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슴프레 기억이 납니다, 큰 불 난 다음 해이니 2006년, 아이들과 함께 왔었지요.
근데 사진 한 장 남아있는 게 없고, 나뿐만이 아니라 아내 머릿속까지 텅텅 비어 있어 왜 왔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산불의 상처가 다 가시지 않고 여기저기 남아있어 안타까워 했던 기억,
불사를 위한 기와장에 하얀 펜으로 부모님이랑 온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문구를 적었던 기억,
지금은 아무도 안 계시지만 부모님께 전화하여 이런저런 얘기했던 기억,
그렇게 조각난 기억들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낙산사에 다시 왔습니다, 아내와 둘이서만!
후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면 맨 먼저 마주치는 곳은 의상 기념관,
최완수님의 <명찰순례>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의상은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신라에 돌아온 뒤,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의 새로운 뜻을 펼 마땅한 땅을 찾다가 동해변 지금 양양 지방에 이르렀다.
~~ 의상은 다시 이레를 진심으로 기도하여 마침내 관음의 진신을 친히 볼 수 있었다.
관음은 의상에게 굴 위 산꼭대기에 쌍죽이 솟아날 것이니 거기에다 절을 짓는 것이 좋으리라고 일러 주었다.
~~ 솟아올랐던 대는 다시 없어졌으므로 이에 의상은 이곳이 바로 관음의 진신이 머무는 곳임을 확인하고는 절 이름을 낙산사라 하고,
그가 관음과 동해룡으로부터 받았던 두 가지 구슬을 절 안에 비장해 두고 새로운 수행길에 들었다."
(「삼국유사」권3 낙산이대성 및「신증동국여지승람」권44 양양 불자 낙산사)
공사중이어서 들어갈 수 없는 의상대(義湘臺)를 지나고 ~~
차 마시는 흉내만 내고 있어도 멋진 그림이 되는 야외 카페를 지나서 ~~
안으로 쭉 들어가면 ~~
하늘 푸름과 바다 푸름이 만나 한 획을 그은 수평선을 앞에 두고 ~~
아직도 굿굿이 제 모습을 지키고 있는 홍련암(紅蓮庵)이 나옵니다.
의상 대사가 동굴 속으로 들어간 파랑새를 따라 석굴 앞 바위에서 기도하다 붉은 연꽃 위의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세운 암자,
2005년 대화재 때 코앞까지 화마가 덮쳤지만 기적처럼 살아남은 암자,
불전 바닥에 난 구멍의 유리를 통해 절벽 아래 관음굴을 볼 수 있다는데,
행여 볼 수 있을까 한동안 기다려 보았지만 기도소리가 끊이지 않아 이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홍련암에서 바라본 의상대,
그리고 홍련암 옆에 앉아 있는 두꺼비,
"삼족섬을 만지면 꿈과 소원이 이루어 집니다"
비슷하기만 해도 동전을 던지는 중생들을 위해 이 연못엔 아예 멍석을 깔아놓았습니다.
보타락(寶陀落) : 관음보살이 산다는 전설의 산
보타전(寶陀殿)
지장전(地藏殿)
산신전(山神殿)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海水觀音空中舍利塔碑)
-. 1692년 비구 석겸 등이 큰 뜻을 세우고 조성한 사리탑
-. 숙종 9년(1683) 홍련암 불상에 금칠을 다시 할 때 주변에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더니
공중에서 사리가 탁상 위로 떨어져 이를 봉안하기 위해 세웠다고 함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
-. 1972년 착공하여 1977년 점안한 높이 16M 둘레 3.3M의 관음보살상
-. 왼손은 감로수병을 받쳐들고 오른손은 수인을 짓고 있음
-. 전북 익산에서 700톤의 화강암을 가져와 300톤을 깎아내어 조성함
관음보살이 어디를 보고 계시나 했더니 바로 여기입니다, 가없는 동해바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뻐엉 뚫립니다.
대성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칠층석탑과 원통보전이 있는데 ~~
원통보전(圓通寶殿)
-. 관세음보살을 봉안한 낙산사의 금당
-. 671년 의상대사가 홍련암 관음굴에서 21일 기도 끝에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여의주, 수정염주와 함께 사찰의 건립위치를 전해받은 곳에 세움
건칠관음보살 좌상
-. 원통보전에 봉안된 보물 제1362호
-. 고려시대 후반의 전통양식이며 강원도에서는 유례가 없는 건칠기법으로 조성된 불상
-. 2005년 양양 산불 때에도 금곡 정념스님과 사부대중의 지혜와 원력으로 무사할 수 있었음
원통보전 주변 담장
-. 조선 시대 세조가 낙산사를 중창할 때 처음 쌓았다고 전함
-. 높이는 약 3.8m, 전체 길이 약 220m로 일부 원형이 남아있고 대부분 2005년 산불 이후에 연결 보수함
칠층 석탑
-. 의상 대사가 처음 세울 때에는 3층이었음
-. 세조 13년(1467) 7층으로 만들어 낙산사의 보물인 수정염주와 여의보주를 봉안하였다고 전함
-. 탑의 높이는 6.2m로 부분적으로 손상된 곳은 있으나 상륜까지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음
원통보전에서 내려다보면 왼편에 있는 건물이 설선당(說禪堂)인데 ~~
툇마루를 넘어 방으로 들어가면 ~~
창너머엔 대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
벽에는 그림같은 글씨가 걸려있습니다., "오유지족(吾唯知足)",
남과 비교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 대해 만족하라는 가르침이 담긴 말인데,
'ㅁ'을 가운데에 두고 네 글자가 모여 1개의 글자를 이루고 있네요.
그리고 여기 오는 모든 이에게 무료로 차를 대접하고 있습니다.
2005년 대 화재때에도 무사했던 범종루
빈일루(賓日樓)
-. 동해의 일출을 맞이하는 누각이라는 뜻
-. 조선 중기 박종(1677~1750)의 기행문인 <동경유록>에 송월료와 함께 처음 빈일루라는 이름이 나옴
-. 2005년 산불로 훼손된 이후, 2009년 10월 12일 낙성
사천왕문
-. 불법을 수호하고 사찰을 지키면서 사부대중을 돕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사천왕을 모신 문
-. 1950년 6·25 전쟁과 2005년 양양 산불의 재난 속에서도 이 문과 사천왕상은 피해를 입지 않았음
그리고 아래로 조금 내려가면 ~~
낙산사의 정문이며 매표소가 있는 홍예문(紅霓門)
이렇게 한 바퀴 둘러보고 차를 세워놓은 후문 주차장쪽으로 가는 데,
마침 점심 때인지라 공양간에 들렀습니다.
배고픈 중생들을 위해 국수 한 그릇씩 주시는데, 역시나 공짜!
우린 한 그릇만 가져와 둘이서 마음에 점을 찍었습니다.
절에서 먹는 한 끼는 언제 어느 곳에서 먹어도 그 맛이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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