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4. 반야심경

[법륜스님의 '반야심경'] 제12강 조견 오온개공

상원통사 2015. 6. 28. 21:45

반야심경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 관세음 보살님께서

행심반야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密多時) : 깊이 반야바라밀다 수행을 하실 때에

조견 오온개공(照見 五蘊皆空)             : 오온이 모두 공하다는 것을 비추어 보시고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 일체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셨습니다.

 

'조견 오온개공'에서의 '조'는 비출 입니다.

깜깜한 상태에서 뭐가 어디 있는지 몰라 더듬거리며 찾는 것이 어리석은 중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불을 탁 켜서 환하게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한눈에 보는 것을 조견이라 합니다.

조견을 다른 말로 하면 정견(正見, 바르게 봄), (, 깨달음), (, 있는 그대로 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견 오온개공'이란 '오온이 모두 공하다는 것을 확연하게 깨달으셨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오온'이란 '나를 포함한 일체의 모든 것'으로  '색·수·상·행·을 말합니다.

'색'이란 육근(안·이·비·설·신·)을 가지고 있는 몸을 말하고,

'수'란 육근을 통해서 들어오는 정보에 따라 느껴지는 느낌(Feeling)을 말하고,

'상'이란 이미 들어온 정보가 저장되어 있다가 드러나는 것, 즉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하는 것을 말하고,

'행'이란 의지작용, 즉 이래야 되겠다 저래야 되겠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식'이란 이런 것들이 쌓여서 있는 정보창고, 소위 업식을 말하는데,

그 정보창고에는 정보가 한 덩어리로 있는 게 아니고 각각 분류되어 있어,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 하는 갖가지 분별을 일으키는데, 그 분별을 일으키는 주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옛날 인도사람들은 나는 '나'라고 하는 독립되고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릴 때나 늙어서나, 전생에나 내생에나, 여기 있으나 저기 있으나 '나'라고 하는 늘 똑같은 실체가 있다,

현재의 우리도 대부분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2,600년 전에 이것이 착각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라고 하는 것은 고정불변된 실체가 있는 게 아니고 다섯 가지의 쌓임에 불과한 것이니,

'나'라고 하더라도나'라고 할 것이 없다, 곧 '무(無我)'입니다.

'무아'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라고 하는 것은 색·수·상·행·식의 쌓임이기는 하지만,

그 다섯 가지 각각은 고정불변된 독립된 실체이다 라는 요소설이 등장합니다.

, 고정불변한 실체 다섯 개가 모여서 나를 구성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물이란 물이라고 하는 근본알갱이인 실체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물이란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가 결합한 것이니

물이라고 하는 고정불변하는 독립된 실체, 불변의 근본 알갱이는 없는 것입니다.

다만 수소와 산소 원자가 결합하여 물분자 모양으로 있을 때 물의 형상이 되는 것이지,

다른 것과 관계없이 독립되고 영원히 지속되는 그런 존재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소와 산소 원자는 고정되고 독립된 존재일까요?

그것들은 또 소립자로 구성되어 있으니 마찬가지로 고정되고 독립된 존재가 아닙니다.

더 나아가면, 물질이 에너지로 변하고(핵분열과 핵융합) 에너지가 물질로 변하는 것이니(빅뱅이론),

이 세상에는 고정불변의 독립된 실체(물체)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육신은 변하지만 우리 마음에는 변하지 않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 변하지 않는 것이 천당도 가고 지옥도 가고, 전생에서 와서 내생으로 간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잘났느니 못났느니, 내 의견이 옳으니 네 의견이 틀렸느니 하는데,

나라는 것이 없다면 잘났느니 못났느니, 내 것이니 네 것이니,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할 것도 없습니다.

나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니 온갖 집착과 번뇌가 일어났는데,

'나라는 실체가 없구나' 이렇게 느끼는 순간 일체 집착이 다 끊어져 버립니다.

집착을 안하려고 안하는 게 아니라 그 집착하는 주체가 없으니 집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는 데 집착을 하고 있는데, '나'란 오온의 결합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오온(색·수·상·행·)은 고정불변하는 게 아니라 항상 변하고 있습니다.

나란 다섯 가지의 쌓임(오온)이고, 오온이란 늘 변하는 것이고 관계가 바뀌는 것이니,

과연 무엇을 가지고 '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때그때 집착에 따라서 일어날 뿐입니다.

'아무개야'하고 부르면 '예'라고 대답할 때는 순간적으로 '이름이 나'라고 집착하는 것입니다.

TV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도 그 순간 거기에 사로잡히기 때문이고,

아이들이 사이버 공간에 빠져 헤매는 것은 그것이 현실이라 착각해서 그런 것입니다.

 

'내가 옳다'하는데 사로잡히면 나는 옳고 다른 사람들은 다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고, 진짜로 다른 사람들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제가 별 이야기를 해도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있으니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계속 잠꼬대만 하고 있는데,

자꾸 흔들어 깨울 때는 제가 악마가 되는 것이고, 덜 깨우고 놔놓으면 철천지 원수가 되고,

확실히 깨우면 갑자기 부처님같이 되고 그런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있을 때는 관세음보살하고 같이 살아도 관세음보살인 줄 모르고,

불·보살 만나도 지나치고 못보고, 문수보살이 와도 거지라고 쫒아냅니다.

 

뭔가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것은 실체가 있는 것이 되고, 독립된 것이 되고, 고정불변하는 것이 됩니다.

몸뚱이에 집착하게 되면 몸뚱이가 영원하리란 착각을 하게 되고,

생각에 집착하면 생각이 안변한다고 인식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나한테 어떻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더라도 그건 그 때 뿐이고 지나가면 없는 것입니다.

생각이라는 것은 늘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니 내가 잊어버리면 그만인데,

내가 그걸 기억하고 붙잡고 있으니, 그것은 진리이고 약속을 안 지키는 남편은 나쁜 놈입니다.

생각이란 찰나찰나 변하는 것인데, 붙잡고 있으니 마치 안변하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다섯 가지의 쌓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자유로워지고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교리로만 공부하고, '내가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불교공부를 하고 있으니,

모든 것은 다섯 가지가 쌓임이라는 것은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 하나하나에는 변하지 않는 근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다섯 가지는 모두 다 공한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영원불변하는 게 아니라 변하고, 독립된 존재가 아니고 쌓여있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을 근본교설에서는 '무아'와 '무상'으로 표현했고, 여기서는 '공'으로 표현했습니다.

 

다섯 가지 그 하나하나가 다 '공(空)'하다, 이 말은 요소설을 부정한 것입니다

색이라고 하는 물질적 존재는 영원한 것도 아니고 독립된 실체도 아닙니다.

우리들의 느낌(Feeling)이라는 것도 항상하는 게 아닙니다.

된장찌개 냄새가 코끝을 싹 스치면 구수하게 느끼지만 그건 내게 그런 습관이 들어있기 때문이지,

내 음식습관이 바뀌면 그것도 바뀌게 되는 겁니다.

어떤 조건에서 그런 업이 생겨서 그런 느낌이 일어난 것이지,

나는 본래 그런 냄새 맡으면 그렇게 느끼도록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파란 색깔의 안경을 끼고 있으니 흰 벽이 파랗게 보인 것이지 벽 자체가 파란 게 아닌 것처럼,

냄새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고, 구수한 것도 역겨운 것도 아닙니다.

내가 어떤 업식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구수하게 또는 역겹게 느껴지기도 하는 겁니다..

 

색도 공하고 수도 공하고, 상도 공합니다.

여러분들의 생각도 어릴 때와 지금은 많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 바뀐 것도 있기에 이게 바뀐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입니다.

자기 어머니에 대해서도 아주 어릴 때는 좋게 생각했다가 청소년 때는 나쁘게 생각했다가,

또 좋게 생각했다가 나이 들어서는 나쁘게 생각했다가 이렇게 자꾸 바뀝니다.

의지도 식도 분별도 업식도 자꾸 바뀝니다

그러니 색·수·상·행·식이 모두 다 공한 것입니다.

이것은 근본불교를 부정한 것 같지만, 실은 도로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제13강에 계속합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반야심경강좌'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