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완수의 '명찰순례'

23. 충북 보은 법주사

상원통사 2018. 7. 19. 23:26

40년은 넘고 50년까지는 안되는 먼 옛날 까까머리 시절, 수학여행 버스는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다가 잠시 멈춥니다.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선생님이 창밖을 가리키며 하신 말씀, '얘들아, 저기를 봐라, 저 나무가 정이품송이란다!'

그 다음에 가물가물 이어지는 기억은 무지무지 큰 불상 앞에서 단체사진 찍었다는 것,

그 땐 엄청 멀다고 느꼈던 속리산 법주사였는데, 지금 다시 보니 2시간 반 밖에 안걸립니다.

최완수님의 책 '명찰순례'를 챙기고, 나의 보물단지 카메라도 챙기고, 항상 나를 챙겨주는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충북 보은 속리 정이품송

수령 600~800년, 수고 16.5m, 흉고 5.3m, 천연기념물 103호

1993년 2월 강풍으로 서쪽 가지가 훼손 되었고,

2004년 3월 폭설로 서쪽가지와 남쪽가지가 훼손되어 이렇게 변했답니다.



그래도 정면에서 보면 옛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게 한가닥 위안,

지금은 나중을 위해서 아들나무 손자나무를 많이 키우고 있답니다.



왜 정이품송인가,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한 번 더 적어봅니다.

"세조는 재위 10년 음력 2월 요양을 목적으로 온양, 청원을 거쳐 보은 속리산을 방문한다.

 말티재를 넘어 속리산으로 가던 중 길목에 있는 소나무에 임금이 타는 가마인 연(輦)이 걸릴 것 같아

 '연 걸린다'고 하자 신기하게도 늘어져 있던 가지가 스스로 올라갔다.

 돌아가는 길에는 근처에서 갑자기 비가 와서 일행은 이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였다.

 세조는 '올 때는 나를 무사히 지나도록 하더니 갈 때는 비를 막아주니 참으로 기특하다"하면서

이 소나무에 정이품의 품계를 하사하였다고 한다."

* 조선왕조실록 세조 10년 2월 27일 기록 : '정이품송'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고 '병풍송'이라는 소나무만 언급되어 있음.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솔숲길을 걸어 올라가는 데 ~~



(요건 뽀오나쓰로 올리는 소나무 사진!)



저 멀리서 동네 꼬마 녀석들이 야구를 하고 있습니다.

나 어렸을 적엔 시멘트 포대로 클럽(Glove) 만들어 끼고, 나무 막대기를 빠따(Bat)로 썼는 데 ~~



땅기운을 흠뻑 느껴보라고 만들어 놓은 황톳길을 지나고 ~~



물놀이하기 딱 좋은 냇가를 지나면 ~~



시골집 안마당만큼 커다란 '속리산 산채비빔밥 그릇'이 있습니다.

속리산에서 가장 높은 천왕봉(높이 1,058m)을 상징하여 만든 이 그릇은 지름 3.4m, 높이 1.5m로,

쌀 200Kg, 산나물 8 가지, 버섯 7가지 등을 넣어 1,058인분의 비빔밥을 만들어 축제 때 나눠 먹는답니다.



속리산 법주사

-. 553년 의신조사가 세우고 혜공왕 12년(776)에 진표율사가 중창

-. 정유재란으로 전소되었으나 인조 2년(1624) 사명대사 및 벽암대사에 의해 다시 중건


국립 중앙박물관에 가보면 '플래시는 터트리지 말고 사진 찍으라'고 적혀있습니다, 당연하지요.

근데 과학적 기초상식조차도 없는 일부 몰지각한 곳에 가보면 아예 사진 자체를 못 찍게 합니다. 

여기도 그 무식한 집단들이 거주하는 곳 중의 하나, 입장료 절반은 돌려받아야 되는 데 ~~

그래서 나도 삐쳐서 상세히 소개하지 않고, 대충대충 건성건성 책도 참조하지 않고 적습니다.



일주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



금강문이 나오고 ~~




당간이 있고 ~~



천왕문이 있습니다.




보은 법주사 철솥

-. 높이 1.2m, 지름 2.7m, 둘레 10.8m , 이두께 10cm에 무게는 20톤

-. 큰 사발형상으로 쌀 40가마를 담을수 있는 규모

-. 법주사가 한창 번성하여 3,000 승도가 운집하여 있을 때 장솥으로 사용했다고 함



팔상전

-.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

-.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 수리한 것

-. 벽면에 부처의 이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붙임



통일호국 금동미륵대불

-. 신라 혜공왕 12년(776) 진표율사가 7년간의 노력 끝에 금동미륵대불을 조성

-. 조선 고종9년(1872) 대원군이 경복궁 축조를 위해 당백전을 주조하기 위해 불상을 몰수해 감

-. 1964년 5월 박정희 장군과 이방자 여사의 시주로 시멘트 미륵부처님이 완성 회향됨

-. 1990년 4월 기존 시멘트 부처님과 똑같이 청동미륵부처님을 다시 조성

-. 2002년 6월 7일 청동녹을 벗겨내고 개금불사하여 본래의 금동미륵부처님을 복원

-. 개금방법 : 건식전기도금공법으로 순금 3미크론 두께로 도금. 연도금면적 900m2에 황금 80Kg이 소요됨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 중 하나로 조성연대는 신라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정

-. 높이 3.3m로 사자 두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랫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



보은 법주사 사천왕석등

-. 신라의 전형적인 팔각 석등의 대표적인 양식

-. 혜공왕(765~780) 대에 진표율사가 법주사를 다시 고쳐 지을 때의 작품으로 추정

-. 높이 3.9m. 화사석은 8각으로 4면에 창을, 나머지 면에는 사천왕상을 배치함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

-.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의신조사가 처음 건립하여 혜공왕 12년(776) 진표율사가 고쳐지음

-. 임진왜란시 불타버린 후 인조 2년(1624)에 벽암대사가 다시 지음

-.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불전의 하나로 꼽힘



석조희견보살입상(石造喜見菩薩立像)

-. 720년 전후의 작품으로 추정

-. 보살상은 전체 높이 213cm 규모로 크게 신체, 공양물, 대좌의 3부분으로 구성됨

-. 잘록하고 유연한 허리와 대조적으로 그릇받침을 받쳐든 양팔은 힘겨운 듯한 모습을 꽤 사실적으로 나타내고 있음



보은 법주사 원통보전

-. 원통보전은 관세음보살을 주존불로 모시고 있는 전각을 일컫는 말

-.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정방형의 특이한 건축양식

-. 지붕은 중앙에서 4면으로 똑같이 경사가 진 사모지붕으로, 불국사의 비로전과 법주사의 원통보전만이 전해지고 있음



이렇게 건성건성만 보고 입장료 아깝다고 툴툴거리며 밖으로 나와 ~~



늦은 점심을 먹었는 데,

절에서 담고 왔던 서운한 마음이 이곳에서 다 풀렸습니다.



조금은 무뚝뚝한 주인장 추천메뉴 자연산 버섯전골이 나왔는데 ~~




담백하고 깔끔하고 미원 냄새는 한 점도 없고 맛은 그만입니다.

우린 전골뿐만 아니라 이 많은 반찬까지도 바닥까지 싹싹 비워 설겆이하기 아주아주 편하게 해주고 나왔습니다.

가격도 비싸지 않습니다, 1인분에 17,000원!!



이제부턴 더운데 어디를 가야 하나 ~~

'최완수의 '명찰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 서울 경국사  (0) 2018.10.17
24. 서울 화계사  (0) 2018.10.11
22. 경기도 여주 신륵사  (0) 2018.07.11
21. 경기도 안성 칠장사  (0) 2018.01.21
20. 서울 봉원사  (0) 2017.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