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바꾸면 ~~

47. 딸깍발이 후예

상원통사 2018. 7. 16. 22:07

** 여시아상(如是我想) : 이와 같이 나는 생각한다 **

                - - - - - - - - - - - - -


"대통령이 오시면 우리 교통이 불비해 불편을 드릴 것 같습니다. 참으로 민망스러울 수 있겠습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정상회담에서 상대 나라의 지도자에게 했던 말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단다, 술도 안 마시고 맨 정신으로 남들이 다 듣는데서 ~~

'평창올림픽에 갔다 온 분들이 말하는데 평창 고속열차가 다 좋다고 하더라'  

'남측의 이런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으로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

'우리도 준비해서 대통령이 오시면 편히 모실 수 있게 하겠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적국의 수뇌에게 이런 말을 했다면 조중동과 새누리당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그거야 안 봐도 비디오 아닌가,

자존심도 없느냐, 국격을 떨어뜨렸다, 나라를 통째로 넘기려고 그런다, 대국민 사과하고 자진사퇴하라, 탄핵감이다 ~~

근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늘상 하듯이 거리낌 없이 말했다.

정말 그는 자존심도 없는 사람일까, 아니면 언론에서 말하듯 너무나 솔직해서 그랬던 것일까?

몇날며칠 생각해 보고 또 해보고, 입장 바꾸어서도 생각해 봤는데 절대로 그건 아니다.

그의 내면에 가득찬 '당당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희승님이 쓰신 <딸깍발이>가 생각난다.


'딸깍발이'란 것은 '남산(南山)골 샌님'의 별명이다.

 왜 그런 별호(別號)가 생겼는가 하면, 남산골 샌님은 지나 마르나 나막신을 신고 다녔으며,

 마른 날은 나막신 굽이 굳은 땅에 부딪쳐서 딸깍딸깍 소리가 유난하였기 때문이다.

 ~~ 이런 샌님의 생각으로는 청렴 개결(淸廉介潔)을 생명으로 삼는 선비로서 재물을 알아서는 안 된다. 

어찌 감히 이해를 따지고 가릴 것이냐. 오직 예의, 염치(廉恥)가 있을 뿐이다. 

인(仁)과 의(義) 속에 살다가 인과 의를 위하여 죽는 것이 떳떳하다.

~~ 겨울이 오니 땔나무가 있을 리 만무하다. 

동지 설상(雪上) 삼척 냉돌에 변변치도 못한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으니,

사뭇 뼈가 저려 올라오고 다리 팔 마디에서 오도독 소리가 나도록 온몸이 곧아 오는 판에,

사지를 웅크릴 대로 웅크리고 안간힘을 꽁꽁 쓰면서 이를 악물다 못해 박박 갈면서 하는 말이,

"요놈, 요 괘씸한 추위란 놈 같으니, 네가 지금은 이렇게 기승을 부리지마는, 어디 내년 봄에 두고 보자."

하고 벼르더라는 이야기가 전하지마는, 이것이 옛날 남산골 '딸깍발이'의 성격을 단적(端的)으로 가장 잘 표현한 이야기다. 

~~ 사실로는 졌지마는 마음으로는 안 졌다는 앙큼한 자존심, 꼬장꼬장한 고지식,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을 안 쬔다는 지조(志操), 이 몇 가지가 그들의 생활 신조였다. 


'가난하다'는 것도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는 그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들어있지 않을까.

그래, 느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산다는 것 나도 잘 안다, 그러나 돈 많다고 꼭 잘사는 것인가, 아니지!

잘 생각해 봐라, 느그는 친일파 후손이고 우리는 독립군 후손, 벌써 격이 다르지 않나,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딱 부러지게 말도 못하고 대충 덮어두고 받은 돈으로 이룬 경제는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슬픔을 사과 한 마디 없이 껌값만으로 두루뭉실 넘기려 하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은 아니다,

우린 그런 돈으로 고속도로 닦고 고속전철 놓아 나라 발전시키는 그런 정책은 안 한다.

그건 근본 없는 것들이 하는 짓이지 인의예지를 아는 사람이 어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는가~~


"회담 중에도 신경전이 만만치 않았다.

 공산군 측은 상대를 내려다 보는 효과를 내기 위해 UN군 측이 앉을 의자의 높이를 일부러 낮추었다.

 UN군 측의 항의로 의자를 바꾸긴 했지만 이미 공산군 측에서 높은 의자에 앉아 상대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카메라로 다 찍은 뒤였다.

 첫 번째 만남 때 UN군 측은 공산군 측에서 제공한 음식이나 차를 건들지도 않았다.

 양측 모두 사소한 동작 하나까지 신경 쓰며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 회의 도중에 욕설이 난무했고, 어떨 때는 아무 말 없이 노려볼 때도 있었다.

 어느 날 북한 대표인 남일이 왜 38도선을 분계선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신경질을 내자,

 UN군 수석대표 조이는 담배를 피워 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남일 역시 상아 담뱃대를 입에 물고 분노를 참지 못한 채 눈을 부릅뜨고 조이를 노려 보았다.

 침묵의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그때 북한 대표인 이상조의 얼굴에 큰 파리가 한 마리 날아들었다.

 파리가 얼굴을 여기저기 기어다녀도 이상조는 꼼짝도 하지 않고 맞은편 한국군 대표인 백선엽을 쏘아보았다.

 한참 뒤에 파리가 날아갔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다음 날부터 UN군 대표들은 이상조를 '파리가 얼굴에 앉아도 꼼짝하지 않은 친구'라고 불렀다."


김연철 님의 책 <협상의 전략> 209쪽 '총은 내려놓고 만나라 : 한국전쟁 휴전협상' 편에 나오는 대목이다.

회담에는 어떻게 임해야 하는 지, 협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그도 잘 알고 있을 게다.

근데 그런 것 다 내려놓고, 가난마저도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우리에게 가까이 오기를 권했다.

무서운 사람이다,

하지만 그 안에 술수가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더하여 겹쳐지는 또 하나의 생각,

딸깍발이는 조선시대와 함께 사라진게 아니다, 그 정신만은 아직도 살아 내려오고 있다!


'한 생각 바꾸면 ~~' 카테고리의 다른 글

49. 미안한 마음  (0) 2018.08.16
48. 이런 더위는 처음  (0) 2018.08.02
46. 노름꾼의 최후  (0) 2018.06.07
45. 왕과 벌치기  (0) 2018.04.24
44. 독도는 일본 땅?  (0) 2018.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