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 도리고 우림(Dorrigo Rainforest),
거기만 좋은 게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 닿아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곳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길을 가다 보니 목장이 보이는 데 ~~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차를 세우고 휴대폰을 꺼내들었지요.
낮은 구릉에 끝없이 펼쳐진 풀밭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은 한 폭의 그림이라 해도 좋을 듯한데 ~~
누군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알프스를 배경으로 펼쳐진 스위스 목장의 풍경은 멀리서만 감상해라, 가까이 가보면 소똥 천지여서 발 디딜 틈이 없다,
여기는 가까이서 봐도 별로 안 보여요, 괜찮습니다.
철조망에 초점을 맞추니 느낌이 확 달라집니다,
내가 갇혀있는 것인지 소들이 갇혀있는 것인지 ~~
여긴 소들이 노니는 풀밭이 아니라 사람이 거니는 풀밭,
가을이라면 더 멋져보일 것 같군요,
온 사방은 단풍으로 물들고, 낙엽은 하나씩 둘씩 내려와 풀밭 위에 앉았다가,
휘익 스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 바스락 거리면 마음도 이내 심숭생숭 ~~
팔짱끼고 걸어도 좋고 ~~
가만히 앉아 시간을 흘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요.
근데 한 여름에 청승맞게 왠 가을타령, 잊읍시다!
아니, 의상대사가 언제 여길 다녀가셨나 ~~
*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勝法界圖) or 법성게(法性偈)
-. 신라시대의 승려 의상이 화엄사상의 요지를 간결한 시로 축약한 글
-. 210자를 54각이 있는 도인에 합쳐서 만든 것임
-. 화엄일승법계 : '가지가지의 꽃으로 장엄된 일승의 진리로운 세계의 모습'을 의미함
-.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
: 법의 성품은 원융하여 두 모습이 본래 없고 모든 법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니 진여의 세계로다
Labyrinth(미궁, 迷宮), 여기서 요로코롬 빙빙 돌며 노래하고 노는 곳이랍니다.
빙빙돌며 진리를 찾아가는 '법계도' 생각이 나서 아는 체 좀 해봤습니다.
도리고 우림센터에서 차로 10분쯤 떨어진 곳에 있는 전망대,
당가르 폭포(Dangar Falls)를 감상하라고 만들어놓은 곳인데, 우리 외엔 아무도 찾는 이 없어 그저 그런 곳인 줄 알았지요.
근데 막상 올라가 보니 장난이 아닙니다.
비엘스다운(Bielsdown River) 강물이 흐르다가 잠시 허공에 흩어지는 곳,
우리나라 같으면 '몇 대 절경'에 속한다고 선전이 자자했겠지만 여기선 변변한 안내판조차 없이 그저 조용하기만 합니다.
매제가 저 밑에 내려가 볼거냐고 묻기에 인사말로 좋다고 했더니 진짜로 길을 나섭니다.
사진으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저기까지 가려면 한참 걸어야 해요 ~~
그래도 가는 길을 잘 닦아 놓아서 금방 내려왔습니다.
이제 폭포가 보이기 시작하고, 우린 점점 가까이 다가가서 ~~
인증 샷 한 방 찰칵!
그리곤 떨어지는 물줄기를 감상하고 ~~
잠시 손에 물을 묻혀보기도 하며 폭포의 장엄함을 만끽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이 곳에서 오직 우리끼리만!
요건 그냥 나무들이 예뻐서 올라오는 길에 한 컷,
요건 껍질 벗겨진 모양이 백일홍을 닮아서 한 컷, 유칼립투스 나무라고 한 것도 같네요.
이젠 숙소로 돌아갈 시간,
여기서 두 시간쯤은 가야 하는 데, 예쁜 곳만 나오면 그냥 자동으로 멈춰집니다.
그렇게 해찰을 하다보니 해는 지고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었어요,
숙소까지 가면 너무 배가 고플 것 같으니 여기서(도리고 마을) 먹고 가자,
마을을 두 바퀴쯤 돌며 겨우 맘에 드는 음식점을 찾아 피자와 파스타를 시켜 먹었는데, 맛이 별로에요,
매제가 돈 계산하러 카운터에 가더니 한참동안 얘기하고 돌아옵니다.
내가 물었지요,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했냐?
매제 왈, 돈 계산을 하며 음식 맛이 어떠냐고 묻기에 느낀대로 대답해줬다,
피자는 너무 불이 세서 딱딱해졌을 뿐만 아니라 한 쪽은 타기까지 했고, 파스타는 간이 맞지 않아 맛이 없었다,
그랬더니 피자 값은 받지 않더라, 절대로 깎아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이상 동생이 통역해 준 내용임)
카운터에는 '오는 토요일에 마지막 파티를 한다'고 적혀 있고, 가게 앞에는 'For Lease'라 적혀 있어 나름대로 추측해 봅니다.
원래는 주방장도 있고 맛도 좋고 손님도 많은 음식점이었을 것이다,
여차저차한 이유로 주방장이 가버리고, 솜씨 부족한 할마씨 혼자서 요리하고 서빙하려니 무리가 따랐을 것이다,
손님은 점점 줄어들어 가게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이제 문을 닫기는 하지만,
그동한 애용해주신 손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토요일에 쫑파티를 계획하고 있다.
맛이 없다 하니 음식값을 깎아주지 않나, 폐업을 하면서 Last Party를 하지 않나,
이것이 호주 시골마을의 문화인지 주인 할마씨가 독특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호주에서의 여덟 번째 밤,
오늘도 은하수가 보이지 않는 아쉬운 밤을 맥주 거품과 함께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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