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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 박수량 백비

상원통사 2015. 1. 21. 22:13

지난 번에 왔을 때와는 달라진 모습이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도대체 어떤 분이었기에 장성군에서 돈 많이 들여 이렇게 단장했을까?

박수량 백비,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산 33-1'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정표도 잘되어 있고 큰 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찾기는 쉽습니다.>

 

 

<지난번에 왔을 땐 주차장 바닥도 포장 안되어 있고,  건물도 없었던 것 같은데...>

 

 

<오르는 길 왼편에 비석이 있는 데, 꼬부랑 한자라 읽는 것마저도 힘이 들어 해석은 포기> 

 

 

<이 길 오르면 무덤만 하나 덩그러니 있습니다.

  호기심에 왔다면 굳이 올라갈 것까지는 없고,

  눈 감고 잠시 생각에 잠기고 싶다면 천천히 걸음을 떼어 보십시오.

  '청백리 시 정혜공 박수량(淸白吏 諡 貞惠公 朴守良) 선생 백비 입구'>

 

 

청백리(淸白吏)

-. 유교문화권에서 깨끗한 공직자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

-. 조선시대에 특별히 국가에 의해 선발 되어 청백리안(淸白吏案)에 이름이 올랐던 사람을 가리키는 말

-. 청백리는 부정부패하지 않고 깨끗한 것에 그치지 않고 인의(仁義)가 넘쳐야 함

-. 우리나라는 고구려시대부터 청백리를 표창한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 총 218명의 청백리가 선발되었음

-. 감사원이 선정한 조선시대 3대 청백리 : 박수량, 황희, 맹사성

 

 

"박수량 선생(1491~1554)은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하남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중종 9년(1514) 과거에 합격한 후 성균관·승문원·하헌부·사간원·춘추관 등을 거치고

 호조·예조·형조·공조 판서(장관), 함경도·전라도 관찰사,

 한성부 판윤(서울시장), 의정부 좌·우참찬 등 39년 동안 관직 생활을 하였다."

 

 

"선생은 오랜 관직 생활과 높은 벼슬에도 불구하고 한양에 집 한 칸을 마련하지 못하였고,

 아들에게는 '묘도 크게 만들지 말고 시호도 받지 말라' 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자손들이 선생을 한양에서 고향인 장성으로 모셔 내려갈 장례비조차 마련하지 못하자

 명종 임금은 장례를 지원해 주었으며,

 선생의 고향 아치실 마을에 99칸의 청백당(淸白堂)을 짓도록 하였다."

 

<그러나 청백당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고 지금은 없습니다.>

 

 

어찰(御札)

"경(卿)을 만나지 못한 것이 오래되었도다.

 건강상태는 또한 어떠한지 궁금하오.

 듣건대 경의 집 부엌에서 연기가 나지 않을 때가 한 달 동안에 곧잘 반이나 된다 하거니와,

 이는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나라 동산의 벼가 막 익었음에, 몇 말을 타작하여서 보내노라.

 비록 물품은 빈약하되 마음의 뜻은 큰 점을 그대는 어찌 여길런지

 애오라지 마땅히 궁궐에 들어와 나를 보좌하여야 할 터인데, 간절히 바라고 바라노라.

 나머지는 격식을 갖추지 못하오."                           -  인정전에서 쓰다 -

 

<부친의 3년상을 치르러 고향 땅에 내려갔는데,

  상인(喪人)답게 생활하지 않고 호의호식하고 지낸다는 소문을 접하고서,

  조정에서는 암행어사를 보내 사실을 확인한 바, 실제는 매우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기에,

  명종 임금이 직접 이 편지를 쓰시고 곡식과 함께 보내셨다 합니다.>

 

 

                              백비

                  박수량의 청백을 알면서

 빗돌에다 새삼스럽게 그가 청백했던 생활상을 쓴다는 것은

    오히려 그의 청렴을 잘못 아는 결과가 될 지 모르니

                  비문없이 그대로 세우라

                                                  - 명종 임금 -

 

<박수량 백비 : 명종 임금께서 서해 바다에서 돌을 골라 글자 하나 새기지 않고 내려준 묘비(墓碑)>

 

 

<왔으니 기념사진 한 컷!>

 

 

<그저 평범한 시골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큰 꾸밈 없이 단정하게 가다듬음이 오히려 선생의 뜻을 따르는 것이겠지요>

 

 

 

<주차장 옆에는 '아곡 박수량 백비 전시실'이 있는 데 ~~>

 

 

<그 벽에는 이곳을 찾은 국가기관 및 각 단체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약력을 읽고 계시는 분은 장인 어르신, '박수량 할아버지의 14세손'이십니다.>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유품이 있나 여쭤봤더니 별도로 보관하고 있는 것은 없다기에,

  장인어른이 직접 만드신 '가족문집'에 오른 사진을 전재합니다.

  * 앵무배(鸚鵡杯) : 명종(明宗)이 청백리 녹선시(錄選時) 앵무배에 술을 부어 하사했던 술잔

  * 옥영(玉纓) : 명종(明宗)이 함경도관찰사 임명시 하사한 호박(琥珀)으로 만든 갓끈>

 

 

몰랐습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결혼할 때부터 들었지만 건성으로 흘려버리다가,

블로그에 올리려 자료를 찾아보면서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내 모습을 돌아봅니다.

나만큼만 살면 세상이 이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마냥 부끄럽기만 합니다.

 

<누군가 써놓은 방명록의 글을 다시 한 번 읽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