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아동문고 14
권정생 소년소설 몽실 언니
1984년 4월 25일 초판 발행
1991년 1월 15일 2 쇄 발행, 값 3,000원
그 때 당시에 왜 이 책이 아이도 없는 우리 집에 있었는 지도 모르겠거니와,
그 때 당시에 나 같이 책 안 읽는 사람이 왜 이 책을 읽었는 지 도통 기억이 안 나지만,
읽고 나서 느꼈던 것 중 딱 한 가지가 생각납니다, 서슬이 퍼런 시절이었는데 이런 책을 펴내도 괜찮았나??
'고운사'에서 나올 때 시간은 벌써 4시, 집에까지 갈 생각을 하니 머리가 조금은 무겁습니다.
나 : 꼭 거기 가야 되요?
아내 : (단호하게) 그럼요, 여기까지 왔는데 들러야지요!
그래서 들른 곳이 여기 경북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 있는 '권정생 동화나라'입니다.
딱 봐도 한 눈에 국민학교입니다.
일직면 남부초등학교가 바뀌어 새로 태어났습니다.
운동장에서 놀던 까투리가 어느새 교실 안으로 들어와 우릴 맞이합니다.
복도를 조금 걸으면 ~~
전시실이 나옵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살아오신 이력이 적혀있고 ~~
사셨던 집도 같은 크기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너무 작은 집, 너무 작은 방, 너무 간소한 살림살이 ~~
생전에 헝겊 한 조각도 쉽사리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깁고 또 기웠을 뿐만 아니라 ~~
에어컨을 대신하여 '비료포대로 만든 부채'가 등장하였으니 할 말을 잊었습니다.
유언장 1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은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는 보통 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어 번 왔지만 나는 대접 한 번 하지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 거리다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 만약 죽은 뒤 환생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 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폭군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일
쓴 사람 권정생"
생전에 쓰시던 트랜지스터 라디오, 손목 시계, 인주,
그리고 비나리달이네집 주인공인 정호경 신부님이 만들어주신 전각 도장,
유언장 2
"정호경 신부님,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숨이 지거든 각각 적어놓은 대로 부탁드립니다.
제 시체는 아랫마을 이태희 군에게 맡겨주십시오.
화장해서 태찬이와 함께 뒷산에 뿌려 달라고 해 주십시오.
~~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달라고요.
~~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쪽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2007년 3월 31일 오후 6시 10분 권 정 생"
권선생님은 20대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50여 년동안 소변줄을 달고 사셨습니다.
근데 병원에 갈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소변줄도 스스로 바꾸셨답니다,
여기 이렇게 적혀 있네요,
"카테터(주황색 고무관)를 직접 갈아 끼우시던 기구
결핵으로 신장과 방광제거 수술을 하시고 인공 신장과 소변주머니를 사용하셨다."
얼마나 힘드셨는지 유언장에는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지금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3월 12일부터 갑자기 콩팥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니다.
뭉툭한 송곡으로 찌르는 듯한 틍증이 계속 되었습니다.
지난날에도 가끔 피고름이 쏟아지고 늘 고통스러웠지만 이번에는 아주 다릅니다.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됩니다."
그리고 그 해 5월 17일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돈 한 푼 쓰기도 주저했던 분인데
돌아가시고 나서 통장을 정리해보니 10억이 넘는 돈이 남아 있었답니다.
더하여 해마다 인세가 1억2천만 원씩이나 들어오고요.
그 돈을 기반으로 '권정생 어린이 문화재단'을 만들어 지금 여러 가지 사업을 펼치고 있답니다.
여기는 도서관이고 ~~
여기는 서점입니다.
우리 전라도 말로 '짠하다'고 그러지요,
님의 발자취를 생각하면 이 말 외에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냥 나가려다 미안해서 책 세 권 샀습니다,
근데 언제 다 읽을려나 ~~
그리고 밖에 나오니 가을입니다.
우리 죽으면 딱 한 곳, 텅 빈 곳으로 가는 데,
님은 다 내려놓고 가셨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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