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흥국사에서 쫒겨난 나,
그대로 집에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내친 걸음이니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봉선사에 들렀습니다.
봉선사(奉先寺)
-. 고려 광종 20년(969)에 법인국사 탄문이 운악산 기슭에 창건하고 운악사라 칭함
-. 조선 예종 1년(1469) 정희왕후 윤씨가 선왕인 세조의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89칸으로 중창하고 봉선사라 개칭함
-.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훼손되어 수차례 중수
-. 6·25 전쟁 때 법당 등 14동 150칸의 사우(寺宇)가 또다시 완전 소실, 지금의 건물은 모두 근대에 건립된 것임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운악산 자락에 위치함
새 건물에 새 글씨,
절에서 한글 현판은 처음 보는데, 여기는 앞에서 본 일주문이고 ~~
여기는 뒤에서 본 일주문입니다.
"敎宗本刹 奉先寺(교종본찰 봉선사)"
일주문을 지나면 오른편에 부도전이 있습니다.
우선 운허대사의 묘탑과 탑비부터 찾았는데, 최완수님의 책 <명찰순례>에 나온 사진 그대로입니다.
근세 우리나라 최고의 학승 운허 용하(耘虛 龍夏) 대사,
일제에 항거하여 무력투쟁도 하다가 스님이 되었고, 후에 동국역경원을 개설하여 불경의 국역을 주도하셨답니다.
춘원 이광수 기념비도 책의 사진하고 똑같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최완수님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운허 용하(1892~1980)대사는 춘원 이광수와 팔촌 형제간으로 평안도 정주의 같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사흘 늦게 태어나 동생이 되었는데 조실부모한 춘원이 그의 집에 와 얹혀 살았기 때문에 함께 자랐다.
춘원이 문재를 인정받아 일본 유학을 하고 문명을 드날리는 동안
대사는 국망의 울분을 이기지 못해 독립군에 투신하여 일제와 무력 투쟁한다.
~~ 여기(다경향실, 茶經香室)서 춘원 이광수가 한동안 칩거하며 문필생활을 했었다 한다.
일제 말기에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창씨개명하고 부일(附日)했던 수치스러움을 주체할 수 없어
피세 은둔하려 했던 그날의 고뇌가 전율처럼 감지되어 불운하고 나약한 천재 지식인상에 한없는 연민의 정이 쏠린다."
조금은 이국적인, 아니 현대적 기법이 가미된 전통가옥으로 보이는 이 건물은 1991년에 지은 유치원입니다.
머릿돌에는 이렇게 적혀있네요, "티없게 튼튼하게"
유치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연못들이 왼편에 자리잡고 있는데 ~~
아직도 푸르름을 간직한 연잎들이 가득한 연못도 있고 ~~
작은 분수의 잔물결 아래 떼지어 다니는 잉어들이 게으름 피우고 있는 연못도 있습니다.
저기 테라스에 왠 사람들이 저리도 많은가 봤더니 ~~
봉향당(奉香堂)이라는 찻집입니다.
차만 파는 게 아니라 커피도 팔고 있습니다.
아내랑 같이 왔으면 우리도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한가로움을 즐길텐데~~
높이 21m, 둘레 5m, 수령 500년 된 느티나무
500여년 전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이 절을 중창했을 때 심었다 합니다.
임진왜란과 6·25 전쟁을 겪으면서도 다치지 않았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하마비(下馬碑)
-. 1649년 조선 7대 세조대왕의 위패를 어실각(御室 閣)에 모시고 중창불사를 하면서 세워진 것
-. 이곳을 지나는 정승, 판서도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음
-. 높이 93Cm, 너비 37Cm, 두께 18Cm 크기의 대리석으로 만들었음
-. 大小人員皆下馬(대소인원개하마)라고 음각되어 있음
* 하마비 : 사원이나 종묘, 궐문 또는 성현들의 출생지나 무덤 앞에 세워놓는 석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 존경을 표하라는 뜻을 담고 있음
범종루
이층에는 실제 사용하는 종이 걸려있고 ~~
아랫층에는 조선 예종원년(1469)에 주성된 보물 제397호 봉선사 대종이 걸려있습니다.
총 높이 229.4cm, 입지름 156cm, 무게 2만 5천 근의 청동 범종,
선왕인 세조대왕의 치적을 기리고 명복을 빌기 위하여 정희왕후(貞熹王后)의 발원으로 제작되었다 합니다.
"종의 고리부분에는 두 마리의 용이 머리를 서로 역방향을 향하는 일체쌍두(一體雙頭)의 용뉴(龍紐)를 형성하였으며,
중심 정상부에는 용의 발톱으로 여의보주를 소중히 받든 모습이다."
대의왕전(大醫王殿),
이름으로 보아 아마 약사여래 부처님 아닌가, 아니면 말고 ~~
얼굴만 제외하고 금박을 입힌 것이 특이합니다.
청풍루(淸風樓)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서 ~~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설법전(說法殿)'으로 바뀌어 있는데 ~~
안에 들어가니 방이 너무 커서 부처님이 조그맣게 보입니다.
고개 돌려 내다보니 건너엔 대웅전이 보이는 데 ~~
여느 절과 달리 '큰법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1970년 운허스님에 의해 건립된 전각으로, 스님의 뜻에 따라 '큰법당'이라 이름하였답니다.
곳곳에 한글 이름들이 즐비한 것은 불경의 한글화를 주도하셨던 운허 스님의 발자취가 아닌가 싶습니다.
설법전 옆으로는 사랑채(?) 같은 방들이 여럿 있는데 ~~
지붕을 보니 와송이 있기에 반가워서 담아보았습니다.
왜냐구요? 내가 지금 농사를 짓고 있는데 주 종목이 와송이므로.... ㅎㅎ
관음전
"원래는 노전스님이 머무는 노전체였던 것이, 6·25때 전소되었다가 복원하여 지금은 관음전으로 사용되고 있다."
삼성각(三聖閣)
6·25 전쟁시 폭격 맞을 때 주춧돌에 폭탄이 떨어졌으나 불발이 되어 살아남은 유일한 건물
안에는 흥국사 화승 예운 상규(禮雲 尙奎)와 범선 원하(梵船 元河)가 그린 산신탱이 있습니다.
여기는 지장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인데, 옆에는 어실각(御室閣)이라는 현판이 있습니다.
왜일까? 안내판을 다시 보니 이해가 갑니다.
"원래 어실각으로 세조대왕과 정희왕후의 위패를 모셨던 건물이다"
그 외에도 조사전, 개건당, 방적당, 동별당, 다경실, 선열당, 서별실, 판사관무헌, 운하당 등등 많이 있는데...
다 소개하면 지루할 것 같아 그만 하고 이제부터는 꽃구경을 하겠습니다.
어때요, 좋지요?
절 구경 꽃 구경 실컷 하고 감사하는 마음 가득 안고 나오다가 고개 돌려보니
어디선가 본듯한 모습이 있어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맞아, 역시나 ~~,
여기에도 최종태 교수님의 작품이 있습니다.
어때요, 길상사에 모셔져 있는 관세음보살상과 느낌이 똑같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인가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하여 길상사편에 올렸던 관세음보살상의 내력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관세음보살상이 머리에 쓴 관이 무엇입니까.”
“화관(花冠)입니다.”
“손에 들고 있는 병은 무엇입니까.”
“정병(淨甁).”
“손바닥이 이쪽에서 보이도록 만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구고(救苦).”
1999년 여름, 원로 조각가인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의 작업실에 길상사 회주였던 법정 스님이 찾아왔다.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장으로 전국의 성당에 성모상을 세워온 최 교수에게 관음상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러 온 것이다.
최 교수는 “나도 짧게 (세 가지를) 물었지만 스님은 토씨 하나 안 붙이고 외마디 답으로 알려 주었다”며
“꽃관에다, 정화수에다, 세상 고통 구한다는 세 마디 말씀을 듣는 순간 작품은 다 잡혔다”고 회고했다.
최 교수는 1958년 가톨릭에 입교했지만 서울대 미대 졸업 후 3개월간 불교 교리를 배웠다.
“내 신앙적 본향은 가톨릭이지만 원천은 불교였다”
“성모상과 관음상은 영원한 어머니로서 대자대비이고 큰 사랑이며, 맑음과 깨끗함, 고귀함과 온화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여성상이다”
김수환 추기경에게 “성모상을 만들던 내가 관음상을 만들면 천주교에서 나를 파문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김 추기경은 “일본에서도 천주교가 전파된 초기에 관음상 한 귀퉁이에 작은 십자가를 표시해 기도를 드리며 박해를 피했던 일도 있다”며 격려했다.
연꽃이 가득한 네모 반듯한 연못,
가로로 세로로 연못을 가로지르는 십자가 다리,
그 십자가 가운데 서 계신 관세음보살 ~~
얼굴엔 성모 마리아의 모습도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푸근합니다.
방문객이라곤 나 혼자 밖에 없던 흥국사와 달리 사람들도 바글바글합니다.
왜일까? 모두를 안아주는 열린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일겁니다.
카톨릭이면 어떻고 불교면 또 어떠랴,
놀러 온 사람이면 어떻고 기도하러 온 사람이면 또 어떠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편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 마음인것을 ~~
바로 그 차이입니다.
카톨릭 신자에게 관세음보살상 제작을 맡기는 열린 마음과
수행은 안하고 CCTV만 들여다보며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감시하는 닫힌 마음의 차이,
봉선사 주지스님께 아뢰옵니다.
"근처의 흥국사가 이곳의 말사로 알고 있습니다.
그곳 주지스님이 신경쇠약증에 걸린 것 같으니 정신과 치료 좀 받도록 주선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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