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간사이 가족여행

[간사이 가족여행] 4-1. 교토 동부 - 은각사

상원통사 2017. 2. 28. 22:07

옛날 옛적에 '전설따라 삼천리'에 구미호가 나와서 이런 말을 합니다,

"간사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맞다, 내가 그렇다~~

처음 갈 때엔 마음속으로 덜덜 떨었었는데, 한 번 가봤다고 별 두려움이 없이 편안한 네 번째 아침을 맞습니다.

그러나 교만심도 함께라는 것이 흠이라면 흠, 긴장이 풀려 출발이 예정보다 30분이나 늦습니다.

오늘은 10미터쯤 짧은 지름길을 개발한 아이들 뒤를 따라 마츠야마치 역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거리는 어제와 다른 풍경, 연휴가 끝나감인지 지나다니는 사람이 한 둘씩 보입니다.



교토에 두 번째로 가는 날, 오늘은 동쪽(중부) 지역을 돌아볼 예정인데,

일정표를 다시 보니 상당히 빠듯합니다, 오늘 하루에 다 돌아볼 수 있을지....



우선 지하철로 한큐 우메다 역에 가서 한큐 교토선으로 바꿔타고 한큐 카와라마치역에서 하차,

C정류장에서 17번 버스를 타고 긴카쿠지미치 정류장에서 내려~~



이파리 하나 없이 앙상한 벚꽃나무 가로수길을 따라 걷다가~~



주택가 뒷골목 같은 기분이 드는 좁은 길로 들어섭니다.



한 번에 100엔, 사랑 점 보세요~~

한류 열풍따라 토정비결도 한 번 수출해봄이 어떨까, ㅎㅎ



긴카쿠지(銀閣寺, 은각사)

-. 선종사찰로 1482년 아시카가 요시마사에 의해 건립됨

-. 정식명칭은 히가시야마 지쇼지(東山慈照寺, 동산자조사)로, 요시마사의 법명인 지쇼인(慈照院, 자조원)에서 따옴

-. 16세기 중엽 전국(戰國)시대에 일어난 내전으로 핵심건물인 동구당과 은각만 제외하고 모두 불탔음


드디어 은각사에 도착했습니다.

입구가 조금 비좁아 보이는 길은 산문(總門, 총문)으로 이어지는데~~



문 위에는 신년하례 치장물(?)이 걸려있어 여기가 일본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지만~~



지붕의 기와는 우리네 것과 꼭 닮아서 한옥 고택에 왔다고 해도 깜박 속을 것입니다.



유홍준님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은각사의 참도를 이처럼 정성을 다해 조성한 데에는 깊은 뜻이 있다.

 본래 절집의 진입로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공간적 시간적 거리를 의미한다.

 거창하게 말해서 세속에서 성역으로 들어가는 전환점이다.

 이제 참도를 지나면 곧바로 은각사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게 되는데

 그 전에 참배객들이 마음을 추스릴 수 있게 하는 배려이다."          

* 참도(參道) : 절집 안으로 인도하는 길                                                  


정문을 막 지나면서부터 시작되어 중문에 이르기까지 참배도의 좌우에 꾸며진 약 50미터 길이의 생나무 바자(울타리),

돌담과 대나무 울과, 그 위로 절벽을 이룬 동백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묘한 엄숙함을 느꼈던 것까지는 좋았는데,

사진을 보니 엄청 속이 상합니다.

글쎄, 어제 와카야마에서 말썽을 부린 카메라가 사진들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그래도 고르고 골라 조금 나은 사진들만 올렸으니 감안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기회에 아예 카메라를 바꿔버릴까~~



그래도 이 사진은 쪼끔 더 낫지요?

다 둘러보고 나올 때 찍은 사진입니다.



그래도 요 대목에서 인증 사진 한 방!



"금각사는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쇼군이 세운 것이고 은각사는 8대 쇼군이 세운 절이다.

 금각사에서 은각사까지의 역사적 거리는 반세기가 넘는다

 일본 역사에서 금각사 시절에 이룩한 문화는 북산(北山)문화라 하고 은각사 시절은 동산(東山)문화라고 한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북산문화의 대표작은 금각사, 동산문화의 대표작은 은각사,

금각사를 참조해서 은각사를 지었다 하니 금각사보다 훨씬 더 멋지겠구나,

중문을 들어가기도 전인데도 이렇게까지 꾸몄으니 안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멋질까~~




기대를 잔뜩하고 중문(中門)을 지나는데~~



애걔걔~~

은각사라고 해서 은으로 뒤덮인줄 알았더니 이건 완전히 나무로 뒤덮인 목각사네, 

아니지, 뭔가 사연이 있겠지, 혹시 건물 안을 은으로 도배한 것은 아닐까,

뭔지 몰라도 우선 기념사진부터 찍자, 그래야 남들에게 왔다갔다고 자랑할 것 아닌가~~



고게쓰다이(向月台, 향월대),

후지산을 마당에 옮겨 놓은 것 같은 높이 180cm의 향월대,

우리 키만한 높이를 순전히 흰 모래와 물만으로 쌓았답니다.



긴샤단(銀沙灘, 은사탄, 은모래 여울),

본당 앞 마당에 높이 60cm의 흰 모래로 쌓아 다지고,

물결무늬을 나타내기 위해 갈퀴질을 해 고랑을 만들었답니다.



그 주변으로 난 탐방로를 따라 한 바퀴 빙 돌며 바라보는데,

'누구의 작품인지 몰라도 참 멋지다'라는 말보다 더 먼저 생각나는 말,

'누가 하는 지 몰라도 관리하느라 엄청 고생하겠네!!'



앞에 보이는 건물은 정전(正殿), 본당인데~~



그 창살 무늬가 독특해서 찍어보았습니다.

투명해 보이는데 그 옛날에 유리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고, 뻥 뚫렸으면 겨울에 엄청 추울텐데~~




그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 열심히 찍어라!!!



본당 앞에는 은사탄이 넓게 펼쳐져 있고,

은사탄 앞에는 나무와 바위와 연못이 어울어진 정원이 보이고~~



물길을 흰 모래로 꾸며놓은 가짜 여울(?)도 보입니다.



내 눈에는 금각사, 용안사, 인화사, 천룡사보다도 이곳이 훨씬 더 맘에 드는데,

사람의 손으로 가꾼 것들이기는 하지만 다른 곳보다 훨씬 더 자연을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몸에 흐르는 한국인의 피는 속일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더 좋은 것은, 사람이 적어 훨씬 더 편안히 감상할 수 있었다는 점~~




이끼가 가득한 정원은 정원대로~~



물과 바위와 나무와 너와지붕이 어울어진 풍경은 또 그 풍경대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듭니다.



조금 더 가면 들릴듯 말듯 작은 소리로 속삭이는 가녀린 폭포가 보이는데, 

그 앞에는 센게쓰센(洗月泉, 세월천)이라 적혀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모래로 쌓은 후지산은 향월(月)대, 폭포에서 시작해 연못으로 향하는 샘은 세월(月)천,

달이 두 번씩이나 나오는 게 뭔가 연관이 있을 것도 같은데,

그윽한 달빛 아래에서 가느란 폭포소리를 들으며 향월대를 바라보는 느낌은 어떨까~~



세월천을 지나면 '비단 거울 연못'이라는 뜻의 긴교치(錦鏡池, 금경지)가 다시 보이는데,

물에 비친 소나무까지 그 멋을 더하고 있으니, 보는 이의 눈이 여간 호강하는 게 아닙니다.  



도구도(東求堂, 동구당)

-. 이곳을 지은 요시마사의 전용 불당이었음

-. 편백나무 껍데기로 만든 팔작지붕을 이고 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원양식의 건물

-. 북동쪽에 위치한 다다미 4장반의 서재 도진사이(同仁齋, 동인재)는 히가시야마(東山) 문화를 탄생시킨 무대였음

-. 이 취미활동 공간은 훗날 별채의 초암다실(草庵茶室)로 이어졌기에 '초암다실의 원류'로 지칭됨

-. 일본의 국보로 지정됨



북동쪽의 그 다다미방이란 아마 이쪽 편에 면한 방인 것 같습니다.



동구당을 지나 뒷짐지고 천천히 거닐면 나무가지를 타고 오르는 이끼들이 보이고~~



모래로 만든 가짜 계곡이 아닌 물이 흐르는 진짜 계곡도 보이고 ~~



산등성이까지 올라와 세상을 온통 이끼로 뒤덮을 것 같은 정원을 감상하다 보면~~



저 멀리 은각의 지붕이 보이는데~~



처음 은각의 옆모습을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다가옵니다.

은각은 홀로 뽐내지 않습니다.

나무와 바위와 연못과 이끼가 모여 함께 사는 이 곳에서, 은각은 그저 그들과 어우러진 한 부분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런 분들의 노고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구나~~

새삼 감사드립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그렇게 둘러보면서 전망소에 오르면 ~~



은각사의 전경이 한 눈에 보입니다.



"다시 보아도 은사탄은 아름답고, 향월대는 신비롭고, 금경지는 아기자기하고,

 방장은 넉넉하고, 동구당은 편안하고, 은각은 의젓하다."

유홍준님은 표현도 참 멋있게 잘하지요?



전망대 한켠에 사진과 안내문이 있어서 읽어봤더니,

저 앞에 빨간 깃발(동그라미 친 곳)이 보이는 곳에 벽오동 나무가 있는데,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때 방사능에 노출되었던 나무의 후손(the descendants of the tree)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원자폭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핵전쟁의 피해가 얼마나 큰 것인지 교훈으로 남겨주려 하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 말만 강조하면 안되지요, 앞부분을 뚝 잘라버리고 이말만 하면 일본은 단지 핵전쟁의 피해자일 뿐입니다.

왜 원자폭탄이 떨어졌는 지, 그들이 그동안 얼마나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까지도 함께 적어놔야지 맞는 것이지요.

이러니 '쪽바리'라는 단어가 나오게 되고, 그들의 간교함이 더욱더 정 떨어지게 만듭니다.

그 간교함이 오사카 출신인 이MB로, 구중궁궐의 그네로, 간교한 황교안으로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는 것 아닌가...

좋은 곳에 와서 왜 이런 밥맛 떨어지는 생각을 하고 있지??



이제 길을 쭉 내려가면 ~~



흰 모래 옆에 있던 은각이 옷을 갈아입고 물에 비친 은각으로 다시 모습을 보입니다.



觀音殿(銀閣)

-. 금각사 사리전과 서방사 유리전의 형태를 계승하고 있으며 당초에는 관음전이라 불림

-. 1층 신쿠전(心空殿, 심공전)은 서원 양식이며,

-. 2층 조온카쿠(潮音閣, 조음각)는 선종풍 중국식 사찰양식으로 관세음보살상을 모심

-. 일본의 국보로 지정됨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은퇴 후에 살 저택과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으나,

 공사가 절반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죽음을 맞는다.

 ~~ 완공 후 건물 전체를 은으로 덮으려던 계획은 무산되고,

 건물은 미완성된 당시의 모습으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 사람들은 아시카가의 꿈을 기리며 '긴카쿠지(은각사)'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는데,

 지금까지도 정식명칭인 '지쇼지'보다 '긴카쿠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오사카 교토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2007년 엑스선에 의한 원소분석결과 실제로 은박이 입혀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답니다.

비록 은박옷을 입지는 않았어도 500년도 넘는 세월을 버텨온 은각이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칭송받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일본인은 이런 '미완의 긴카쿠지'를 특히 사랑하는데,

 그것은 일본인 특유의 정서인 미완의 미학에 열광하는 와비사비(わびさび) 정신에 기인한다.

 '와비사비'란 '완성된 것에 비해 모자란 듯 하지만 그 나름의 소박한 아름다움'이란 뜻으로,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 단지 외형만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스토리를 함께 담아 하나의 작품으로 이해하려는 일본인의 미적 정서다.

 긴카쿠지는 이런 일본인 특유의 정서를 이해하고 바라보아야 비로소 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건축물이다."

                                                                                                       <오사카 교토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그러나 지나가는 관광객이 어찌 그런 깊은 아름다움까지 알수 있을까~~



은각사의 너와지붕, 어떻게 만들었나 궁금했는데 여기 모형과 설명이 있더군요.

편백나무를 30Cm 폭으로 잘라 아랫쪽 5Cm만 노출시키면서 겹치기로 쌓아올린 후,

대나무 못으로 고정시켰답니다.

영어로 적어져 있는데 제대로 번역했나? 아니면 말고~~



졸졸졸 흐르는 물줄기를 지나~~



조금 억지로 꾸며놓은 듯한 대숲을 끝으로 은각사 탐방을 마치고~~



우리는 철학의 길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