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성지순례

38-1. 죽림굴 성지(대재공소)

상원통사 2015. 12. 28. 22:53

비가 와서 연기하고, 일이 생겨서 연기하고, 아내가 허리가 아파서 또 연기하고,

네 번째만에야 길을 떠날 수 있었던 울산 지역 성지순례길,

우선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에 있는 죽림굴을 찾았습니다.

죽림굴은 간월산 정상부근에 있어 그냥은 찾기가 힘들고, 네비게이션에 '신불산 자연휴양림 상단'을 찍는 게 좋습니다.

우린 입구를 찾느라 조금 헤맸습니다.

 

<교통표지판에 '죽림굴', '신불산폭포 자연휴양림', '신불산 억새공원', '파래소 폭포'라 적혀 있습니다.>

 

 

<산길로 올라가는 입구에 '천주교 성지 죽림굴'이라 적혀 있으니 이 길이 맞기는 맞는 모양입니다.>

 

 

<입구에 '차량진입불가'라고 적혀 있었지만 혹시나 하고 올라와 봤는데 길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겨울에는 낙석위험이 있어 출입을 통제한답니다.>

 

 

<덕분에 예상치도 않은 등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포장 도로이긴 하지만 거리가 편도 3.4km, 십여리 길을 가는데만 두 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오른쪽길은 신불산폭포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이고, 죽림굴은 왼쪽길로 올라갑니다.

  입구에서 여기까지는 2km이고 ~~>

 

 

 

<갈림길에서 이곳까지는 1.4km입니다.>

 

 

죽림굴(대재공소)

"죽림굴(대재공소)은 기해박해(1839)를 피해 충청도 일원과 영남 각처에서 피난해 온 교우들과

 간월의 교우들이 좀 더 안전한 곳을 찾다가 발견한 박해 시대(1840~1868)의 공소로

 언양 지방의 첫 공소인 간월 공소에 이은 두 번째 공소이다

 이 공소는 샤스탕 정 신부와 다블뤼 안 신부가 1840년부터 1860년까지 사목을 담당했던 곳이며,

 경신박해(1860) 때는 박해를 피해 들어온 최양업 신부가 3개월 동안 은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최 신부는 이곳에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집전하며 자신의 마지막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 외에도 울산 장대에서 처형된 허인백, 이양등, 김종륜 등 3명의 순교자가 한때 이곳에서 머물렀으며,

 김 아가다도 최 신부를 도우며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이후 계속되는 경신박해와 병인박해(1866)의 여파로 교우들이 대거 체포되면서

 100여 명을 넘던 신자들이 사방 각지로 흩어져 대재 공소는 폐쇄되었다.

 ~~ 이 굴은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

 

<굴 입구는 사람의 눈처럼 생겼는데 허리를 굽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높이입니다.>

 

 

<입구 오른편에는 죽림굴에 대한 내력이 적혀 있고 ~~>

 

 

<굴 안에는 자그마한 성물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이곳은 제대이고 ~~>

 

 

<그 앞에는 1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라 하는데, 좁고 불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안에서 바깥을 바라본 모습>

 

 

<그렇게 좁고 답답한 동굴을 나와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겹겹이 둘러싸인 산들만 보여,

  그 옛날에 여기 있다고 잡으로 오라고 해도 못왔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신앙의 힘이란 무서운 것입니다.>

 

 

1km만 더 가면 신불산 억새 평원이 있는데,

시간을 너무 지체하여 가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천주교 성지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38-3. 언양 성당  (0) 2016.01.10
38-2. 살티공소 성지  (0) 2015.12.30
37-4. 성모당 성지  (0) 2015.11.12
37-3. 계산 주교좌성당 성지  (0) 2015.11.05
37-2. 관덕정 순교성지  (0) 2015.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