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여행의 장점 중 하나는 시간을 알뜰히 쓴다는 것입니다.
아침엔 일찍 일어나고 낮엔 지치도록 돌아다니고 숙소에 돌아오면 한밤중,
이동할 때도 기다리는 시간 없이 알아서 착착, 어디 입장할 때도 미리 챙겨줘서 머뭇거림 없이 착착,
비싼 돈 내고 해외여행 왔다고 하나라도 더 담아가도록 1분이라도 아끼고 챙겨주는 고마움의 연속.
자유여행의 단점 중 하나는 너무 여유롭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재촉하는 사람 없으니 아침에 눈 뜨는 것부터 밍기적거리고,
교통편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면 길가에 서서 버리는 시간도 한참이고,
어딜 갈까 머뭇거리며 시간 보내고, 목적지 찾느라 헤매다 보면 한나절 정도는 훌쩍 지나가곤 하지요.
아침에 눈 뜨니 7시, 108배 하고 샤워하고 나니 벌써 8시,
난 손 하나 까딱도 안 했지만 살뜰히 챙겨주는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설겆이하고 방 정리하고 쓰레기 버리고 짐 챙기고 차에 올라 시드니까지 오니 벌써 11시 반,
숙소 확인하고 주차하고 점심 먹고 이빨 쑤시며 시계를 보니 새로 1시,
시드니 일정은 오늘 하루뿐인데 무정한 시간은 잘도 흘러갑니다,
한 나절이 공으로 사라져 버렸는데, 얼마나 뛰어다녀야 비행기 삯이 아깝지 않을까 ~~
시드니에 들어서서 첫 발을 내딛은 곳은 회색빛 찬연한 뒷골목, 이름은 캠퍼다운 바 스트리트(Barr Street Camperdown),
건물들이 높지 않을 뿐 우리네 도시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차는 주차장에 세워두고 우버 택시를 불러 시내로 이동하는 데,
고개돌려 차창 밖을 보니 파아란 물이 보입니다. 아하, 시드니도 한강처럼 강을 끼고 형성된 도시구나,
그런데 아니네요, 지도를 찾아보니 여기는 짠물이 가득한 바다, 블랙와틀만(Blackwattle Bay)입니다.
목포는 항구다, & 시드니도 항구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고개돌려 왼쪽부터 오늘쪽까지 쭈욱 둘러 보는 데,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항구에 정박해 있는 엄청나게 큰 크루즈선,
동생네는 저런 배를 타고 여러 번 여행해 봤다는 데, 크루즈 여행이 생각보다 비싸지 않고 엄청 재미있다는 데,
난 영어도 안 되고 춤도 못 추니 방구석에서 호떡 뒤집기나 할 것 아닌가, 아예 생각을 접자.
다음은 하버 브리지가 보이고 ~~
오른쪽으로 고개를 더 돌리자 오페라 하우스가 보입니다.
이 대목에서 인증샷이 없으면 안 되겠지요,
멀리서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가까이 다가가 봅니다,
외장 타일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특별히 제작했다고 하던데, 뭐가 특별한 지 잘 모르겠습니다.
엄청 유명한 곳인데, 시드니 하면 누구나 바로 떠올리는 곳인데,
막상 와서 보니 왜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뭐 세빛둥둥섬 정도라 하면 너무 야박할까 ~~
오히려 옆에 있는 공원이나 멀리 보이는 풍광이 훨씬 더 맘에 듭니다.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시원한 맥주 한 잔 쭈욱, 안주는 안 시켜도 아무 말 안 합니다. ㅎㅎ
그렇게 잠시 여유를 부리고 돌아서서 나오는 데 ~~
중국사람들이 설날에 설치한 기념물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적도를 지나 한참이나 내려왔는데, 동양 냄새가 물씬 풍기는 조형물을 보니 반갑네요,
근데 왜 복숭아 도(桃)자가 적혀있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살 걸어 이동하는 데 ~~
오페라 하우스는 어디서나 잘도 보입니다.
손바닥 위에도 올라가려나? 싸이즈가 딱 맞네, 내친 김에 그냥 집에 가져가 버릴까보다 ~~
야자수만 아니라면 서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대식 건물들,
그보다는 우리에게는 없는, 조금 옛스런 그런 것들에 더 눈길이 갑니다.
여기는 군인상을 음각해 놓고 뭐라고 적어놓았는데 내 재주로는 해석불가, 영어 잘하는 사람이 잘 읽고 뜻을 알려주시오.
여기도 무슨 옛날 건물 같고 ~~
여기는 도심재생사업을 한다는 것 같고 ~~
언뜻 보기에도 연륜이 묻어나는 호텔을 지나니 ~~
시드니 하버 브리지(Sydney Harbour Bridge)가 나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 다리도 유명하답니다,
우린 다리 밑에서 열띤(?) 토론을 벌였지요, 다리를 걸어서 건너느냐 그냥 눈으로만 건너느냐,
결론이야 뻔한 것 아니겠어요, 날은 덥고 햇볕은 강하고 오늘은 많이 걷기도 했으니 그냥 건넌 셈 치자,
우린 1초만에 다리를 건넜다가 1초만에 다시 돌아와, 달링 하버(Darling Harbor)를 향해 갑니다.
달링 하버엔 지하철 공사가 한창입니다.
소리는 좀 나지만, 한가하고 먼지도 없고 안전모도 잘 쓰고 출입은 철저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이런 건물 처음 보셨죠? 나도 뉴스로만 접하고 직접 보기는 처음입니다.
고층건물이라면 무조건 철근과 콘크리트만 생각하는데, 최근에는 압축 목재로도 짓고 있답니다.
쉽게 이해는 잘 안 가겠지만 목재의 압축강도가 무려 콘크리트의 2.5배,
캐나다에서는 18층짜리 대학 기숙사가 지어졌고, 미국과 영국에서는 80층짜리 초고층 건물도 설계하고 있답니다.
이 건물을 몇 층까지 올릴 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6층 골조 공사가 한창이네요.
요 건물은 희한하게 꾸며 놔서 한 컷.
많이 걸었더니 덥고 다리 아프고 배도 출출합니다.
요기도 할 겸 시원한 것 한 잔 마실 곳 없나, 없을 리가 없지요, 항구 주변에 온통 먹을 곳 천지 입니다.
지금은 해피 아워(Happy Hour), 좀더 싸게 파는 시간, 고르고 골라 시켰는데 감자튀김 일색입니다.
그러면 어때요,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더위를 녹였는데 ~~
길 한 가운데 로타리, 돌아가는 삼각지,
바윗돌 아래에 찌그러진 차 한 대, 뭘 상징할까???
여기까지 해서 우리의 시드니 일주여행(?)은 끝!
다시 우버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글쎄 이럴 수가, 말이 안 나옵니다.
에어비앤비로 구한 숙소가 엉망입니다.
사진에 보듯이 겉보기는 멀쩡하지만 막상 들어가보니 관리상태가 엉망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하나하나 문제점을 적어보겠습니다.
1. 우선 사방에 바퀴벌레 시체가 득실거린다.
2. 인터넷이 안된다.
3. 욕실은 2개이지만 한 군데는 세면도구가 아예 없다.
4. 화장지라곤 쓰다 만 것 2개가 전부이다.
5. 사람은 5명인데 수건은 4장뿐이다(1장은 빨래건조대 안에 있다고 함, 속 뒤집어지지 ~~)
6. 침대 1개는 가만히 걸터앉기만 해도 바로 부숴진다.
7. 주방에 있는 것이라곤 식용유와 소금이 전부이다.
8. 그릇 갯수가 부족하다
9. 옆집에선 연주를 하는 지 음악을 틀어놓았는 지 시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
10. 청소상태도 엉망이다(그리고도 몇 가지가 더 있는 데 생각이 안 남)
매제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요, 동영상을 찍으며 하나하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영어라 뭔 소리를 하는지는 모르지만 직업이 다큐멘터리 제작이니 얼마나 잘 하겠어요, 숙소 주인도 깜짝 놀랬을 겁니다,
근데 더 놀란 것은 우리들, 주인의 대답이 가관입니다.
'그러냐, 맘에 들지 않으면 돈 내줄테니 다른 곳으로 가라!'
참 기가 막힙니다, 밤 9시가 다 되어 가는데 이 시간에 어디로 가라고, 나쁜 XX ~~
혹시나 하고 내일 머무를 숙소 주인에게 문자를 보냈지요, '사정이 여차저차한데 오늘 밤에 가도 되겠습니까?'
그러나 심정적으로는 여기서 그냥 자려고 마음을 굳혔지요, 하룻밤 밖에 안 되니 참고 지내자!
기분도 꿀꿀한데 바람이나 쐬자, 호주 제일의 도시 시드니에 왔으니 야경이나 구경하자!
밖에 나오니 온 사방은 어둠으로 뒤덮혔는데, 배낭을 맨 어릿어릿한 아가씨가 다가와 길을 묻습니다.
유창한(?) 영어로 대답해 주었는데 그 아가씨 영어실력이 부족하여 못 알아먹습니다,
동생이 나서서 뭐라뭐라 이야기하는 데, 알고보니 동네를 잘못찾아왔습니다.
여기서 차로 30분쯤 떨어진 곳인데 어떻게 가나, 길은 멀고 날은 깜깜하고 지리도 모르는 초행길이고,
그래, 우리가 나가는 길에 데려다 주는 게 낫겠다, 조금 돌면 되지 뭐,
엄격하기로 소문난 호주 교통법규를 어겨가며(5인승 차에 6명이 탐)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워킹할리데이로 10달 동안 이곳에서 지냈던 우리 딸을 생각나게 하는 마농(아가씨 이름)이 하는 말,
'3주 전에 프랑스에서 와서 베이비시터로 일했는데 사정이 있어 그만 두게 되었다,
지금 가려는 곳에서 새 직업을 찾아 일하며 좀 더 머무를 예정이다, 끝나면 미국으로 건너가야겠다.'
내가 점잖게 충고를 했습니다, 순 우리 말로 ~~
"다 좋은데 젊은 처자가 밤중에 다니면 위험하다. 다음부터는 꼭 해가 있는 낮에 움직여라, 명심하거라!"
제대로 전해주었는 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동생은 통역도 제 멋대로 알아서 합니다.
착한 일을 해서였을까,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내일 숙소 주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O.K. 와도 좋다!"
시간은 벌써 밤10시, 이제 시내 구경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멀리서 대충 사진 몇 장 찍고 다시 숙소로 향했습니다.
펜넬만(Fennel Bay)까지 거리는 150Km, 길은 초행길, 시간은 벌써 11시,
한 밤중에 시골길을 달리고 달려 도착하니 새벽1시가 넘었습니다.
아아, 여기는 대만족입니다, 집은 넓고 사방은 조용하고, 차 커피도 있고, 한 번도 쓰지 않은 그릇들도 있고,
냉장고도 크고 인터넷도 잘 되고 화장실도 깨끗하고 침대도 푹신합니다.
오늘도 열심히 고생한 매제에게 감사한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네 ~~
오면서 매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시드니는 너무 안 좋다, 물가는 비싸고 집은 좁고 길은 막히고 사람들도 불친절하다,
(의역하자면 시드니는 사람 살만한 동네가 아니다),
자기도 태어나서 시드니에는 두 번밖에 오지 않았다, 이번이 세번 째이다,
(의역하자면 이번에 시드니에 온 것은 순전히 우릴 접대하기 위한 것이다),
난 속으로만 생각합니다.
내가 언제 시드니에 가자고 했냐, EBS 세계테마기행에 시드니를 소개하더라고, 수산시장도 있다고만 했다,
그냥 딱 그 말만 했다, 하늘에 맹세코 진심이다, 절대로 시드니에 가자고 안 했다,
그래도 한 가지 더하고 싶은 말, 오페라 하우스 사진 보여줘야 남들이 호주 다녀왔다고 인정할 것 아닌가!
올빼미 띠인지라 쉽게 잠이 오지 않아 밖에 나가 밤하늘을 쳐다봅니다,
은하수는 오늘도 어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아내를 부를까 하다가 곤히 잠든 것 같아 그만 두었습니다.
이렇게 호주에서의 넷째 날 밤이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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