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6-1강에서 계속)
호의불신, 여우처럼 의심한다 이랬는데 이게 무슨 뜻일까요?
여우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큰 날고기가 길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덥석 먹으려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먹지 않고 그냥 가던 길을 간다,
가다가 생각하니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다시 돌아와 먹으려 한다,
그러나 먹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냥 가던 길을 다시 간다,
이렇게 아홉 번을 왔다갔다 했다, 이렇게 여우처럼 의심하는 것을 호의라 합니다.
여우가 의심하며 믿지 아니하는 것처럼 여러분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심한다 이말입니다.
법문을 들으면서는 '내가 상을 짓는 것이야, 다 꿈같은 거야' 이렇게 하지만, 집에 가면 마음이 바뀌고,
이튿날 다시 법문을 들으면 '역시 부처님 말씀이 맞기는 맞아', 그러나 집에 가서는 또 아니야,
이렇게 백 번도 더 할 겁니다, 그래서 호의불신이라는 겁니다.
딱 믿고 수지독송해야 되는데 늘 이렇게 의심한다.
수보리 당지(須菩堤 當知) : 수보리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시경의 불가사의(是經義 不可思議) : 이 경의 뜻은 가이 생각할 수도 없고
과보 역불가사의(果報 亦不可思議) : 과보 또한 불가사의하니라.
우리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끊임없이 상을 짓는 것이기에 상을 떠난 세계를 도저히 그릴 수가 없다,
유위의 행에 의해 나타나는 인연과보만 보고 사는 사람은 무위의 행으로 짓는 그러한 공덕은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다.
여기까지 해서 일차적으로 금강경의 상편이 끝나게 됩니다.
맨 처음에 부처님께서 바루를 들고 동냥 얻어 와서 밥 먹고 자리 펴고 앉아있는,
그런 조용한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며 수보리가 크게 깨달음을 얻습니다.
자기가 어두워서 그것을 알지 못하다가, 눈을 감고 있어서 보지 못하다가 눈이 번쩍 뜨여져 그것을 봤다,
그렇게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했다,
고요한 바다에 한줄기 미풍이 불면서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이렇게 금강경은 시작됩니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리고 그 마음을 가져야 하느냐,
마음 다스리는 법이 설해졌는데 그것이 대승정종분입니다.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마음을 내라,
이 괴로움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이 괴로움 좀 덜어달라고 아우성치는 나에게,
오히려 타인의 괴로움을 덜어주려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 받으려 하지 말고 사랑 주려고 하고, 보호받으려고 하지 말고 남을 보호하려고 해라.
얻으려고 하지 말고 주려고 해라, 이렇게 우리들의 생각을 180도 뒤집어 버립니다.
이게 바로 '원리 전도몽상'하는 겁니다.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고 마음을 내라, 내 눈앞에 닥치는 모든 것에 대해 그렇게 하라,
그렇게 해서 일체 중생의 구제를 마쳤다 하더라도 한 중생도 구제를 받은 바가 없다,
구제한다 하지만 일체 제법은 다 본래 청정하기에 구제 받은 바가 없다,
내가 무언가를, 누군가를 구제한다 생각하면 그건 이미 상이 생긴 것이다,
나다 하는 상이 생기고 너다 하는 생기고 중생이다 하는 상이 생기고 구제했다 하는 상이 생긴다,
이런 상이 생기면 해탈의 길에 이를 수가 없다,
보시를 행하되 상에 집착해서 보시해서는 안되고, 어떤 댓가를 바라고 보시해서도 안되고,
내가 그를 구제한다는 생각을 갖고 보시해서도 안된다,
숨쉬는 사람에게 공기가 필요하고 목마른 사람에게 물이 필요하고 배가 고픈 사람에게 음식이 필요하듯,
다만 필요에 의해서 쓰여지는 그런 무심한 상태의 베품, 그것이 바로 무주상보시이다,
그 무주상보시의 공덕은 한량이 없지만, 함이 있는 보시는 재앙으로 돌아온다,
함이 있는 보시(유주상보시)는 천상에도 가고 극락에도 가는 과보가 따른다,
천상에 가는 과보를 즐기면 지옥에 가는 과보가 따라 붙는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 둘을 다 버리는 무루복은 한량이 없다,
저 허공을 헤아릴 수 없는 것처럼 이 복 또한 헤아릴 수가 없다,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라, 모든 상이 다 상이 아님을 알 때, 형상을 떠날 때,
제상이 비상인 줄을 즉견하게 되면 그것이 곧 여래를 보는 것, 그것이 곧 깨달음이다,
이렇게 여래께서 말씀하시니 수보리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저는 지금 이렇게 부처님의 법문을 직접 들어서 눈을 뜰 수가 있지만
부처님이 안 계신 저 미래세의 중생들도 이런 법문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낼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부처님께서 수보리야 그런 소리 하지마라,
저 미래세에 태어난 중생이라도 유지개자수복자라면, 한 번 듣고 바로 믿는 마음을 내어 실다움을 삼을 것이다,
이렇게 경의 내용이 점점 깊어집니다.
처음에는 아상을 깨트리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후반부에 가면 법상, 이게 법이다 하는 상에 집착하는 것을 깨트립니다.
내 법은 뗏목과 같은 줄을 알아라,
법이다 하면 이미 법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법상을 깨트리게 됩니다.
더 나아가게 되면 반야다 하는 그 생각도 상이 된다,
반야라 하지만 반야라 할 것도 없고, 인욕이라 하지만 인욕이라 할 것도 없고, 제일이다 하지만 제일이다 할 것도 없다,
깨달았다 하지만 깨달았다 하는 생각을 해도 그것 또한 깨달음이 아니다, 그것 또한 상이다,
그러니 하나의 상일지라도 지어서는 안 되고, 마지막에 와서는 모든 상을 떠나야 한다.
부처님의 법은 무유정법이라 정함이 있음이 없는 법이다, 인연을 따라서 나타나는 것이다,
부처님의 법은 마치 거울에 물건이 비치듯한다,
부처님이 법을 설했다해도 그것은 옳지가 않다, 법을 설했다 함은 붓다를 비방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해서 맨 마지막에 와서 일체 상을 떠나는 것, 그것이 바로 부처라 이름한다,
응무소주생기심, 마음을 내되 어디에도 집착해서 마음을 내면 안된다,
중생이라 하지만 중생이란 상도 없고,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라 하지만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라 할 것도 없다,
일체의 상을 다 여의여야 된다, 더 말한다면 상을 여의여야 한다는 상도 지으면 안된다,
그러면 또 상을 여의였는니 못 여의였느니 또 시비가 일어나게 된다,
이것을 확연하게 수지독송되면, 깨닫게 되면,
이 세상의 어떤 경계,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 처해도 괴로움에 빠지지 않고 속박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게 된다,
괴로움에 빠지고 속박의 그물에 걸렸거든 그것이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 줄 알고,
자기가 또 뭔가 상을 지었구나 하고 안으로 돌이켜 봐라,
깨끗하다 더럽다 하는 상을 지었든지, 법이다 법 아니다 하는 상을 지었으니 그 그물에 스스로 말려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얻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이 경을 수지독송하는 공덕은 한량이 없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복을 지어서 복을 받는다는 그런 세계와는 아예 차원이 다른 세계다,
세상에 복을 지어 그 복을 받는 것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것과는 아예 가는 길이 다르다,
그것은 어두운 밤에 반딧불을 들고 더듬거리며 길을 가는 것이라면,
이것은 광명이 환히 비쳐서 천지가 한눈에 확 보이는 것 같은 그런 인생의 길이다,
여기에 재앙이란 아예 있을 수가 없다,
왜? 이 세상에서 부딪히는 온갖 재앙도 알고 보면 나에게 큰 복이 되는 것이기에 그렇다,
이런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게 전부다 복이 되어 버린다,
이 경을 수지독송하면 능히 과거생에 지은 모든 업장이 다 소멸된다,
그 공덕을 내가 어떻게 일일이 다 말로 하겠느냐, 그것은 필설로는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어리석은 중생들은 이 세계를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하니 믿지 않는다,
아니면 조금 해보고 맨날 안 된다는 생각만 하고 산다,
그러나 이 경의 뜻은 불가사의하고, 이 경의 공덕은 한량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여기까지 해서 제16분을 마치겠습니다.
제16분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 : 업장을 맑히고
부차수보리 선남자선여인(復次須菩堤 善男子善女人) : 또한 수보리여! 선남자 선여인이
수지독송 차경(受持讀誦 此經) : 이 경을 수지독송하면서도
약위인경천(若爲人輕賤) : 만일 사람들에게 천대받는다면,
시인 선세죄업 응타악도(是人 先世罪業 應墮惡道) : 이 사람이 선세의 죄업으로 악도에 떨어져야 마땅하겠지만
이금세인 경천고(以今世人 輕賤故) : 금세의 사람들이 천대하는 것으로
선세죄업 즉위소멸(先世罪業 卽爲消滅) : 선세 죄업이 소멸되어
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수보리(須菩堤 ) : 수보리여! ,
아념과거 무량아승기겁(我念過去 無量阿僧祈劫) : 내가 과거 헤아릴 수 없이 긴 아승기겁을 생각하니,
어연등불전(於然燈佛前) : 연등불 이전
득치팔백사천만억 나유타제불(得値八百四千萬億 那由他諸佛) : 팔백사천만억 나유타 부처님을 만나
실개공양승사 무공과자(悉皆供養承事 無空過者) : 모두 공양하고 받들어 섬겨 그냥 지나침이 없었느니라.
약부유인 어후말세(若復有人 於後末世) :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이후 말세에
능수지독송 차경 소득공덕(能受持讀誦 此經 所得功德) : 능히 이 경을 받아 수지 독송하면얻은 바 공덕은,
어아소공양 제불공덕(於我所供養 諸佛功德) : 내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으로는
백분 불급일(百分 不及一) : 그 공덕의 백 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
천만억분 내지 (千萬億分 乃至) : 천만억 분의 일 내지는
산수비유 소불능급(算數比喩 所不能及) : 숫자로 헤아리는 어떤 비유로도 능히 미치지 못할 것이니라.
수보리 약선남자선여인(須菩堤 若善男子善女人) : 수보리여!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어후말세 유수지독송차경(於後末世 有受持讀誦此經) : 이후 말세에 이 경을 수지 독송하여
소득공덕 아약구설자(所得功德 我若具說者) : 얻은 공덕을 내가 만일 갖추어 말하면,
혹유인문 심즉광란(或有人聞 心卽狂亂) : 혹 어떤 사람은 듣고 마음이 광란하여
호의불신(狐疑不信) : 여우같이 의심하고 믿지 않으리라.
수보리 당지(須菩堤 當知) : 수보리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시경의 불가사의(是經義 不可思議) : 이 경의 뜻은 가이 생각할 수도 없고
과보 역불가사의(果報 亦不可思議) : 과보 또한 불가사의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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