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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피서지 - 박경리 문학관

상원통사 2019. 9. 1. 19:45

헤아려보니 벌써 30년도 더 지났습니다.

80년대 중반 바그다드에서 '건설의 역군'으로 일하던 시절, 숙소에 도서관이 있었고 서가에는 책들이 제법 꽂혀있었습니다.

일 주일에 한 번 쉬는 어느 금요일, 빈둥거리다가 혹시나 하고 들렀는데 이름이 멋져 보이는 책들이 보였습니다.

<장길산>, 무협지는 아닌 것 같고 중국에 있는 산 이름인가, 어쨌든 10권이나 되니 시간 보내기 참 좋겠다,

시작은 심심풀이였지만 그 끝은 빠져나올 수 없는 마력의 늪이었지요.

'소설이라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또 다른 대하소설 없을까', <토지>가 보였습니다.

아마 그 때 3부까지 읽었고, 귀국하고 나서 4부는 읽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5부는 읽지 않았습니다, 왜냐, 슬픈 봉순이가 죽고나자 읽는다는 것 자체가 그냥 시들해져 버렸습니다.


그 무대가 되는 경북 하동군 평사리, 차에서 내리자마자 숨이 턱턱 막히는데 우려하던 일이 생겼습니다.

연속 사흘째 계속하는 무더위 속의 강행군, 한창 88한 나이(?)의 장인어르신께서 지친 모습을 보이십니다.

두리번거리니 관광안내소가 있어 사정이야기를 하고 잠시 쉬겠다고 했더니 기꺼이 허락합니다.

아내는 아이스크림을 사오고, 장모님은 가방에서 홍시를 꺼내어 아버님 입에 넣어드립니다.

사위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다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에어콘 바람이 좋기는 좋아요, 기력을 회복한 아버님께서 고지를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습니다.



"최참판댁 가는 길"을 따라 오르면 ~~



길가는 나그네들 목 축이라고 옹달샘이 있고 ~~



조금 더 올라가면 저만큼 박경리문학관이 보입니다.



입구에 서계신 선생님은 어디를 보고 계시나 ~~



넓은 뜰 평사리 벌판이겠지, 아니다, 간도 땅 용정을 보고 계신지도 모르겠구나 ~~



2016년 개관한 100여 평의 한옥 문학관 안으로 들어가면,

"선생이 평소 사용하거나 아끼던 유품 41점과 ~~"




"생전에 사용하던 재봉틀, 육필원고, 국어사전, 의복, 안경, 돋보기, 필기구,

 문패, 그림부채, 도자기, 담배와 재떨이, 가죽장갑, 그림엽서 등이 있다."








"또 소설 토지 전질 외에도 선생의 주요 문학작품과 관련 자료와 함께 ~~" 





"평사리를 배경으로 한 사진, 이미지, 평사리 공간지도 등도 함께 전시됐다."



어르신들은 시원한 곳에서 더 감상하고 계시라 하고, 우리는 건너편에 자리한 최참판댁으로 갑니다.



여기서 영화나 드라마도 참 많이 찍었네요, 포스터 하나하나가 다 작품 하나씩입니다.



최참판댁, 본래부터 누군가가 살았던 집이라 생각했는데 아니랍니다.

나 빼놓고 혼자서만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온 아내 왈,

'책이 나오고, 드라마가 방영되니 사람들이 찾아와 최참판댁이 어디냐고 물었다.

 소설은 허구 아닌가, 하지만 허구가 실상을 만들수도 있다.'



찍어놓고 보니 너무 예뻐서 ~~



서희 닮은 아줌마도 너무 예뻐서 ~~



여기는 중문채이고 ~~



여기는 윤씨부인이 살던 안채의 대청마루이고 ~~




여기는 안채 뒤의 장독대이고 ~~



여기는 사당이고 ~~





여기는 별당,

어린 시절 서희와 봉순이가 같이 지내던 곳입니다.



별당 마루에 걸터 앉아 소설 <토지>를 떠올려봅니다.

서희가 있고 봉순이 있었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봉순이는 불행의 연속이었고 나중에 쓸쓸히 죽었다는 것만 생각납니다.

집에 돌아가면 '관심도서' 목록에 '토지'도 올려놓아야겠습니다.




산문을 써보고자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을 쳐다봅니다.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며칠이 지나도 원고지 10장 채우기 힘듭니다.

황석영님, 조정래님, 박경리님 같은 분들과는 문 넘고 문 넘고 또 문 넘고 넘어야 할만큼 커다란 간극이 있겠지요.

하여, 왕후장상의 씨앗은 따로 없어도 글재주의 씨앗은 따로 있다고,

이 연사 두 주먹 불끈 쥐고 여러분 앞에 강력히 외칩니다!!!




소품들도 맘에 들고 ~~






부뚜막도 맘에 들고 ~~



우물까지도 맘에 들어 더 머물고 싶지만 ~~



기다리고 계실 어르신들 생각에 밖으로 나왔습니다.



용이네 집, 오서방네 집, 칠성이네 집도 있고 ~~



봉기네 집, 이평이네 집, 관수네 집도 있지만 밖에서만 슬쩍 흘기고 ~~



우린 집으로 향합니다, 어둑해야 도착할 것 같네요.



2박3일의 피서여행이 끝났습니다.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나야 기쁜 마음으로 들뜬 마음으로 한껏 즐겼지만,

가만 앉아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 이 더운날에 여기로 저기로 따라다니신 어르신들은 어떠실까,

좋은 여행이었다고 하시는 말씀을 진짜로 참말이라 믿고,

앞으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봄가을에 한 번씩 꼭 내려와, 이런 시간을 같이 하겠노라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