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을 때 한 군데라도 더 돌아다니자, 여기까지는 좋았지요.
그러나 아직은 게으름이 우성이고 부지런함이 열성인지라 밍기적거리다 보니
단풍이 내려오기 전에 걸었던 곳인데 단풍이 한창인 이제야 정리하고 있답니다, 한심한지고 ~~
어디를 걸었는데 그러느냐, 퇴근 때면 고가도로 위에서 맨날 내려다 보는 곳,
독립문역에서부터 안산을 거쳐 무악재역까지 아내도 없이 혼자서 걸었답니다.
"끝내 옮겨지는 독립문",
옛날에(1979), 성산대로 고가차도 공사로 인해 70m 떨어진 곳으로 독립문을 옮긴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우선 욕부터 했었지요,
독립이라고 하니 의례 왜놈들로부터의 독립인줄 알고,
길을 돌리는 게 맞지 어떻게 우리의 정신이 깃든 유적을 옮길 수 있느냐고....
그렇게 무식했었는데, 아니 최근까지도 지독히 무식했었는데, 알고보니 독립문이라는게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더라구요.
독립문 앞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대략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서울 독립문(獨立門)
-. 1897년에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기 위해 세운 석조물
-.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세움
-. 독립협회가 주도하여 국왕의 동의를 얻고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 완성
그럼 영은문은 또 무엇일까? 사진에 보이는 기둥 같은 것이 옛 영은문 주춧돌이랍니다.
서울 영은문 주초(迎恩門 柱礎)
-. 모화관의 정문인 영은문의 기둥을 받쳤던 초석
-. 태종 7년(1407)에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모화루를 지음
-. 세종 12년(1430)에는 모화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홍살문을 세움
-. 중종 31년(1536)에 홍살문을 없애고 영조문을 만든 후 영은문으로 이름을 고침
-. 서재필은 사대 외교의 상징인 영은문을 철거하고 독립문을 지을 것울 주장함
그런데 독립문과 관련된 것들의 이면에는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과 전혀 다른 사실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 독립협회 : 1896년 7월 2일 조직됨. 회장 안경수, 위원장 이완용, 고문 서재필
-. 안경수 : 고종폐위 음모를 꾸미다가 일본으로 망명함
-. 이완용 : 이때까지는 그냥 친일파였지 친일 매국노는 아니었음
-. 서재필 : 뼈속까지 미국인. 미국 이름 Philip Jasohn. 본명(서재필) 대신 '피제손'이라는 서양식 차용 이름을 썼음
* 동학혁명을 바라보는 독립신문의 시각
"조선백성은 기껏 한다는 것이 민란을 일으킨다든지 동학당이나 의병짓을 하니 그것은 곧 비도(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도둑떼)라,
비도가 난민(무리를 지으면 법 질서를 어지럽히는 무리)인즉 난민은 법률상의 죄인이라~~”
* 독립문 -. 독립문의 앞뒤에 쓰여진 글씨 "독립문' 및 '獨立門'는 이완용의 작품임 -. 이등방문이 조선에 왔을 때 윤치호 독립협회 회장은 독립문을 새긴 은다경(銀茶鏡, 은쟁반)을 선물하면서 환대 -. 1928년 조선총독부 경성부는 파손이 심했던 독립문을 수리함
-. 일제는 1936년 독립문을 '고적 제58호'로 지정해 보호하기에 이름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독립문은 당시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전통적 종주국 지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운운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독립협회 인사들도 청나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정녕 조선을 위한 일이라는 일본의 프레임에 별다른 비판 없이 동조한 것이다. 독립문의 ‘독립’은 조선의 자주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 종속되기 위해 청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의미했으며, 결국 사대의 상징(영은문)을 헐고 친일 매국세력이 또 다른 사대의 상징을 세운 것에 불과하다."
조금 슬퍼도, 조금 안타까워도 우리 역사는 우리의 역사입니다.
그것을 숨기고 버릴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왜곡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후손에게 알려주는 것이 미래를 위한 바른 길이 아닐까요
촛불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으니 이런 것도 차근차근 바뀌리라 믿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앞날은 이렇게 곧고 바르게 펼쳐지겠지요 ~~
3·1 독립선언 기념탑
-. 국민성금으로 1963년 8월 15일에 탑골공원에 건립
-. 1979년 탑골공원 정비사업으로 철거됨
-. 각계에서 복원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1992년 이 곳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옮겨 세움
서울 구 서대문형무소(舊 西大門 刑務所)
-. 1907년에 일제가 한국의 애국지사들을 투옥하기 위해 만든 감옥
-.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를 비롯하여 애국시민, 학생들이 투옥됨
-. 4·19, 5·16, 군사정권 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됨
-. 역사성과 보존가치를 고려하여 제9~13옥사, 나병사(癩病舍), 사형장 등을 남겨둠
마음은 들어가보려 했지만 줄이 100m나 늘어서 있어 엄두도 내지 못냈습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기분이 좋더군요.
나만이 아니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우리나라는 앞으로 잘 될 수밖에 없겠구나 ~~
들어가지 못한 대신 담장 밖에서 사진만 몇 컷!
이런 담장을 넘어 탈출할 꿈을 꾼 사람도 있었을까??
이진아 기념 도서관,
도서관 건립에 담긴 사연을 알고나서 꼭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오늘은 마침 쉬는 날이라 어쩔 수 없네요.
-. 큰 딸 이름은 이현아, 작은 딸 이름은 이진아.
-. 사업을 하는 아버지 이상철은 회사 이름도 두 딸의 이름을 따서 '현진어패럴'이라 지음
-. 미국으로 유학간 둘째 딸 진아와 전날 밤까지도 통화했는데, 다음날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비보가 전해짐.
-. 평소 책을 좋아했던 딸을 그리며, 가슴에 묻는 대신 영원히 살리기로 결심하고 50억을 기부하여 도서관을 짓기로 함
-. 현판의 '이진아'라는 글자는 딸이 생전에 썼던 노트에서 따온 것임
-. 한 주민은 매일 아침 베란다에서 공사현장의 사진을 찍어 완공되는 날(2005년) 편지와 함께 사진들을 보내줌
"감사합니다. 우리 집 앞에 도서관이 생겨 좋습니다.
하지만 당신 딸이 그 일을 겪지 않는 게 훨씬 좋은 일이었습니다."
최순실의 자식사랑과 비교가 됩니다.
도서관을 왼편에 두고 숲길을 올라 한참 가다보면 ~~
인왕산이 손에 잡힐 듯 보이고 ~~
돈 많이 들여 나무로 만든 '안산 자락길'이 나오는데 ~~
왜 이렇게 갈 之자로 꼬불꼬불하게 만들었나 궁금했는데, 생각해보니 서대문구청의 따뜻한 배려였습니다.
휠체어도 좋고 유모차도 좋고 조금 불편한 사람들도 무리없이 오를수 있도록....
여기 흙길을 따라가면 전망 좋은 곳이 나오는 데 ~~
시원하게 다 보입니다.
인왕산도 보이고 ~~
저기 청와대도 보입니다.
저 안에서 누구는 7시간 동안 투명인간이 되기도 하고,
누구는 들어가자마자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수 있게 해주고 ~~
요 사진은 그냥 양념으로 한 장!
너무 쓸쓸한가??
능안정(陵安亭)에서 잠시 쉬었다가 ~~
약수터에서 목도 축이고 ~~
운동하는 사람들 구경도 하며 걷기를 계속하는데 ~~
잠시 봉선사에 들렀다 올라왔더니 예상과는 다른 길에 접어들고 말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여기 모악정(母岳亭)에서 뒤로 돌아 ~~
계단을 따라 산길을 올라갑니다.
헬기장이 있는데, 공간이 너무 좁아 진짜로 헬기가 앉을수나 있을련지??
무악산 동봉수대(東烽燧坮) 터
-. 무악산에 있는 동서 두 개의 봉수대 중에서 동봉수대가 있던 자리
-. 전국 각지에서 오는 봉수는 남산에 집결하였고, 남산에는 다섯 곳의 봉수대가 있었음
-. 이곳은 남산의 제3봉수대에 최종 보고되기 바로 전단계의 봉수대임
-. 서울정도 60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1994년에 자연석을 사용하여 복원함
* 제3봉수대 : 평안도 강계-황해도-경기도 고양 해포나루-서울 무악 동봉수대-남산으로 이어지는 봉수를 받는 곳
왜 이 자리에 봉수대를 세웠는지 이해가 갑니다.
어디 한 군데 빠지지 않고 온 사방이 손 안에 있는 것처럼 잘 보입니다.
멀리 북한산도 보이고 ~~
가까이 인왕산도 보이고 ~~
남산도 보이고 ~~
한강도 보입니다.
이젠 봉수대를 내려와 다시 걷는데 ~~
나무가 우거진 숲들이 펼쳐집니다.
자작나무 숲을 지나 ~~
메타세콰이어 숲은 찾았는데 잣나무 숲은 어디로 갔나?
서대문 구청은 이곳 안산을 가꾸는데 참 신경 많이 썼습니다.
군데군데 쉴 수 있는 쉼터도 많이 있고 ~~
체육시설도 많이 있는데 ~~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약수터가 엄청 많아요.
안내지도에서 세어보니 이 조그마한 산에 무려 22군데나 있습니다.
너와집 쉼터라, 뭘까???
오가는 사람들 쉴수 있는 공간도 있고 ~~
우물도 있고 ~~
두런두런 소리나는 너와집도 있습니다.
가까이 가보려다 말았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맨날 기웃기웃하면 사는 사람이 얼마나 신경질나겠어요~~
이제 마지막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
기원정사가 나오고 ~~
아파트 단지를 따라 나가니 ~~
무악재역이 나옵니다.
여기까지 해서 오늘의 행복한 걷기여행 끝!!
도심 한복판에 이런 산이 있어 사람들을 안아주고 있으니 서울 시민들은 복받은 겁니다.
복 못받은 선진 경기도민은 어떻게 했느냐, 친구 불러내어 술을 또 몽땅 먹고 필름이 끊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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