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신심명 강의 두 번째 시간이 되겠습니다.
신심명의 핵심사상은 중도사상입니다.
부처님께서 6년간 고행을 하시다가 그 무익함을 알아 고행을 버리고 중도를 발견하셨다,
그 중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지난번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지난번에 설명했지만, 앞부분부터 다시 한 번 간추리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지도무난이요 유혐간택이라,
도에 이르름은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하는 데 사실은 하나도 어렵지가 않다,
여기서 도란 진리, 깨달음, 제법의 실상, 우주의 법칙, 인생의 법칙 등 여러 말로 할 수 있겠지요,
이런 도에 이르름, 깨달음에 이르름, 지고한 행복에 이르름, 완전한 자유에 이르름은 어렵지가 않다.
왜 그런가, 유혐간택, 오직 간택을 꺼리면 된다, 간택하지 않으면 된다 이겁니다.
간택이란 옳고 그르고, 맞고 틀리고, 잘하고 못하고, 내 것 네 것 시비분별하여 선택하는 것이니,
간택을 하지 마라 것은, 간택하는 마음을 버려라, 시비분별하는 마음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반야심경에서 공의 세계에는 양극단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생불멸,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불구부정,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성스럽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고,
부증불감, 늘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습니다.
본래는 깨끗함도 없고 더러움도 없어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으니,
깨끗한 것은 취하고 더러운 것은 버릴 필요가 없다, 간택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단막증애하면 통연명백하리라,
단지 증애만 하지 않으면, 단지 미워하고 사랑하는 분별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통연명백, 텅 비어서 아주 뚜렷하다, 헷갈리는 게 아니라 아주 분명해져버린다.
호리유차하면 천지현격이라,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제법이 공한 도리에서 털끝만큼이라도 다른 얘기를 하면,
천지현격, 하늘과 땅 사이만큼 벌어져버린다, 진리와는 거리가 멀어져버린다.
욕득현전이거든 막존순역하라,
지금 바로 도를 얻기를 바라는 것이거든, 따르거나 거스르지 마라.
우리는 좋아하는 것은 따르고 싫어하는 것은 거스릅니다.
이것을 여기서는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간택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증애라고 말하기도 하고, 순역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위순상쟁(違順相爭)이 시위심병(是爲心病)이라 : 어긋남과 따름이 서로 다툼은 마음의 병이 됨이니
위순상쟁, 어길 違, 따를 順, 거스를까 따를까 서로 다투는 것은,
시위심병, 마음의 병이 된다, 마음의 병이라는 것은 마음에서 생긴 것을 말합니다.
여기 흰 종이가 있습니다.
붉은 안경을 끼고 보면 붉은 색깔로 보이고, 푸른 안경을 끼고 보면 푸르게 보입니다.
종이 자체의 색깔이 붉거나 푸른 것은 객관적 사실이지만,
내 눈에 붉고 푸르게 보이는 것은 주관적 사실, 곧 나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생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이 다 객관이라 믿고 있습니다.
붉은 안경, 푸른 안경을 쓰고 흰 종이를 보면서 붉은 종이다 푸른 종이다 서로 맞다고 우깁니다.
그러다 서로 싸웁니다, 처음엔 대화하다가 다음엔 설득하다가 안 되면 서로 싸우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이란 아내와 남편이고, 불교인과 기독교인이고, 일본과 한국이고, 남한과 북한입니다.
내 눈에 빨갛게 보이는 이것은 주관적인 것이다,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은 상대가 파랗게 보인다 해도 다툼이 안 일어납니다.
왜? 내 눈에 빨갛게 보이는 것이 상대 눈에는 파랗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저 사람이 파랗다 하면 저 사람 눈에는 파랗게 보이나 보다 이렇게 이해합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상대편은 달리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인정과 이해가 있다,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 생각이 옳다는 얘기가 아니고,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돈을 빌려줬는데 안 갚으면 빌려준 사람은 빌려가서 갚지도 않고 큰소리 친다고 화내고,
돈 빌린 사람은 돈이 없어 못주는데 돈 좀 있다고 괄세가 이만저만이 아니라 항변합니다.
딸 이야기만 들은 친정식구들에게는 사위가 너무너무 못된 인간이지만,
아들 얘기만 들은 시댁식구들에게는 며느리가 나쁜 여자입니다.
그러다 부부 싸움이 집안싸움이 됩니다, 여기 말하는 그 상쟁이 됩니다.
서로 다투는 원인은 주관적 사실을 객관화 시키는 데서 비롯됩니다.
자기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을 실제가 그렇다 하고 착각을 하고 있다,
이걸 반야심경에서는 전도몽상(顚倒夢想)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제5강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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