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완수의 '명찰순례'

9. 팔공산 은해사

상원통사 2015. 10. 28. 22:52

팔공산 은해사(銀海寺)

"신라 41대 헌덕왕이 즉위한 해인 809년에 혜철국사가 창건한 헌덕왕의 원찰이다.

 ~~ 은해사는 아미타 부처님의 도량으로, 불˙보살˙나한 등 팔공산 곳곳에 계시는 불보살들이 마치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듯

 찬란하고 웅장한 모습이 극락정토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운해(雲海)'라고도 한다"

 

<절에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다리 한 켠에는 '대소인하마비(大小人下馬碑)'가 있고 ~~>

 

 

<다리 위에 서면 절벽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그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는 잘 표현할 수 없네요.>

 

 

 

<우린 다른 길로 들어왔지만 이곳이 은해사로 들어서는 주 출입구입니다.

  위에 걸려있는 '보화루(寶華樓)'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

  이 외에도 '은해사', '대웅전', '불광', '일로향각' 등 총 다섯 점의 추사 작품이 있답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초파일에 매달아 놓은 연등들이 시야를 가리는데 ~~>

 

 

<마치 향나무 허리를 자르는 것 같이 보여 별로 안좋습니다.>

 

 

<이곳은 극락보전, 최완수님의 책에서는 분명히 '대웅전'이었는데...

  아하, 그렇군요, 오늘 또 하나 배웠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곳은 대웅전,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곳은 극락전인데,

  20년 전에는 대웅전에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 연유는 조선 헌종 13년 대화재시에 다른 곳은 다 불탔지만 극락전만은 모면했는데,

  이후 대웅전을 중창하고서는 극락전에 모셔져 있든 불상과 탱화를 우선 대웅전에 이안해 모셨다가,

  최근에 '대웅전' 대신 '극락보전'이라 전호(殿號)로 바꾸어 존상(尊像)과 일치시킨 것입니다.>

 

 

 

<가운데가 아미타 부처님, 후불탱화도 아미타 삼존탱이랍니다.

  20년 전에는 좌우 협시보살도 없었는 데 그 후에 모신 것 같습니다.

  근데 석가모니 부처님과 아미타 부처님은 어떻게 구별하지??? 공부거리가 또 생겼습니다.> 

 

 

<이곳은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전(地藏殿)>

 

 

 

<단서각(單棲閣)>

 

 

<조사전(祖師殿)>

 

 

<여기는 산신각(山神閣)

  사진으로 보니까 크게 보이지 실제는 아주 조그마합니다.>

 

 

<안에도 역시 자그마한 산신령님이 호랑이를 고양이 삼아 거느리고 계십니다.>

 

 

<여기는 능인중고등학교 개교지(能仁中高等學敎 開校址)

  은해사는 일찍부터 서구식 교육에 눈을 떠 일제 강점기(1940년)에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했답니다.

  정신만 건전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재력도 풍부한 절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최완수님의 '명찰순례'에 나오는 한 구절을 옮기면,

  "은해사는 일제 때 조선 4대 부찰(四大 富刹)의 하나로, 10만 석을 받는다고 소문나 있던 절이라 임야와 농토가 엄청나게 많았다 한다.

   ~~ 그 많던 재산이 토지개혁 때 대부분 소작인들에게 분배되었으나, 6˙25 사변 때까지만 하여도 만 석씩 추수를 받았다 한다.

   그런데 정화 이후 50년대 말에 청담(靑潭) 선사가 사기꾼들의 속임수에 말려 도장 한 번 잘못 찍은 결과

   절의 모든 재산이 송두리째 어느 재벌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던 바, 현 총무원장인 의현(義玄) 선사가 나서서

   67년부터 다시 소송을 하여 빼앗긴 3,000정보의 임야 중 1,200정보 정도를 겨우 되찾아 놓았다 한다."

   사기꾼들이야 전생부터 나쁜 놈들일 터이니 굳이 알고 싶지 않지만,

   그 때 한 몫 챙기려 했던 재벌은 도대체 누구인지 무척 궁금합니다.

   부처님 재산 챙겨서 마음 편하게 지금도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을까???> 

 

 

쌍거북바위

"일제 강점기에 한국의 정신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왜구들에 의해 훼손된 것으로 전해진 쌍거북바위는

 불기 2549년 4월 주변을 정비하던 중 목이 잘린 1마리를 발견 주민의 고증을 거쳐 현지에 마애삼존불과 함께 복원하였다."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찬찬히 보면 나무 앞에 거북의 머리가 보이고 ~~> 

 

 

<그 뒤에는 마애삼존불이 있습니다.>

 

 

<여기는 성보박물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라오면서 만나는 첫 번째 건물이 이곳 성보박물관인데,

  입구를 지키는 아가씨에게 신발을 어디에 벗어 놓아야 하냐고 물어봤더니

  어찌나 퉁명스럽고 불친절하게 대답하는 지 은해사의 첫 이미지가 완전히 구겨졌습니다.

  그래, 좀 더 세세히 보려던 마음도 사라지고, 좋지도 않은 절에 입장료까지 바친 것이 더욱더 아깝게 느껴지고....

  그렇지만 블로그에 올리지 않을 수는 없고, 하여 겨우 찍은 몆 장의 사진으로 이렇게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 말 좀 예쁘게하고 삽시다!!>

 

 

<어쨌든 그렇게 그렇게 둘러보고 나가는 길에 처음보는 문구가 눈에 뜨입니다.

  성보 박물관 뒤 1만평의 소나푸 숲에 마련한 "자연과 영원으로 가는 길, 수림장(樹林葬)"

  소나무 밑에 하얀 점같이 보이는 것이 국화꽃이고, 소나무가 무덤에 해당하는 추모목입니다.

  친환경적인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는데, 기왕이면 좀더 안쪽에 마련했더라면 하는 생각입니다.

  절 뒷편 바로 보이는 곳이 공동묘지인지라 어쩐지 좀 으스스합니다.>

 

 

별로 상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절을 나왔지만 우리의 기분을 풀어주는 다른 사건 하나,

여행을 하는 동안 불편한 것 중 하나는 휘황찬란(?)한 모텔 신세를 져야 하는 것인데,

이곳 은해사 앞에서 모범 이발소, 아니 모범 모텔을 발견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집이 오래되어 조금 허름하다고, 하룻밤 자는데 2만원 밖에 안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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