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금강경 상편을 공부했는데요,
큰 번뇌, 인생을 살아가는 큰 줄거리는 상편에서 거의 잡았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야 잘사는 게 아니냐 하는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갔던 길과는 정 반대라고 할만큼 사는 길,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이제는 새로 들어선 길에서, 여러분들의 삶속에서 잘 극복되지 않으면서 남아있는
그런 소소한 번뇌들까지 점검하면서 깨달음의 길로 나아간다 이렇게 후반부를 바라볼 수 있겠습니다.
수보리가 제2분에서 원요욕문, 기꺼이 즐거이 듣기를 원하옵니다라고 했던 그런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해탈의 길이 있다’ 그런 믿음을 갖고 간절한 마음으로 들으시면
무거운 짐을 오래도록 짊어지지 않고 바로 내려놓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제17분 구경무아분(究境無我分) : 마침내 나도 없나니
이시 수보리 백불언(爾時 須菩堤 白佛言) :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 선남자선여인(世尊 善男子善女人) :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였다면
운하응주(云何應住) : 어떻게 머물러야 하며
운하항복기심(云何降伏其心) :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합니까?
첫 번째 질문하고 똑같습니다.
여기 성실하게 사는 한 남자 한 여인이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냈습니다.
참으로 행복해지고 자유로워지는 그런 삶을 살겠다고 마음을 일으켰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가 있느냐,
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어떻게 가져야 참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겠느냐,
여러분도 이와 같은 질문을 자신이 물었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 동안에 얼마나 많은 세월을 방황하고 괴로워하면서 헤매고 다녔느냐,
이제 다시는 그러한 삶을 살고 싶지 않고, 정말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그런 것들이 마음의 밑바닥으로부터 간절하게 솟아나야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둘러보면 좋은 인생 좋은 삶을 꿈꾸면서 살아왔는데
학교 다니고 결혼하고 자식 낳고 사업하며 여기까지 왔지만 내가 원했던 것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다,
어떻게 어떻게 여기까지 오기는 왔지만 밝은 날 훤한 길을 보고 걸어가듯이 살아온 게 아니고
어두운 밤에 길을 헤매듯이 살다 살다 와보니 지금 이 시점에 이르렀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어두운 밤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더듬하며 한발을 내디디는데
이게 낭떠러지인지 가시밭길인지 진흙탕인지 모르고 조마조마하며 헤매는 인생이 아니라,
울고불고 괴로워하고 화내고 짜증내는 이런 인생이 아니라,
참으로 맑고 밝은 마음으로 가벼운 걸음걸이로 걸어가듯이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
그런데 주변의 얽히고설킨 갖가지 것들을 털어버리고 가볍게 살아가려 해도
오랜 세월동안 찌들고 때가 묻어서, 마음이 무겁고 어둡고 탁해져 있어 어렵지 않느냐,
그래도 저는 밝은 길을 걷고 맑고 밝게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겠습니까?
이건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너무나 간절한 바람입니다.
큰 깨달음을 얻어서 대중 앞에서 사자후를 하는 그런 도승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신통자재한 그런 도사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바로 내 인생을 정말 보람되게 살고 싶다,
그런데 제가 이제까지 살아온 갖가지 깜냥으로는 그렇게 살아지지가 않는다,
그러니 세존이시여,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우러러 공경하며 간절히 청하옵나니,
저희같은 중생들이 어떻게 하면 참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그런 인생을 살 수가 있습니까?
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어떻게 가져야 그런 인생을 살아볼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간절히 부처님께 청했습니다.
불고 수보리(佛告 須菩堤) :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약선남자선여인(若善男子善女人) :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의 마음을 발하였다면
당생여시심(當生如是心) :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낼지니라.
아응멸도 일체중생(我應滅度 一切衆生) : ‘내가 마땅히 일체중생을 멸도하리라’
네가 말한 대로 참으로 자유로운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맑고 밝은 인생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땅히 그 마음을 이렇게 내라,
아응멸도 일체중생, 내가 일체중생을 제도하리라 이렇게 마음을 내라,
내가 저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리라 이렇게 마음을 내라,
지금까지는 사랑받기를 원했지만, 앞으론 사랑받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리라,
다른 사람에게서 안온한 의지처를 찾았는데 이제부터는 뭇사람들의 의지처가 되어주리라,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살았는데 도움을 청하는 뭇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리라,
사랑받기를 원하는 나를 돌이켜 뭇중생을 사랑하고,
도움받기를 원하는 내 마음을 돌이켜 뭇사람을 도와주며,
안온한 의지처를 구하는 내 마음을 돌이켜 뭇중생의 의지처가 되리라, 이렇게 마음을 내라.
멸도 일체중생이(滅度 一切衆生已) : 하지만 일체중생을 멸도하기를 마침에
이무유일중생 실멸도자(而無有一衆生 實滅度者) : 한 중생도 멸도를 얻은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사랑하고 도와주고 보살피고 의지처가 되어 뭇중생을 다 구제해 마쳤다 하더라도,
사실은 한 사람도 내 도움을 얻은 자도 없고 나의 사랑을 받은 자도 없고
나에게 의지한 자도 없고 나의 보살핌을 받은 자도 없느니라,
뭇중생을 도와주고 보살피고 사랑해서 그들을 다 안온한 세계로 이끌었다 하더라도
사실은 나로부터 도움을 얻은 중생은 한 명도 없다.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何以故 須菩堤 若菩薩) :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일 보살에게
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으면
즉비보살(卽非菩薩) :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다 하는 어떤 카테고리에 갇혀있거나, 사람이다 하는 어떤 울타리를 치거나,
중생이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거나, 존재다 하는 이런 망상을 갖고 있으면 그는 보살이라고 할 수가 없느니라.
참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으면 생명을 가진 모든 중생을 사랑하라,
그 생명을 존중하고 그들의 재물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들의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여기고, 진실을 말하고 맑은 정신으로 대하라,
그것을 넘어서서, 가난한 자와 외로운 자를 보살피고 도우며, 죽어가는 뭇 중생을 살리고,
배고픈 중생을 배부르게 하고 아픈 중생을 치료하고 외로운 중생을 위로하고 달래주고,
이렇게 모든 중생을 안온하게 보살펴라, 그러면 내가 자유롭고 행복해진다,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이 가난에서 외로움에서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하더라도
사실 ‘내가 그들에게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내가 그들을 도와 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알아라,
왜 그러느냐, 내가 그들을 도운다 하면 이미 ‘나’라는 상에 빠지는 것이고 도움을 받는 너에게는 ‘불쌍하다’는 상을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떨어져서 마치 꿈속에서 타인을 돕는 것과 같다.
실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공하다,
공하다는 것은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아니고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아닌 것이다,
모든 중생들, 갖가지 존재들은 본래 다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더럽다고 버릴 것도 없고 깨끗하다고 취할 것도 없다,
이미 다 구족해 있어 내가 거기에 더 보탤 것도 없고 더 뺄 것도 없다,
그러니 내가 무엇을 한 바가 있겠느냐,
그는 다만 음식이 필요해서 먹었을 뿐이지 배고프다고 그가 불쌍한 사람은 아니다,
몸에 병이 났으니 약을 먹고 치료를 했을 뿐이지 아프다고 그가 불쌍한 사람은 아니다,
혼자 사는 여인을, 혼자 사는 남편을, 버려진 아이를, 홀로 사는 늙은이를 돌봐주었지만,
내가 그들에게 뭘 해주었다 할 것도 없고, 그들은 그런 것이 없다 해서 인생이 불쌍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것이 없을 뿐, 그 인생 자체는 일점일획도 부족한 게 없는 인생이다,
그 중생이 괴로워하는 것은 부족하다는 생각에 빠져있기에 그럴 뿐이다
그 중생들을 사랑하고 보살피고 도와주고 의지처가 되어주되, 내가 도와주었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참으로 이 세상의 진실한 모습은 중생이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소이자하 수보리(所以者何 須菩提 ) : 왜 그런가 하면 수보리여!
실무유법(實無有法) : 실로 법이 있어서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 아뇩다라사먁삼보리심을 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상의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낸 사람은 이것이 최상의 깨달음이라고 할 만한 그런 한 법도 없기 때문이다.
(17-2강에 계속 ~~)
'법륜스님의 법문 > 5. 금강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스님의 '금강경'] 제17-3 구경무아분 (0) | 2018.04.20 |
---|---|
[법륜스님의 '금강경'] 제17-2 구경무아분 (0) | 2018.04.19 |
[법륜스님의 '금강경'] 제16-2 능정업장분 (0) | 2018.03.30 |
[법륜스님의 '금강경'] 제16-1 능정업장분 (0) | 2018.03.28 |
[법륜스님의 '금강경'] 제15 지경공덕분 (0) | 2018.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