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5. 금강경

[법륜스님의 '금강경'] 제13-3 여법수지분

상원통사 2018. 2. 19. 15:58

(~~ 제13-2강에서 계속)

 

수보리 약유선남자선여인(須菩堤 若有善男子善女人)        : 수보리여!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이항하사등신명 보시(以恒河沙等身命 布施)                 :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몸과 목숨으로 보시하여도

약부유인(若復有人)                                          :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어차경중 내지 수지 사구게등(於此經中 乃至 受持 四句偈等) : 이 경 가운데 내지 사구게 등을 받아 지녀

위타인설 기복심다(爲他人說 其福甚多)                      :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한다면 그 복이 더 많으리라.

일곱 가지 보배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채워 남을 위해 보시하는 공덕이 더 크겠습니까,

자기 몸을 버려서 남을 위해서 보시하는 게 더 크겠습니까?

자기 몸뚱이를 버려서 보시하는 게 더 크겠지요.

아무리 많은 재산을 보시했다 하더라도 목숨을 버려서 보시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런데 그 목숨을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이 버려서 보시를 했다면 이것은 참으로 한량없는 공덕이다,

자꾸 갈수록 비유가 점점 커집니다.

 

일체의 상이 없는 줄 깨닫고 행하는, 함이 없는 행의 복덕은 바로 이 복보다 더 크다,

이 이치를 스스로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 ‘수지 사구게 등 위타인설’입니다.

이 경 가운데에 다 해도 좋고 또는 사구게 만이라도 그 이치를 깨닫고 늘 가슴에 새기고,

남도 깨닫게 해준다면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

여러분들이 지금 이렇게 배우는 것에도 한량없는 공덕이 있습니다.

이렇게 배운다는 것은 자기가 깨닫는 것, 사구게 등을 받아지니는 것이고,

스님이 이렇게 설법하는 것은 여러분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니 위타인설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법을 설하고 법을 듣는데 이미 한량없는 공덕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들어주니까 저는 한량없는 공덕을 지을 수가 있고,

여러분들은 들음으로써 공덕이 있고, 더더욱 스스로 깨달으면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

여러분들이 깨달아서 한량없는 공덕을 얻는 것이 곧 제가 한량없는 공덕을 얻는 길입니다.

 

제가 법을 잘 설해서 여러분들을 깨닫게 하면 저에게 한량없는 공덕이 있는 것이고,

제 법문을 듣고 깨달았으니 여러분들도 한량없는 공덕이 있는 것이다,

이게 ‘자리이타’, 내가 이로운 것과 남이 이로운 것이 둘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자기 생각에 빠지게 되면 다른 사람을 미워하게 됩니다.

자기 생각에 빠져 다른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미워하는 자신이 괴롭고 초라한 존재가 되고,

원한을 갖고 그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미워하니 그 사람도 인생이 괴롭다,

그런데 나와 남을 하나로 봄으로 해서 내가 그를 미워하지 않게 되면 우선 내가 이롭다,

그가 부처인줄을, 제법이 공한 줄을 깨닫게 되면 미워할 바가 없으니 내가 좋은 것이다,

내가 좋은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를 미워하지 않으니 그에게도 좋다.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면 받는 사람보다 사랑하는 내가 더 기쁜 것입니다.

꽃을 사랑하고 별을 사랑하면 사랑하는 여러분이 좋지 꽃이나 별이 좋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남편을 사랑하면 여러분이 좋지 남편이 좋은 게 아닙니다.

남편을 사랑하니 남편이 참 좋겠다는 것은 꽃을 사랑하니 꽃은 참 좋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을 하면 내가 좋아지고 미워하면 내가 나빠집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내가 그를 사랑하고 위해주면 그가 좋아진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배가 아파서 내게 좋은 것도 싫다, 안 한다 이렇게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를 미워하면 나에게 불행이고, 그를 미워하지 않으면 나에게 좋습니다.

 

미워하지 않아야겠다 하면 그것 또한 힘이 드는 일입니다.

미워할 바가 없는 줄을 알아야 됩니다.

제법이 공하기 때문에, 미워한다는 것은 마치 꿈속에서의 도둑놈과 같은 것이다,

내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에 미운 사람이 되었지 그 사람 자체는 미운 사람이 아니고 다만 한 사람일 뿐입니다.

이 세상의 무수한 남자들이 여자를 좋아하고 무수한 여자들이 남자를 좋아하고,

무수한 사람이 돈을 벌고 돈을 잃고 하더라도 그들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는데,

왜 여러분들은 한 남자 한 여자 때문에 괴롭느냐, 그것은 거기에 집착을 하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 사람이다 내 남자다, 너는 이래야 된다, 이렇게 다 정해놓고 삽니다.

내가 옷 사주세요 하면 사줘야 되고, 너 공부 잘해 하면 알겠습니다 해야 되고,

몇 시에 들어와 하면 예라고 대답해야 된다 이렇게 다 정해놓고 삽니다.

내가 너를 좋아할 때는 내 옆에 있어야 되고 내가 너를 싫어하면 사라져야 된다,

근데 왜 없어지라니까 안 없어지고 있느냐, 왜 있으라는데 가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옳지가 않습니다, 이래서 자기를 괴롭히는 겁니다.

남을 미워하는 게 자기를 괴롭히는 건데 여러분들은 어리석게도 그게 큰 보복이나 하는 양 착각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 지금쯤 그 여자 집에 있을 것을 생각하니 밤새도록 잠이 안 옵니다.

이렇게 치를 떨면 자기만 괴로워요, 남편은 그 여자하고 잘 노는데 자기만 손해입니다.

11분 31초까지

내가 이렇게 괴로워하고 치를 떤다 해서 그 사람이 괴로운 게 아닙니다.

남자든 여자든 둘 사이에 뭔가 빈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한눈을 팔았을 것이고,

그것 때문에 이튿날 악을 쓰고 싸움을 하면 그 공간은 점점 더 넓어집니다.

가지마라고 싸우는 것은 그 집에 가라고 쫒아내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게 쥐가 쥐약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온갖 은혜를 베풀어도 자식은 귀찮게 생각하고 뿌리치고 도망갑니다.

나중에 자기가 자식을 키우고 나서야 부모님이 그 때 해주신 걸 느끼게 됩니다.

느끼게 될 때 바로 참회를 해야 합니다, 참회가 후회로 가면 안 됩니다.

지금이라도 내가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으니 그건 자식 덕이다,

자식이 애를 안 먹였으면 어떻게 부모의 은혜를 깨달았겠느냐 내 잘난 줄 알고 죽었지,

관심을 가져주면 잔소리한다고 난리고 그래서 외면하면 사랑 안 준다고 난리고,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 사람 속을 뒤집어 놓으니 자식이 원수같이 되지만,

그 게 자기가 부모한테 한 것과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부모님이 얼마나 속상했는지를 알게 된다,

그러면 살아오면서 가슴속에 숨겨져 있던 부모에 대한 원망이 눈 녹듯이 다 녹아내린다,

이렇게 부모와의 원결을 소멸하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다 자식 덕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자식을 내려다보면 자식에 대한 미움이 싹 없어져 버립니다.

부모에 대한 은혜를 깨우치는 동시에 그것을 깨우쳐 준 자식의 은혜를 알게 되고,

깨우쳐 준 자식의 은혜를 아는 순간 자식에 대한 미움도 싹 없어져 버립니다.

  

수보리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합니다.

제가 깨달았다 하는 것도 그것이 반딧불 만큼밖에 안 되는 지혜인줄 오늘에야 알았다,

자기가 이제까지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도 붓다의 광명 앞에서는 반딧불 같은 존재인데,

나도 부처님 반쯤은 되나 보다 이런 생각을 했으니 그 동안 너무 어리석었구나.

보살은 아무리 많은 깨달음을 얻고 대자대비심을 베풀어도 늘 부처님의 발아래 있다,

그것이 다 부처님의 은혜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자기가 잘났다, 자기가 공부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한량없는 깨달음의 지혜를 주셨으니 나도 조금은 은혜를 갚아야지,

그분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도 조금은 거들어야 되겠다 이런 생각으로 해야 됩니다.

기독교에서는 영광을 하느님에게로 돌리라 하는데, 불교는 일체 중생에게로 돌리라 합니다.

부처에게 돌리기는 쉽지만 중생에게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나의 이 깨달음을 바로 나를 애 먹인 자식에게로, 남편에게로 돌린다, 이게 회향입니다.

어떤 일이든 모든 공덕이 일체중생에게 회향되어 일체중생이 다 깨달음을 얻게 해주소서,

얼마나 멋있는 얘기입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 여법하게 받아 지니다  

이시 수보리 백불언(爾時 須菩堤 白佛言)               : 이 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 당하명차경(世尊 當何名此經)                      : 세존이시여! 마땅히 이 경을 무엇이라 이름하며,

아등 운하봉지(我等 云何奉持)                           : 저희가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하나이까?

불고 수보리(佛告 須菩堤)                                :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경 명위 금강반야바라밀(是經 名爲 金剛般若波羅蜜) : 이 경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이니

이시명자 여당봉지(以是名字 汝當奉持)              : 이 이름으로 그대들은 마땅히 받들어 지녀야 하느니라.

소이자하 수보리(所以者何 須菩堤)                      : 왜냐하면 수보리여!

불설반야바라밀(佛說 般若波羅蜜)                       : 부처가 반야바라밀이라 말한 것은

즉비반야바라밀(卽非 般若波羅蜜)                       :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어떤 상을 말하는 게) 아니라

시명반야바라밀(是名 般若波羅蜜)                       :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기 때문이다.

수보리 어의운하(須菩堤 於意云何)                      :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 유소설법부(如來 有所說法不)                      : 여래가 법을 말한 바가 있느냐?

수보리 백불언 (須菩堤 白佛言)                          :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세존 여래 무소설(世尊 如來 無所說)                    :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말씀하신 바가 없습니다.

수보리 어의운하(須菩堤 於意云何)                      :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삼천대천세계 소유미진(三千大千世界 所有 微塵)      : 삼천 대천 세계에 있는 가는 티끌이

시위다부(是爲多不)                                      : 많다고 하겠느냐?

수보리언 심다 세존(須菩堤言 甚多 世尊)               : 수보리가 대답하였습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 제미진(須菩堤 諸微塵)                          : 수보리여! 모든 가는 티끌은

여래설비미진(如來說非微塵)                            : 여래가 가는 티끌을 말한 것이 아니라

시명미진(是名微塵)                                      : 그 이름이 가는 티끌이니라.

여래설세계(如來說世界)                                  : 여래가 세계를 말한 것은

비세계 시명세계(非世界 是名世界)                      : 세계가 아니라 그 이름이 세계이니라.

수보리 어의운하(須菩堤 於意云何)                      :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가이삼십이상 견여래부(可以三十二相 見如來不)       : 가히 32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불야 세존(不也 世尊)                                     :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불가이삼십이상 득견여래(不可以三十二相 得見如來)   : 가히 32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하이고 여래설 삼십이상(何以故 如來說 三十二相)      : 왜냐하면 여래가 말씀하신 32상은

즉시비상 시명삼십이상(卽是非相 是名三十二相)  : 곧 상이 아니라 그 이름이 32상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 약유선남자선여인(須菩堤 若有善男子善女人) : 수보리여!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이항하사등신명 보시(以恒河沙等身命 布施)           :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몸과 목숨으로 보시하여도

약부유인(若復有人)                                     :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어차경중 내지 수지 사구게등(於此經中 乃至 受持 四句偈等) : 이 경 가운데 내지 사구게 등을 받아 지녀

위타인설 기복심다(爲他人說 其福甚多)                :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한다면 그 복이 더 많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