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3강에서 계속)
금강경 세 번째 강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 대승의 가장 바르고 으뜸되는 가르침
금강경 제3분 ‘대승정종분’은 ‘대승의 가장 바르고 으뜸되는 가르침’이란 뜻입니다.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행자, 즉 완전한 자유와 행복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느냐,
일체 중생의 갖가지 괴로움을 내가 다 해결해 주겠노라, 모든 중생을 내가 다 구제하겠노라 이렇게 마음을 내고 그렇게 실천을 해야 한다,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내가 다 구제를 하려면 그 중생의 괴로움과 원인에 대해서 낱낱이 다 알아야 된다,
즉, 상대편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그것들을 다 편안케 해주려고 하면 어느덧 나의 괴로움이 사라져 버린다,
이렇게 하면 나의 괴로움이 사라지니 우선 내가 좋고, 그의 괴로움을 덜어주니 그도 좋다,
내가 좋다는 것은 대승보살의 길을 따라 수행을 했기 때문에 내가 편안해진 거고,
그가 좋아진 것은 중생이 자기 원하는 대로 되기 때문에 그가 좋아진 것이다.
비유를 들자면, 깡통을 뒤집어쓰고 사는 두 사람이 있다,
서로가 사랑한다고 껴안아도 깡통이 부딪혀 소리가 나고, 밉다고 부딪혀도 또 깡통소리가 난다,
그러나 뒤집어쓴 깡통을 내가 먼저 벗어버리면 우선 내가 훤하게 밝아서 좋고,
내가 다 보이니 깡통을 뒤집어써 앞이 안 보이는 그와 부딪힐 일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모든 사람과 부딪히지 않게 되지만, 그는 나와만 부딪히지 않게 된다,
즉, 내가 아상을 깨트렸을 때 내가 좋아지는 것과, 그로 인해서 그가 좋아지는 것은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수행을 통해서 관념의 벽을 허물고 지혜의 눈을 여는 사람과,
그 보살 덕에 편안해지는 중생의 얻은바 공덕은 비교할 수 없지만,
일단 내가 좋아지고 그도 좋아집니다.
그럴 때 그가 좋아지는 모습을 보고, 그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내가 기뻐하면,
즉 나로 인해서 저 사람이 좋아지는 거구나 이런 생각을 내게 되면,
그것은 문제의 원인이 상대에게 있다고 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또 괴로워집니다.
내가 눈을 떠서 그와 부딪히지 않은 것이지, 내가 그를 위해 피해주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약보살 유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즉비보살(若菩薩 有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卽非菩薩)
오늘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대해서 조금 더 집중적으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상(모양 相)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는데, 그 의미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인식의 대상인 물질적인 어떤 모양을 말합니다.
그릇의 모양이 상(相)이다
여기 물잔이 있습니다
이렇게 물을 담을 수 있도록 생긴 이 그릇의 모양이 바로 상입니다.
물잔이다 하면 어떻게 생긴 그릇인지가 딱 떠오르는 그게 바로 상(모양)입니다.
이러한 그릇을 어떤 용도에 쓸 것인가 하는 용도는 또 별도로 있습니다.
색(色) : 존재의 모양, 물질
명(名) : 물질의 사용용도
아함경의 교리로 말하면, 물잔이라 할 때 여기에는 두 가지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이러한 존재의 모양, 즉 물질(色)을 말하고,
또 하나는 그 물질의 사용용도, 즉 이름(名)을 말합니다.
인식의 대상이라는 차원에서는 한마디로 색이라 하지만,
분류를 한다면 그러한 물질적 존재를 색이라 하고 그것의 용도를 명으로 나눕니다.
용도와 모양은 항상하지 않고 늘 바뀐다 : 무상(無常)
항상 이런 용도로 써야 한다, 항상 이런 모양이다라는 실체가 없다 : 무아(無我)
이러한 용도도 항상하는 게 아니고 늘 바뀌고, 모양도 항상하는 게 아니라 바뀝니다.
또 용도도 항상 이런 용도로 써야 한다고 하는 그런 실체가 없고,
모양도 항상 이런 모양으로 있다고 할만한 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상과 무아라 하는데, 대승불교에서는 이것을 한 마디로 공(空)이라 했습니다.
체·상·용(體·相·用)
그런데 대승의 사상이 점점 깊어지면서 이런 존재를 세 가지 관점에서 보기도 합니다.
만약 금이 있다고 하면, 금 그 자체를 체, 금으로 만든 여러 모양을 상, 그것은 여러 용도로 쓸 수가 있는데 그걸 용이라 합니다.
이렇게 체·상·용의 도리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여기서의 상(相)은 모양, 소승교리로는 색(色)을 말합니다.
고정관념도 다 모양(相)이다
두 번째, 우리들의 고정관념도 상으로 봅니다.
즉, 이것은 선이다, 이것은 악이다 하는 것은, 다 한 생각 일으켜서 선이란 모양, 악이란 모양을 짓는 것입니다.
뱀을 보고 징그럽다, 돼지보고 욕심 많다, 소보고 어리석다,
이런 것은 실제로 그 존재가 그런 게 아니고 우리가 그렇게 한 생각을 일으켜서 고정관념을 만든 것입니다.
고정관념을 만들어놓고는 마치 그 물질, 그 존재가 정말 그런 양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색안경을 끼고 하얀 벽을 보면서, 그 벽색깔이 정말 푸르고 누런 줄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상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인 모양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한 생각을 일으켜서 내는 고정관념까지 말하는 것입니다.
약보살(若菩薩), 만약에 보살이
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有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즉비보살(卽非菩薩), 보살이 아니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다는 것은 곧 제법이 공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고,
제법이 공한 줄 모르는 사람은 보살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제법이 공한 줄을 모르니까 괴로움이 생기고 속박도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중생을 구제했다, 내가 너를 구제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라고 하는 고정불변의 상을 취하고 또 ‘너’라고 하는 하나의 상을 만들고,
구제하는 자와 구제받을 대상이 있다는 상을 만들고, 구제를 해야 된다고 하는 또 하나의 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상이 허망한 줄 알고 상이 없는 줄을 알아야 보살인데, 이렇게 상을 갖게 되면 그것은 보살이 아닙니다.
(제3-5강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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