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 상을 여의어 적멸함
이시 수보리(爾時 須菩堤) : 그때 수보리가
문설시경 심해의취(聞說是經 深解義趣) : 이 경 설하심을 듣고 깊이 깨닫고는 감격해
체루비읍 이백불언(涕淚悲泣 而白佛言) : 눈물을 흘리고 울며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희유세존(稀有 世尊) :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불설여시 심심경전(佛說如是 甚深經典) :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깊은 경을 말씀하심은
아종석래 소득혜안(我從昔來 所得慧眼) : 제가 옛적부터 얻은 혜안으로는
미증득문 여시지경(未曾得聞 如是之經) : 일찍이 이와 같은 경을 얻어 들은 적이 없습니다.
수보리가 말합니다,
부처님께 출가해서 제자가 된 이래로 저는 많은 깨달음을 얻었지만,
그렇게 얻은 모든 지혜로도 오늘같은 이런 경전을 얻어들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세존 약부유인 득문시경(世尊 若復有人 得聞是經) : 세존이시여!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경을 얻어 듣고
신심청정 즉생실상(信心淸淨 卽生實相) : 믿는 마음이 청정하여 곧 실상을 내면
당지시인(當知是人) : 마땅히 이 사람이
성취 제일희유공덕(成就 第一稀有功德) :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하였음을 알겠나이다.
세존 시실상자 즉시비상(世尊 是實相者 卽是非相) : 세존이시여! 이 실상이라는 것은 곧 상이 아닌 까닭에
시고 여래 설명실상(是故 如來 說名實相) : 여래께서 그 이름을 실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깨끗한 믿음, 바른 믿음을 내어 진실을 깨닫게 되면
이 사람은 제일 거룩한 그런 공덕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경을 듣고 바른 믿음을 내게 되면 실상을 깨닫게 된다’는 뜻인데 여기서 실상이란 뭘 말할까요?
여러분들이 꿈속에서 강도에게 쫒기고 있습니다.
꿈속에서는 그것이 현실 같지만 깨어보면 사실이 아니었구나, 꿈이었구나 이렇게 됩니다.
그것이 사실인줄 알았을 때는 강도에게 쫒기는 동안 두려움과 공포와 괴로움을 느끼지만,
그것이 허상인 줄 알게 되면 도망갈 일도 두려워할 일도 괴로울 일도 없어집니다.
즉, ‘허상이 허상인 줄 깨닫는 것’을 이름하여 ‘실상을 깨달았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허상이 허상인 줄 모르는 것을 허상이라 하고, 허상이 허상인 줄 아는 것을 실상이라고 하는 것인데,
실상이라고 하니 허상을 떠난 실상이 별도로 있다고 우리는 보통 생각합니다.
이 세계에는 허상과 실상이 있어서 허상을 걷어내면 그 아래 실상이라는 상이 나타난다,
이렇게 생각을 하며 실상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상을 짓게 됩니다.
실상이란 어떤 상이 아닙니다.
어떤 상을 여의는 게 실상이지 실상이라고 하는 상은 없다 이 말입니다.
어떤 상이라도 상을 지으면 그건 이미 허상입니다.
어떤 거사님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아상을 깨트린다는 것 참 어려운 일 같습니다.
스님들 중에도 아상 깨트리는 사람이 별로 없는 데, 하물며 우리가 그걸 어떻게 깨트립니까?’
이 말 또한 일리가 있는 얘기지만, 법문은 그렇게 들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들으면 죽을 때까지 법을 자기 것으로 못 만듭니다.
‘아상을 내려놔야지’ 한다고 해서 아상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은 그럴 수도 있겠다’ 이렇게 생각할 때 아상이 내려놔지는 겁니다.
아상을 없애야 된다는 또 하나의 상을 만들어 그 잣대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이 중은 어떤가 저 중은 어떤가, 천하의 중들 중에 아상을 깬 사람이 하나도 없네,
이렇게 생각하면 자기 인생이 좌절하게 되고 자기 인생이 괴롭게 됩니다.
근데 여러분들은 늘 그렇게 생각합니다.
법문을 듣고 ‘그렇게 하면 내 인생에 큰 복이 되겠구나’ 이렇게 자기에게 적용할 때는 기쁨이 생기는데,
그걸 타인에게 적용하면 그 자체가 벌써 상이 되어 스스로에게 괴로움이 됩니다.
법을 남에게 적용하면 그 순간 법은 법상이 되고 다른 사람과 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너 왜 법대로 안 하냐, 왜 수행을 안 하냐, 왜 아상을 못 버리냐?’
이렇게 아상을 버리라는 상을 쥐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천하중생과 다투게 되는 것입니다.
법이라고 하는 상, 아상을 버려야 한다고 하는 상을 쥐고 다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중생은 아상을 버려라 하면 '버려라' 하는 상을 만들고, 없다 하면 '없다' 하는 상을 만들고, 있다 하면 '있는' 상을 만드니,
부처님이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하시는 겁니다.
또 다른 거사님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스님 말씀은 다 지당하다, 인생이 꿈같다고 하는 데 자기가 생각해봐도 정말 그렇다,
왜 그러냐? 지나간 인생을 가만히 살펴보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정말 꿈같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꿈같은 게 하나도 없다, 아무리 꿈같다 한들 현실에서는 현실 아니냐?
이것도 일리 있는 말 같지만 우리는 생각을 바꾸어야 됩니다.
현실에서는 정말 현실 같고, 정말 귀하고 꼭 해야 할 것같이 생각되는 것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별 가치가 없고 그럴 필요가 없고 꿈같은 것이다 이렇게 사물을 봐야 합니다.
지나놓고 보니 꿈같지만 현실에서 보면 꿈이 아니다 이렇게 사물을 보는 것과,
지금은 꼭 현실 같지만 이것 또한 지나놓고 보면 꿈같은 것이다, 이건 천지차이입니다.
천지차이인데 그 차이가 뭘까요?
지나놓고 보면 꿈같은데 현실에서 보면 꿈같은 게 하나도 없고 너무 괴롭다,
이런 부정적인 사고방식은 안 되는 쪽으로만 생각하여 결국은 좌절을 가져옵니다.
반대로 현실은 정말 변함없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그것마저도 지나놓고 보니 꿈과 같더라,
이렇게 깨닫게 되면 집착하지 않게 되고, 그렇게 하면서 하나하나 깨쳐나가는 겁니다.
불경이 어렵고 복잡하다 하는데 불경이 복잡한 것이 아니고 자기 머릿속이 복잡한 겁니다.
세상은 하나도 안 복잡하고 부처님 말씀도 하나도 복잡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이해가 안 되니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고 부처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니 복잡하다고 하는 겁니다.
세상이 어떻게 어려웠다 쉬웠다 합니까? 세상은 항상 그대로입니다.
이해가 되면 쉽다 하고 이해가 안 되면 어렵다 하고, 다 자기에게 있습니다.
부정적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은 똑같은 경전을 듣고도 안 되는 쪽으로 적용하고,
현명한 사람은 들으면 되는 쪽으로 적용을 합니다.
전에 울산에 갔을 때 제 어릴 적 친구를 30여 년 만에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내가 어렸을 적에 구슬치기를 굉장히 잘했었다고 칭찬하는 투로 얘기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그 때는 구슬치기를 잘 하는 게 굉장한 재주였고 그걸 모으는 것은 굉장한 재산이었습니다.
그 때엔 구슬치기 잘하는 것으로 우리들의 서열이 정해질 만큼 굉장히 중요한 것이었지만,
그 많던 구슬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갔는지 저도 모릅니다.
그 때는 엄청난 가치였는데 지금 돌아보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같으면 딴 것들을 다 나눠줬겠지요, 근데 그 때엔 따가지고 다 단지에 꼬불쳐 놨다,
별로 아름답지 못한 얘기 아닙니까?
이럴 때 나를 부끄러워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나는 또 지금 어떤 것으로 구슬을 삼고 어떤 것으로 재산을 삼아 고이 간직하고 있으며,
남에게 나눠주지도 않고 그걸 갖고 다투고 잃어버렸다고 밤에 잠을 못 드는 것일까,
분명히 그 때는 그것이 아주 소중했던 것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그 때는 내가 자랑스러웠는데 지금 보니 하나도 자랑스러울 게 못 된다,
그 때의 구슬처럼 지금 나의 재산으로 삼고 나의 자랑으로 삼는 것들이 또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잘한다고 얘기하는 것일지라도
70, 80이 되고 눈을 감을 때가 되었을 때 어쩌면 또 부끄러운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했던 것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볼 때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지금 무엇인가?
지금 나에게 구슬이 있다면 어렸을 때처럼 집착을 하지 않겠지만,
지금도 그 때의 구슬과 똑같은 것이 나에게는 분명히 있을 거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가운데 그런 게 있을 거다,
또 세월이 흘러서 돌아보면 부끄러워할 것이 있을 거다,
어릴 때를 돌아보면서, 지금을 살펴서 집착을 내려놓고 잘못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바로 그 옛날에 저질렀던 그 일이 도리어 지금 나에게는 큰 재산이 된다,
그 때는 작은 구슬에 집착한 것이니까 인생에 그렇게 큰 흠은 안 되지만,
지금 내가 집착하는 어떤 것들은 나중에 보면 큰 짐이 될 수도 있을 거다,
이렇게 돌아보는 게 중요합니다.
부처님께서 늘 말씀하셨습니다.
화살을 맞지 않는 것이 좋지만, 제1의 화살을 맞았거든 제2의 화살은 맞지 마라,
한 번 잘못하여 그런 것들을 깨우쳤거든 다음에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마라,
그런데 우리는 제1의 화살이 제2의 화살을 유발하고 제2의 화살이 제3의 화살을 유발합니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줘서 떼었거든 그걸로 끝내라,
거기에 집착하면 잠못들고 원한사고 친구 잃고 부부 싸움하고 온갖 부작용들이 계속된다,
어리석었을 때 어리석은 줄을 깨닫게 되면 그걸로 끝나지만,
어리석었을 때 어리석은 줄을 모르게 되면 그것이 끝도 없이 계속된다.
근데 우리는 늘 상에 집착하니 부처님께서 “시실상자 즉시비상 시고 여래 설명실상”,
‘수보리야, 실상이라 하니 실상이라고 하는 상을 또 만들면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세존 아금득문 여시경전(世尊 我今得聞 如是經典) :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이 경을 얻어듣고
신해수지 부족위난(信解受持 不足爲難) : 믿고 알아 받아 지니기는 어렵지 아니하지만,
약당래세 후오백세 기유중생(若當來世 後五百歲 其有衆生) : 미래 후오백세에 어떤 중생이
득문시경 신해수지(得聞是經 信解受持) : 이 경을 얻어듣고서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니면
시인 즉위제일희유 (是人 卽爲第一稀有) : 이 사람은 곧 제일 희유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수보리도 일체 상을 떠나야 한다, 붓다라는 상도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오늘에야 깨달았다,
제가 과거에 얻어듣고 깨쳤다고 하는 그 모든 것들이 오늘의 이 깨달음에 비춰본다면 마치 반딧불 같은 거다,
지금은 부처님이 계시고 저는 부처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며 수행하니 깨닫기가 그래도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저 미래세에 부처님도 아니 계시는 오탁악세에 갖가지 욕망에 사로잡힌 그 중생들이 이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느냐,
이 경전을 얻어듣고 믿고 의지하고 받아 지닐 수가 있겠느냐 하는 우려가 생긴다,
그러니 말세에 이런 가르침을 듣고 깨닫는 중생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희유한 사람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즉, 그만큼 깨닫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제14-2강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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