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기웃기웃

슬로시티 청산도 1

상원통사 2017. 5. 26. 22:03

징검다리 휴일, 아니 이번엔 개념이 바뀌어 징검다리 근무일,

사흘만 휴가 내면 장장 11일이나 쉴 수 있는 내 생전 처음 맞는 황금 연휴,

그러나 다 쉬기 미안해서 5일 쉬고 하루 근무하고 또 5일 쉬기로 마음먹는데까지가 1차 고민이었고,

쉬는 동안 무엇을 하고 지낼까, 요 생각 저 궁리하는 동안이 행복한  2차 고민!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내가 아무리 잘한다 해도 어머님 아버님께 아내가 정성들인 것에 비하면 그 백분의 일도 안되겠지만,

무뚝뚝, 무덤덤, 무뚝쇠 같은 남편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도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을까,

장인 장모님 모시고 청산도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청산도,

1995년 즈음 완도의 아파트 현장에 근무하던 시절 청산도가 고향인 후배 직원 덕분에 처음으로 들어본 이름,

그 때만 해도 하루에 한두 번밖에 배가 다니지 않는 순 진짜 깡촌 아니 깡섬이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슬로시티로 자리잡아 주말이면 30~40분만에 한 척씩 배가 다닙니다.

우린 완도항에서 요렇게 생긴 배를 타고 ~~



50분쯤 지나 청산도항에 도착하는데, 성급한 사람들은 항구에 닿기도 전에 벌써부터 내릴 준비를 합니다.



느림의 섬 청산도,

애초 계획은 어르신들은 많이 움직이기 힘드니 숙소 근처 가까운 곳만 같이 돌아보고나서,

다른 곳은 우리 부부만 걸어서 다녀볼까 하고 후배에게 추천할만한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려 전화했는데,

언제 갈 것인지 날짜 확정하라고 채근하더니 모든 걸 다 알아서 해결해 주었습니다.

-. 숙소 : 후배가 잡아줌(돈도 안받음)

-. 차량 : 후배 아버님 차를 빌려줌(기름도 만땅꼬(滿Tank, 가득)로 채워놓았음)

-. 후배 :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 '같이 내려와서 안내해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 나    : 그냥 주둥아리로만 '고맙네!', '올라가서 소주 한 잔 살께!'

-. 일정 : '청산도 투어버스'의 노선을 참조하여 이틀에 걸쳐 돌아보기로 함



숙소가 있는 항구에서 출발하여 맨 처음 도착한 곳은 당리'서편제 촬영지',

조금 불편한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서 올라가다가 ~~



뒤를 돌아보니 청산진성이 보입니다.

청산도는 서남해안을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담당한 곳이었기에,

1866년(고종3년) 첨사진(僉使鎭)이 신설되었고 당리에 청산진성을 축조하였는데,

그동안은 흔적으로만 남아있다가 2010년 복원하여 또하나의 볼거리로 탄생하였답니다.

근데 어디가 성안이고 어디가 성밖이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유채꽃과 소나무와 해안선이 어우러진 한가로운 풍경을 보면서 ~~



조금 더 올라가면 영화 서편제를 찍었던 그 곳이 나옵니다.

서편제,

극장에서도 보고, TV에서도 보고, CD를 구해서 보고 또 보고...

어디선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두리번두리번 찾아보니 돌담 곳곳에 숨겨놓은 스피커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진도아리랑' ~~



지금까지 이 노래를 몇 십 번은 훨씬 넘을 것이고, 이삼백 번쯤 들었을 겁니다,

이 길에서 동호(김규철)의 북장단에 맞춰 송화(오정해)와 유봉(김명곤)이 주거니 받거니했던 소리가락....

"문경 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

 ~~ 춥냐 덥냐 내 품 안으로 들어라, 베개가 높고 낮거든 내 팔을 비어라"

화(?)가 납니다, 오정해는 왜 그리 '진도아리랑'을 잘 부르는지~~

나 항상 주장하는 바,

우리 민요 세 곡만 부를 줄 안다면 외국 어딜 가더라도 술은 공짜로 얻어먹을수 있다!!



재주없어 노래가락은 못하더라도 이 대목에서 기념사진이나 한 방 남기자!



고개돌려 쳐다보니 초가집이 한 채 보이는데, '서편제 주막'이랍니다.

당리 부녀회에서 직접 만든 전과 막걸리를 판다고 하는데,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관계로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아쉽고 아쉬운 지고~~



서편제 삼거리를 지나 조금 더 가면 ~~



KBS 2TV 드라마 '봄의 왈츠'를 촬영한 세트장이 나옵니다.





눈 앞에 펼쳐진 평화로운 풍경, 드라마에도 나왔겠지요?



신발 벗고 안으로 들어가 2층에 올라가면 촬영 당시 썼던 침대도 그대로 있고 ~~



식탁도 그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이곳에서 주인공들이 라면(?)을 먹지 않았을까 ~~



그 드라마 주인공들을 불러서 같이 사진 한 방 찍고 ~~



그냥 가기 아쉽다는 주인공들의 부탁에 한 방 더 찍었습니다.

언뜻 보면 진짜 같지유???  ㅎㅎㅎ

이곳에 오면 이렇게 가까이도 멀리도 한 번씩 찍어보세요 ~~



세트장을 나와 차를 세워놓은 곳으로 가다가  ~~



오랫만에 보는 보리밭이 반가워 사진 한 장 찍으려 하는데,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많이 드나들었는지 아예 길이 나있습니다.

요 사진보다는 ~~



이 사진이 더 낫지요?

그래서 이름을 붙입니다, 이건 '보리밭 포즈!'



서편제 세트장을 나와 동쪽으로 5분쯤 가면 읍리라는 곳이 나오는데, '고인돌과 하마비'가 있는 곳입니다.



이곳엔 남방식 고인돌이 원래 16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3기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고인돌이라 함은 청동기 시대 지배층의 무덤,

그러니까 3천여 년 전 이곳에 사람이 살았는데, 그것도 꽤나 많은 사람이 살았다는 이야기인데,

무슨 이유로 넓디 넓은 육지 땅 놔두고 완도 본섬에서도 한참 떨어진 이곳까지 들어와서 힘들게 논밭 일구고 살았을까?



이 하마비도 잘 이해가 안갑니다.

하마비(下馬碑)란 조선시대 종묘 및 대궐 문 앞에 세워놓던 비석으로,

누구든지 그 앞을 지날 때엔 말에서 내리라는 뜻의 글이 새겨진 비인데,

사방을 둘러봐도 그럴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이곳에 왜 하마비가 있으며,

또 왜 보살상이 새겨져 있는 하마비를 세웠는지, 온통 의문 투성이입니다.

역사공부하러 온 것이 아니니 이쯤에서 그만 그치기로 하고, 안내판에 적혀있는 문구를 옮겨봅니다.

"읍리 하마비는 민간신앙에 기초를 둔 것으로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했다.

 앞면에는 보살상이 새겨져 있으며, 하마비라는 글자는 시멘트로 만든 하단에 씌여있다.

 불상의 머리 위에 보관(寶冠)이 표현된 것으로 보아 보살상으로 추정되며, 고려말~조선초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큰 길에서 안쪽 마을로 가는 길목에는 옹기들을 이용해 멋진 작품을 만들어 놓았는데,



안쪽 정자 안에 한가로이 누워있는 사람은 몸으로 말을 합니다.

'이 곳이 바로 슬로시티 청산도여, 쉬엄쉬엄 살아 ~~'



읍리 마을을 나오다가 버스 정류장 안에 있는 꽃상여가 있어 장식품인줄 알았는데 ~~



다음날 보니 마을의 누군가 돌아가셔서 진짜로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꽃상여를 마지막으로 본 게 20여년 전 고금도에서 였는데, 다시 보니 새삼스럽습니다.



여기는 권덕리의 범바위,

이곳 주차장까지는 차로 올라오니 문제가 없지만, 저 위까지 걸어서 올라가기에는 무리입니다.

그래서 멀리서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



범의 웅크린 모습을 닮았다하여 범바위라 부르는데,

가까이 가면 지구 자기장보다 7배 이상 센 자기장으로 인해 나침반이 방향을 잃고 흔들거린다 합니다.



청산도 구들장논,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호 지정 및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에 등재,



어디에 있나 한참을 찾았는데, 돌담으로 둘러쌓인 논들이 바로 구들장논입니다.



맨 밑바닥에는 돌을 구들처럼 깔고 통수로를 내고,

그 위에 돌과 흙을 섞은 혼합토층을 만든 다음, 맨 위에 흙을 붓고 물을 가두어서 만든 구들장 논,

아마 다랭이논으로 만들 공간마저도 부족하기에 이런 지혜를 발휘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만들 때야 쌀 한 톨이라도 더 거두고 싶은 욕심에 고생에 고생을 원도 한도 없이 했겠지만 ~~



이것이 훗날 관광자원이 될 줄 꿈엔들 생각이나 했으리요 ~~



해가 뉘엇뉘엇 넘어갈 무렵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청산도 서쪽에 위치한 지리 해수욕장,

수심이 완만하고 폭 100m, 길이 1.2km의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200년 이상된 소나무가 여름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모래 해수욕장,

오늘 텐트만 들고 오는 사람들도 있어 어디서 자려고 그럴까 궁금했는데, 이곳 솔밭에서 묵어가는 모양입니다.



우린 해수욕하러 온 것이 아니라 해지는 모습을 보러 왔습니다.

섬에 왔으니 일몰과 일출을  같이 볼 수도 있겠다, 근데 어디가 좋을까 혼잣말로 중얼거렸더니,

대뜸 아내가 고른 곳이 이 곳, 와보니 정말 제대로 골랐습니다.



오늘 일몰은 7시 17분, 지금 시간은 6시 48분, 맨 눈으로 해를 봐도 괜찮습니다.

전에 캄보디아에 갔을 때, 똔레 삽 호수에서 일몰 광경을 사진에 담아보고는 처음 ~~



물에 비친 모습마저도 아름다워 연신 셔터를 눌러대면서 ~~



해가 수평선에 걸치는 모습까지도 담을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만의 욕심 ~~



이쯤부터는 해가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빛을 잃으며 사라집니다.



여기까지 첫 날 일정을 마무리하고 회 한 접시에 매운탕에 소주를 걸친 후,

다시 맥주 한 캔 들고 아내 손 잡고 밤바다에 나왔습니다.



노래가 생각납니다.

여수 밤바다, 아니 청산 밤바다 ~~

또 있지요, 밤배

"검은 빛 바다 위로, 밤배 저 밤배 ~~"



마음은 시인이 되어가지만 머리에선 아무 것도 나오는 것 없이 맹탕,

청산도의 밤은 그렇게 저물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