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걷기여행

28. 한성대입구역~정릉

상원통사 2018. 5. 31. 22:10

춘래진래춘(春來眞來春), 

5월 하고도 하순이 되어서야 내겐 진짜 봄이 왔습니다.

예년엔 봄기운을 느끼기 전부터 마음은 벌써 대문 밖으로 나갔었지만 금년엔 그럴 정신이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아내가 많이 아팠어요, 그런 아내를 두고 혼자 돌아다닐 간 큰 남편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젠 많이 나았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금년들어 첫 봄나들이를 나섰습니다.


오늘은 비교적 걷기 쉬운 길을 골랐습니다.

한성대 입구역에서 북악산길을 지나 정릉을 한 바퀴 돌고 아리랑고개를  넘어 성신여대입구역까지,

총 길이는 6.7Km, 2시간이면 걸을 수 있다지만 난 4시간 정도 예상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80m쯤 가면 오른쪽으로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는 큰 길이 아니라 옛길로 보이는 작은 길을 택해 오르다 보니 ~~



계단만 보이는 제법 가파른 길이 나와 은근히 아내가 걱정 되었는데 ~~



씩씩하게 나보다 더 잘 걷습니다. 이렇게 기분이 좋을수가 ~~

여기가 어디더라, 아 그렇지, 앞에 보이는 벽돌 건물은 바로 성북구민회관이구나,

지난 번 북악 스카이웨이 갈 때 여기서 한참 헤맸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성북구민회관을 지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왼편에 하늘한마당이 나오고 ~~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피구를 하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재촉합니다.

부럽고나~~, 나도 느그들만 한 때가 있었는데 ~~



왼쪽으로 오르면 북악스카이웨이,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정릉으로 가는 길,

우린 오른쪽 길로 내려가다가 숲속으로 난 길이 있어 호기심이 발동해 따라가보았습니다.



어라, 근데 여기가 어디지? 잠시 당황했지만 요즘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휴대폰을 꺼내 카카오 지도를 확인하고 다시 방향을 잡아 살금살금 내려가니 ~~ 



드디어 차가 다니는 큰 길이 나왔습니다.



연수암 앞은 차가 한 대 겨우 다닐만큼 좁디 좁은 골목길 ~~



그 길을 따라 300m쯤 내려가면 ~~



정릉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옵니다.



왕릉에 가면 왕릉을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조용한 숲속길을 걷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숲속을 먼저 걷다가 마지막으로 왕릉으로 향하는 경로를 택했습니다.

시계방향으로 돌다 보니 맨 처음 보이는 곳이 재실,

그 입구에는 380년 묵은 느티나무가 있는데 뭔가 주렁주렁 매달고 있기에 가까이 가서 봤더니 ~~



어디가 부실한지 수액주사를 맞고 있습니다.

나도 늙으면 저렇게 매달고 있어야 하나??




재실 안으로 들어가니 우선 행랑이 있고 ~~



* 행랑(行廊) : 대문, 하인방, 마굿간, 창고, 집사방 등이 있던 건물



또 하나 문을 오르면 왼편에 제기를 보관하는 건물인 '제기고'가 있고 ~~



그 안쪽에 재실이 있습니다.



* 재실(齋室) :  제사를 준비하고 왕릉을 관리하던 영(令)과 참봉(參奉) 등이 쓰던 건물




재실 마루에 앉아 앞을 내려다 봅니다.

어딜 가더라도 쉴 새 없이 들려오던 자동차 소리가 사라진 자리엔 새소리가 머물러 있고,

봄의 푸르름을 이고 서있는 나무들은 내 눈도 차분하게 내 마음도 차분하게 바꿔줍니다. 

이런 데서 하룻밤 정도 잘 수 있다면 얼마나 호사일까 ~~



재실을 나와 다시 산길을 오릅니다.



아내 사진도 몇 장 찍었는데 이쁘게 나온 것이 하나도 없어 그냥 뒷모습만 올립니다



돌계단을 지나면 ~~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 길로 오르면 50분 산책길, 오른쪽 길로 내려가면 20분 산책길,

우린 조금 더 걸어보려 왼쪽길을 택했습니다.



뿌리는 하나인데 줄기는 여섯!



여기까지가 오르막이고 ~~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 ~~




이제 다 내려왔군요.



데이트하기 좋은 호젓한 길이어서 그런지 손을 꼭잡고 걷는 연인들이 많이 보입니다.

우린 손 대신 마음과 마음을 꼭 잡고 걷습니다.



이제 다 내려왔군요, 릉 앞의 건물들이 보입니다.



여기는 비각이고 ~~



어라, 저기 릉 위에는 못올라가게 되었는데 어찌된 일인가???

알고 보니 이곳 정릉에서는 하루 한 번 해설사와 함께 올라갈 수 있답니다.

우리도 조금 빨리 왔으면 올라갈 수 있었을텐데 아쉽습니다.



여기는 정자각(丁字閣), '왕릉제례 때 제향을 올리는 丁자 모양으로 지은 건물'입니다.

근데 큰일 났어요,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고 있습니다.

일기예보에서 분명 저녁 6시 이후부터 비가 온다고 해서 우산도 준비하지 않고 왔는데,

벌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낭패입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겠습니다.



여기는 향·어로(香·御路),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길'입니다

왼쪽 약간 높은 길은 제향 때 향을 들고 가는 길이라 하여 향로(香路)라 하고,

오른쪽 약간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어로(御路)라 한답니다.

여기는 다른 왕릉과 달리 'ㄱ'자로 꺾여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여기는 홍살문(紅箭門),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입니다.

아이쿠, 이젠 정말 비가 많이 옵니다, 피해야 겠습니다



정릉(貞陵)

-.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단릉(單陵)

-. 신덕왕후는 이성계의 경처(京妻)로 있다가 조선 개국 후 현비(顯妃)로 책봉됨

-. 신덕왕후의 가문은 고려의 권문세가로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함




한참을 기다려도 비는 그치지 않습니다.

심심하기도 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번 담아보았습니다.

지나온 길을 지나갈 길보다 길게도 잡아보고 ~~



지나갈 길을 지나온 길보다 길게도 잡아보고 ~~



저 멀리 앉아있는 젊은 처자는 조금 흐리게도 잡아보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도 비는 그치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릴 거냐고, 오늘 밤새도록 이렇게 앉아서 기다리기만 할거냐고 핀잔을 주는 아내가 무서워(?),

빗줄기가 조금 잦아드는 기미를 보이자 우산도 없이 모자만 쓰고 길을 나섰습니다.

원래는 아리랑고개로 가서 아리랑 시네센터를 지나 나운규 테마공원을 보고 성신여대 입구역까지 걸어가려 했으나

하늘이 도와주질 않아 그냥 마을버스 타고 지하철역까지 단숨에 내달렸습니다.

비가 와서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건강을 되찾아 길을 함께 해준 아내가 있어 너무너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오늘의 아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