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7-1강에서 계속)
여러분들이 행복한 인생,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면 지금까지 해온 방식대로는 안된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는 어떻게 몸부림을 치더라도 거기에 도달할 수 없다,
거기에 도달했다면 이렇게 물을 필요도 없고 이런 것을 바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 것을 원한다면 부처님의 말씀에 진실하게 귀를 기울이고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삶의 방향을 바꾸면 즉시 거기에 도달할 수가 있다.
첫째는 얻으려고 하는 생각을 돌이켜서 주려고 마음을 내라.
사랑 받으려는 대신 사랑 주려하고, 도움 받으려는 대신 도움 주려하고,
의지처를 구하던 것 대신 남의 의지처가 되어주려 생각을 바꾸고 행동해라.
그렇게 마음을 내고 그렇게 행동을 하면 누구나 다 그곳에 금방 도달할 수가 있다,
뭇 중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면 온 세상을 밝히는 그런 인생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하더라도 내가 그들을 보살폈다 하는 생각을 내면 안 된다,
그것은 나다 하는 아상에 사로잡힌 것이고 너를 구제한다는 망상에 빠져 드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공하기 때문에 일점일획도 보태거나 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보리 어의운하(須菩堤 於意云何) :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어연등불소 유법(如來於然燈佛所 有法) : 여래가 연등불 처소에서 법이 있어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 :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냐?
불야 세존(不也 世尊) :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아해불소설의(如我解佛所說義) : 제가 부처님 말씀을 이해한 바로는
불 어연등불소 무유법(佛 於然燈佛所 無有法) : 부처님께서 연등불 처소에서 법이 있어서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신 것이 아닙니다.
수보리는 이런 의심이 또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연등부처님 처소에서 어떻게 깨달음을 얻으셨고, 미래세에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으셨을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래가 연등불 처소에 있을 때 법이 있어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느냐?
그때야 수보리는 자기가 또 법이라 하는 상에 집착하고 있음을 알고
‘이것이 깨달음이다라고 할 어떤 정해진 법이 있어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신 것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불언 여시여시 수보리(佛言 如是如是 須菩提)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렇다 수보리여!
실무유법 여래득(實無有法 如來得) : 실로 법이 있어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 최상의 깨달음을 얻음이 아니니라.
수보리 약유법여래득 (須菩提 若有法 如來得) : 수보리여! 만일 법이 있어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 :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면
연등불 즉불여아수기(然燈佛 卽佛如我授記) : 연등불께서 나에게 수기를 주시면서
여어내세 당득작불(汝於來世 當得作佛) : ‘너는 내세에 마땅히 부처를 이루리니
호 석가모니(號 釋迦牟尼) :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고 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내가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한 생각을 내어 그것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연등 부처님께서는 ‘네가 내세에 깨달음을 얻어 이름을 석가모니라고 하리라’고 예언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실무유법(以實無有法) : 실로 법이 있어서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 최상의 깨달음을 얻음이 아니기에
시고 연등불(是故 然燈佛) : 이런 연고로 연등불께서
여아수기 작시언(如我授記 作是言) : 나에게 수기를 주시면서
여어내세 당득작불(汝於來世 當得作佛) : 내세에 마땅히 부처를 이루리니
호 석가모니(號 釋迦牟尼) :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고 말씀하셨느니라.
우리는 ‘이것이 행복이다’라는 어떤 상이나 모양을 짓고 늘 그것을 찾아서 헤매인다,
마치 파랑새를 잡으러 온 천하를 다 돌아다녀도 파랑새를 찾지 못하다가
집에 돌아와 처마를 돌아다보니 파랑새가 거기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 것과 같이,
행복과 자유는 밖에서 찾아서는 결코 얻을 수가 없다,
다 자기 마음이 짓는 바이기 때문에 자기를 돌이켜 살펴보면 바로 찾을 수가 있다.
여러분들이 이것이 법이다, 이것이 깨달음이다 라는 그 어떤 것을 찾아다닌다는 것은,
마치 돈을, 권력을, 명예를 구하는 것처럼 밖에서 구하려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생각을 돌이켜서 뭇중생을 사랑하고 도와주고 보살피고 의지처가 되어주는 마음을 내면
어느덧 여러분들은 자유롭고 행복한 경지에 있게 된다,
마음속의 모든 응어리는 다 풀어지고, 탁한 마음은 맑아지고, 무겁던 마음은 가벼워진다,
밖으로 향한 마음엔 갖가지 괴로움이 생기지만 안으로 돌이켜 살펴 마음이 공한 줄을 알게 되면 천하가 그대로 밝아진다,
그러나 내가 깨달음을 얻었다라는 한 생각을 낸다면 그 자체가 또 다른 상을 짓는 것이다,
이미 아상이 생기는 것이고, 깨달음이라는 상이 생기는 것이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는 상이 생기는 것이다,
나와 너를 구분하고 나와 세계를 구분하고 주와 객을 나누니 이것은 깨달음의 세계가 아니다,
나다 하는 생각을 놔버려야만 나와 너가 사라지고 이 세계가 바로 연기된 하나임을 알게 된다.
하이고 여래자(何以故 如來者) : 왜냐하면 여래란
즉제법여의(卽諸法如義) : 곧 모든 법이 여여하다는 뜻이니라.
약유인 언(若有人 言) :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되
여래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수보리 실무유법 불득(須菩提 實無有法 佛得) : 수보리여! 실로 법이 있어 부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이 아니니라.
제법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을 말한다,
그 모든 것들은 다 있는 그대로이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란 상이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더럽다 깨끗하다는 상도 없고, 높다 낮다는 상도 없고, 옳다 그르다는 상도 없다,
깨끗하고 더러운 것이 있어야 더러움을 버리고 깨끗함을 취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만드는 애씀이 필요하고 그 어떤 오고감이 필요한데,
본래로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없으니 더럽다고 버릴 것도 깨끗하다고 취할 것도 없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만들 필요도 없으니 아무런 할 일이 없다,
함이 없고, 올 것도 갈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취할 것도 없는 그런 세계가 바로 깨달음의 세계다,
남편의, 자식의, 부모의 아픔을 덜어주고 고통을 보살피고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여러분들이 그들을 위해 특별히 애쓰고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을 것이다.
아이가 문제가 있다는 안경을 끼고 보며 그걸 고치려니까 온갖 노력을 해도 잘 안 된다,
스스로의 안경을 벗어버리면 아이는 본래 아무 문제가 없음을 볼 수 있다,
아무 문제가 없으니 나는 아이에게 할 일이 없다,
남편 또한 그렇고 부모 또한 그렇다, 애쓸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물이 필요하다면 다만 물을 줄 뿐이고 밥이 필요하다면 밥을 줄 뿐이다,
내가 그들을 갖가지로 구제한다고 하지만 실로 나는 그들에게 아무 것도 한 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본래로부터 고요하기 때문이다.
(제17-3강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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