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바꾸면 ~~

34. 광주 청원모밀

상원통사 2017. 8. 24. 22:02

가만있자, 우리 가야할 데가 시내 한복판 충장로 거리, 광주 시내에 들어가는 것도 정말 오랫만이구나,

근데, 도착하면 점심시간 쯤 될 것 같은데 무얼 먹지?

시내에 가면, 그렇지, 아직도 그 집이 있다고 들은 것 같다, 

참 오래도 되었네, 그 집 가본 게 30년은 훨씬 넘고 40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그래, 맛은 둘 째 치고, 추억을 한 번 먹어보자.

청명모밀, 충장로 파출소 뒷편에 있었지, 그 땐 정말 맛있었는데...

하기야 못먹고 못살던 시절, 가물에 콩나듯 한 번씩 먹었으니 맛있을 수 밖에 없었지.

지금은 그 때만큼 맛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추억을 먹는다 생각하고 한 번 가보자.

운전하면서 중얼거리는 내 말을 듣고 있던 딸아이가 검색해보더니 한 마디 한다.

"청명모밀이 아니고 청원모밀이에요!"



그래, 맞아, 가게 크기도 딱 그만큼이구나,

그러니까 옛날 그 자리에서 아직도 하고 있다는 말이렷다,

실내 인테리어는 많이 바뀌었네, 에어컨도 있고... ㅎㅎㅎ

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있네, 예전에는 1층만 있었는데,

손님이 많기는 많은 모양이구나, 하기야 그러니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겠지.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난 그저 들떠있었다, 추억을 찾아왔기에....




주차장이 없어 멀리에 차를 세우고 늦게야 왔더니, 들어가자마자 음식이 나왔다.

냉모밀 두 개, 온모밀 두 개, 왕만두 하나,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내 몫으론 냉모밀을 주문했다, 이제와서 바꿀 수도 없고 ~~




냉모밀,

예전엔 없었던 메뉴같은데, 하기야 그 때엔 냉장고도 귀하고 얼음도 귀했으니 없는 게 맞겠지.

새로운 맛, 한 번 음미를 해볼까,

슬슬 휘저어 면과 고명을 섞은 후, 젓가락으로 한가득 집어 입안에 넣었다.

우선 혀와 볼에 차가움이 아닌 시원한 느낌이 전달되고,

씹는 순간 뭉툭 잘려나가는 듯한 면발의 감촉은 쫄깃함보다는 부드러움 쪽에 더 가깝고,

오랜 기억속의 내음과 함께 간간한 국물 맛이 입안에 고루 퍼진다.

어라, 추억을 먹으러 왔는데 그게 아니네,

국물 맛을 제대로 한 번 느껴보자, 그러려면 수저로 떠먹어서는 안되지,

양손으로 대접을 들어 입에 대고 후루루루 시끄러운 소리와 함게 국물을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 가는 국물이 내게 말을 건넨다, 맛있지?

그래, 맛있다, 쨔샤~~



그럼 온모밀은 어떨까, 예전 그 맛일까?

옆에 있는 아내의 대접에 눈을 돌림과 동시에 숫가락으로 국물을 떠 입안에 넣었다.

냉모밀 국물로 차가워진 입안에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자 자극이 배가 되는 지 눈이 번쩍 뜨인다.

안 바뀌었어, 예전 맛 그대로야,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 입안에 넣고 깨물었다.

불은 것이 아닌 부드러움만 남아있는 면발이기에 가볍게 잘라지는 것이 예전 그대로다.

국물은 다시 또 대접째 들어 맛을 음미해본다.

그래, 이 맛이지, 옛날에도 이 맛이었어, 그 맛이 그대로  남아있어,

그 때만 맛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도 여전히 맛있구나~~




정신 못 차리고 먹었다.

왕만두 한 개는 기본으로 먹고,

내 몫의 냉모밀은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이 처치하고,

아내 몫의 온모밀은 반 그릇이나 뺏어 먹고,

그래도 입은 더 달라하여 마른 모밀을 추가할까 했지만 배가 허락하지 않는다.




어딜 가서 뭘 먹을 때 남들은 다 맛있다고 감탄을 할지라도 내 입에선 쉽사리 잘 안나온다.

왜냐고? 어지간해서는 어머니 솜씨를 못 따라오므로....

근데, 여긴, 내 기준에, 감히 맛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내 입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벽에는 또 이렇게 적혀있다.

"프랑스 미슐랭가이드가 선정한 전국 단 한 곳!!

 광주에서 제일 오래된 모밀전문점"



다 좋은데 딱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다.

손님이 "40년만에 추억을 찾아 왔어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라고 말하면,

'그러셨구나, 고맙습니다.' 이렇게 한 마디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주인 아줌마는 아무 것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인양 계산만 열심히 한다.

그래, 속으로 알아들었어도 표현을 잘 할 줄 모르는 전라도 사람의 무뚝뚝 때문이겠지....

하여튼 차암 잘 먹었다.



* 蛇足 : 아내와 아이들은 맛있다고 감탄하는 나를 보고 무척 신기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