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쁜 버릇만 쏙 빼닮아 셋 다 한결같이 늦잠꾸러기들이지만 오늘만큼은 새벽 3시에 기상,
세수하고, 옷 챙겨입고, 여권 확인하고, 짐보따리까지 다시 확인했는데도 시간이 남아 밍기적거리다가 집을 나선게 4시 20분,
세월아 네월아 하고 버스정류장까지 걸었어도 시간이 남아, 공항 가는 첫 차가 오려면 아직도 15분이나 남았습니다.
사방은 깜깜, 그러나 마음은 대낮,
드디어 삼 년마다 떠나는 '트리엔날레 가족 여행'이 시작됩니다.
꼭두새벽이라 버스는 거침없이 달리고 달려 예정보다 20분이나 일찍 인천 공항에 도착,
피치항공 탑승수속 카운터를 찾아가는데 꼭 가벼운 발걸음만은 아닙니다.
어제밤 마지막으로 확인해보니 아이들 여권번호가 수정되어있지 않아 조금은 찜찜,
만약 발권이 안된다면? 에이,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조금 기죽은 목소리로 여차저차 사정 이야기를 꺼냈더니, 이쁘고 또 이쁘게 생긴 담당자는 걱정도 하지 말라며 일사천리로 처리합니다.
후유우우우~~~(가슴 쓸어내리는 소리)
다음은 기내에 가지고 들어갈 손가방을 확인할 차례,
피치항공은 손가방이 규정보다 크거나 1인당 10Kg이 넘으면 기내 반입 불허, 추가로 돈을 내고 탁송해야 합니다.
그런데 손가방 네 개 중 하나의 높이가 규정보다 2Cm 높아서 못갖고 들어가면 어쩌나 걱정했는 데 그것도 아무 말없이 무사 통과,
아아, 이 여직원은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마음씨도 곱고, 일도 잘하고, 부지런하고, 거기다가 목소리도 예쁘고, 또 칭찬할 말 더 없나???
그렇게 수속을 다 마치고 나서, 아침 대용으로 준비한 김밥을 나눠먹고, 가벼운 마음으로 우린 비행기에 오릅니다.
잠시 눈 감았다 뜨니 벌써 간사이 공항,
일본 땅에 들어서서 맨 처음 해야 할 일은 '오사카 주유패스' 끊기,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웠으니 통역은 자기에게 맡기라고 큰소리 뻥뻥 치는 아들녀석에게
어디서 패스를 살 수 있는 지 알아보라 하고 화장실 갔다 왔더니 진짜로 알아내어 여기라고 말해줍니다. 흐뭇~~ .
내가 이럴려고 아들 녀석 낳았나 행복감이 듭니다!
'오사카 주유 패스 난까이 확장판' 1일권 10장을 구입하여 다섯 장은 각자 한 장씩 나눠갖고,
나머지 다섯 장은 마지막 날 쓰려고 지갑에 넣은 후 한 사람씩 개찰구를 통과하는데,
아내 얼굴이 갑자기 사색이 됩니다. "휴대폰을 화장실에 놔두고 왔어요"
허둥지둥 뛰어가는 아내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순간 떠오르는 불길한 생각, 시작부터 왜 이러나~~,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나도 곧 뒤쫓아 갔지만, 여자 화장실이라 별 도리 없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서있는데 일각이 여삼추라...
마음의 시계로 한 달쯤 지났을까, 아내가 활짝 웃으며 나타납니다.
"찾았어요!!!"
니혼진와 도테모 착하고 좋은 사람이무니다!
난카이 난바행 열차에 몸을 실은 후부터는 일정표대로만 움직이면 되나 싶었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원 계획은 난바 역에 내려 사물함에 짐가방을 보관하고 시텐노지로 가려 했는데, 막상 찾아보니 빈 박스가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곳에 또 있나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겨우 또 찾았지만 거기도 마찬가지,
우리처럼 사물함에 짐을 보관해두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엄청 많은 모양입니다,
내깐엔 머리를 쓴다고 썼는데 사람 머리는 다 거기서 거기~~
할 수없이 짐가방을 끌고 숙소로 가기로 했습니다.
혹시 몰라서 떠나기 전에 집주인에게 짐가방만 미리 넣어놓겠노라고 양해를 구했기에 망정이지
아차 했으면 등에는 백팩 메고 손에는 가방 끌고 여기저기 다닐뻔 했습니다.
조금은 뿌듯한 마음으로 숙소 약도를 어디에 넣어두었나 여기저기 찾아보는데, 앗차차 또 실수,
집주인이 이메일로 보내준 약도를 인쇄하여 가져온다는 것을 깜박하고 그냥 왔습니다.
우선 기억나는 대로 난바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신사이바시 역에서 바꿔타고, 마츠야마치 역에 내려서 3번 출구로 나가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잘 생각이 안납니다.
난감해 하며 여기저기 기웃기웃 하고 있는데, 딸아이가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내 이메일에 들어가서 약도를 찾아냅니다.
우리 아이들은 공부만 빼고 뭐든지 다 잘해~~
약도를 보고 나니 어디인지 감이 옵니다. 지척에 두고 헤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맞다, 바로 이 골목이다!!
요런 것이 바로 자유여행의 묘미(?) 아닌가, 첫 날부터 흠뻑 만끽하는구나!
말은 이렇게 해도 집 못찾았으면 어쨌을까, 끔찍합니다.
숙소에 짐을 넣어놓고 나니 벌써 1시, 배가 슬슬 고파오는 데 근처에 식당은 안보이네요.
원래 오늘 점심은 간단히 먹기로 했는데, 아이들이 진짜로 편의점에서 몇 가지 사오더니 그걸로 끝내자고 합니다.
그런데 길거리에 서서 우걱우걱 먹을 수도 없어, 인적이 드물고 앉을만한 곳을 한참 찾다가 겨우 발견한 곳이 학교 앞 벤치,
이렇게 일본에서의 첫 식사는 처량한 장소에서 궁상맞게 때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일정표를 다시 확인합니다.
짐가방을 보관하지 못한 탓에 시간을 지체했으니 첫번째 방문지인 시텐노지는 포기하고,
두 번째 방문지인 오사카항구로 가서 산타마리아호를 타고 덴포잔 관람차도 타자~~
마츠야마치역에서 지하철 타고, 신사이바시역에서 바꿔타고, 혼마치역에서 또 바꿔타고 오사카코역으로 가는데,
앗차차, 또 실수했구나,
일정표 만들 때 시간계산을 잘못하여 1시간 여유가 있었는데,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조금 빨리 알았으면 시텐노지에 충분히 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늦었습니다.
에이, 그냥 배나 타러 가자~~
실수에 실수가 겹치지만 그래도 즐거운 우리들~~
산타마리아 데이 크루즈
"콜럼부스가 미국 상륙에 사용한 산타마리아호를 약 2배 크기로 복원한 관광선.
덴포잔 하버 빌리지의 가이유칸 앞에서 미나토 대교를 지나 오사카항을 주유함"
드디어 배는 출발하여 오사카항 주위를 50분에 걸쳐 한 바퀴 도는데, 솔직히 왜 여기에 이런 관광선이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연유로 콜럼부스의 이야기가 오사카항에서 나오는지 모르겠고,
배타고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딱히 눈에 띄는 볼거리가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돛을 올리고 바람 맞아 가는 범선도 아니고, 출렁출렁 배타는 기분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쾌속선도 아니고....
오사카 주유패스를 끊으면 공짜이기에 타는 것이지 생돈내고 타라고 하면 절대로 안탈 것입니다.
어쨌든 오사카항을 출발하여 배는 앞으로 나아가는 데~~
눈을 열 번이나 씻고 아무리 둘러봐도 주변에 볼만한 것이라고는 요런 것이 전부~~
에라 재미없다, 사진이나 찍자!
시시하게 느낀 내가 잘못된 것인가?
한 바퀴 돌고 항구에 도착해보니 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타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덴포잔 대관람차
"1997년에 만든 높이 112.5m, 지름 100m의 규모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수준의 관람차
관람차에서 아래로 이코마산, 아카시해협 대교, 롯코산 등 아름다운 간사이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배에서 내린 우리는 먹을 것도 사먹고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하다가, 10여분 거리에 있는 대관람차를 막 타려고 하는데,
아들녀석이 깜짝 놀랍니다. "어어, 내 주유패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하더니 그 사이에 빠져버린 모양입니다.
생돈 800엔 내고 표를 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큰 딸아이가 아들녀석에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안타고 밑에 있을테니 내 것 갖고 타라."
허허 차암, 딸이 아빠보다 더 낫습니다.
그렇게 하여 큰 딸만 빼고 나머지 네 사람이 대관람차에 올랐습니다.
별 것 아니라 생각했는데, 움직이는 듯 마는 듯 슬금슬금 올라가니 생각보다 무섭네요.
그래도 난 제일 어른이니까 겉으로는 안무서운 척~~
아이들은 무섭다고 아예 아래는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주변의 이런 것들을 무서움과 함께 실컷 구경하고~~
내려와 레고로 만든 초대형 기린 앞에서 사진 한 방 찰칵!
이제는 어디로 갈까, 츠텐카쿠로구나,
또 다시 오사카코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사카이스지 혼마치역에서 사카이스지선으로 바꿔타고, 에비스초역에서 내렸습니다.
우선 사진 한 방 찍고, 뒤에 보이는 전망대로 향합니다.
이제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고, 가로등과 광고판에 불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츠텐카쿠(通天閣)
"신세카이의 상징적인 건물.
'하늘에 이르는 문'이라는 뜻의 츠텐카쿠는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과 개선문을 모델로
1912년 세운 것으로 당시에는 동양 최고층 건물(61m)이었다.
내부로 들어가면 오사카 시내 전경을 볼 수 있다."
이곳은 1층이 아니라 지하로 내려가서 승강기를 타야 꼭대기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하염없이 긴 줄이 꾸불꾸불 늘어서 있고,
물어보니 1시간정도 기다려야 겨우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처럼 바쁜 사람은 기다릴 수 없다, 아깝지만 포기!
밖으로 나오니 이제는 사방이 어둑어둑~~
신세까이 상가에서 마지막으로 기념사진 한 방 찍고~~
우린 10여분 정도 걸으면 갈 수있는 쿠로몬 시장으로 향하는데~~
직업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준공을 앞둔 아파트 건설현장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일본 사람들은 아파트를 싫어한다고 하더니 그것도 옛날 이야기인가?
너무 길면 읽는 사람이 지칠 것 같아,
쿠로몬 시장 부터는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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