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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 가족여행] 4-2. 교토 동부 - 철학의 길, 남선사, 평안 신궁

상원통사 2017. 3. 2. 22:23

철학의 길이라,

이름부터 멋지지 않습니까?

요즘 인문학 어쩌고 저쩌고 한참 유행인데,

이런 멋진 이름이 붙은 길을 한 번쯤 걸어봐야 조금은 폼이 나지 않을까...

그런데 그 길은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초가집도 좋고 기와집도 좋고 그리 높지 않은 집들이 듬성듬성 떨어져 있어야 여유가 있을 것이고,

흐드러진 가로수 사이로 가끔씩 논밭도 보이다가 산길로 접어들면 새 우는 소리가 들리면 좋을 것이고,

많이 다듬지 않아 제 멋대로 흐르는 시냇물이 있고 거기를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도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은각사를 나와 쭉 내려오다가 조그만 다리를 지나면 왼쪽 편에 표지판이 있는데,

친절하게 우리말로 적어져 있습니다, '테츠가쿠노미치(강변을 따라)'



테츠가쿠노 미치(哲學の 道, 철학의 길)

"긴카쿠지에서 에이칸도 사찰까지 좁은 물길을 따라 이어진 2km가 조금 안되는 산책로다.

 교토대학 교수이자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산책하며 사색을 즐겼다 해서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철학의 길'이라고 부른다.

 이 길은 일본 소설가 모리미 도미히코가 가장 교토다운 곳으로 꼽을만큼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길이기도 하다.

 ~~ 해가 뉘엇뉘엇 넘어가는 오후 5~6시가 지날 때면 나뭇가지 사이로 반짝이는 붉은 빛 노을이 로맨틱하다."

                                                                                                       <오사카 교토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막상 눈앞에 펼쳐진 철학의 길은 상상 속의 그것과 조금 거리가 있지만,

이제는 고목의 반열에 오를만한 나이의 벚꽃나무가 그 공백을 조금이나마 메워주는 듯 합니다.



"본래 철학의 길이라고 하면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네카어 강변의 '철학자의 길'이 원조다.

 헤겔, 괴테, 하이데거, 야스퍼스 등이 즐겨 산책했다는 곳이다.

 칸트가 걸었던 쾨니히스베르크의 산책로도 '철학자의 길'로 불린다.

 ~~벤치마킹의 귀재인 일본은 1968년에 이 길을 정비하면서 '철학의 길'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였고

 물가에는 어느 독지가가 기증한 벚꽃을 심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우리나라 철학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

수지성당에서 광교산 시루봉까지 가는 6Km의 능선길을 철학의 길이라 칭해봄이 어떨까~~ ㅎㅎㅎ



봄에 벚꽃 필 때가 장관이라 했는데 지금은 한 겨울~~



꿩 대신 닭이라 했던가, 벚꽃 대신 동백꽃입니다.



세시풍습,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옷입은 돌부처님들,

우리네 정서에선 이미 사라져버렸기에 한 번 더 눈길이 갑니다.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의 비,

거의 내 수준의 토룡체로 갈겨놨는데, 뭐라고 적었느냐 하면,

"사람은 사람, 나는 나,

 어찌됐든 내가 가는 길을 나는 간다"



"니시다 기타로는 가나자와(金澤) 제4고등학교 출신으로

 동급생인 스즈키 다이세쓰와는 이인삼각의 벗이자 동료였다.

 다이세쓰가 서구에 일본의 선(禪)을 전파한 것에 반하여

 기타로는 <선(善)의 연구>라는 명저를 펴내어 서구 철학의 일본 토착화에 기여했다."


그도 이 길을 걷다가 저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갔을까~~



"일본이 군국주의로 나아가고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의 제국주의로 무장할 때 이를 제어하지는 못할망정

 니시다 기타로를 비롯하여 많은 지성들이 결국 그들의 공작에 동조하고 이용당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으니,

 한편으로 생각하면 철학이라는 것이 허망하기도 하다.

 그가 <선의 연구>에서 말한 도덕은 무엇이고 <일본문화의 문제>에서 말한 것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 문학가들의 대부분이 친일로 돌아섰기에 엄청 실망했었는데,

일본의 먹물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니 한편으론 위안(?)이 됩니다.

많이 배운 것들이 끼치는 해악이 오히려 더 큽니다.

녹조라떼 공장이 되어버린 4대강을 보세요,

고인 물이 오히려 썩지 않는다는 대학교수님들의 연구용역 결과를 근거로 만들었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은 기껏해야 하루만큼의 해악밖에 끼칠 수 없지만,

목에 힘들어가 있는 먹물들은 백년 천년만큼의 해악을 끼칠 수 있답니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안했음. ㅎㅎㅎ



내가 이런 말 할 때가 아니지요,

여기서는 걸으면서 사색을 해야지요, 철학적인 사색을!



이 안쪽으로 올라가면 오오토요 신사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린 그냥 통과!



그렇게 걷다가 보니 어느새 2Km를 다 걸었습니다.



시간은 벌써 12시 반,

떠나기 전 지도에 표시까지 해가며 열심히 점심 저녁 먹을 곳을 찾아 준비했지만,

사람이 많아 들어가지 못하거나 장소가 바뀌어 써먹지 못해 조금 삐쳐있는(?) 딸아이에게

오늘 점심 먹을 곳을 얘기했더니 군소리 한 번 안하고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공부만 없다면 우리 아이들이 최고인데~~~ ㅎㅎㅎ



철학의 길 끝에서 오른쪽으로 길따라 쭉 내려가다가 ~~



발견했습니다, 이 집입니다.

두부요리가 참 맛있는 집이라고 누군가 올려놓은 집입니다.




여느 식당들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기념품 가게와 식당을 겸하고 있는데 ~~



손님은 아무도 없고 달랑 우리뿐, 쪼끔 맛이 걱정되기는 하는데 ~~



차림표에 있는 다섯 가지 음식을 모두 다 한가지씩 시켰습니다, 맥주도 한 잔 곁들여...

가족여행의 또 한가지 장점은 여러 음식을 한 자리에서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는 것!



요런 요리들이 나왔는데, 한 입 맛을 본 나는 깜짝~~

맵고 짜고 시고 톡쏘는 음식을 좋아하기에 일본음식은 전혀 맞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아닙니다, 담백한 그 맛은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깨끗함 자체였습니다.



이런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준 딸이 역시 최고야~~



우리나라 어떤 사람의 블로그에 이 집이 맛있다고 소개되어 있어 찾아왔고,

역시나 음식이 너무 맛있다고 칭찬을 했더니~~



기분이 좋아진 주방장 할마씨가 맥주 반 잔은 뽀나쓰로 추가!



그냥 가기 아쉬워 사진 한 컷 찍자고 했더니 흔쾌히 응해주십니다.

친구지간인 세 분 할머니들이 힘을 합해 운영하는 두부요리 전문식당,

나이 먹었어도 이렇게 현업에서 일하며 사람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도 부럽지만,

연륜에서 묻어나온 맛인지, 친구간의 우정에서 스며나온 맛인지, 일본 최고의 맛(?)을 보여주신 분들께 감사!!!

우와, 명함을 다시 보니 할마씨들이 홈페이지도 갖고 있네요, 대단혀~~

https://tohryanse.jimdo.com/



난젠지(南膳寺, 禪, 남선사)

-. 가마쿠라시대 가메야미 천황이 법황이 되면서 1291년에 자신이 지은 이궁(離宮)을 선종 사찰로 바꾸었음

-. '남선사'라는 이름은 일본에 들어온 선종이 남종선(南宗禪)인 데서 비롯된 것임

-. 오닌의 난 등 세 번에 걸친 큰 화재로 괴멸적 타격을 입었음

-. 1606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복구명령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지원으로 다시 복원됨

-. 현재 남선사의 건축과 정원은 대개 모모야마시대의 유산들임


맥주까지 곁들인 기분 좋은 점심을 끝낸 후,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서 도착한 곳은 남선사,

경내 전체가 담장 없이 공원처럼 개방되어 있기에 우리네 절 같은 분위기가 납니다.



사진을 찍기만 했던 나도 모델이 되어본 후~~



방문객을 압도하는 육중한 규모의 삼문으로 향합니다.



남선사 삼문(南膳寺, 禪 三門)

-. 지은원, 인화사의 그것과 함께 교토의 3대문 중의 하나

-. 높이 22미터,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층 누각형식으로 전형적인 선종 양식임

-. '오사카의 여름전투(1615)'에서 희생된 장수들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1628년 중건되었음

* 오사카의 여름전투 : 1615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력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



교토의 3대문 중 유일하게 일반에 공개되어 언제나 들어갈 수 있는 남선사 삼문,

오르면 눈앞에 소나무 숲이 펼쳐지고 멀리 녹음 우거진 어소와 함께 교토 시내가 장관으로 펼쳐진다는데,

나는 올라가보지 않아서 진짜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왜 안올라갔을까요, 알아맞춰보세요! ㅎㅎ

① 돈내기 싫어서  ② 뭐하는 곳인지 몰라서  ③ 귀찮아서  ④ 다리 아파서  ⑤ 시간이 없어서




가부키의 <누문오삼동>에 나오는 이야기를 미리 들었다면 나도 올라갔을텐데...

"이시카와 고에몬이라는 대도적도 이 삼문에 올라와서는

 좌우를 휘둘러보고 '절경이구나, 절경이구나'를 연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도적은 실존인물로 처형될 때 끓는 튀김 가마 속에 집어넣어졌다고 한다."


올라가거든 조심하세요, 잘못하면 프라이드 치킨됩니다.




삼문을 지나면 법당, 우리로 치면 대웅전이 나오는데~~



그 앞에는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리는 곳이 있습니다.

물론 대웅전은 닫혀있고... 우리와는 다른 문화지요?



법당 뒤에는 스님들이 거주하는 방장이 있는데,

아마 이곳에 고려시대 어제비장전(御製秘藏詮) 목판화가 보관되어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아는 체 좀 해야지,

어제비장전이란 '송나라 태종이 불교 교리의 깊은 뜻을 읊은 오언시(五言詩) 약 1000수를 담은 일종의 불교 시집'으로

고려에서는 11세기 전반과 후반에 간행되었는데,

목판 원판은 몽골 침입 때 불타 없어지고

인출된 것도 서울 성암고서박물관과 이곳 남선사에 일부가 소장되어 있답니다.

우리 문화재가 이곳에 있다기에 기쁨 반 슬픔 반으로 한 마디~~



오른편으로 난 길을 올라가면 조금은 생뚱맞은 로마식 구조물이 나타나는데~~



수로각(水路閣)

-. 비와호 물을 교토로 끌어들이는 '비와호 소수(疏水)'가 지나가는 물길

-. 로마의 수도교를 본떠 건설한 것으로 1885년 착공하여 5년 만에 완공됨

-. 남선사 경내를 통과하기에 건설 당시 반대 여론이 많았음

-. 그러나 이색적인 근대 시설로 각광받아 영화나 패션 사진 촬영의 명소가 됨


지금은 사진찍기 좋은 장소로 알려진 수로각, 물이 흐르는 길이랍니다.



진짜로 물길일까, 궁금해서 올라가 봤더니 진짜입니다.

물도 진짜로 흐르고 있고 고기도 유유히 헤엄치고 있고....



수로각 옆에는 돈내고 들어가는 곳이 있어 뭔지도 모르고 무조건 들어갔는데,

정원이 잘 가꾸어진 남선원(南禪院)입니다.



내 눈에 이곳 정원은 자연스럽게 가꾸어 놓아 이질감이 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상식 한 가지,

한국의 정원과 일본의 정원은 어떻게 다를까?

18,000원이나 주고 산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요약해서 올립니다..



-. 일본인들은 정원의 나무에 철저히 가위질을 하여 인공이 가미된 자연으로 경영하면서

    어쩌다 잘생긴 소나무나 흐드러진 수양벚나무를 자연 그대로 맞겨둔다

-. 한국의 정원에서는 자연의 멋을 있는 그대로 살리면서

   무성한 곳을 다듬거나 빈 공간에 멋진 나무 한 그루를 배치하면서 정원을 조성한다



-. 일본 정원은 자연을 재현한 인공적 공간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

-. 우리 정원은 자연공간 안에 인공적인 건물이 배치되고 나무가 심어지고 화단이 만들어진다

-. 우리 정원은 자연과 인공의 관계가 일본과는 정반대이고, 사람이 그 속에 파묻힌다

-. 일본은 정원(庭園)이고 우리는 원림(園林)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한국 정원사와 일본 정원사의 돌 다루는 자세

-. 일본 정원사 : 돌 9개를 반듯이 놓고 나서 1개를 약간 비스듬히 틀어놓으려고 궁리한다

-. 한국 정원사 : 돌 9개는 아무렇게 놓고 나서 1개를 반듯하게 놓으려고 애쓴다



우리나라의 명원(名園)

-. 궁궐 정원    : 창덕궁 부용정

-. 은거지 정원 : 보길도 부용정, 담양 소쇄원

-. 저택 정원    : 성북동 성낙원, 강릉 열화당, 영양 서석지

-. 사찰 정원    : 순천 선암사, 서산 개심사, 안동 봉정사 영선암, 등 다수



아는 체 좀 했더니, 이제야 책값이 빠진 것 같습니다. ㅎㅎㅎ




"나는 쓰루가와와 함께 남선사(南禪寺)에 갔다.

 ~~ 우리들 눈 아래에는, 길 건너로 천수암(天授庵)이 있었다.

 ~~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은 그 다음이다.

 여자는 자세를 바로한 채, 갑자기 옷깃을 풀었다.

 내 귓전에는 뻣뻣한 허리띠를 안쪽에서 잡아당기는 비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였다.

 하얀 가슴이 드러났다

 나는 숨을 죽였다.

 여자는 하얗고 풍만한 젖가슴의 한쪽을, 그대로 자기 손으로 꺼냈다.

 사관은 짙은 색 찻잔을 받쳐 들고, 여자 앞에 무릎 꿇은 채로 다가갔다.

 여자는 젖가슴을 양 손으로 주물렀다.

 나는 그 장면을 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짙은 색 찻잔 속에서 거품을 띄우고 있는 연둣빛 차에,

 희고 따듯한 젖이 뿜어나와, 방울을 남기며 잔 속에 담기는 모양,

 고요한 차의 표면이 하얀 젖으로 흐려져 거품을 일으키는 모양을, 바로 눈앞에 보듯이 역력히 느꼈다.

 사내는 찻잔을 들고, 그 기이한 차를 남김없이 마셨다.

 여자의 하얀 가슴도 감추어졌다.

 우리 둘은, 긴장하여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나중에 차분히 생각하니, 그것은 사관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와 싸움터로 나가는 사관과의, 이별의 의식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의 한 대목입니다.

제목이 금각사이기에 당연히 금각사가 배경일것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이곳 천수암을 배경으로 묘사한 장면입니다.

이런 줄 알았으면 돈 내고 들어가서 여자가 어디에 앉았었는지 찾아나 볼 걸~~



중문을 나서는 것으로 남선사의 탐방을 마치고~~



우린 헤이안 진자(平安神祠, 평안신사)로 향하는데~~



많이 걸었더니 쪼끔 다리 아픈 표정이 뒤에서 봐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신사 입구에 세워진 기둥문, 토리이(




신사(神社), '일본의 신도() 신앙에 의거해서 신들을 제사지내기 위해서 세워진 건물 또는 시설',

그러나 내게는 신사참배 강요, 야스쿠니 신사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라 일단 거부감부터 들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그들의 토속신앙이려니 생각하고 마음 비우고,

헤이안(교토) 천도 1100주년을 기념해 1895년에 세운 헤이안 진자(平安神祠, 평안신사)로 들어갑니다.



큰 문(중문?)을 지나 들어갔더니 ~~




사람들이 모여 뭔가를 하고 있습니다.

짤랑짤랑, 땡그랑땡그랑~~


 

가까이 가서 봤더니,

커다란 놋쇠통을 흔들면 숫자가 적힌 젓가락이 하나 나오고~~



그 젓가락을 갖고 여기로 와서 200엔을 내면 오미쿠지(행운을 상징하는 흰 종이)를 줍니다.



그리곤 이곳에 매달고 빌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먼저 이곳 수수사()에서 몸과 마음을 씻고 나서 ~~



여기 배전(殿)에 올라 소원을 비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나 궁금하여 가까이서 지켜보았는데,

사람들이 워낙 진지한 표정으로 기도를 올리기에 미안해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어떻게 소원을 비는 지는 알아냈어요

먼저 복전함에 동전(지폐도 몇 장 보임)을 넣고,

선채로 절을 두 번 하고,

박수를 짝짝 두 번 치고,

소원을 빌고,

절을 한 자리 올리면서 마칩니다.

뭐를 빌고 있을까요?

지구의 안녕과 은하계의 평화와 우주의 영원함을? ㅎㅎㅎ



이제 우리는 청수사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