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5. 금강경

[법륜스님의 '금강경'] 제6-3 정신희유분

상원통사 2017. 12. 1. 16:24

(~~ 제6-2강에서 계속)

 

 

법상응사(法尙應捨) : 법도 응당 버려야 하거늘

하황비법(何況非法) : 하물며 법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거기에 도달하게 되면 도달하게 해준 부처님 법, 나를 운반해준 그 뗏목마저도 놔버려야 하는데,

하물며 부처님 법도 아닌, 부모니 자식이니 돈이니 재물이니 명예니 욕망이니 이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부처님의 법은 우리를 저 니르바나의 세계로 인도해주는 뗏목과 같고 배와 같은 것입니다.

버려라 하니까 건너기도 전에 버리면 안 되겠지요,

건널 때는 의지하고 타고 건너고, 건넌 뒤에는 버린다,

부처님의 계율은 수행을 할 때는 철저하게 지켜야 하고,

깨달음에 도달하면 그걸 붙들고 있다고 계를 지키는 게 아니다.

 

그것은 지팡이와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지팡이가 필요 없지요, 그냥 걸어다니면 됩니다.

다리를 다쳐서 절뚝거리게 될 때에는 지팡이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다리가 다 나으면 지팡이는 버려야 됩니다.

약도 마찬가지지요, 병이 났을 때는 먹고 병이 나으면 그만 먹어야지요.

여러분들이 공부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도 어리석어서 깨우치지 못했을 때에는 스승에게 의지하고 스승에게 복종하면서,

자기의 아상을 내려놓고 아상을 깨트려서 니르바나의 경지로 간다,

그러나 그러한 경지에 도달했을 때는 스승에게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

고마움은 있지만 계속 업고 다니면 안 된다,

그러니까 자기가 도달해야 될 자리는 바로 자기가 주인이 되는 자리다,

누구도 그 자리는 대신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바로 자기 발로 걸어야 하고 자기 눈으로 봐야 한다.

자기 눈이 어두울 때는 다른 사람의 눈을 빌리고, 자기가 다리를 다쳤을 때는 지팡이에 의지해서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가 걷고 자기가 보는데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처음에 절에 왔을 때는 스님에게 물어볼 것도 많고 도움 받을 것도 많지만,

몇 년 다니면 물을 것도 없어지고 도움 받을 것도 없어져야 됩니다.

다 자기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어야 되요.

그러면 그 은혜를 어떻게 갚는거냐, 그것은 스승에게 갚는 게 아니고 부처님께 갚는 게 아닙니다.

바로 아직도 눈 먼 사람, 아직도 절뚝거리는 사람, 아직도 병든 사람에게 그 공덕이 베풀어져야 합니다.

이걸 ‘회향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부처님한테 와가지고 뭘 잘하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왜? 부처님은 이미 구족하신데 뭐가 부족해가지고 얻으려고 하겠어요, 부처님은 아무 것도 얻을 바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괜히 얻고 싶으니까 와서 아양떠는 겁니다.

아양 안 떨어도 여러분들이 부족할 때는 그 분께서는 주십니다.

왜? 주는 것을 원으로 세우신 분이니까.

여러분들이 중생을 구제하는 일을 하면 부처님께서는 정말로 기뻐하실 겁니다.

부처님 앞에 와서 알랑방구 끼는 것 보다 중생에게 나아가는 것을 더욱 더 좋아하십니다.

부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그 일이니까 그것을 대신해서 해주나 얼마나 좋아하시겠어요?

부처님의 좋은 말씀을 듣고 은혜를 입으면서도 부처님에게 매달려 이것 해주세요 하는 사람은 지팡이 짚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지팡이 빨리 벗어 던져야 되요.

처음에는 하도 답답해 의지했다 하더라도 불법을 알고 깨달으면 홀로 서야 된다,

홀로 서는 게 아니라 남의 지팡이가 되어주어야 한다, 남의 의지처가 되어주어야 한다,

앞으로의 기도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부처님 가만히 계십시오, 이제 제가 다 컸으니까 이 정도 일은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제가 하다가 안 되는 일이 있으면 그 때 부처님께서 해주십시오.”

 

자식도 크면 부모님한테 이렇게 말해야 되는데, 요즘 자식들은 부모가 80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쳐다보고 있습니다.

나이가 스물이 넘으면 부모를 봉양하려고 생각해야지 부모한테 얻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절에도 마찬가지요, 젊은 스님들은 노스님들을 봉양하려 해야 합니다.

그런데 노스님이 90이 되어도 그 그늘아래에서 뭐 얻어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서는 안 됩니다.

스승이 도와주는 것은 우리를 깨우치게 하는 것이지 그 나머지는 알아서 해야 되는 겁니다.

 

또 뭘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묻지 않으면 아무 것도 결정을 못합니다.

묻는 것도 한 번 물어보고 끝나야 됩니다.

물어보는 것이 좋은 약 같지만 그 태도 때문에 나중에는 도리어 독이 됩니다.

한 번 물어봤으면 그걸로 해답을 찾아야 되고 그걸로 끝장을 봐야 되는데 하기 싫으니 자꾸 물어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지식은 물어봐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화두는 묻는다고 되는 게 아니고 수행은 묻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꾸준히 실천해서 증득을 해야합니다.

 

상에 집착하는 것에 대해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옛날에 어떤 스님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용맹정진하겠다 결심을 하고 깊은 산속 암자에서 혼자 천일기도에 들어갔습니다.

거의 천일이 다 되어가는 마지막 회향 때에 양식이 떨어져 마을에 구하러 왔는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길이 막혀 도저히 돌아갈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며칠을 묵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있을 수도 없어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시 올라갔습니다.

길도 사라져버린 산속을 갖가지 고생을 하며 올라가 보니 자기 방에 짚신이 한 컬레 놓여있습니다.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내려갈 때 땔감 하나 없고 양식 한 톨도 없었으니 이 사람은 굶고 얼어서 죽었겠다 생각하고 방문을 열었는데,

방에선 후끈후끈하게 열이 나고 그 사람은 코를 골고 자고 있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법당에 가보니, 삼존불을 모셔놨는데 부처님이 한 분 안 계시는 겁니다.

딱 보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 다시 방으로 쫒아간 갔습니다.

멱살을 잡으며 ‘이놈아, 출가한 중이 되어가지고 어떻게 부처님을 불에 땔 수가 있느냐?’

이 중이 춥기는 하고 땔게 없으니까 부처님을 한 분 가져다가 때버렸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 스님은 급한 일이 있다며 놔주라고 하더니 부엌으로 가 부지깽이를 쥐고 아궁이를 뒤지는 겁니다.

기도 스님    : 이놈아 또 무슨 미친 짓 하느냐?

나그네 스님 : 사리를 찾고 있습니다. 부처님을 화장했으니 사리가 나오겠지요.

기도 스님    : 임마, 목불에 무슨 사리가 있어?

나그네 스님 : 그럼 다른 부처님도 마저 갖다 때야 되겠습니다.

 

그 때 그 기도하던 스님이 탁 깨달았습니다. 자기 모순을 본 것입니다.

깨달음이란 것은 이런 자기 속에 있는 모순이 깨지는 것입니다.

한편으론 나무토막이라 그러고 다른 한편으론 부처라고 합니다.

정 반대라는 걸 자기가 몰라요, 자기 속에 있는 모순이 전혀 안 보이는 겁니다.

여러분들 부부싸움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기가 잘하고 상대가 잘못했다고 큰소리치지만,

담장 밖에서 보는 사람은 한 대 때려봐야 제 마누라 때리고 한 번 욕 더해봐야 제 남편 욕하고,

아무 쓸 데 없는 짓이라는 것을 밖에서 보면 다 보이는데 막상 부딪히는 당사자는 그게 안보입니다.

보이는 게 없다, 이게 무명 무지입니다.

 

상을 짓고 집착하면 전도몽상이다. 상이 실체가 없으니 어떤 상도 취하면 안된다

어떤 상이든 상을 짓고 거기에 집착하면 뵈는 게 없어집니다, 전도몽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이 상 아닌 줄을 알아야 됩니다.

거기 실체가 없는 줄 그게 헛것인줄 알고 어떤 상도 취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이 경전에서 하고자 하는 말입니다

 

바른 믿음은 정말 희유한 일이다.

드문 일이다, 그러나 진실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즉시 받아들여진다

절에 오래 다녔다고 그런 게 아닙니다.

어제까지 교회 다니다가도 우연히 법문을 듣고 바른 믿음을 내는 사람도 있고,

절에 삼십년을 다녀도 까막눈인 사람도 있습니다.

차이가 뭘까요?

하늘에서 비는 늘 옵니다.

다 제 그릇만큼 물을 받게 되는데, 바가지 거꾸로 쥔 사람은 한 방울도 못 받습니다.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타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그런 마음의 문이 열린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소귀에 경 읽기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 바르게 믿는 것은 희유한 일이다

수보리 백불언(須菩堤 白佛言)                         :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 파유중생(世尊 頗有衆生)                         : 세존이시여! 중생들이

득문여시 언설장구(得聞如是 言說章句)               : 이와 같은 말씀과 문장과 글귀를 듣고

생실신부(生實信不)                                    : 진실한 믿음을 낼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불고 수보리(佛告 須菩堤)                              :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막작시설(莫作是說)                                     : 그런 말 하지 마라.

여래멸후 후오백세(如來滅後 後五百歲)             : 여래가 열반에 든 뒤 후오백세에

유지계수복자(有 持戒修福者)                          :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자가 있으면

어차장구 능생신심(於此章句 能生信心)             : 이 문장과 글귀에 능히 믿는 마음을 내어

이차위실(以此爲實)                                     : 이것으로 실다움을 삼을 것이다.

당지시인(當知是人)                                     :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불어 일불이불삼사오불(不於 一佛二佛三四五佛)      : 한 부처님, 두 부처님, 셋 넷 다섯 부처님께

이종선근(而種善根)                                     : 선근을 심은 것만이 아니라

이어무량 천만불소(已於無量 千萬佛所)                : 저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 처소에

종제선근(種諸善根)                                     : 이미 모든 선근을 심었으므로

문시장구 내지일념(聞是章句 乃至一念)             : 이 문장과 글귀를 들으면 한 생각이라도

생정신자(生淨信者)                                     : 청정한 믿음을 낼 것이니라.

수보리 여래실지실견 (須菩堤, 如來悉知悉見)         : 수보리여! 여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다 보나니,

시제중생(是諸衆生)                                     : 이 모든 중생이

득여시무량복덕(得如是無量福德)                      : 이와 같은 한량없는 복덕을 얻으리라

하이고 시제중생(何以故 是諸衆生)                     : 왜냐하면 이 모든 중생이

무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無復 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 다시 아상도 인상도 중생상도 수자상도 없으며,

무법상 역무비법상(無法相 亦無非法相)             : 법이라는 상도 없으며법이 아니라는 상도 없기 때문이다.

하이고 시제중생(何以故 是諸衆生)                    : 왜냐하면 이 모든 중생이

약심취상(若心取相)                                     : 만약 마음에 어떤 상을 취하면

즉위착아인중생수자(卽爲着 人衆生壽者)              :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이고 약취법상(何以故 若取法相)                     : 왜냐하면 만약 법이라는 상을 취해도

즉착아인중생수자(卽着我人衆生壽者)               :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한 것이고,

약취비법상(若取非法相)                                : 만약에 법이 아니라는 상에 취하더라도

즉착아인중생수자(卽着我人衆生壽者)               :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고 불응취법(是故 不應取法)                          : 그러므로 마땅히 법을 취하지 말며

불응취비법(不應取非法)                                : 법 아닌 것도 취하지 말아야 한다.

이시의고 여래상설(以是義故 如來常設)             : 이런 뜻으로 여래는 항상 말하노니

여등비구(汝等比丘)                                     : 너희 비구들은

지아설법 여벌유자(如筏喩者 知我說法)             : 내의 설법이 뗏목에 비유한 것과 같이 알지니,

법상응사(法尙應捨)                                     : 법도 응당 버려야 하거늘

하황비법(何況非法)                                     : 하물며 법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