였다.

본시 사품(四品) 장군으로 성질과 행동이 거칠고 사나웠다.

이 사람이 힘을 다하여 쫓으니 다른 사람보다 앞서 나를 쫓아왔다.

나는 의발을 바위 위에 내어 놓으며 이 옷은 믿음의 표시이거니 어찌 힘으로 다툴까 보냐.” 하고 나는 수풀 속에 숨었다.

혜명이 달려와 의발을 잡아 거두려 하였으나 움직이지 않는다.

혜명이 소리쳤다. “행자시여, 행자시여, 저는 법을 위하여 왔습니다. 의발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 한다.

드디어 내가 나와 반석 위에 앉으니 혜명이 절을 하고 말하였다 바라옵건대 행자시여, 저를 위하여 법을 설하여 주십시오.” 한다

이런 때엔 힘센 사람이 장사입니다.

공부를 하고 깨달음을 얻어서 법을 얻는 것이라면 힘센 놈이 맥을 못 추지만,

누구든지 빨리 가서 뺏으면 조사가 된다면 힘을 잘 쓰는 군인이 최고일 겁니다.

의발이란 마음을 깨달아 전수받을 때 법의 징표가 되는 거지 힘으로 뺐는다면 법의 징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바위에 얹어놓고 가시덤불 뒤에 숨었습니다.

혜명수좌가 쫒아와서 이것만 가지면 나도 조사가 된다, 이런 생각으로 잡았는데 꿈쩍도 안해요,

그 순간 마음이 바뀌어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의발을 뺏으러 온 게 아니라 법을 구하러 왔다고 외칩니다.

 

내가 말하였다 네가 이미 법을 위하여 왔을진대 이제 모든 반연(攀緣)을 다 쉬고 한 생각도 내지 마라. 너를 위하여 말하리라

하고 한참 있다가 혜명에게 말하였다.

()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는 바로 이러한 때, 어떤 것이 명상좌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인고?” 하니 혜명이 언하에 대오하였다.

혜능대사는 혜명에게 생각을 쉬어라라고 하였고, 혜명의 마음이 고요한 상태가 되자 물었습니다.

발우에 손대기 전 마음은 무엇이고 그 후의 마음은 무엇인가, 어떤 것이 명수좌의 본래 면목인가이렇게 물었습니다.

발우에 손대기 전 마음은 법의를 뺏으려는 마음이었고, 그 후의 마음은 법을 구하는 마음이지요,

앞의 것을 중생심이라 하면 뒤의 것은 보살심입니다,

전심은 무엇이며 후심은 무엇이냐, 어떤 것이 네 본심이냐, 그러자 혜명이 언하에 대오하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화상이시여, 상래의 비밀한 말씀과 비밀한 뜻 외에 다시 다른 비밀한 뜻이 있사옵니까?”

내가 말하였다 너에게 말한 것은 비밀이 아니니 네가 만약 반조(返照)하면 비밀은 네 편에 있느니라

그러고 나서 또 물었습니다, ‘화상이시여, 비밀한 다른 건 좀 없습니까?’

얻으려 하는 사람들의 세계에는 비법이 존재합니다.

수행집단에도 비법이라는 것을 똑똑한 상좌에게만 몰래 전해주는 일이 허다합니다.

근데 부처님께서는 눈 있는 자 와서 보라 하셨습니다,

법이란 누구나 볼 수 있게 훤히 열린 것이지 비법을 비밀히 전한 게 아닙니다,

비록 야밤 삼경에 문을 가려놓고 법을 전했다 하더라도 여기서 전한 것은 비법이 아닙니다.

법은 비밀이 아니다, 비밀은 네 마음이 짓는 바다,

비밀이라고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네가 지금 비밀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혜명이 말하기를

혜명이 비록 황매에 있었사오나 실로는 아직도 자기면목을 살피지 못하였사온데

  이제 가르침을 받사오니 마치 사람이 물을 마셔보고 차고 더운 것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사옵니다.

  이제부터 행자님은 이 혜명의 스승이십니다.”한다.

내가 이르기를 네가 만약 이와 같을진대 나와 너는 다 함께 황매를 스승으로 삼을 것이니 앞으로 잘 호지(護持)하라

하니 혜명이 또 물었다 혜명은 금후 어느 곳을 향하여 가오리까?”

내가 말하였다 ()을 만나면 멈추고 몽()을 만나거든 살라하니 명이 절을 하고 물러갔다.

(명이 고개 아래로 돌아와 뒤쫓는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높은 봉우리 밑까지 가보아도 종적이 없으니 마땅히 다른 길로 쫓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 무리들이 모두 그러리라하고 돌아섰다.

  혜명은 뒤에 이름을 도명(道明)이라 고치니 이는 스승의 이름 윗자를 피한 것이다.)

비록 머리를 기르고 있는 부목이지만 당신은 나의 스승이다 이렇게 말하니

나를 스승이라고 굳이 얘기하지 마라, 우리는 다 같이 홍인대사를 스승으로 모신 사람이다,

도리를 깨달았으면 그걸로 족한 것이다, 우리는 한 스승 밑에서 공부한 도반일 뿐이다 이런 얘기입니다.

 

 

내가 뒤에 조계(曹溪)에 이르니 이곳에서도 또한 악한 무리에 쫓기게 되었다.

이어 사회현(四會縣)에 들어가 사냥하는 무리들 속에 피난하니

여기서 거의 15년 동안을 사냥꾼들과 함께 지내며 그 때 그 때 정황 따라 법을 설하며 지냈다.

조계는 보림사를 말합니다, 이때 보림사는 거의 폐허에 가까운 절이었습니다.

혜능대사는 보림사 근처의 마을에 도달해서 어느 유학자의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그 분의 여동생이 비구니였습니다.

그 비구니 스님이 열반경을 공부하다가 혜능에게 물으니 이렇게 말합니다.

혜능    : 나는 글을 모르니 당신이 읽어주면 내가 설명을 해주겠소.

비구니  : 글자를 모르는데 어떻게 경을 해석합니까?

혜능    : 글자는 모르지만 부처님 말씀이 글자에 있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 비구니 스님이 열반경을 읽어주자 혜능이 설명을 해주는데 그게 너무나 명쾌합니다.

비구니 스님은 도인이 났다고 사방에 소문을 내다, 유력인사들도 와서 듣고는 감탄했습니다.

그러자 신도들이 모이고, 쓰러져가던 보림사도 중창하고 스님을 모실 즈음이 되었는데,

또 사람들이 몰려와 절에 불을 질렀고, 혜능이 산으로 도망가니까 산에도 불을 질러버렸습니다.

그래 바위 틈바구니에 숨어 있다가 겨우 살아났습니다.

앞에 예언처럼 나오지요, 금방 법을 펴려고 하지 마라, 생명이 실낱 같고 법난이 있으리라,

이런 얘기들은 후대에 적었는지 오조스님께서 진짜로 예측하고 말씀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혜능도 이 문제를 직시하고 산속에 들어가 숨어서 사냥꾼들과 15년을 지내게 됩니다.

그 후 다시 이곳에 오셔서 머물렀는데, 뒷산이 조계산이기에 조계종이라 칭하는 겁니다.

 

사냥꾼들은 나에게 항상 그물을 지키게 하였는데 나는 매양 살아 있는 것을 보면 모두 놓아 주었으며,

밥지을 때는 매양 채소를 고기 삶는 냄비가에 넣어서 익혀 먹었는데 혹 물으면 나는 다만 고기 곁의 채소만 먹는다고 대답하였다.

사냥꾼들과 같이 지냈다고 하면 됐지, 굳이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조금 도를 넘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