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바꾸면 ~~

49. 미안한 마음

상원통사 2018. 8. 16. 22:54

휴대폰에 속보가 떴다. 뭘까?

"노회찬 사망"

아이쿠 이게 뭔 소리냐, 설마, 가짜뉴스겠지...

'어쩌고 저쩌고 이러쿵 저러쿵 해서 뛰어내렸다', 아니길 바랐는데 바람은 그냥 바람으로 끝나버렸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이 생각 저 생각에 머릿속이 멍해지더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다가 또 다시 뉴스 보기가 싫어졌다.

왜 세상은 있어야 할 것과 없어져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할까, 싫다!


쥐나라 땐 심야토론인지 백분토론인지 그런 것들 보기를 그만 두었다.

참 말 잘하는 녀석들이 나와 묘한 논리로 억지소리 벅벅 해대는 꼴들 보다간 건강에 이상이 생길 것 같아 그만 두었다.

그러나 다시 나아지리라는 한 가닥 희망이 있었기에 TV 뉴스도 꼬박꼬박 보고, 신문도 꼼꼼히 읽었다.

닭나라 땐 'TV 뉴스' 보기를 그만 두었다.

여기고 저기고 간에 똑같은 소리만 반복하는데, 그 수준이 조중동을 넘어서니 더 볼 것도 더 들을 것도 없었다.

세월호 참사 후엔 '경향신문'마저 끊어버렸다.

이러면 안된다고 홀로 외치지만 메아리는 없고 하염없이 나락으로 떨어져 가기만 하는 나라,

어린 생명들이 죽었어도 그저 변명만 늘어놓고 입막음만 하려는 나라,

이런 나라에 산다는 것이 부끄러웠고, 그런 어이없는 소식들을 더이상 접하기 조차 싫었다. 

TV도 안 보고 신문도 안 읽었더니 뜻밖에 '시간'이라는 선물이 내게 주어졌다. 

덕분에 책을 가까이 할 수 있게 되었고, 소일거리에 푹 빠져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촛불 집회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레 다시 뉴스를 접하기 시작했다.

손석희 나오는 JTBC 뉴스를 꼭 봐야한다며 IP TV를 신청한 아내 덕에 보는 기쁨이 갑절이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란 단어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숫제 뉴스보는 재미로 살았다.

8시 뉴스, 9시 뉴스, 11시 뉴스, 본 것 또 봐도 좋고 들은 것 또 들어도 좋고,

JTBC, KBS, MBC, SBS, OBS, 여기를 봐도 좋고 채널 돌려 저기를 봐도 좋았다.

사람 하나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세상이 이리도 바뀔 수 있나, 미래가 보이고 희망만 가득한 대한민국!

책 읽을 시간도 줄고 뭔까 끄적거릴 시간도 줄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가슴속에 채워졌기에 마냥 좋았다.

그렇게 지내왔는데, 날마다 엔돌핀만 팍팍 돌았었는데, 그의 부음은 날 뉴스에서 다시 멀어지게 했다.


입장바꿔 생각해 본다, 내가 노회찬이다.

드루킹이 잡혔다. 뭔가 안 좋은 느낌이다.

특검이 차려졌다. 나올 것이 별로 없으면 뭔가 다른 것이라도 엮으려 하겠지. 조금 불안하다.

방송사에서 마이크 대고 물어본다, 어쩔 수 없이 거짓말했다. 이런 내가 너무 어색하다.

찜찜하다, 내가 이래도 되는건가, 스스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고등학교 동창이, 현직 변호사가, 절대적으로 우릴 지지하는 조직에 몸담은 사람이,

어려울 땐 서로 돕고 사는 것이라고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아무 조건없이 준 돈이었다. 정말 문제 없는 돈이었다.

그 돈으로 나쁜 짓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과정을 법대로 처리했어야 했다, 못내 꺼림찍했는데....

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는데, 그 돈 없었어도 또 잘 버틸 수 있었는데,

한 순간 방심했다, 이건 내게 너무나 큰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난 어떻게 될까, 뭐라 얘기해야 사람들이 욕하지 않을까,

조중동과 한국당은 한 건 잡았으니 북치고 장구치고 꽹가리 치고 나팔 불고 난리 브루스를 치겠지,

내가 마치 예전부터 뒷주머니 차고 돈이나 챙기고 이권이나 챙기는 사람으로 몰아갈 것이고,

진보세력은 주둥이로만 정의와 도덕을 외치지만 알고보면 우리보다 더 나쁜 집단이라 매도 할 것이고,

나를 지지해준 국민들은 실망하여 하나씩 둘씩 멀어져갈 것이고,

이제 막 자리잡기 시작한 정의당도 다시 곤두박질 치기 시작할 것이다.

안다, 나도 안다, 이것이 그렇게 큰 죄는 아니다. 정 뭐하면 벌금 정도 내면 될 일이고 한 번 쪽팔리면 되는 일이다.

그런 것 때문에 이렇게 고민하는 게 아니다, 내가 나를 볼 때 문제가 되기에 그러는 것이다.

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문제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어떻게 빠져나갈 방법이 없을까?

아무리 용을 써도 구구절절 변명밖에 안 될 것이다, 점점 더 추해져가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그럼 해결책은? 그래, 딱 하나밖에 안 남았구나!

미련 없다.

나 지금까지 거짓없이 살았고, 열심히 살았고, 뜻하는 바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았지만 여기까지가 내 한계다.

운명이다!


그렇게 힘들어했을 노회찬을 생각하니 윤동주님의 <서시>가 겹쳐진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홍준표, 우리나라 사람 5% 정도는 그의 말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명언 중의 명언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 어떤 경우라도 자살이 미화되는 세상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닙니다.

 잘못을 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지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자살을 택한다는 것은 또 다른 책임회피에 불과합니다."

이 말 자체만 떼어놓고 보면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같은 말이라도 때와 장소를 가려가면서 해야한다. 그래야 사람이다.

공부도 잘해 검사까지 했던 사람이니 애도의 장인지 논쟁의 자리인지 구분도 못할 정도로 무식하지는 않을 것이다.

알면서도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반응을 보고 댓글을 읽고 히죽히죽 웃으며 스스로 너무 똑똑하다 자평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 그렇게 사는 것도 한 세상이겠지,

하지만 꼭 그렇게 살아야 하나, 사람이 뭐고 짐승이 뭔가?

개돼지로 대표되는 동물의 세계라면 그의 행동이 이해된다.

개돼지 세상은 항상 내가 우선이고, 힘 있는 놈이 우선이고 내 배 먼저 부르는 것이 세상의 진리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다르다. 같이 슬퍼한 줄 알고 나눠먹을 줄 알고 사양할 줄도 알고 더불어 살아갈 줄도 안다.


"같은 말을 해도 좌파들이 하면 촌철살인이라고 미화하고 우파들이 하면 막말이라고 비난하는 이상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맞는 말도 막말이라고 폄훼하는 괴벨스 공화국이 돼 가고 있습니다."

개돼지는 내 배 먼저 채워야 하고, 나만 잘 살면 되고, 내 기준으로만 세상을 이해한다.

개돼지는 그렇게 교육받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정의라 생각하고 그렇게 세상을 살아왔다.

특활비 쓰고 남은 돈을 마누라에게 갖다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뇌물을 받았을 지라도 법원에서 무죄 판결만 받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사천만 원이야 버티다보면 무죄판결도 받을 수 있는 것인데 왜 목숨을 버려야 하나,

내 말이 맞지? 분명히 옳은 소리 맞는 소리 진리를 말했는데, 나쁜 좌빨들은 나만 욕한다!

막돼먹은 세상, 친절한 금자씨를 세상에 풀어 몽땅 없애 버리고 싶다!


이런 소리 지껄이는 나는 뭐 했나, 준표를 욕할 자격이라도 있는가?

비례대표에 정의당 한 표 찍은 것 외에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다.

미안했다, 그래서 미안했다. 노회찬께 더 미안했다.

이제라도 뭐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딱 한 가지 남았구나,

정의당에 10만원 보냈다, 조금이라도 미안함을 달래보려는 얄팍한 마음에....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정의당의 지지율이 16%를 넘어가고 있다.

정의당 당원 신규 가입도 많이 늘고 있고, 후원금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나만 미안했던 것이 아니라 나같이 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 다행이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이 땅에 새로운 기운이 펼쳐지고 있다.

보수 대 진보라는 엉터리 구도가 서서히 사라지고,  수구 대 보수 대 진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바란다면, 하루빨리 수구는 사라지고 보수와 진보가 대결을 펼치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것이 진정 노회찬님이 바라는 세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P.S :  세월이 약이다. 시간이 지나니 이렇게라도 끌적거릴 수 있다.

         그래도 미안함은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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