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6. 신심명

[법륜스님의 '신심명'] 제19강

상원통사 2019. 7. 9. 21:37

(~~ 제18강에서 계속)

 

유즉시무(有卽是無)요 무즉시유(無卽是有): 있음이 곧 없음이요 없음이 곧 있음이니

있음이 곧 없음이요 없음이 곧 있음이다,

반야심경 표현대로 하면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입니다.

우리가 볼 때 이 방 안은 텅 비어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공기로 꽉 차 있고,

이 쇳덩이는 원자 차원에서 보면 꽉 차있지만 소립자 차원에서 보면 텅텅 비어있습니다.

가득 찬 게 텅 빈 것이고 텅 빈 것이 가득 찬 것, 이게 존재의 참모습입니다.

 

약불여차(若不如此)인데 불필수수(不必須守): 만약 이 같지 않다면 반드시 지켜서는 안되느니라.

약불여차, 만약에 이와 같지 않다면, 이 같은 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불필수수, 모름지기 지킬 필요가 없다, 그건 진리가 아니다.

바로 이런 깨달음이 아니라면 그건 깨달음이 아니다,

이런 도리를 모른다면 아무리 뭐라고 해도 그건 깨달음이 아니다.

 

일즉일체(一卽一切)요 일체즉일(一切卽一)이니 :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이니

단능여시(但能如是)하며 하려불필(何慮不畢)이라 : 다만 능히 이렇게만 된다면 마치지 못할까 뭘 걱정하랴.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니

다만 능히 이와 같으면 어찌 다하지 못할까 걱정하겠느냐,

다만 이런 도리를 우리가 안다면 아무 걱정할 게 없다.

 

신심불이(信心不二)요 불이신심(不二信心)이다 : 믿는 마음은 둘 아니요 둘 아님이 믿는 마음이니

여기서 믿는 마음이란 하느님은 전지전능하다거나, 부처님은 우리에게 가피력을 주신다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둘 아님을 말하는 경지, 제법이 공한 도리를 깨친 경지를 말하는 겁니다.

제법이 공한 도리를 깨치면 믿으라 해서 믿는 게 아니라 저절로 믿어집니다.

믿는 마음 중 가장 확실한 것은 깨달음입니다.

 

언어도단(言語道斷)하여 비거래금(非去來今)이라 :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과거·미래·현재가 아니로다

언어도단, 언어의 길이 끊어졌다

꿈이었네라고 말하면 됐지 이거니 저거니 설명할 필요가 없다.

비거래금, 과거·미래·현재 삼세로 나누려 하는데 그러지 마라, 삼세가 곧 일념이다,

우리가 생각을 일으켜 과거 현재 미래라 하는 것이지 생각이 끊어지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는 것이다.

 

승찬대사께서는 사실 불교에 대해서 특별히 배운 바가 없는 분입니다.

이 분은 사십이 넘을 때까지 문둥병환자로 숨어살았습니다.

천벌을 받았다고 생각했기에 죄를 없애려 스승을 찾아가 이 죄를 좀 사해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문둥병 환자라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문둥병 환자란 사회만이 아니라 가족에게서도 쫓겨나 외딴곳에서 혼자 살아야 했습니다.

재물도 지위도 명예도 인간의 정까지도 모두 다 허망하다는 것을 이미 몸으로 경험했기에,

스승의 질문 한 마디에 단박에 깨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대해서 아무런 미련도 없었습니다.

미련이 있었으면 제 병 좀 낫게 해 주세요라 했을 것인데 그런 소리는 아예 안 했습니다.

그는 다만 이 고통이 이 생에서 끝나기만을 바랬던 겁니다.

 

그는 인생이 고임을 온몸으로 체득하고 있었기에 스승의 말을 듣고 바로 진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죄를 이리 내놔라하니 그 죄의 본성을 찾아 바깥이 아니라 안을 들여다보았고,

있는 그대로를 보니 텅 비어있음을 알아, ‘내놓을 게 없습니다라고 말했던 겁니다.

절에 오래 다닌다고, 스님이라고, 나이 많다고, 지식이 많다고 깨치는 게 아닙니다.

그는 불교에 대한 지식도 없고 스님도 아니고 건강한 사람도 아니었지만,

삶의 경험을 통해 허상에서 벗어나기 직전에 있다가 스승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자신의 깨달은 바를 일필휘지로 쓸 수 있었고, 그것이 바로 이 신심명입니다.

내용을 보면 중도사상, 불이사상, 공사상이지만, 공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전문 불교학자가 아니니 그런 용어를 몰랐을 수도 있지만 몸으로는 이미 경험했던 것이기에,

자신이 아는 용어로 깨달음의 세계를 온갖 비유를 들어서 얘기한 겁니다.

신심명의 핵심은 둘 아닌 도리, 곧 반야심경에서 나오는 공의 도리입니다.

둘 아닌 도리, 곧 불생불멸이요 불구부정이요 부증불감이다,

번뇌와 보리가 둘 아니요, 생사와 열반이 둘 아니요, 이와 사가 둘 아니요, 사방예토와 극락정토가 둘 아니다,

둘 아니니 갈 것도 없고 올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고, 그러니 할 일이 없다,

 

이런 스승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새기면서 정진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신심명 강의는 여기까지해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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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심평등 소작구식(契心平等 所作俱息) : 마음에 계합하여 평등케 되어 짓고 짓는 바가 함께 쉬도다.

호의진정 정신조직(狐疑淨盡 正信調直) : 여우같은 의심이 다하여 맑아지면 바른 믿음이 고루 발라지며

일체불류 무가기억(一切不留 無可記憶) : 일체가 머물지 아니하여 기억할 아무것도 없도다.

허명자조 불로심력(虛明自照 不勞心力) : 허허로이 밝아 스스로 비추나니 애써 마음 쓸 일 아니로다.

비사량처 식정난측(非思量處 識情難測) : 생각으로 헤아릴 곳 아님이라 의식과 망정으론 측량키 어렵도다.

진여법계 무타무자(眞如法界 無他無自) : 바로 깨친 진여의 법계에는 남도 없고 나도 없음이라

요급상응 유언불이(要急相應 唯言不二) : 재빨리 상응코저 하거든 둘 아님을 말할 뿐이로다.

불이개동 무불포용(不二皆同 無不砲容) : 둘 아님은 모두가 같아서 포용하지 않음이 없나니

시방지자 개입차종(十方智者 皆入此宗) : 시방의 지혜로운 이들은 모두 이 종취로 들어옴이라.

종비촉연 일념만년(宗非促廷 一念萬年) : 종취란 짧거나 긴 것이 아니니 한 생각이 만년이요

무재부재 시방목전(無在不在 十方目前) : 있거나 있지 않음이 없어서 시방이 바로 눈앞이로다.

극소동대 망절경계(極小同大 忘絶境界) : 지극히 작은 것이 큰 것과 같아서 상대적인 경계 모두 끊어지고

극대동소 불견변표(極大同小 不見邊表) : 지극히 큰 것이 작은 것과 같아서 그 끝과 겉을 볼 수 없음이라.

유즉시무 무즉시유(有卽是無 無卽是有) : 있음이 곧 없음이요 없음이 곧 있음이니

약불여차 불필수수(若不如此 不必須守) : 만약 이 같지 않다면 반드시 지켜서는 안되느니라.

일즉일체 일체즉일(一卽一切 一切卽一) :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이니

단능여시 하려불필(但能如是 何慮不畢) : 다만 능히 이렇게만 된다면 마치지 못할까 뭘 걱정하랴.

신심불이 불이신심(信心不二 不二信心) : 믿는 마음은 둘 아니요 둘 아님이 믿는 마음이니

언어도단 비거래금(言語道斷 非去來今) :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과거·미래·현재가 아니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