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密多心經) : 큰 깨달음(지혜)으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가장 요긴한 부처님의 말씀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 관세음보살님께서
행심반야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蜜多時) : 반야바라밀다 수행을 깊이 하실 때에
조견 오온개공(照見 五蘊皆空) : 오온이 모두 공하다는 것을 깨달으시고
도 일체고액(度 一切苦厄) :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셨습니다
사리자(舍利子) 색불이공(色不異空) : 사리불이여, 물질적인 현상인 색은 공과 다르지 않으며,
공불이색(空不異色) : 그 본질인 공 또한 물질적인 제 현상인 색과 다르지 않다
색즉시공(色卽是空) : 물질적 현상인 색이 곧 그 본질인 공이며
공즉시색(空卽是色) : 그 본질인 공이 곧 물질적 현상인 색이니라
수상행식 역부여시(受想行識 亦復如是) : 색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느낌도 생각도 의지도 의식과 분별도 다 공하다
우리가 이 세상을 공간적으로는 주위(이웃)과 함께 관찰하고,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미래까지도 길게 살펴보면,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변하며,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실체가 없고 서로 연관되어 있다.
연관 속에서 그 연관이 서로 변하고 있으니, 무엇을 가지고 그 존재의 본질(실체)이라 할 것은 없다,
이것을 우리는 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얼핏 관찰하거나 부분만 관찰하면 마치 그 존재의 본질이 있는 것처럼 착각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어리석은 범부중생은 물질에도 느낌에도 생각에도 의지에도 분별에도,
무엇인가 그 본질에는 변하지 않는 어떤 실체가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된다.
이런 착각 속에서 목표를 두고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그것은 꿈처럼 허망할 수밖에 없다.
착각 위에 목표를 두니 의도했던 결과가 나타나지 않고, 그 때문에 인생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존재의 본질이 무상이고 무아인줄 알고, 공이 그 존재의 참모습인줄 알게 되면,
즉 착각을 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게 되면(착각에서 깨어나게 되면),
자신이 의도한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있기에, 자신의 의도와 결과가 늘 일치하게 된다.
공한 줄 알게 되면 어떤 의도도 일으키지 않으니 과보가 없고,
한 생각 일으켜서 어떤 의도를 일으키더라도 그 과보를 예측하기에 받아들일 수 있으므로,
그것에 대해 실망하거나 그것을 거부하거나 미워하지 않게 된다.
즉, 모든 법이 공한 줄 깨닫게 되면 괴로움은 없어져 버린다.
사리자 시제법공상(舍利子 是諸法空相) : 사리자야, 모든 법이 다 공하다는 그런 차원(세계)에서 보면
불생불멸(不生不滅) : 세계는 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요
불구부정(不垢不淨) : 깨끗한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도 아니요
부증불감(不增不減) :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눈(관점)으로 이 세계를 보면,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생겨나고 사라짐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이 있고, 신성한 것과 부정한 것이 있고,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선한 것과 악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분명히 있는데,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아니고,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아니고,
선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며, 옳은 것도 아니고 그른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분명히 늘어나고 줄어들기도 하고, 길고 짧기도 하고,
높고 낮기도 하고, 넓고 좁기도 하고, 많고 작기도 하지만,
깨달음의 세계에서 보면, 늘어나는 것도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긴 것도 짧은 것도 아니고,
넓은 것도 아니고 좁은 것도 아니고, 높은 것도 아니고 낮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은 갖가지 집착을 하기에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생겨나는데,
집착할 것들이 다 공하기에 집착할 것도 애증이 일어날 것도 없으니,
그로 인한 괴로움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오온(일체)이 모두 공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깜깜한 방안에서 더듬거릴 때는 길고 짧고, 많고 작고, 신성하고 부정하고, 아름답고 추한 것들이 있는 줄 알았는데,
불을 탁 켜고 환한 상태에서 보니까 그 모든 것들은 다 내가 잘못 본 것이었습니다.
생하고 멸하기도 하고, 나타나고 사라지는 줄 알았더니 그건 내가 깜깜한 데서 잘못 본 것이고,
실제로는 나타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생하는 것도 멸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것도 죽는 것도 아니고, 이루어지는 것도 흩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시제법공상(是諸法空相) : 무엇이라고 정할 수가 없는 그런 텅 빈 세계(차원)에서 보면,
불생불멸(不生不滅) : 모든 것은 나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 상 위에 컵뚜껑이 있습니다.
이것을 상 밑에 내려놓으면 상 위에는 컵뚜껑이 없습니다.
상위에 올려놓으면 있는 것이고 상에서 내려놓으면 없는 것입니다.
없는데 시간이 지나자 있다는 것은 생겨났다는 말이고, 있었는 데 시간이 지나자 없는 것은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공간적으로 관찰하면 ‘있다 없다’, 시간적으로 관찰하면 ‘생겨났다 사라졌다’, 이런 것이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입니다.
근데 실제로 ‘있다 없다’의 차이는 내 눈에 ‘보인다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또 내 귀에 들린다 안 들린다, 코로 냄새가 맡아진다 아니다, 혀로 맛이 느껴진다 아니다,
손으로 만져진다 안 만져진다, 머릿속으로 상상이 된다 안 된다, 이 말입니다.
눈으로 볼 수 있으면 있는 것이고, 눈에 안보이면 없는 것입니다.
눈에 안보이더라도 귀에 소리가 들리면 있고, 귀에 소리도 안 들리면 없는 것입니다.
안보이고 안 들려도 냄새가 맡아지면 있고 냄새도 안 맡아지면 없는 것입니다.
냄새는 없지만 맛을 느끼면 있는 것이고 맛을 못 느끼면 없는 것입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냄새도 맛도 없지만 만져지면 있는 것이고 안 만져지면 없는 것입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냄새도 맛도 없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상상이 되는 것은 있고 안 되면 없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있는 줄 알았는데 요즘 확인해보니 없는 것이 있습니다.
도깨비니 요정이니 용이니 하는 것들은 옛날 사람들은 있다고 믿었지만,
요즘은 사람들은 생각 속에나 있는 것이지 실제는 없는 것이라 믿습니다.
반대로 옛날에 없다고 했던 게 요즘은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허공에 아무것도 없다고 했지만 공기가 있고, 우주에는 옛날에 몰랐던 수많은 별들이 있습니다.
옛날에도 암이라는 병이 있었지만 그 땐 그게 병인 줄 몰랐습니다.
그러니 있다고 해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해서 없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의 세계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다.
있다고 해도 옳지가 않고 없다고 해도 옳지가 않습니다.
우주에 생명이 있다 없다 논란이 많습니다.
생명이 있다는 상상도 안 될 때는 생명이 없는 것이지만,
여러 정황을 따져서 있을 것 같으면 그건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UFO가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있는 것이고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이고,
귀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있는 것이고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여기 부처님이 계시는데 선한 사람에게는 보이고 업이 많은 사람에게는 안보인다고 하면,
없는데 거짓말한다고 할 수도 있고, 있는데 죄가 많아 못 본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안믿는 사람에게 세상을 창조한 신이 있다고 하면, 있다고 믿는 사람을 어리석다 할 것이고,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들을 주님을 몰라 방황한다고 불쌍하게 여길 것입니다.
실제의 세계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다.
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이고, 없다는 것은 인식되어 지지 않을 뿐입니다.
요즘은 초등학생도 만유인력이 있는 줄 알지만, 옛날 사람은 느끼지 못하니 없다 했고,
옛날에는 빛이 이동할 수 있는 에테르라는 물질이 우주에 가득하다 했는데, 사실 그런 물질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옛날 사람처럼 만유인력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학교에서 있다 하니까 있다고 생각하고,
백 년 전 학교에서 에테르가 있다고 했으니, 그 때 사람들은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알면 있는 것이고 모르면 없는 것인데 사실 우리가 아는 것도 정확하지가 않으니,
실제의 세계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거기로부터 있다가 일어나고 없다가 일어납니다.
(제24강에 계속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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