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5. 금강경

[법륜스님의 '금강경'] 제5-2 여리실견분

상원통사 2017. 11. 24. 16:03

(~~ 제5-1강에서 계속) 

 

수보리 어의운하, 수보리야 저 뜻이 어떠하냐,

가이신상견여래부, 가이 몸의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느냐 없느냐,

불야 세존,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불가이신상 득견여래, 몸의 신상으로는 여래를 얻어 볼 수 없습니다

하이고, 어찌한 까닭이냐

여래소설신상,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신상(몸의 모양)이라고 하는 것은

즉비신상, 곧 신상이라고 할만한 실상이 없고, 이름하여 몸모양이라고 할 뿐입니다.

불고수보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하되

범소유상 개시허망,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함이니

약견제상비상, 모든 상을 상 아닌 것으로 모든 상에 실체가 없음을 볼 수 있다면

즉견여래, 곧 여래를 볼 것입니다.


그러면 경전의 말씀을 갖고 이것을 한 번 보겠습니다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서 아주 신분이 높고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출가해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나무 밑에서 잠자고 길거리에서 얻어먹다 보니 몸에 병이 나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되면 후회하게 되는데, 그는 전혀 그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다, 나는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단지 내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부처님을 한 번 더 뵈는 것인데,

나는 병들어 움직일 수가 없고 그분은 먼 곳에 계시니 어찌할 수가 없구나.

친구 도반이 그 얘기를 부처님께 전하자, 부처님께서는 직접 병문안을 왔습니다.

부처님을 뵌 제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세상에 있을 때 편안하게 살면서도 늘 불만이 많고 괴로움이 많고 걱정이 많았는데,

부처님 법을 만나고 나서 그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제 몸이 병들고 죽게 되었지만 살아온 인생을 돌아볼 때 한 점 후회도 없습니다.

단지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부처님을 뵙는 것이었는데 오늘 그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부처님을 뵈었으니 저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비구여, 이 허물어질 육신을 봐서 무엇을 하겠다는거냐,

네가 출가할 때 이 육신을 보기 위해서 출가를 했느냐,

제행이 무상하고 제법이 무아인 줄을 깨달아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출가한 게 아니었느냐,

근데 너는 어찌하여 이 허물어져가는 육신을 보려고 하느냐.

 

부처님께서는 본인의 육신에 대해서 환상을 갖고 집착하는 사람도 용납을 안 했습니다.

제행이 무상하고 제법이 무아인 줄을 깨달아 완전한 열반에 들게 하는 게 여래의 목적이었습니다.

부처님은 법을 따라 지키고 수행하는 것을 원했지 법을 추앙하는 사람을 원하지 않았고,

법에 집착해서 법상을 만드는 것을 원했던 것도 아니고 맹목적인 추종자 만드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살아있는 부처님의 육신에 대한 집착도 이렇게 단호하게 부정을 하셨으니,

돌로 만들고 흙으로 빚고 쇠로 만들고 나무로 깎은 불상에 집착하는 것은 더구나 용납하지 않으셨겠지요.

그런데 우리 불교인들은 부처님께서 가르친 대로 안합니다.

부처님은 중생을 깨우치기 위해 이 세상에 왔지 스스로를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대중이 부처님을 떠받들어 주는 것을 부처님이 원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여래가 열반에 들 즈음에 하늘의 신들이 노래를 부르고 사라수가 꽃을 피워 공양을 올리자,

여래께서는 아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난아, 저 모든 공양은 여래에게 올리는 공양이다,

 그러나 저것은 제일의 공양이 아니다,

 여래에게 올리는 최고의 공양은 여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정진하는 것이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한 것입니다.

거룩한 부처님의 32상마저도 허망한 것이고, 살아있는 부처님의 육신도 허망한 것입니다.

거기에 집착할 바가 못 된다 하는데, 그걸 화장해서 나온 뼛조각을 숭상하고 난리를 피우면 되겠습니까?

돌로 만들고 흙으로 빚고 나무로 만든 것이 영험이 있느니 없느니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예외도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공부를 하면 제행이 무상하고 제법이 무아인 줄을 깨쳐야 되고, 제법이 다 공한 줄 깨쳐야 됩니다.

그걸 알고 인생을 살아야 됩니다.

남편이 나쁜 사람이다 하지만 나쁘다고 할만한 실체가 없는 줄을 깨쳐야 되고,

아이가 문제다 하지만 아이에게 본래 문제될만한 게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문제가 있고 문제가 없는 것은 다 내 마음에 따라서 생긴 겁니다.

이걸 깨닫게 되면 바로 내 괴로움이 없어지고 부부 간에 화합이 이루어지고 부모자식 간에 화해가 일어납니다.

화해를 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고, 부부니까 이렇게 살아야 된다 하는 윤리가 아닙니다.

거기에 나쁜 것이 없는 줄 알면 나쁘다는 전제하에 생겼던 갖가지 시비와 갈등이 사라져 버립니다.

이렇게 될 때 여러분들 개개인이 행복해지고 사람과의 관계가 좋아집니다.

그러면 인생이 행복해집니다.

행복하려고 애쓴다고 행복해 지는 게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부처님에 의해서 내가 많은 은혜를 입었으니 부처님 고맙습니다 이러는데, 부처님은 고마워 해달라고 안 하셨습니다.

부처님 법 만난 것이 기쁘고 부처님 법대로 살아가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구나, 이걸로 끝나야 됩니다.

바른 법을 나에게 설해주신 우리 스님 참 좋은 분이구나 이걸로 끝나야 된단 말입니다.

스님 얼굴을 보거나 몸뚱이를 보거나 지식을 보고서 스님 추종자가 되면 안 됩니다.

스님의 신도가 되면 안 됩니다, 법륜스님의 신도가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형상에도 집착하지 마라고 가르치는 게 불법인데, 한 스님의 추종자가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일불제자, 우리 모두는 다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종파의 제자가 되어서도, 어느 사찰의 제자가 되어서도, 어느 스님의 제자가 되어도 안 됩니다.

일불제자, 오직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그 부처님마저도, 어떤 형상에 집착해서 부처님을 찾으면 안 됩니다.

부처님은 살아있는 붓다에 대한 응대도 거절을 하셨습니다.

이 붓다의 육신마저도 늙어 허물어져 사라질 것인데, 봐서 뭐하겠느냐,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 영원한 것이 없다면 붙들고 매달릴 일이 어디 있겠느냐,

이렇게 해서 우리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먼저 법을 깨달아야 됩니다.

깨닫고 나니 너무너무 행복해서, 다른 사람들도 좀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법당도 있어야 되고, 책도 찍어서 나눠야 되니 현실적으로 돈이 필요하다,

돈이 필요하니 돈을 내고 음식도 필요하니 음식 공양도 올린다,

이렇게 보시를 할 때 그게 무주상보시가 되는 겁니다.

뭘 바라거나 어떻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기쁨에 의해서 은혜를 갚겠다 하는 마음에서 보시를 하게 될 때 그 보시한 물건이 청정한 것입니다.

  

 

(제5-3강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