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맞는 첫아침,
어제 새벽 3시부터 한밤중까지의 일정이 무리였는지 늦잠 습관이 다시 도졌는지 아이들이 일어나질 않습니다.
늦으면 오늘 일정을 다 소화 못한다고 잔소리해도, 구시렁구시렁 꽁알꽁알 밍기적밍기적~~,
8시에는 집을 나서야 하는데 9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엉덩이를 떼었습니다.
거리에 나와보니 해가 중천(?)인 시간이지만 오가는 사람이 없어 연휴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합니다.
오늘은 오사카를 벗어나 교토 서부지역으로 가는 날, 초행길이니만치 일정표를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우선 한국에서 미리 구입해간 '간사이 쓰루패스'를 한 장씩 나누어 갖고,
마츠야마치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신사이바시역에서 환승하여 한큐 우메다역까지 가는 것은 수월한데,
여기서부터 정신 바짝 차리자,
1~5번 출구로 나와 한큐전철 표지판을 따라가니 개찰구가 나오고, 통과하여 2번 승강장으로 올라가니 열차가 있네,
이제 킨카쿠지미치역에서 내리면 된다, 지상으로 나왔는데 여기가 맞나, 어디보자, 바로 앞에 A정류장이 있구나,
저기 오는 게 59번 버스, 자리도 많이 비었네, 타자, 여기까지는 성공!
휴우, 가장노릇하기도 힘들구나~~
버스를 맞게 타기는 탔는데 한참을 가도 킨카쿠지미치 정류장이 나오지 않으니 불안해집니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아들녀석을 불러 버스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보라 했더니 아직도 더 가야한답니다.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뒷자리의 할머니께서 유창한 일본말로 친절하게 알려주십니다.
나도 킨카쿠지에 간다, 나 내릴 때 같이 내리면 된다, 걱정하지 말아라,
거기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나는 신도여서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대충 이렇다고 아들녀석이 통역해 주는데, 설마 네가 다 알아먹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근데 진짜로 그 할머니는 우리와 같이 내려 우리 앞장서서 절로 들어가십니다.
친절하신 할머니,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유홍준님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금각사는 청수사와 함께 교토 관광의 양대 메카이다.
교토에 와서 금각사를 보지 않았다는 것은 다시 교토에 와야 한다는 뜻이 된다.
금각사는 그 이름에 값하고도 남는 아름다움이 있다."
워낙 유명한 절이라 입구부터 엄청 화려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소박합니다.
들어가는 길 양편에는 네모난 나무기둥이 세워져 있고, 오른편 기둥에 조그만 문패가 걸려있는데,
"鹿苑寺 通稱 金閣寺(녹원사 통칭 금각사)"라고 적혀있습니다.
미시마 유키오는 그의 소설 <금각사>에서 주인공 '미조구치'의 입을 빌어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직면한 문제는, 미(美)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버지는 시골의 소박한 승려로, 어휘도 부족하기에,
단지 '금각처럼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고만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여기 금각사에 오려고 소설 <금각사>까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것 없이 평범한 길에 사람만 바글바글,
굳이 다른 것을 찾아보라고 한다면 나무 밑이 온통 이끼천지라는 것.
총문(總門)
절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입니다.
한쪽에 세워진 비석에는 "세계유산 금각 녹원사"라고 적혀있습니다.
1994년 금각사는 세계 문화유산에 지정되었습니다.
총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종루(鐘樓)가 있는데, 위에 조그만 종이 매달려 있습니다.
그 앞에는 사람들이 늘어서 있다가, 한 사람씩 올라가 종을 울리고 소원을 비는데,
한편에 있는 조그만 안내판을 보니, 한 번 울리는 데 200엔~~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샀습니다.
조금 색다르지요? 그래서 우리도 조금 색다르게 오각형으로 펼쳐서 찰칵!
킨카쿠지(金閣寺, 금각사)
-. 본래 서원사가(西園寺家)라는 귀족가문의 별장 겸 씨사(氏寺)가 있던 곳
-. 무로마치시대 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1397년 매입하여 새 별저로 조영하였음
-. 당시 이름은 북산전(北山殿)이었는데, 1420년 그의 아들이 로쿠온지(鹿苑寺, 녹원사)라는 사찰로 조영함
-. 요시미쓰는 1394년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는데 법명은 도의(道義), 법호는 녹원(鹿苑)이었음
-.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사리전 '킨카쿠(金閣)'가 특히 유명하여 '킨카쿠지'라고 불리고 있지만 정식 명칭은 '로쿠온지'임
당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연못 건너에 금각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첫 느낌은 그냥 좋다, 가까이 한 번 가보고 싶다~~
"1층은 침전조 양식으로 천황이 기거하는 어소 건물에 영향받은 것인데,
여기에는 요시미쓰의 초상과 보관석가여래상이 모셔져 있다.
2층은 조음동(潮音洞)이라는 이름으로 관음과 사천왕이 모셔져 있지만
본래는 만남의 장소로 무가사회에 새롭게 생기기 시작한 서원조(書院造) 양식이다.
3층은 선종 양식으로 실내 한가운데 사리함이 모셔져 있고 구경정(究竟頂)이라고 부른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각 층마다 서로 다른 건축양식이라 하는데,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1층은 헤이안시대 궁궐 양식인 신텐츠쿠리,
2층은 무사의 주택 양식인 부케즈쿠리,
3층은 중국식 선종 사찰양식
더이상 묻지 마세요, 그냥 베꼈습니다.
이 대목에서 인증샷 한 방 찍고~~
경호지(鏡湖池)
"2천평에 달하는 경호지에 작은 섬과 큰 바위가 시점의 이동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다양한 변화를 볼 수 있다.
연못 한 가운데는 신선이 산다는 봉래섬으로 위원도(葦原島)라는 갈대섬을 조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장수를 상징하는 학섬, 거북섬을 금각 앞에 배치했다.
부처님의 세계를 상징하는 수미산 바위, 그리고 추상적인 형태미를 보여주는 중국의 유명한 정원석인 태호 괴석(太湖 怪石) 등을 조성했다.
연못가에는 지방 다이묘들이 진상한 각지의 명석들이 호안석축을 이루고 있다.
참으로 그윽한 풍광의 아름다운 호수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금각사는 금각 혼자서만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이 아닙니다.
정성을 다해 가꾼 거울연못(경호지)까지 함께 어우러져 그 멋을 더하고 있는 것입니다.
"1층은 금박을 입히지 않고 목재의 검붉은 빛을 그대로 남겨두어 마치 2층 건물의 기단부 같은 느낌을 주고,
3층은 넓은 난간을 사방으로 두르고 있어 그 다양한 구성이 미묘한 변화의 아름다움을 일으키며 비례가 어긋난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오직 절묘한 디자인이라는 찬사가 나올 뿐이다.
~~ 화려하다, 절묘하다, 환상적이다, 황홀하다, 우아하다, 장엄하다, 장중하다, 상큼하다, 어여쁘다, 멋지다,...
내가 아는 미에 관한 형용사를 다 동원해봐도 금각의 아련한 아름다움을 담아내기엔 부족함이 있다."
처음 유홍준님의 책을 읽을 때는 눈으로 들어온 글자가 곧바로 귀로 빠져나가버려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더니,
오늘 다시 보니 어떻게 생겼는지 쪼끔은 이해가 가지만,
수식하는 형용사들까지 알아먹기에는 내공이 턱도 없이 부족합니다.
유홍준님이 그랬던가요, 아는만큼 보인다~~
-. 1467년 오닌의 난 때 금각사도 화염에 휩싸였으나 금각 사리전만은 화마를 입지 않았음.
-. 1950년 7월 2일 새벽, 금각사의 21세 학승인 하야시 쇼켄(林承賢)의 방화로 전소됨
-. 교토 시민들이 모금 운동을 벌여 메이지시대의 수리 도면을 근거로 1955년 원상 복원함
-. 그러나 군데군데 금박이 떨어져나가 '금각'이 아니라 '흑각'이라는 야유를 받기도 함
-. 일본 문화청은 1986~87년 금박 전체를 다시 붙이는 수복공사를 시행함
그러니까 지금의 금각사는 60여년 정도 밖에 안된 신출내기 건물이고,
일본도 문화재 복원에 부실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조금은 편안하게(?) 합니다.
-. 하야시 쇼켄은 방화 후 절 뒷산에서 할복자살을 시도했으나 응급조치로 살아남
-. 방화 및 자살 동기 : '자기혐오, 아름다운 금각과 함께 죽고 싶었던 점, 방화에 대한 사회의 비판을 듣고 싶다는 호기심'
-. 정신감정 결과 : '범행 당시 및 그 전후의 정신상태는 평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가벼운 정신 이상 증세가 있음'
-. 하야시의 어머니는 교토 지점에 출두하여 아들의 성장과정과 성격 등을 설명한 후, 집으로 가던 중 열차에서 뛰어내려 자살함
-. 하야시는 7년 형을 받았지만 5년 3개월로 감형을 받았고, 만기 출소 후 27세의 나이로 정신분열증과 결핵으로 사망
겉으로는 어느 무엇과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화려한 금각이지만,
들여다보면 보통사람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어처구니 없는 사연이 숨어있었습니다.
"나는 또한 그 지붕 꼭대기에서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에 시달려 온 금동 봉황을 생각했다.
이 신비스러운 금빛 새는 새벽을 알리지도 않고 날갯짓도 하지 않고, 자신이 새라는 사실조차 잊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날지 못할 듯이 보이는 것은 착각이다.
다른 새들이 공간을 난다면, 이 금으로 만든 봉황은 번쩍이는 날개를 펴고 영원히 시간속을 나는 것이다.
시간이 그 날개에 부딪힌다.
날개에 부딪혀서 뒤쪽으로 흘러간다.
날아가기 위하여, 봉황은 단지 부동의 자세로 눈을 부라린 채,
날개를 높이 들고 꼬리 깃을 휘날리며, 당당한 금빛의 양 다리를 힘차게 버티고 있으면 되었다."
할복자살한 극우주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이야기는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 생략~~
"지붕은 노송나무 껍질로 이은 네모 반듯한 모양으로, 금동의 봉황이 올려져 있다.
또한 연못에는 ㅅ자형 지붕을 올린 수청(漱淸)이라는 낚시터를 돌출시켜, 전체의 단조로움을 없앴다."
부처님 사리를 모신 방 옆에 고기를 낚아 올리는 낚시터라니, 아무리 소설속의 설명이라지만 설마~~
한 마리는 회뜨고 남은 뼈다귀로 매운탕 끓이고, 다른 한 마리는 숯불 피워 구워먹었을까?
아니겠지, 비늘 없는 낚시로 세월을 낚았었겠지~~
금각사 바라보기는 이쯤에서 멈추고 빙 돌아 뒷길로 들어서면,
요시미쓰가 차를 달일 때 애용했다는 긴가센(銀河泉, 은하천)이 있고~~
류우몬타키 폭포(龍門瀧, 용문롱)도 있는데,
폭포수를 맞고 있는 돌이 잉어를 닮은 리쿄세키(鯉魚石, 이어석)인 것 같습니다.
조금 더 가면 조그만 돌부처들이 여럿 있는데, 동전 던지기는 여기서도 흥행 중!
물길을 돌로 표현한 것이 보기에는 예뻤는데 사진은 별로네요.
오르는 길 왼편에는 미동도 하지 않는 조용한 연못 안민타쿠(安民澤, 안민택)가 숨어있습니다.
셋카테이(夕佳亭, 석가정)
안민택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한쪽은 공사중이라 막아놓은 수수한 집이 있는데, 에도시대의 스키야 스타일의 다실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에 비친 금각이 아름다워 저녁 夕에 아름다울 佳자를 붙였답니다.
그걸 느껴보려면 저녁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바쁜 우리에게는 어림도 없지요.
여기는 작은 이끼정원을 바라보며 차 한잔 마시며 쉬어갈 수 있는 찻집인데,
우리는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 마시는 것을 대신합니다.
후도도(不動堂, 부동당)
"본존인 돌부동명왕은 고보대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영검이 또렷한 비불(秘佛)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세츠분(2월 3일)과 8월 16일에 개문 법요가 열립니다."
앞에 있는 통에 동전을 넣고,
소원을 빌거나 기도를 올린 다음,
밧줄을 잡고 흔들면 위에 매달려 있는 징같이 생긴 것이 가냘픈 소리를 냅니다.
'둥~~~'은 너무 크고, '동~'
여기까지가 금각사 관람 끝~~
나오는 길 양켠에 뒤덮인 이끼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
큰 길로 나와 용안사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데~~
시간은 벌서 12시 반, 뭔가를 먹어야지요.
조그만 음식점이 있어서 들어갔더니, 마침 앞서 먹고 있던 사람들이 빠져고 빈 자리가 생겼습니다.
고기 우동, 덴뿌라 우동, 닭다리 카레 등등 골고루 주문하고, 빈 공기까지 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다섯 가지를 가운데 놔두고 온 가족이 조금씩 덜어먹으며,
다섯 끼를 먹어야 다 맛볼 수 있는 다섯 가지 맛을 한자리에서 한꺼번에 음미합니다.
내게 있어서 일본 음식맛은? 글쎄요~~
다음은 용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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