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10일간에 걸쳐서 육조단경 강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육조단경(六祖壇經) : 선종 제6대조 혜능대사의 법문집. 선불교의 핵심경전
육조단경은 달마선(조사선) 제6조인 혜능대사의 법어를 모아놓은 법문집인데,
선종에서는 이 말씀을 워낙 중요하게 여겨, 선불교의 핵심이 되는 경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문집, 논 또는 소라 하지 않고, 부처님 말씀에 준하는 ‘경’자를 붙여 육조단경 또는 법보단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혜능대사 : 중국 당나라 사람으로 원효대사와 동시대 인물임
육조 혜능대사는 중국 당나라 때 사람(638~713)입니다.
백제 멸망이 660년이고 고구려 멸망이 668년이니까 삼국이 통일되기 전에 출생하셨는데,
원효대사(617~686)보다 20년 정도 후의 인물입니다
선불교는 AD520년 보리 달마대사가 인도로부터 중국에 전래하였다
선불교는 중국에서 발전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명상하고 참선하는 것은 부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선불교라는 이름으로 종파를 형성하고 발전한 것은 중국에서입니다.
선불교는 AD520년 인도의 달마대사가 중국에 전래했기에 그를 선종의 창시자라고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 선불교의 전통이 중국에서 시작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보리달마는 남인도 사람으로 반야다라존자로부터 깨우침을 받았다
달마대사는 남인도 사람입니다, 남인도 한 왕국의 막내아들, 셋째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반야다라 존자에게서 깨우침을 받고 인도에서 전법활동을 하다가 배 타고 중국으로 건너와 지금의 양나라 광주에 도착해서,
양무제와 문답을 했는데 양무제가 아직 불법의 진수를 깨치지 못함을 알고 양자강 건너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당시 중국은 남북조시대로, 북쪽에는 5호16국이 남쪽에는 6조가 번갈아가며 왕권을 교체하는 그러한 시대였습니다.
그러면 달마대사의 득법기연(得法機緣)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때에 향지대왕(香至大王)에게 세 분의 왕자님이 있었는데 그 막내 왕자님이 매우 총명하였다.
반야다라 존자님이 세 분 왕자의 얻은 바 지혜를 시험하고자 하여 이미 구슬로써 세 왕자에게 물었다
“이 보배구슬이 둥글고 밝은 데 이에 미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첫째 왕자 목정다라와 둘째 왕자 공덕다라는 똑같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보배구슬은 칠보 가운데서도 가장 존귀하여서 이를 가지고 있는 이가 없습니다.
반야바라 존자님의 도력이 아니고는 어떻게 이 보배구슬을 대왕으로부터 얻었겠습니까?”
그러나 셋째 왕자 보리다라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 아무리 나라 가운데 제일가는 보배구슬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의 보배이니 귀하게 여길 것은 못됩니다. 모든 보배 중에 법의 보배가 으뜸이 됩니다.
또 이 보배구슬의 광채는 세간의 광채이니 귀할 것이 못됩니다. 모든 광채에는 법보의 광채가 으뜸입니다.
또 이 보배구슬의 광명은 세간의 광명이니 귀할 것이 못됩니다. 모든 광명가운데는 법보의 광명이 으뜸입니다.
이 구슬의 광채는 스스로 비추지 못하고 반드시 지혜의 광명을 빌려야 그 광명을 분별합니다.
이를 분별한 뒤에야 구슬인줄을 알게 되고 구슬임을 안 뒤에야 보배임을 압니다.
그것이 보배임을 밝히었으나 보배는 스스로 보배가 되지 못하고 그것이 구슬임은 분별하나 구슬은 스스로가 구슬이 되지 못합니다.
구슬이 스스로 구슬이 되지 못하므로 반드시 지혜의 구슬에 의해서 세간의 구슬을 분별하고
보배가 스스로 보배가 되지 못하므로 반드시 지혜의 보배에 의하여 법의 보배를 밝힙니다.
그러기에 반야다라존자님께서 지혜의 도가 있으므로 이러한 보배가 나타난 것과 같이,
중생들이 도가 있음은 마음의 보배가 나타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반야바라 존자님이 그의 변재에 탐복하여 다시 물었다 “모든 물건 가운데서 어떤 물건이 형상이 없는가?”
대답하기를 “모든 물건 가운데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 형상이 없습니다.”
존자님이 다시 묻기를 “모든 물건 가운데서 어떤 물건이 가장 높은가?”
대답하기를 “모든 물건 가운데서 나와 남의 집착이 가장 높습니다.”
다시 묻기를 “모든 물건 가운데서 어떤 물건이 가장 큰가?”
대답하기를 “모든 물건 가운데서 법성(法性)이 가장 큽니다.”
반야바라 존자님은 속으로 바로 이 보리다라 셋째 왕자가 법기(法器)임을 알았으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으므로 우선 잠잠히 두었다.
뒷날 향지대왕이 세상을 떠날 때 다른 이들은 모두가 통곡을 하는데
셋째 왕자 보리다라만이 영구 앞에서 선정에 들어 7일 만에 선정에서 나와 출가하겠다고 말하였다.
이 반야다라 존자님께 보리달마대사는 법을 전수받아 인도에서 불법을 홍포(弘布)하시다가
조카인 이견대왕을 교화했고 그의 도움을 받아 배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오게 되었습니다.
중국에 도착해서 양무제를 배알합니다.
인도에서 고승이 왔다 하니까 양무제가 달마대사를 왕궁으로 초대를 한 것입니다.
양무제가 달마대사에게 물었다
“짐이 왕위에 오른 뒤에 절을 짓고 경을 쓰고 스님이 되도록 하여
음식과 의복과 탕약과 수행기구 등 사사(四事) 시주자가 되어 그 외호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달마대사가 대답하였다 “아무 공덕이 없습니다.”
양무제가 말하기를 “이러한 많은 공덕을 지었는데 어찌하여 대사는 공덕이 없다고 합니까?”
달마대사가 말씀하시기를
“이는 인간과 하늘의 작은 결과를 받는 유루의 원인이 될 공덕일 것이니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아서 있는 듯 하나 실제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공덕이 없는 것입니다.”
양무제가 묻기를 “어떠한 것이 진실한 공덕입니까?”
달마대사가 대답하시기를
“청정한 지혜는 묘하고 원만하여 본체가 본래 비고 고요하니 이러한 공덕은 세간법인 유위법으로는 구하지 못합니다.”
양무제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성제(聖帝)의 제일 가는 이치입니까?”
달마대사가 대답하기를 “전혀 성스럽거나 거룩함이 없습니다.”
양무제가 말하기를 “짐을 대하고 있는 대사는 누구입니까?”
달마대사가 대답하기를 “모릅니다.”
양무제가 알아듣지 못하니 달마대사는 근기(根機)가 맞지 않음을 알았다.
근기가 맞지 않기에 달마대사는 양자강을 건너서 북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신광이라는 승이 있었는데, 항상 보리달마 조사님께 법을 물었으나 달마조사님께서는 전혀 말씀해주시지 않았다.
이에 스스로가 탄식하기를
‘옛사람들은 법을 구하기 위해 뼈를 깎고 골수를 꺼내고 피를 뽑아 부처님 성상을 그리고
머리채를 풀어 진흙에 펴고 벼랑에 몸을 던지고 주린 범에게 주었다.
옛사람들은 이렇게까지 하였는데 나는 무엇을 아끼리오?’
때는 태화(?) 10년 12월 9일 법을 구하기 위해 눈 오는 밤을 서서 새웠다.
날이 새어 보리달마대사께서 보시고 물었다 “네가 눈 속에 섰으니 무슨 구하는 바가 있느냐?”
신광이 눈물을 흘려 슬피 울면서 말하였다 “바라옵건대 조사이시여, 감로문을 활짝 열어 뭇 중생을 건져 주십시오.”
보리달마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위없는 보리는 여러 겁을 수행한 것이어늘 네가 작은 뜻으로 큰 법을 구하려 해도 끝내 될 수 없느니라.”
혜가(신광)가 사뢰었다 “조사께서 마음을 편안케 해주소서.”
조사께서 대답하셨다 “마음을 가져오너라. 편안케 해주리라.”
혜가가 말했다 “마음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조사가 대답하시기를 “찾아지면 어찌 그것이 너의 마음이겠느냐, 벌써 너의 마음을 편안케 마쳤다.”
보리달마 조사께서는 말씀하셨다 “너의 마음을 이미 편안케 해주었다. 너는 보는가?”
혜가가 이 말씀에 활짝 깨닫고 조사께 아뢰었다
“오늘에야 모든 법이 본래부터 공적하고 오늘에야 보리가 멀리 있지 않는 것임을 알았나이다.
그러기에 보살은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살바야(薩婆若, 모든 법을 깨닫는 슬기)의 바다에 이르며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열반의 언덕에 오르나이다.”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옳은 말이니라.”
혜가가 말하기를 “조사이시여, 이 법은 문자로 기록할 수 있습니까?”
조사가 대답하셨다 “나의 법은 마음으로써 마음으로 전하느니라. 문자를 세우지 않느니라.”
이 당시 중국은 인도에서 불교가 전래된 지 450년 가까이 지났기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교가 되었습니다.
인도어 경전들이 중국어로 번역되었고, 많은 절과 탑이 세워졌고, 많은 승려들이 출가했습니다.
이 때 중국은 천하통일을 위해 서로 전쟁하고, 부국강병책을 쓰는 혼란한 시기였기에,
왕들은 불법을 통해 민심을 수습하는 한편 자신이 불법을 호위하는 왕이라는 그런 이미지를 심으려 했습니다.
그러니 불교는 수행과 민중의 복리를 생각하기 보다는 왕과 대신들의 옹호와 호위를 받고,
승려들의 지위가 향상되고, 불경을 번역하고 연구하고 공부하는 학문적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즉, 불법이 수행을 하고 깨달음을 얻어 해탈의 길로 가기 보다는 일종의 종교화 되었고,
세속권력과 결탁하고 세속권력과 맞먹을 만한 종교적인 권위를 점점 쌓아갈 때였습니다.
이럴 때 달마대사는 권위주의적 형식주의적 학문주의적인 불교에 반해 새로운 불교를 주창하면서
왕궁에서 권력이나 높은 지위를 갖고 있던 승려들을 신랄하게 비판했기 때문에,
불교 기득권층으로부터 배척당했고 다섯 번의 시도 끝에 결국은 독살되고 말았습니다.
달마대사뿐만 아니라 2조 혜가대사도 독살되었습니다.
권력과 결탁하고 힘과 권위를 가진 기성 불교는 그들을 비판하는 새로운 불교를 수용하지 못하고
그 지도자들을 처형하는 행태를 보였던 것입니다.
초기 선불교의 가르침은 매우 간단하고 어떤 형식도 용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무엇을 얻으려 하고 어떤 권위를 지키려 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왔을 때, 양무제는 불교를 옹호하는 전륜성왕이란 칭송을 받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는 많은 절을 짓고 탑을 세우고 경전을 번역하고 스님들을 출가시키고 뒷바라지하였고,
수십 수백 명의 스님들은 그가 행차할 때면 그를 호위하고 다녔습니다.
승려의 권위와 불법이 세속 왕의 아래에 놓여있었던 시대,
세속의 가치가 우선 되고 불교의 가치가 그 아래에 놓였던 그런 시대였는데,
많은 사람들은 불교가 번성하고 있는 것처럼 잘못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달마대사가 소림사에 머물고 계실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무언가를 구했습니다.
법을 구하고 도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범어를 가르쳐 달라, 도술을 가르쳐 달라, 신통을 가르쳐 달라, 미래를 점쳐 달라,
온갖 것을 구했지만 달마대사께서는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것은 불교의 근본사상도 아니고 불법도 아니었기에 그는 대꾸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얻으러 왔다가 얻지 못하자 그냥 돌아갔지만, 혜가만은 묵묵히 그 침묵 속에서도 함께 했습니다.
이렇게 몇 년이 흐른 뒤, 달마대사께서는 혜가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달마 : 왜 왔느냐?
혜가 : 불법을 얻으러 왔습니다.
달마 : 어떤 불법을 얻으러 왔느냐?
혜가 : 안심입명의 도를 얻으려 왔습니다.
(안심입명, 마음을 편안케 하는 도를 얻으려 왔다, 현재 본인의 마음이 불편하다는 겁니다)
달마 : 네 마음이 어떤데?
혜가 : 제 마음이 불편(불안)합니다.
달마 : 그래 불안한 마음을 이리 내놔라, 그러면 네 마음을 편안케 해주겠다.
(그러나 혜가는 그 마음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혜가 :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 : 이미 내 너의 마음을 편안케 했도다.
혜가는 안심하는 법을 늘 밖으로 찾아다녔습니다.
책을 구하고 사람을 구하고 산야를 구하고 육신을 단련하고 호흡 하는데서 안심의 법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내놔라’ 하는 한 마디에, 그는 바깥으로 향한 눈을 안으로 돌리게 되고,
안으로 돌리자 제법이 공함을, 마음이라 할 것이 없음을 즉시 깨달았습니다.
마음이랄 것이 없으면 불안한 마음도 있을 리 없다, 그것은 다 생각이 지은 상에 불과하다,
팔만사천의 무진 법문이지만 언하(言下, 말이 떨어진 바로 그 때)에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해 바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심전심, 글을 쓰고 징표로서 전한 것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개합(開闔)해서 깨달음을 얻었다,
불립문자,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 불법이란 글자에 의지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은 그 이후에도 계속이 됩니다.
혜가대사께서 법을 얻고서 불법을 드날릴 때 법 전할 사람을 널리 구하였는데,
어떤 거사 하나가 사십이 넘었음 직 한데 당신의 성명도 밝히지 않고 불쑥 와서 절을 하고 물었다.
“제자는 풍병이 걸렸사오니 대사님께서 죄를 참회케 해주소서.”
옛사람들에게 풍병(문둥병)은 죄를 많이 지은 사람에게 하늘이 내린 벌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죄를 참회케 해주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혜가대사님이 대답하였다 “죄를 가지고 오너라. 참회케 해주리라.”
그 거사가 조금 있다가 말했다 “죄를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혜가대사가 대답하시되 “그대의 죄는 다 참회 되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인데, 죄를 밖으로 찾고 있었고, 죄의 본성이 있는 줄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가져오라’ 이 말 한 마디에 죄의 본성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앞으로는 불법승 삼보에 의해서 머물러라.”
그가 묻기를 “지금 대사님을 뵈옵고 승보임은 알았으나 어떤 것을 불보, 법보라고 합니까?”
혜가대사 이르시되 “마음이 부처요 마음이 법이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이 둘이 아니요, 부처님의 제자 승보도 그러하다.”
이 마음 깨달으면 불보요, 이 마음 고요하면 법이요, 이 마음 청정하면 승이다,
부처님이 따로 있고 법이 따로 있고 스님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머리 깎고 먹물 옷 입고 무슨 형상을 한 게 승려가 아니라, 그 마음이 청정하면 곧 승려다.
그가 말하기를
“오늘에야 비로소 법의 성품이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지 않음을 알았으니,
마음이 그러하듯이 불보와 법보가 둘이 아니옵니다.”
혜가대사님이 매우 기특하게 여겨 곧 머리를 깎아주고 말했다.
“너는 곧 나의 보배이니 승찬이라 법호를 하라.”
이분이 삼조 승찬대사입니다.
문둥병 환자였고 승려도 아니었는데, 스승을 만나 언하에 깨닫고 승려가 되었으며 법의 전수자가 되었습니다.
(제2강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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