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무학대사가 깊은 산길을 가다가 밤이 깊어져 잘 곳을 찾던 중
허름한 오두막을 하나 발견하고 하룻밤을 청하게 되었다.
오두막 주인은 생면부지의 스님이지만 정성을 다해 저녁상을 차리고 잠자리를 마련했다.
무학대사는 자신을 극진히 대접해주는 주인장이 너무 고마워 보답하는 뜻으로 사주를 봐주겠다고 했다.
집주인의 생년월일시를 받아 적은 무학대사는 깜짝 놀랐다.
그의 사주팔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것과 똑같았던 것이다.
한참동안 생각에 빠져있던 무학대사가 집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장은 이 산 속에서 무얼 하고 계십니까?”
“예...저는 벌을 치며 살고 있습니다.”
무학대사는 혀를 차며 속으로만 말했다.
"참으로 기묘한 인연이구나,
똑같은 사주인데 한 사람은 나라를 세워 왕이 되고, 또 한 사람은 산속에서 벌을 치고 있다니...."
사주? 옛날 사람들이 통계수치 좀 적당히 주물러서 운명을 점칠수 있다고 하는 속임수일 뿐이야,
어떻게 사주팔자가 똑같은데 한 사람은 왕이 되고, 한 사람은 산골의 벌치기가 될 수 있겠어?
말도 안되는 소리지 ~~
또 그래, 사주풀이에서 사용하는 연월일시 경우의 수를 보면 60*12*60*12 = 518,400 가지,
남녀의 사주는 다르게 보는 것이니 곱하기 2 하면 전체 경우의 수는 1,036,800 가지,
우리나라 인구를 5,000만명으로 본다면 평균 50명은 사주가 똑같다, 그 50명 운명도 똑같아야 한다.
웃기지? 말짱 말장난이야, 믿을 게 못돼, 요걸 갖고 뭐라뭐라 하는 녀석들은 죄다 사기꾼이야!
이런 사기꾼들은 몽땅 잡아다 태평양 바닷물에 빠트려 버려야 해!
그렇다, 그렇게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어떻게 사주팔자가 똑같은데 한 사람은 왕이 되어 천하를 호령하고 다른 사람은 산속에서 벌이나 치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안경이 아닌 하늘의 안경을 빌려 쓰고 본다면 말이다.
벌도 생명이고 사람도 생명, 벌치기는 그 생명을 보살펴 꿀을 얻고 왕은 그 생명을 다스려 세금을 거둔다.
벌과 사람이라는 대상이 다를 뿐, 살아 움직이는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보면 벌치기와 왕은 별반 다를 게 없다.
벌치기는 오두막에서 자고 왕은 고대광실 기와집에서 자지만, 비바람 들지 않는 집에서 자는 것이니 그것도 별반 다를 게 없고,
벌치기는 개다리 소반에 먹고 왕은 수라상을 받지만, 삼시 세 때 거르지 않고 챙겨 먹으니 그것도 별반 다를 게 없고,
벌치기는 무명옷 입고 왕은 비단옷 입지만, 내놀 곳 내놓고 다니고 가릴 곳 가리고 다니니 그것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비슷한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점도 있다.
왕은 창칼을 든 군사가 지키지 않으면 발뻗고 자기 힘들지만, 벌치기는 대문 걸어잠그지 않아도 거리낌 없이 코골고 잔다.
왕이 먹는 흰쌀밥과 고기 반찬은 성인병을 유발하지만, 벌치기가 먹는 잡곡밥과 산나물은 웰빙식품이라 건강 걱정 할 것이 없다.
왕은 하루종일 스트레스 받으니 정신과 상담이 필요하지만, 벌치기는 가만 있어도 벌들이 알아서 봉침을 놔주니 의사 찾을 필요도 없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니 벌치기는 불행하고 왕은 행복한 것 같지만,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거기서 거기,
인간의 관점에서 보니 벌치기는 땅 같고 왕은 하늘 같지만,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거기서 거기,
사주팔자도 보는 이에 따라 이렇게 보이기도 하고 저렇게 보이기도 할 뿐, 하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운명을 나눠주었다.
공평하게 받았으니 고마운 줄 알고 써야 하는데, 욕심을 덧칠하여 쓰려 하니 아무리 많이 받아도 부족하기만 하다.
특히 내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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