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호주여행

[호주여행] 1. 브리즈번 찍고 새크빌까지

상원통사 2019. 3. 12. 20:14

다섯의 산술평균을 하면 환갑 즈음인 나이에 갑자기 튀어나온 의견,

"애들은 빼고 우리끼리 여행 한 번 갈까, 막내가 사는 호주가 좋을 것 같은데 ~~"

생각해보니 지금이 딱 좋은 기회입니다.

아내의 건강도 거의 회복되었으니 부부동반으로 움직이는 데 문제가 없고,

10년 근속기념 특별휴가를 열흘씩이나 받았으니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고,

현장근무가 끝나는 시점이니 휴가 쓰는 데 크게 눈치볼 것도 없고...

하여, 2월 초에, 설날 지나서 출발하기로 하고 준비를 하는 데, 역시나 모두 다 함께 하기는 힘들지요,

어찌어찌 하다 보니 무산될 뻔 하다가,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니 그래도 셋은 밀어부치기로 결정,

장소는 처음 예정대로 호주로 정하고 기간은 1달쯤이 좋겠다고 했더니,

너무 길다고 해서 3주로 줄였다가 그래도 길다고 해서 15일, 거기서 하루 더 깎아 13박 14일, 이젠 양보 없다!


이렇게 결정한 게 12월 초, 떠나기 두 달 전부터 물어봐도 우리의 곤조마마께서는 도무지 움직이질 않습니다.

나    : 여행일정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동생 : 그냥 가다가 놀다가 가다가 쉬다가 해 ~~

나    : (며칠 후) 일정은 좀 생각해봤냐?

동생 : 아니, 아직 많이 남았잖아!

나    : (또 며칠 후) 비행기표 예약했다, 일정은 어떻게 되냐?

동생 : 아직 안 했어, 함 짜볼께!

나    : (그리고 며칠 후) ETA 비자 신청 들어간다, 일정은 짰냐?

동생 : 아직 정확하게는 안 짰어.

나    : 그냥 느그 집에서 13박 14일 하는 것은 아니지?

동생 : (대꾸도 안 함)....

나    : (또 시간이 지나고) 우리 어디로 가냐? 도서관에서 책을 한 권 빌렸는 데, 어디를 봐야 할 지 몰라서 그래.

동생 : 경치좋고 공기 맑은데서 걍 놀아.

나    : 안돼, 난 공부 안 하고 가면 불안해져.

동생 : 오빠도 병이다. 난 아무 생각 없이 가는데.

나    : (예전에 오사카 여행갔을 때 일정표를 보내며) 요런 정도로 일정을 짜야 안심이 돼.

동생 : 그렇게 하면 내가 죽어!

나    : 이렇게는 안 하더라도, 어디서 며칠 지낸다 이런 정도만이라도 좀 알려주면 안되냐?

동생 : 별로 필요 없어. 그냥 아무데나 가도 잘 놀고 잘 즐길 수 있어 ~~

나    : (또 시간이 지나서) 그러니까 일정표 줘봐, 그래야 거기 공부 좀 하고 갈것 아니냐?

동샐 : 일정표 같은거 없어. 좋으면 더 머물고 아니면 다른 데로 가고, 갈 데는 많아.

나    : (이젠 거의 한계에 도달함) 호주 간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다 물어본다, 어디 가냐고?

동생 : 콥스하버, 사우스 웨스트록, 턴카리 등등, 사람들이 들어본 적도 없다구 할 걸.

나    : 론리 플래닛 호주편 한 권 사가지고 보면 되냐?

동생 : (시큰둥하게) 알아서 하셔 ~~

동생 : (출발 8일 전) 일정 짰어, 괜찮은지 빨리 알려줘. 숙소 예약해야 해!

나    : (흐이그~~, 읽어보지도 않고) 그래 좋다 좋아. 나도 이번엔 선진국형 여행을 한 번 즐겨보자!


그렇게 선진국형 여행을 즐기러 호주로 떠나기 사흘 전, 누나가 뜻밖의 낭보를 전해줍니다,

"매형이 여행경비 일체를 다 부담하겠단다!", 정작 본인은 같이 하지도 못하고 베트남에 출장가면서 말이지요.

작년엔가 언뜻 그런 얘기를 꺼냈을 땐 그냥 빈 말로 하는 줄 알았지요,

어제까지만 해도 많아야 경비 일부 정도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통 크게도 전부 부담하겠다니 이렇게 고마울데가, 땡큐, 메르시 보꾸, 슈크란, 당케, 쎄쎄, 아리가또 ~~

그래서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매형, 고맙습니다.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중고 회사 주시는 것, 알지요?" ㅎㅎㅎ


인천공항 제2터미널, 개장한 줄은 익히 알았지만 밟아보기는 처음입니다.

아직은 좀 한가하다고나 할까, 그러나 1터미널보다 화려하게 느껴집니다.



창문 너머에 서 있는, 사진으로는 흐릿하게 보이는 저 비행기를 타고 우린 출발합니다.

그러고 보니 비행기 타 본지 2년도 더 넘었구나 ~~

드디어 우린 브리즈번으로 출발합니다.




중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10시간을 꼬박 날아 브리스번에 도착,

오는 내내 잠 한 숨 자지 않았는데도 난 멀쩡합니다.



여기는 동생네 집, 지극히 서민적인 평범한 집이라 하는 데 ~~



뒷마당엔 어엿한 수영장이 있습니다.

동생의 투덜거림 한 마디, 수영장 물 관리하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 ~~



우린 짐을 풀고, 가지고 간 선물을 전달했지요,

토끼 모자는 그 중의 하나!



잠시 쉬었다가, 먹을 것을 사러 한인슈퍼에 들렀는데 깜짝 놀랬습니다.

글쎄 없는 게 없어요, 가격도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비싼 편이고...

여기 오면 다 있으니 아무 것도 사오지 말라는 동생 말이 맞았습니다.

괜히 공항에서 비싸게 주고 고추장과 깻잎 통조림을 샀어요, 호주 수퍼가 훨씬 더 쌉니다.

김치, 햇반, 라면, 단무지, 맛김, 젓갈, 초코파이, 만두, 카레, 수프, 땅콩, 맛동산, 새우깡 등등 20여 가지,

많이 샀더니 쌈장 두 개는 덤으로 주는 센스까지 보여준 우리네 정서, 사진을 찍어두지 않은 게 조금 아쉽네요.

식품만이 아니라 일반 공산품도 엄청 쌉니다.

여행 내내 너무너무 잘 썼다고 누나와 아내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요 슬리퍼는 우리 돈으로 2,400원이고 ~~



내 수영복은 2,400원 + 5,600원, 합하여 두 개에 8,000원 줬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일반 공산품은 많이 싸고, 전자제품 자동차 같은 것은 비싸고,

술이나 담배는 엄청 비싸답니다, 담배 20개비 한 갑에 25,000원 정도라니 말 다했지요.



해가 넘어가니 슬슬 배가 고파집니다.

무엇을 먹을까, 이디오피아 음식점이 있는데 저렴하고 양도 많고 맛도 좋답니다.

그래, 이디오피아라~~, 가보기 힘든 나라이니 먹을 것 맛이나 한 번 보자,

우린 뒷골목에서도 또 더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 간판도 없는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벽에는 이디오피아를 상징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고,

자리에는 정말로 까만 이디오피아 사람들이 몇몇이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더군요.



음식 주문은 동생네가 알아서 합니다,

뭔지 모르는 세 가지 음식, 3인분만 시켰는데도 다섯 명이 먹기에 충분한 양입니다.

맛도 아주 좋아요, 부드러운 빵에 고기, 야채 등등을 싸서 먹는 데 우리 입맛에 잘 맞습니다.

그래서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었습니다, 왜냐구요? 음식 남겨 버리면 안되요,

저승에 가면 수채구멍에서 버린 것 다 줏어먹어야 합니다.



식사 후엔 설탕 듬뿍 넣은 이디오피아 차까지 한잔 쭈욱 ~~



그리고 인증샷으로 마무리!



저녁을 먹고 나니 벌써 사방은 어둑어둑해지는 데, 좋은 볼거리가 있다 해서 들렀습니다.

매주 금요일 밤이면 이곳 상가 주차장에 자동차 매니아들이 모인답니다.

수십 년도 더 된 차들을 정성스레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자랑하고 ~~





진작 폐차장에 가야할 차도 자랑스럽게 가지고 나오고 ~~



엔진룸 안쪽까지 깨끗이 관리하고 있노라고 보네트를 열어놓고 등까지 달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집 없어도 차에는 투자한다고 합니다, 내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지만 ~~



그렇게 하루가 훌쩍 지나가고 다음날 아침, 우린 서둘러 집을 나섭니다.

시계를 보니 6시 반, 5시부터 일어나 준비했지만 예정보다 30분 늦게 집을 나섰습니다.

왜 이렇게 새벽부터 설쳐대느냐, 오늘은 뉴 사우스 웨일즈 주의 새크빌까지 가야하는 데,

구글 지도로 931Km, 서울 부산을 왕복하고도 남는 거리,

막히지 않고 쉬지 않고 가도 11시간 이상 걸린다 하네요, 거리 개념이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고속도로도 우리와 완전히 다릅니다.

우선 톨게이트가 없어요, 그냥 쓱 들어가면 나중에 알아서 카드에서 돈이 빠져나간답니다.

고속도로로 들어오는 진입로는 우리나라의 국도에 진입하듯이 엄청 많이 있습니다,

근데 중간에 휴게소가 하나도 없어요, 쉬고 싶으면 고속도로 밖으로 빠져 나가 주유소나 휴게소에 들르면 된답니다.



더구나 생소한 건, 자전거를 타고 갓길을 달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



고속도로에서 유턴을 해도 되고 우회전(우리의 좌회전과 같음)을 해도 되고 ~~



4차로로 시작한 도로가 한참 가다가 3차로로 줄고, 2차로로 줄고, 한가한 곳은 편도 1차로 밖에 안됩니다.



근데 신기한 것은, 이렇게 좁은 길의 제한속도가 시속 100Km입니다.

또 한 가지 다른 점, 차가 별로 없어도 속도위반하는 차는 거의 없습니다.

왜냐, 걸리면 벌금이 100만원쯤 된다고 하니 감히 위반할 생각도 못 하겠지요 ~~



우리나라 고속도로처럼 쌩쌩 달릴 수 있게 된 곳도 있지만, 이곳은 근본적으로 국도와 고속도로 구분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 국도와 고속도로 구분이 없는 이유 : 애초엔 모두다 국도였고, 교통량이 많은 곳만 고속도로로 바꾸었을 것이다,

-. 입체교차로가 없고 유턴과 우회전을 허용하는 이유 : 땅은 넓고 교통량은 많지 않아 경제성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 교통량이 많아지는 곳 : 별도로 고속도로를 만드는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아래 사진처럼 국도를 고속도로로 바꿀 것이다.

내 생각이 맞을까요? 모르겠어요, 아니면 말고 ~~



호주, 넓어요, 정말 넓습니다, 쉬지 않고 달려도 김제평야가 끝나지 않습니다.

주변엔 가끔씩 집들이 보이고 ~~



풀밭이 보이고 ~~



소들도 보이고 ~~



사탕수수 밭도 보입니다.



M1 고속도로에서 시작하여, A1 고속도로를 지나고, 또 국도 지방도를 지나서, 숙소에 들어오니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하루 종일 운전대를 놓지 않은 매제는 도착하자마자 녹초가 되어 침대에 고꾸라집니다.

내 말 안 들어서 그래요, 운전을 도와주려고 국제면허까지 만들어 갔는데,

옛날에 말레이지아에서 다섯 달동안 좌측통행도 경험했으니 금방 적응할 수 있는데,

위험하다고 기어이 혼자 운전을 다 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어떡하나, 할 수 없지요.


이렇게 우린 호주에서의 둘째 날 밤을 맞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