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강에서 계속)
임성합도(任性合道)하여 소요절뇌(逍遙絶惱)라 : 자성에 맡기면 도에 합하게 되어 소요하여 번뇌가 끊어진다
임성합도, 성품(자성, 본성)에 맡기면 도에 규합을 하게 되어,
소요절뇌, 소요하여 번뇌가 끊어진다, 번뇌가 끊어져서 멀리 사라진다,
자성에 맡기면 저절로 도에 규합해서 번뇌가 끊어져버린다.
‘번뇌를 끊어야 되겠다’고 집착하면 오히려 끝없이 일어납니다.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둬야 합니다.
명상할 때에도 정좌하고 숨이 들어가고 숨이 나오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코끝에 집중해서 들어갈 때 들어가는구나, 나올 때 나오는 구나, 길면 길구나 짧으면 짧구나, 이렇게 숨의 상태에만 깨어있어야 합니다.
숨은 내가 알아차리든 못 알아차리든 실제로는 존재하는 것이지만,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쏠리면 호흡을 알아차리지 못 하고 놓치게 됩니다.
호흡을 놓친다는 것은 숨을 안 쉰다는 게 아니라 내가 알아차림을 놓치는 겁니다.
이 때엔 또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르는데, 번뇌가 일어나지 마라,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러면 번뇌는 더 많이 일어납니다.
그냥 내버려두고 호흡만 집중해서 관찰하고 있으면 무성했던 번뇌는 저절로 수그러듭니다,
거기에 집중하고 다른 것은 놔버리고 내버려두면, 지 알아서 굴러다니다가 멈추게 됩니다.
명상을 안 하고 그냥 있을 때엔 번뇌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명상한다고 열흘, 한 달 동안 계속 앉아있으면 말할 수도 없이 많은 번뇌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루 24시간 내내 일어나는 게 아니라 그냥 놔두면 가끔씩 멈출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가만히 있기만 해도 일어났던 번뇌가 사라지는 것을 몇 번 경험하고 관찰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게 일어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번뇌가 일어날 때엔 일어날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니,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에요.
그것의 성품에 맡겨버리면 도에 규합을 해서 번뇌가 저절로 끊어집니다.
계념괴진(繫念乖眞)하야 혼침불호(昏沈不好)라 : 생각에 얽매이면 참됨에 어긋나서 혼침함이 좋지 않느니라.
계념괴진, 매달릴 繫, 어긋날 乖, 생각에 매달리면 진리(참됨)에서 어긋나버린다,
혼침은 어지러움에 빠져 정신이 없는 상태이므로, 혼침불호는 정신이 없어 좋지 않다는 뜻입니다.
불호노신(不好勞神)이거든 하용소친(何用疎親)이라 : 좋지 않으면 신기를 괴롭히거늘 어찌 성기고 친함을 쓸건가
불호노신, 기분이 좋지 않으면 정신이 피곤하다, 좋지 않으면 정신을 괴롭힌다
하용소친, 어찌 멀고 가까움을 가리랴
멀고 가까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바로 도에 들지만 우리는 늘 멀고 가까움을 가립니다.
욕취일승(欲趣一乘)이어든 물오육진(勿惡六塵)이라 : 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
욕취일승, 일승을 쫒기를 원한다면, 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승(乘)’이란 부처님이 교법에 의해 중생을 생사의 세계에서 열반의 세계로 옮겨주는 것을 수레에 비유한 것으로,
세 가지 수레(성문승, 연각승, 보살승)가 있지만 부처되는 길은 결국 하나(일승)입니다.
물오육진, 육진을 미워하지 마라
육진이란 여섯 가지 경계(육경), 색·성·향·미·촉·법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여섯 가지 경계에 팔리고 거기에 매달려 희노애락을 느끼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에 좋고 나쁨이, 옳고 그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그것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내 마음의 업식에 의해 좋고 나쁘고, 싫고 좋고 그런 것입니다.
내 마음이 그린 그림이니 남을 탓하지 말고 세상을 탓하지 마라,
육진을 미워하거나 탓하지 않으면 경계(사물)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고 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깨달음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져 느끼는 이 모두는 다 나를 기준으로 해서 있는 겁니다.
나를 기준으로 해서 이 사람은 동쪽에 산다, 저 사람은 서쪽에 산다는 것과 똑같습니다.
내 입맛에는 간이 맞는데 이 사람은 싱겁다 저 사람은 짜다고 하니, 그들은 다 틀렸다,
이렇게 나를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것을 아상이라 하고, 이걸 고집하는 것을 아집이라 합니다.
아상은 모든 고뇌 번뇌 갈등의 원인이니 내려놔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가 중심에 서게 되니 아상을 짓는 것까지 버리기는 힘이 듭니다.
그러니 일차적인 수행의 과업은 ‘아집은 부리지 말자’에 두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간이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내 입에는 맞다, 짜다’라고 하면 상대방이 싱겁다 해도 갈등이 안 생깁니다.
아상이 생기더라도 아집을 부리지 않으면 갈등은 안 생깁니다.
이게 아상인 줄 알기만 해도 갈등은 안 생깁니다.
아상이 아상인줄 모르고 객관적 진실이라 착각하니 문제가 생깁니다.
오늘은 이거 하나만 확실히 합시다,
세상이 옳으니 그르니 맞니 틀리니 하는 것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나에게 비친 모습일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객관화 시키고 절대화시키기 때문에 고집하게 되고 고뇌와 갈등과 번뇌가 생긴다,
그러니 우선 아상이 아상인줄 알자,
내가 지은 것을 내가 지은 줄만 알아도 고집하지는 않게 되고,
서로 다른 생각과 서로 다른 느낌, 서로 다른 취향이 공존할 수 있다,
우선 여기까지라도 해보자,
사로잡히면 내가 사로잡혔구나 이걸 알아차리자, 내가 또 내 주관을 객관화 시키구나,
내 입장을 또 절대화 시키구나, 또 나를 고집하구나, 이것을 그 순간에 알아차리자,
이것을 버리지는 못해도 적어도 고집하지는 말자.
조금만 노력하면 할 수 있습니다, 이것만 하더라도 우리들 고뇌의 8~90%는 없어집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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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수경멸 경축능힘(能隨境滅 境逐能沈) : 주관은 객관을 따라 소멸하고 객관은 주관을 따라 잠겨서
경유능경 능유경능(境由能境 能由境能) : 객관은 주관으로 말미암아 객관이요 주관은 객관으로 말미암아 주관이니
욕지양단 원시일공(欲知兩段 元是一空) : 양단을 알고자 할진대 원래 하나의 空이니라.
일공동양 제함만상(一空同兩 齊含萬象) : 하나의 공은 양단과 같아서 삼라만상을 함께 다 포함하고
불견정추 영유편당(不見精麤 寧有偏黨) : 세밀하고 거칠음을 보지 못하거니 어찌 치우침이 있겠는가.
대도체관 무이무난(大道體寬 無易無難) : 대도는 본체가 넓어서 쉬움도 없고 어려움도 없거늘
소견호의 전급전지(小見狐疑 轉急轉遲) : 좁은 견해로 여우같은 의심을 내어 서두를수록 더디어지도다.
집지실도 필입사로(執之失度 必入邪路) : 집착하면 법도를 잃음이라 반드시 삿된 길로 들어간다
방지자연 체무거주(放之自然 體無去住) : 놓아 버리면 자연히 본래로 되어 본체는 가거나 머무름이 없도다.
임성합도 소요절뇌(任性合道 逍遙絶惱) : 자성에 맡기면 도에 합하게 되어 소요하여 번뇌가 끊어진다
계념괴진 혼침불호(繫念乖眞 昏沈不好) : 생각에 얽매이면 참됨에 어긋나서 혼침함이 좋지 않느니라.
불호노신 하용소친(不好勞神 何用疎親) : 좋지 않으면 신기를 괴롭히거늘 어찌 성기고 친함을 쓸건가
욕취일승 물오육진(欲趣一乘 勿惡六塵) : 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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