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4. 반야심경

[법륜스님의 '반야심경'] 제46/47강 신해행증

상원통사 2015. 11. 18. 21:22

(~~제45강에서 계속)

 

불교 공부는 신해행증(···), 곧 믿음·이해·수행·증득의 과정을 거치는데,

그 중에서도 신심(信心, 믿음)은 불교신행(佛敎信行)의 첫걸음이며 모든 것의 뿌리입니다.

신심(信心)은 의심(疑心)의 반대되는 개념이며, 의심은 여러 가지 번뇌(煩惱) 중의 하나입니다.

불교의 믿음은 유일신적(唯一神的) 종교의 믿음과는 다릅니다.

신의 절대적인 권능이나 창조를 믿고, 믿음으로서 그 은총을 입고자 하는 태도가 아니라,

불법(佛法)이 진리인가 거짓인가를 결정하는 대결단입니다.

이런 결단이 없으면 삼귀의(三歸依), 오계(五戒)를 받는다 하여도 진정한 불교인이 아닙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으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일,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내 병을 틀림없이 고쳐주실 거라고 완전하게 믿고 기도하면 병이 낫는데,

기도하면 정말로 고쳐질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을 하니까 기적이 안 일어납니다.

완전히 믿으면 교회에서 기도하거나, 절에서 기도하거나, 당산나무 밑에서 빌어도 똑같은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기도하는 대상에 있는 게 아니라 믿음에 있습니다.

믿음은 모든 힘의 원천입니다.

진실하게 믿으면 기적이 일어나기에 우리는 이것을 신비하다고 말합니다(시대신주, 是大神呪)

 

무조건 믿는 것도 좋지만, 확실히 알고 믿어야 믿음이 더 깊어집니다.

거짓을 진리라고 믿는 것은 바른 믿음이 아니며, 잘못된 믿음이기에 미신(迷信)이라고 합니다.

물은 낮은 데서 높은 데로 흐른다고 10년 동안 외우고 그렇게 믿고 지냈을 지라도,

실제로 가서 보니 높은데서 낮은 데로 흐르고 있다면 그 믿음은 일순간에 깨지고 맙니다.

확실히 알고 확실히 이해하고 확실히 깨우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믿음입니다.

깨달음이 없는 믿음은 미신(迷信)이나 맹신(盲信)이 되기 쉽습니다.

불교는 믿음의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의 종교라고 할 만큼 깨달음을 중요시합니다.

철저한 깨달음에서 바른 믿음이 나오고, 바른 믿음에서 철저한 깨달음이 가능하므로,

불교신행에 있어서 믿음과 깨달음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고 새의 두 날개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들은 아는 것만큼 믿고, 믿는 것만큼 알고 있습니다.

모르는 것은 믿을 수 없으며, 못 믿는 것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은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밝게 아는 것이기에 시대명주(是大明呪)입니다.

 

() () () () : 믿고 알고 실천하고 깨달음

우리는 공부를 할 때 믿고() 아는() 것을 겸비해야 합니다.

믿음은 있는데 앎이 없으면 어리석은 믿음이 되어서 갖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게 되고,

믿음은 없고 앎만 있으면 사량분별만 하게 됩니다.

오늘날 기도교인들은 믿음은 좋아서 밀어붙이는 힘은 있지만 제대로 모르니 갖가지 부작용을 일으키고,

옛날 우리 할머니들도 믿음은 견고했는데 앎이 없어서 여러 가지 잘못된 신앙을 가졌는데,

요즘 사람들은 알기는 많이 아는데 믿지를 않으니 실천이 따르지 않아 그저 알음알이에 불과합니다.

* 사량분별(思量分別) : 복잡한 생각으로 헤아리기에 진리를 깨치는데 방해가 되는 것

* 알음알이 : 생각을 벗어나지 못한 공부수준

 

불자는 우선 인과법을 믿어야 되는데, 말로는 믿는다 하면서 실제로는 안 믿습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이 인과법입니다.

공부는 안하면서 대학시험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비는 것은 인과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대승불교인들은 내가 부처다 하는 것을 믿고 내게 불성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되는데,

돌부처는 잘 믿으면서 내가 부처고 남편이 부처고 아이도 부처라는 것은 안 믿습니다.

또 제법이 공하다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제법이 공하다 하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확연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믿어야 될 것은 알려고만 하고 알아야 될 것은 믿으려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믿고() () 다음에는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신행생활은 머리나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깨달은 진리와 그 진리에 대한 확신은 생활 속에서 행위로 나타나야 하는데,

비록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를 확신한다 하더라도 이것을 실행하기는 쉽지가 않기에,

계속적인 반복훈련이 필요하며, 이와 같은 반복훈련을 수도(修道) 또는 수행(修行)이라고 합니다.

깨달음(반야바라밀)이라는 것은 실천의 맨 꼭대기 단계이니 시무상주(是無上呪), 가장 높은 것입니다.

반야바라밀다 수행은 가장 확실한 믿음의 수행이고, 가장 확실하게 아는 수행이고, 가장 확실한 실천 수행입니다.

 

믿고() 알고() 실천()한 다음에는 증득()을 해야 합니다.

불자는 미르바나를 증득하고, 해탈을 증득하고자 합니다.

본래 고가 없다 하는 것을 깨쳐버리면, 니르바나는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반야바라밀다보다 더 높은 것은 없고(시무상주, 是無上呪),

반야바라밀다와 비교할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시무등등주, 是無等等呪).

 

반야바라밀다 수행법은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즉 깨달음은 최고의 믿음이고 최고의 앎이고 최고의 실천이고 최고의 증득인 것입니다.

뭔가 얻을 게 있어서 얻는 게 최고의 증득이 아니라, 본래 얻을 바 없음을 깨쳐버리는 게 최고의 증득입니다.

 

능제일체고(能除一切苦)                 : 능히 일체의 괴로움을 없앤다

잠에서 깨면 꿈속의 모든 괴로움이 일순간에 없어지는 것처럼, 이 깨달음은 모든 괴로움을 없애는 것입니다.

 

진실불허(眞實不虛)                        : 진실하여 헛됨이 없는 가르침이다

거짓이 아니라 정말로 진실한 것이고 헛됨이 없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금강경에서 여래는 스스로 진어자(眞語者), 진실을 말씀하시는 자며,

실어자(實語者),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는 자며,

여어자(如語者), 여법한 말씀만 하시는 자며,

불광어자(不狂語者), 미치광이 같은 말을 하지 않는 자며

불이어자(不異語者), 두 가지 말을 하지 않는 자다 라고 했는데,

이것을 한마디로 진실불허, 진실을 말하는 것이지 헛된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고설(故說)                                         : 이런 까닭으로

반야바라밀다주(般若波羅蜜多呪)                   : 반야바라밀다의 진실한 말씀을

즉설주왈(卽說呪曰)                                : 설하노니,

아제 아제 바라아제(揭帝揭帝 波羅揭帝)            : 가세 가세 저 언덕으로 가세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波羅僧揭帝 菩提娑婆訶)   : 저 언덕에 도달하여 깨달음을 이루세

 

아제 아제는 산스크리트어 가떼 가떼(gate gate)’가자, 가자는 뜻이고,

바라아제는 산스크리트어 파라가떼(pāragate)’저 언덕으로 건너가세의 뜻입니다.

바라승아제는 산스크리트어 파라상가떼(pārasaṃgate)’저 언덕에 도달하였네의 뜻이고,

모지사바하는 산스크리트어 보디 스바하(bodhi svāhā))’깨달음이여 영원하라는 뜻입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가떼가떼 파라가떼 파라상가떼 보디 스바하(gate gate pāragate pārasaṃgate bodhi svāhā),

가세 가세, 저 언덕으로 가세, 저 언덕에 도달하여 깨달음을 이루세!

가자 가자, 저 언덕으로 가자, 저 언덕에 도달하여 깨달음을 이루자!

가자 가자, 저 정토세계로 가자, 정토세계에 가서 부처님을 친견하자!

 

여기까지 하여 반야심경의 뜻을 헤아려보았습니다.

반야심경은 경의 내용도 중요할 뿐 아니라 아주 논리적으로 짜여져 있는 경전입니다.

하나를 증명하거나 하나를 말하거나 하나를 생략할 때도 딱 맞게 짜여져 있습니다.

그 구조를 알고 그 뜻을 알고 반야심경을 독송을 하면 온갖 괴로움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적이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부적이 없고 공덕이 있다면 이보다 더 큰 공덕이 없습니다.

이 반야심경은 한글로 번역해서 그 뜻을 새기는 것도 좋지만,

그리 길지 않으니까 한문으로 그냥 외워서 그 뜻을 새기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반야심경을 외우기는 하는데 그 뜻도 모르고 외운다면 좀 곤란합니다.

공부는 진지하게 해야 하고,

많은 것을 알려고 하기 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확실히 아는 것이 중요하고,

확실히 알고 거기에 따른 실천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스승에게 하나를 배우더라도 깊이 있게 배우고 자기 삶을 늘 관찰해야 됩니다.

자기 삶을 들여다보면서 붓다의 가르침이 자기 삶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살펴야 공부가 빨리빨리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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