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 하면 여기 오는 게 벌써 세 번째,
처음엔 중간쯤 가니 성벽 보수공사를 한다고 더이상 못가게 해서 발길을 돌렸고,
두 번째엔 신분증을 가지고 오지 않아 들어가지도 못하고 입구에서 발길을 돌렸는데,
이번엔 또 뭐가 문제가 될려나 걱정과 함께 시작하는 오늘의 걷기여행,
혜화문에서 시작하여 숙정문을 거쳐 창의문까지 가는 길입니다.
혜화문(惠化門)
-. 한양도성의 동북쪽에 위치한 문
-. 창건 당시에는 홍화문(弘化門)으로 불렀으나 1511년(중종 6)에 혜화문으로 이름이 바뀜
-. 영조 때에는 없던 문루를 지어 올림
-. 문루는 1928년에, 홍예는 1938년에 헐렸음
-. 1994년에 본래보다 북쪽으로 옮긴 자리에 문루와 홍예을 새로 지음
그러니까 창경궁로 건너 저편에 보이는 성벽까지는 한참 전에 걸었고 ~~
오늘은 이곳 혜화문을 지나 숙정문으로 창의문으로 연결되는 구간을 걸을 예정입니다.
전체 거리는 8Km, 예상 소요시간은 2시간 20분이지만, 난 해찰하며 가야하니 3시간 반쯤 걸릴 것 같습니다.
추녀마루에 앉아있는 이 모형들을 잡상이라 한답니다.
맨 왼쪽을 손행자(孫行子, 선인)라 하고, 그 다음부터 잡상이고, 맨 오른쪽이 용두(龍頭)랍니다.
나도 처음 알았네~~
혜화문을 나와 조금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오는 데, 오른쪽으로 가야 성벽을 따라 갈 수 있습니다.
그냥 온전한 성벽 위에 집을 지은 곳도 있고 ~~
성벽 위에 축대를 쌓아 집을 지은 곳도 있고 ~~
성벽 밑에 축대를 쌓아 성벽이 무너지지 않게 보강한 후 집을 지은 곳도 있습니다.
이걸 문화재 훼손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그냥 문화재 활용이라 말하는 게 속이 덜 상하는 것 아닌지 ~~
경신고등학교를 지나고 왕돈까스집 앞을 지나 서울 과학고까지 오면 와룡공원길이 시작되는 데~~
약간 오르막길이니 구경도 할겸 쉬엄쉬엄 올라가다 보면 ~~
겨울 소풍 나온 비둘기도 만날 수 있습니다.
와룡공원 못미쳐 성밖으로 나가는 조그만 문이 있어 밖으로 나와서 ~~
이제부터는 성벽 무늬를 감상하며 걸어봅니다.
취병(翠屛)
-. 조선시대의 독특한 조경기법
-. 식물을 소재로 만든 친환경 울타리로 궁궐의 핵심지역과 일부 상류층의 정원에만 사용되었음
-. 공간을 깊고 아늑하게 만들어 생기가 나게 하는 아름다움 있음
-. 일제 강점기 이후 실물이 사라졌으나 창덕궁 후원에 복원된 바 있음
어디 무너질까 불안한 곳이 있는 지 취병으로 막아놓고 오른쪽으로 내려가라 하네요 ~~
그래서 쪼끔 돌아서 가다가 말바위 안내소 방향으로 올라가는 데 ~~
소나무가 예뻐서 한 컷 찍고 ~~
전망이 좋아서 또 한 컷 찍고 ~~
난 카메라만 들면 마냥 기분이 좋아집니다.
어? 근데 저기가 어디더라 ~~
맞아, 삼청각입니다.
지금은 음식점으로 바뀌었다지요.
여기는 말바위 안내소,
청와대 뒷산을 통과하려면 이곳에서 신분증 보이고 번호표를 받아야 합니다.
신분증이 없으면 절대로 안 보내줍니다.
이것도 노무현 대통령 때 개방해서 이만큼이지 그 전에는 아예 들어가지도 못했었답니다.
이젠 이런 것 좀 없어질 때가 되지 않았나 ~~
안내소를 통과하여 번호표를 목에 걸고 가다가 이뻐서 한 컷!
숙정문(肅靖門)
-. 1395년(태조 4)에 이 건립, 북대문(北大門)이라고도 함
-. 1413년(태종 13)에 풍수학생(風水學生) 최양선(崔揚善)의 건의로 창의문(彰義門)과 함께 폐쇄함
-. 이 문을 열어 놓으면 장안의 여자가 음란해지므로 항상 문을 닫았다는 속설(俗說)도 전하고 있음
-. 1504년(연산군 10)에 조금 동쪽으로 옮겨 세웠는데, 이 때는 석문(石門)만 세우고 문루(門樓)는 건축하지 않음
-. 1976년 성곽을 복원할 때 태조 창건 당시의 제도에 의해 문루를 건축함
숙정문을 지나서도 길은 계속 오르막 길인데 ~~
저 너머 경치도 구경하고 ~~
지나온 길 뒤돌아보기도 하며 걸어가다보니 ~
해발 293m 청운대(靑雲臺)가 나옵니다
조금 뿌옇기는 하지만 멀리 남산도 보이네요.
그렇게 또 성벽을 따라 가다보니 ~~
하얀 페인트로 동그란 표시들을 해둔 나무가 나오는 데 ~~
1·21사태 소나무
-.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군부대 김신조 등 31명은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하여,
현 청운실버타운(청운동) 앞에서 경찰과 교전 후 북악산 및 인왕산지역으로 도주하였다.
-. 당시 우리 군경과 치열한 교전 중 현 소나무에 15발의 총탄 흔적이 남게 되었고,
이후 이 소나무를 1·21사태 소나무라 부르고 있다
-. 이 사건을 계기고 향토예비군이 창설(68.4.1)되었다.
조금 더 가다보니 또 전망좋은 곳이 나오는 데 ~~
북악산을 옛 모습으로 복원한 곳이랍니다, 이렇게 적혀 있네요.
"이곳은 북한군의 공중위협으로부터 청와대를 방호하기 위해 1979.10.15일부터 북악통제대 및 발칸진지를 설치 운용한 자리이며
2000년 9월 9일 보다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다
민족의 정기가 서려있는 이 곳 북악산을 우리가 살고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영원한 삶터로 가꾸기 위해 옛 모습으로 복원하다
민족과 함께 영원히 살아 숨쉬길 기원하며, 2001년 새해 아침"
이제부터는 계속 내리막길인데 ~~
경사가 너무 심해서 조금 무섭네요
그렇게 가다 보니 번호표 반납하는 곳이 나오고,
몇 걸음 더 가면 창의문, 오늘의 걷기여행 종착점이 있습니다.
창의문은 전에 소개했으므로 생략~~
대신 한양 도성(漢陽都城)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
-. 1396년(태조5)에 백악(북악산) 낙타(낙산) 목멱(남산) 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쌓은 이후 여러 차례 고침
-.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18.6km
-.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래도록(1396~1910, 514년) 성의 역할을 다한 건축물
-. 사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과 사소문(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을 두었는데 돈의문과 소의문은 없어짐
-. 2014년까지 한양도서 전체 구간의 70%가 옛 모습에 가깝게 정비되고, 숙정문 광희문 혜화문은 다시 세워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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