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강에서 계속)
우리는 좋아하거나 미워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됩니다.
좋아하면 가지려합니다, 좋아하는 것과 가지는 것을 분리하지 못 합니다.
좋아하더라도 갖지 않고 싫어하더라도 버리지도 않는 길이 있는데,
우리는 좋아하는 것은 가지는 것, 싫어하는 것은 버리는 것이라는 데 매여 있습니다.
거기에 속박 받고 있으니 자유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공부를 하면서 이 문제를 이해해야 되고 연습하고 경험해야 합니다.
이해가 안 되면 경험은 아예 까마득한 거고, 이해가 되도 현실에서는 잘 안 되니 계속 연습을 해야 됩니다.
양쪽의 극단에 치우쳐가면서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 원리를 모르고 하면 이쪽과 저쪽 둘 밖에 없습니다.
원리를 알고 하면 실패를 하더라도 그것이 성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게 안 잡히고는 공부 아무리 해봐야 헛공부입니다.
부처님처럼 6년 고행해 갈비뼈만 남는 수준이 되더라도 못 깨닫습니다.
머리를 깎고 밥을 안 먹고 잠을 안자는 것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공부를 할 때는 정법에 의거해서 해야지 그냥 막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원리를 알고 실패를 해야지 실패가 축적이 되면서 성공으로 가지,
원리를 모르고 실패를 하면 아무리 많이 실패를 하더라도 성공으로 못가는 실패입니다.
신심명은 바로 이 중도사상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걸 소중하게 여기는 겁니다.
지도무난(至道無難)이요 유혐간택(唯嫌揀擇)이라 :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
지도(至道), 도에 이른다는 뜻은 곧 성불이다 깨달음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괴로움이 없는 세계, 열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남, 해탈, 다 같은 말입니다.
지도무난, 성불이라고 하는 것, 불도라고 하는 것은 어렵지가 않다,
엄청나게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유혐간택, 오직 唯, 싫어할 嫌,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
간택이란 이거냐 저거냐 가리는 것, 사량분별을 말합니다.
사랑해야 될까 미워해야 될까, 가져야 될까 안 가져야 될까, 이 길일까 저 길일까,
이러면 좋을까 저러면 좋을까, 이런 분별만 안 내면 저절로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중도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양극단을 떠나면 됩니다.
단막증애(但莫憎愛)하면 통연명백(洞然明白)하리라 :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리라.
미워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남녀관계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물건을 갖고 싶다 이것은 애(愛)에 속하고, 뭘 싫어하는 것은 증(憎)에 속하는 겁니다.
사랑하고 미워하지만 않으면 된다, 좋아하고 싫어하지만 않으면 된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양변입니다.
통(洞)이란 텅 빈 것이니, 통연명백이란 텅 비어서 아주 뚜렷하다, 헷갈릴 게 털끝만큼도 없다는 뜻입니다.
다리의 통증을 좋아하지도 말고 싫어하지도 마라, 근데 우린 싫어하고 있습니다.
싫어하면 선택의 길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버리는 것, 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참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쾌락과 고행의 길, 두 가지 이외에 다른 게 없는 겁니다.
왜 두 가지 외의 다른 길을 못 찾느냐, 이미 싫어해버려서 그렇습니다.
이미 근본에서 어긋나버렸기 때문에 길이 두 가지밖에 안 나오는 겁니다.
둘 중에 어느 것을 할 거냐가 아닙니다.
둘의 근본은, 참을 거냐 펼 거냐 하는 뿌리는 싫어함에 있습니다.
싫어했을 때는 길이 둘 밖에 없으니, 싫어하는 이 생각을 놔라 이겁니다.
그래서 ‘알아차리고, 지켜보고, 놓아라’라고 합니다.
통증을 알아차리는 것 여기까지는 어려운 것이 아니지요,
다음은 거기 빨려 들어가지 말고 통증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놓아버려라’할 때, ‘통증을 놔버려라’ 이렇게 받아들이면 방법이 안 생깁니다.
통증을 놔버려라 한다고 통증이 놔지는 게 아닙니다.
통증을 지금 참고 벗어나려고 하는 그 뿌리는 싫어하는 데 있다, ‘싫어함’을 놓아버려라,
통증을 싫어함을 놓아버려라 함은 통증을 다만 통증으로만 느껴라 이말과 같습니다.
통증을 싫다 하지 말고 통증을 통증으로만 느껴라!
이런 공부로써 담배 끊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
담배 피우는 사람이 담배를 안 피우면 담배 피우고 싶지요,
나는 왜 담배가 피우고 싶을까, 안 피우고 싶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얘기는 하나마나요
담배의 습관이 있으면 담배가 피우고 싶은 것은 그냥 하나의 작용입니다.
담배가 피우고 싶다 하면 대응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피우든지 참든지 두 가지입니다.
피우면 쾌락주의에 빠지는 것이고 안 피우고 참으면 고행주의에 빠지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빈 담뱃대를 문다, 은단을 먹는다 이런 것은 다 피우고 싶은 것을 참는 것입니다.
피우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참고 버티면 업은 다른 방법으로 우리 몸을 못살게 굽니다.
글 쓰는 사람은 글이 안 써지고,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가 안 됩니다.
그러면 생각이 바뀌고 효율을 따집니다, 이렇게 까지 해서 담배 끊어서 뭐하겠느냐,
그러면서 합리화합니다, 등소평이는 담배 피워도 오래만 살았는데,
담배 안 피우는 누구는 암에만 걸리고, 많이 피운 누구는 암에도 안 걸리던데,
담배 피운다고 꼭 먼저 죽으라는 법이 없지 않느냐,
좀 일찍 죽으면 어떠냐, 이 정도 하다가 죽으면 되지 이렇게 자꾸 생각이 바뀌다가,
나중에는 부처님 가르침에까지 적용이 됩니다
부처님이 고행을 멀리하라 그랬는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은 고행에 속한다,
고행을 버리고 중도의 길을 가라 그랬어, 그러니 한 대 피우고 고행에서 벗어나자,
이렇게 해서 피울 수밖에 없는 이론을 스스로 마련해서 피워버립니다.
그래서 자꾸 실패하는 겁니다.
그럼 이걸 어떻게 해야 되느냐, 담배 피우고 싶은 욕구를 알아차리고 지켜봐야 됩니다.
욕구가 일어나면서 몸을 못살게 굴면 이게 몸을 이렇게 못살게 구는구나,
이렇게 지켜보다 보면,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피우고 싶은 욕구가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그 욕구는 내려갔다가 다시 또 올라옵니다.
이렇게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것을 세 번쯤만 지켜볼 수가 있으면, 그 다음부터는 견디기가 쉬워집니다.
이렇게 몇 번 하면 담배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이것이 중도로 가는 길이고, 이렇게 중도의 길로 가는 공부를 해야 되는데,
여러분들은 참기 때문에 대부분 작심삼일이 되고, 포기하게 되고, 걸려서 넘어지게 됩니다.
좋아함과 싫어함을 일으키기 이전에 알아차림이 있어야 됩니다.
필링이 일어날 때 그것이 호라고 좋아하고 불호라고 싫어하지 말고 그 느낌을 느낌으로만 알아차려라,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텅 비어 뚜렷해진다.
호리유차(毫氂有差)하면 천지현격天地懸隔)이라 :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 사이 벌어지나니
털 호, 꼬리 리, 털의 꼬리란 털끗, 아주 작은 것을 말합니다.
털끝만큼이라도 이 원리에서 차이가 생기면 하늘과 땅 사이만큼 벌어져서 정법에서 완전히 멀어져 버린다,
우린 근본에서 멀어져 참고 따라가고 하는 수준에서 공부하기에 늘 이쪽 갔다 저쪽 갔다 이렇게 헤매게 된다.
욕득현전(欲得現前)이거든 막존순역(莫存順逆)하라 : 도가 앞에 나타나길 바라거든 따름과 거슬림을 두지 말라.
욕이란 우리가 바라는 바이고, 득은 도를 얻는다, 현전은 눈앞에서라는 뜻이므로,
욕득현전은 ‘지금 바로 도를 얻고자 하면’이란 뜻이 됩니다.
막은 뭐뭐하지 말라, 순은 따르다 또는 쫒는다, 역은 거스르다는 뜻이므로,
막존순역은 ‘따르거나 거스르지 말라’ 이런 뜻입니다.
단박에 도를 깨치려면 순역을 떠나야 된다, 그걸 따라가거나 거슬러서는 안 된다,
따라가면 쾌락주의가 되고 거스르면 고행주의가 된다, 이미 양극단에 떨어진 것이다,
따르고 거스르는 이전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 신심명을 공부하기는 조금 어려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경은 원래 대중들한테 설하는 게 아닙니다.
선방에서 3개월 정진하고 나서 이쪽으로 치우쳤다 저쪽으로 치우쳤다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을 때,
수행자들이 신심명을 공부하며 ‘내가 여기에 어긋났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는 겁니다.
양극단은 선방에서 공부할 때만이 아니고, 여러분들 일상생활에서도 늘 일어납니다.
내 맘에 들면 좋아하고 내 맘에 싫으면 버리고, 우리는 늘 극단에 치우칩니다.
아이가 그네를 타는데 떨어질까 겁이나 그네를 잡고 있다면 아이는 그네를 배울 수 없습니다,
이게 집착하는 겁니다.
놔두라 했다고 떨어져 죽든지 살든지 내버려두고 가버린다, 그게 아닙니다.
남의 집 아이가 그네를 타면 거기 가서 잡고 있지 않고 바라보듯이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남의 집 아이라도 그네에서 떨어져서 다치면 업고 병원에 가야지요.
그러면 여러분들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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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 :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
단막증애 통연명백(但莫憎愛 洞然明白) :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리라.
호리유차 천지현격(毫氂有差 天地懸隔) :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 사이 벌어지나니
욕득현전 막존순역(欲得現前 莫存順逆) : 도가 앞에 나타나길 바라거든 따름과 거슬림을 두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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