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시아상(如是我想) : 이와 같이 나는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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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오래되어 가물가물하기는 하지만 수요일 밤으로 기억한다.
이 날은 다른 날과 다르다. 침대에 누우면 잠을 청하는 게 아니라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린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먼 곳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 드디어 떨어졌네, 오늘도 살았구나, 다행이다, 이제 잠을 자야지....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이 한참이던 80년대 중반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하면서 보니 라피디안 뱅크(이라크의 한국은행) 건물이 어제 퇴근할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변해있었다.
30층쯤 되는 현대식 건물인데, 외장 판넬은 다 떨어져 나가고 슬라브와 기둥만 남았다.
그 것도 건물 중간쯤의 철골조 기둥이 꺾여 있어 조금만 밀면 쓰러질 듯 불안하게만 보였다.
아이쿠, 완전히 폭탄 맞은 모습이네, 미사일이라도 맞았나?
농담삼아 한 말인데 정말로 그랬다.
사무실에 도착해 알아본 결과 이란에서 쏜 미사일이 명중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진짜로 전쟁을 하고 있구나....
남부 바스라 지역은 '날마다 전투 중'이었지만 바그다드는 여느 도시와 다름없이 조용한 나날들이었는데,
그 날 이후로 미사일은 1주일에 한 방씩 날아와 이라크가 이란과 '전쟁 중'이라는 것을 실감케 했다.
우리 현장에서 2Km쯤 떨어진 곳에 메디칼 시티(Medical City)라는 우리가 시공한 바그다드 최대의 국립병원이 있었다.
그곳엔 아직도 우리 직원과 근로자가 일부 남아서 하자보수작업을 하고 있었기에 가끔씩 가보곤 했던 곳인데,
그 병원 바로 옆의 민가에, 우리도 지나다니며 쳐다보곤 했던 그 민가에 미사일이 떨어졌다.
병원 한쪽에 적재되어 있던 10여 미터 길이의 철제 빔이 수십 미터나 날아가 쳐박힐 정도였으니,
미사일을 맞은 그 민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병원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 민가 길 건너에는 기숙사가 있었는데,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잠을 자던 베트남 간호사들이 많이 죽었다고 들었다.
그 날 저녁 야간당직을 서야 했던 한국인 근로자 한 사람은, 직무유기를 한 탓에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우리 현장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는 12세대가 사는 3층짜리 연립주택이 있었다.
그 건물 2층에는 앞 발코니에 양을 키우며 사는 현지인이 있었는데,
큰 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우리 근로자들을 보면 마실 물을 갖다 주곤 했던 지극히 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날아온 미사일 한 방에 건물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부서진 건물 잔해가 부담이 되었는지 바그다드 시청은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우리 현장에서는 중장비를 동원하여 곧바로 치워버렸고, 그 곳은 내가 귀국할 때까지도 텅 빈 공터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도 미사일은 많이 날아와 여기도 떨어지고 저기도 떨어져 '지금은 전쟁 중!'이라는 흔적을 남겼다.
티그리스 강변에도 떨어지고, 다른 민가에도 떨어지고, 다른 빌딩에도 떨어지고, 다른 공장에도 떨어지고...
당시엔 카더라 통신이 유일한 매스컴(?)이었는데, 누군가 상황을 짜깁기하여 멋진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이 미사일들은 멀리 이란 이라크 국경 지방에서 쏜 것이고,
목표는 바그다드 시내에 있는 국방성이나 후세인 대통령궁이다.
이 미사일들은 북한에서 수입하는데 정밀도가 떨어지니 한 방도 명중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잘못하면 우리 현장에 떨어질 수도 있고, 우리 숙소에 떨어질 수도 있다.
쨔샤들, 미국이나 소련에서 수입한다면 잠이나 푹 잘 수 있을텐데 ~~
김정은이 큰소리 빵빵 쳤다.
'괌도를 중심으로 미사일 네 방을 날려버리겠다!'
트럼프가 깨갱~~하고 꼬리를 내렸다.
북한제 미사일의 정확도를 알고 있기에 그런지도 모른다.
왜놈들의 진주만 공습 이후로 자국 영토는 한 번도 피해를 입은 적이 없는데,
정밀도 떨어지는 미사일이 섬안에 떨어져 우리 국민이 죽는다면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래,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슬쩍 관대한 척 하자~~
맨정신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트럼프라는 사람이 했던 말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전쟁을 하더라도 저쪽(한반도)에서 하고, 수천 명이 죽더라도 저쪽에서 죽지 이쪽(미 본토)에서 죽지 않는다"
그럼 안되지 이 사람아, 전쟁을 하더라도 미국 본토에서 해야지 왜 한반도에서 하냐?
그렇다고 미국땅에서 전쟁이 나라는 소리는 절대로 아니다.
우리나라 군인들, 정치인들, 언론인들 중에 전쟁을 겪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난 군대 가지는 않았어도 전쟁의 참상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기에 감히 말할 수 있다.
이 땅에 전쟁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래서 꼴통짓하는 김정은에게도 성질대로 하면 안되는 것이고,
한술 더 뜨는 트럼프에게도 맞장구 치면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잘사는 형님이니, 못사는 아우가 꼬장 부리더라도 참으며 다독거려야 한다.
트럼프처럼 주둥아리 잘못 놀리다간 수천 명이 아니라 수만, 수십만이 이 땅에서 죽을 수도 있다.
그 죽은 사람이 나일수도 있고, 내 가족일수도 있고, 내 친구일수도 있다.
그러니 자존심 좀 상하더라도 꾹꾹 참고, 대화의 창으로 나오라고 살살 꼬셔서,
종전선언하고, 평화협정 맺고, 군비 감축하고, 무역로 열어주고, 투자도 하고,
그렇게 그렇게 하여 통일도 했으면 하는 것이 바라고 또 바라는 일이다.
* * * * * *
蛇足 : 요즘은 정말로 좋은 세상이다.
혹시나 하여 인터넷을 뒤져보았더니, 글쎄 그 때 당시의 신문기사들도 다 올라와 있다.
신문 기사라고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참조하시라고 올려 놓는다.
경향신문(1985.03.25)
"이란은 현재 5일에 1개꼴로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있다고 영국의 선데이타임즈지가 24일 보도했다.
선데이타임즈지는 한 이란 실업가의 말을 빌어 이 미사일들이 서방전자부품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일반 제트엔진으로 추진되는 이 미사일이 바그다드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아일보(1985. 05.28)
"쿠웨이트 국왕암살미수사건을 계기로 가열된 이란 이라크 간의 도시 보복전은
28일 이라크 공군기들이 또다시 이란 수도 테헤란에 파상공습을 가하고
이란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지대지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동아일보(1986.09.12)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12일 새벽 1시 20분경
이란 미사일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 시 전역을 크게 진동시켰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경향신문(1987.01.21)
"이란은 20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최근 들어 5번째의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 공격을 가하는 한편
이라크 제2도시 바스라의 석유화학단지에도 로키트포 공격을 가해 화재가 발생하고 가스저장탱크가 폭발,
시내 전역에 독가스가 퍼지게 했으며 이라크는 이에 즉각 보복, 이란의 4개도시를 공습했다.
바그다드 방송은 이날 이란의 미사일이 바그다드 시내 거주지역에 떨어져 많은 사상자를 내고 일부 건물과 상가가 파괴됐다고 보도했으나
이란의 IRNA 통신은 이란의 미사일이 바그다드 시내에 있는 이라크 집권 바쓰당의 당사에 명중됐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1987.10.06)
"이란은 5일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대한 장거리 미사일 공격을 감행, 주거지역을 강타함으로써 많은 사망자를 냈다고 이라크 당국이 밝혔다
이란측의 이번 미사일 공격은 7개월여만에 재개된 것으로 이란 이라크 양국간의 도시전이 더욱 가속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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