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걷기여행

23. 서오릉

상원통사 2017. 6. 7. 22:59

값싸고 푸짐하고 수제비까지 덤으로 주는 맛있는 낚지볶음 집 뒷편에 펼쳐진 넓다란 소나무숲,

그곳이 서오릉이라는 것을 알고선 언제 한 번 가보려하다가 마침 연휴가 있어 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무슨 무덤에까지 가느냐고 싫다는 것을 맛있는 것 사준다고 꼬드겨 겨우 길을 나섰습니다.


서오릉(西五陵)

-. '서쪽에 있는 다섯 기의 조선왕릉'이라는 뜻으로 조선의 왕과 왕후 9명이 잠들어 있는 무덤

-. 조선시대 300여년에 걸쳐 조성됨

-. 15세기 덕종의 경릉을 시작으로 18세기 명릉을 조성하면서 5개의 능으로 되어 '서오릉'으로 불리게 됨

-. 숙종과 관련된 인물들의 무덤이 많이 있음(숙종, 숙종의 왕후 3명, 후궁인 희빈 장씨의 무덤)

-. 5릉(명릉, 익릉, 창릉, 홍릉, 경릉), 2원(순창원, 수경원), 1묘(대빈묘) 등 조선시대의 무덤의 제도를 모두 볼 수 있음


이 대목에서 상식 한 가지,

조선 왕족의 무덤은 무덤 주인의 신분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하는데,

릉(陵) : 왕과 왕비(추존된 경우도 포함)의 무덤
원(園) : 왕이나 비(妃)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임금의 부모나 왕세자 내외의 무덤
묘(墓) : 대군이나 공주.후궁 등 그외 왕족의 무덤


경기도 고양에 있는 서오릉, 입구에 도착하여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면(주차료 공짜) ~~



그냥 걷기 편안한 산책길이 나오는 데 ~~



조금 걸어가다 맨 처음 마주치는 무덤이 명릉(明陵),

명릉은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肅宗, 1661~1720)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 둘째 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입니다.



정자각 오른편에 보이는 쌍무덤이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이며,

정자각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곳에 인원왕후의 능이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주춧돌은 수복방(守僕房. 능을 지키는 수복들이 근무하던 건물) 터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는 층을 지어 박석을 깔아놓은 높고 낮은 네 줄의 길이 나오는데 설명하자면,

향로(香路) : 제일 높은 길.  제향시 향을 들고 가는 길. 혼령이 다니는 길로 신로(神路) 또는 신향로(神香路)라 부르기도 함

어로(御路) : 향로의 오른편 약간 낮은 길(오른쪽에서 두 번째). 임금이 다니는 길

변로(邊路) : 양쪽의 가장 낮은 길. 신하들이 다니는 길




여기는 정자각 ~~




안에는 제사 때의 상차림이 사진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정자각 뒤에는 실제의 능이 있는데 높은 언덕 위에 있어 아래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왼편이 숙종, 오른편이 인현왕후 민씨의 무덤이고 ~~



숙종의 능에서 왼편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인원왕후 김씨의 무덤이 있습니다.



여기는 비석을 세워둔 비각, 정자각 오른편에 위치합니다.



명릉을 나와 조금 걸으면 재실(齋室)이 나옵니다




재실(齋室)

-.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이 상주하던 곳

-. 제례시에는 제관들이 머무르면서 제사에 관련된 전반적인 준비를 하던 공간

-. 기본적으로 능 하나에 재실이 하나씩 별도로 지어졌으나 현재 서오릉에는 명릉재실의 일부분만 남아있는 상태임



서오릉은 전체적으로 커다란 숲입니다.



그 사이에 길이 나있고 무덤들이 있습니다.



수경원(綏慶園)

-. 조선 제21대 임금인 영조(1694~1776)의 후궁 영빈 이씨의 묘

-. 영빈은 어려서 궁녀가 되어 귀인을 거쳐 영조 6년 1730년에 영빈으로 책봉됨

-. 영조11년(1735)에 사도세자를 낳았고 영조40년(1764)에 69세로 세상을 떠남

-. 수경원은 원래 연세대학교 안에 있었으나 1970년 9월 8일에 이곳으로 옮겨짐





수경원을 나와 또 숲속길을 걸으면 익릉이 나옵니다.



익릉(翼陵)

-.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1661~1720)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의 단릉

-. 인경왕후 김씨는 11세에 세자빈으로 되었다가 숙종이 즉위하면서 14세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20세에 세상을 떠남



"경사지에 단을 이루어 지형에 맞춰 향로(香路)와 어로(御路)를 조성한 점이 독특하다."



"익릉은 현종의 릉인 숭릉(崇陵, 구리 동구릉 소재)의 양식을 따라 능상에 병풍석을 두지 않았다."



정자각에서 앞을 내려다본 풍경, 소나무 숲이 장관입니다.



익릉을 나와 창릉까지 가는 길은 '서어나무길'이라 명명한 산책로입니다.



그 아래로는 '소나무길'이 있는데, 그냥 저절로 자란 나무들이 아닙니다.

곳곳에 언제, 얼마만큼의 면적에, 몇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는 팻말이 보입니다.



그렇게 계속하여 가꾸었기에 오늘날의 숲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고생하신 분들께 감사!!!



조용하고, 험하지 않고, 나무 울창하고, 붐비지 않는 곳,

'철학의 길'이 따로 없고, '명상의 길'이 따로 없고, '데이트 코스'가 따로 없습니다.

한 번쯤 시간내어 이곳에 와서 천천히 거닐어보시길 강력 추천합니다.







창릉(昌陵)

-. 조선 제8대 임금인 예종(睿宗 1450~1469)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

-. 서오릉의 영역 안에 최초로 조성된 능

-. 예종은 재위 1년여 만에 20세로 세상을 떠남



정자각에서 볼 때 왼쪽이 예종의 능침이며, 오른쪽이 안순왕후의 능침입니다.

이렇게 왕과 왕비의 능이 정자각 뒤편 좌우의 서로 다른 언덕에 조성된 능을 동원이강릉(東原異岡陵)이라 한답니다.



숲길 설명은 생략!



홍릉(弘陵)

-. 조선 제21대 임금인 영조(英祖 1694~1776)의 원비 정성왕후 서씨의 능

-. 능의 전체적인 배치는 쌍릉 형식이나, 능침 왼쪽이 비어있는 것은 영조가 생전에 정성왕후와 함께 묻히려 우허제를 쓰도록 했기 때문임

* 우허제(右虛制) : 왕비가 먼저 승하하여 능을 조성할 경우, 왕이 훗날 왕비와 함께 묻히기 위하여 능의 오른쪽 자리를 비워두는 것




홍릉을 나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걷는데 아내가 빨리 오라고 손짓합니다.

뭐 좋은게 있나 하여 서둘러 가보니 ~~



대빈묘(大嬪墓)

-.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肅宗 1661~1720)의 후궁을 거쳐 왕비가 되었다가 폐위된 희빈 장씨의 묘

-. 처음 궁녀로 입궁하였다가 숙종 12년에 숙종의 후궁이 됨

-. 숙종 14년에 소의의 품계에서 숙종의 첫 왕자 윤(昀, 뒷날 경종)을 낳았음

-. 숙종은 장씨를 희빈으로 올리고 인현왕후를 폐위한 다음 왕비로 책봉

-. 이후 숙종은 이를 후회하여 인현왕후를 다시 복위시키고 장씨를 희빈으로 강등시킴

-. 희빈 장씨는 숙종 27년에 인현왕후를 무고한 죄로 사약을 받아 43세로 세상을 떠남

-. 아들 경종이 임금이 되면서 옥산부대빈으로 추존되고 묘의 이름을 대빈묘라 함

-. 대빈묘는 원래 경기도 광주에 있었으나 1969년 6월에 이곳으로 옮겨짐




역사 드라마의 단골 주인공 장희빈, 그래서 그런지 이런 얘기까지도 전한답니다.

"~~ 묘 뒤에는 큼지막한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 바위를 뚫고 나무가 하나 커다랗게 자라 있다.

 이를 두고서 호사가들은 장희빈의 억센 기를 누르기 위해 바윗돌로 눌러놓은 것인데,

 장희빈의 기가 얼마나 센지 바위를 뚫고서 나무가 자란 것이라는 그럴듯한 얘기를 한다."



경릉(敬陵)

-.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의 맏아들이며 덕종(德宗)으로 추존된 의경세자(懿敬世子 1438~1457)와 왕비 소혜옹후 한씨의 능

-. 덕종은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20세에 세상을 떠 그 아우인 예종(睿宗)이 임금이 되었음

-. 예종의 뒤를 이어 덕종의 아들이 임금(성종)이 되자 아버지를 덕종으로 추존하고 어머니도 인수대비로 존호를 올렸음



"능침의 배치는 정자각에서 볼 때 왕은 왼쪽(서쪽), 왕비는 오른쪽(동쪽)에 모시는 것이 원칙이나, 여기는 반대로 되어있다.

 덕종의 능침 석물은 원(園)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대왕대비로 세상을 떠난 소혜왕후의 능침은 능(陵) 형식으로 석물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곳이 소혜왕후의 능으로 더 높은 곳에 위치하며 화려하고 ~~



남편인 덕종의 무덤은 오른편에 위치하여 석물도 덜 화려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순창원(順昌園) : 조선 제13대 임금인 명종(明宗 1534~1567)의 맏아들 순회세자(順懷世子 1551~1563)와 공회빈 윤씨의 합장묘



공회빈 윤씨(恭懷嬪 尹氏), 참으로 슬픈 운명이어서 조금 자세히 적습니다.

-. 1561년 10살 때 순회세자와 가례를 올리고 세자빈이 됨.

-. 2년 뒤인 1563년에 순회세자가 서거하자 열두 살의 나이에 과부가 되어 덕빈(德嬪)이라 불림

-. 1592년 41세의 나이로 돌아가시자 창경궁에 빈소를 설치하고 시신을 안치하여 상례(喪禮) 절차를 진행하던 중 임진왜란이 발발

-. 선조는 의주로 급히 피난 가던 중 벽제에 이르러서야 덕빈의 시신을 놓고 온 것을 깨닫고 후원에 임시로 가매장하라는 전갈을 보냄

-. 1593년에 선조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와 시신을 수습하려 하였으나 찾지 못함.

-. 결국 선조는 신주(神主)만 봉안하여 순회세자와 공회빈을 순회묘(順懷墓)에 합장하였으나, 이마저도 병자호란 때 분실됨

-. 현재 순창원(順昌園)에는 순회세자의 재궁과 공회빈의 빈 재궁만 안장되었음

재궁(梓宮) : 왕, 왕대비, 왕비, 왕세자 등의 시신을 넣던 관





천천히 걸어도 서너 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는 곳,

그냥 편한 마음으로, 산책하는 기분으로 돌아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

시간나면 한 번쯤 들러보시라고 감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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