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6강에서 계속)
내 앞에 아름다운 꽃이 한 송이 있고, 내가 그 꽃을 보고 있습니다.
이때엔 그 꽃이 색(色)이고 그 꽃을 인식하는 주체는 식(識)이 됩니다.
그 꽃을 보는 순간 일어나는 기분 좋은 느낌을 수(受)라고 하는데,
실제로 수에는 기분 좋은 것과 기분 나쁜 것, 그냥 무덤덤한 것 등 세 가지 느낌이 있습니다.
이처럼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냄새맡거나 맛보거나 만지는 순간 불꽃이 튀듯이 일어나는 것이 수입니다.
그러나 어제 봤던 꽃을 생각하는 것은 그 정보가 저장되어 있다가 재생되기 때문에 상(想)이 됩니다.
이처럼 느낌(受)과 생각(想)은 다릅니다
지금 꽃을 보고 있는 데 기분이 좋은 것은 수이고,
어제 꽃을 보았을 때 기분이 좋았던 것을 지금 생각하는 것은 상이고,
어제 꽃을 보았을 때 기분이 좋은 걸 생각하니까 지금 기분이 좋은 것은 수입니다.
스님 법문을 듣고 기분이 좋은 것도 수이지만, 기분이 나쁜 것도 수입니다.
‘어제 스님 말씀하시더니 그게 이거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상,
어제는 몰랐는데 오늘 들어보니 이해할 수 있어 지금 기분이 상쾌한 것은 수입니다.
어제 전철 안에서 내 몸에 손을 댄 남자가 있었다면 그 남자는 색,
어제 그 남자가 내 몸에 손을 댈 때 기분 나빴던 것은 수,
오늘 그 남자를 생각하거나 그 기분 나빴던 느낌을 생각하면 상,
다시 생각해도 또 기분이 나쁜 것은 수,
‘그런 남자는 죽여버려야 돼’ 이러면 행, ‘그런 사람은 참 나쁜 사람이야’ 이러면 식입니다.
여기서 식은 인식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갖가지 분별을 분류할 때에도 식이라 합니다.
나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것들(색·수·상·행·식)의 쌓임입니다.
이 다섯 가지 말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색에 해당되고,
그것에 의해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갖가지 느낌은 수에 해당되고,
여러분들이 기억하는 모든 것들과 잠재의식 속의 모든 것들에 의해 상상되어지는 것들은 다 상이고,
여러분들이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뭘 해야 되겠다 말아야 되겠다는 의지작용은 행이고,
이런 것들을 인식하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사물을 총체적으로 분별해 내는 것을 식이라고 합니다.
나라고 하는 것은 다섯 가지의 쌓임이다 : 무아(無我)
순간순간 무엇인가에 집착하여 자기로 삼는다
‘나’라는 것은 하나의 덩어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다섯 가지의 쌓임입니다.
오온이란 ‘나(我)라고 하는 단독의 존재는 없다(無)’는 것이니 무아(無我)를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단독의 ‘나’가 있다고 착각하거나, 순간순간 오온 중의 하나를 ‘나’라고 착각(집착)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안에 이미 저장되어 있는 정보 위에서 모든 것이 출발하기에,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때는 그것이 저장만 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대한 작용도 일어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어렸을 때 이 컵을 ‘북’이라고 배웠다면,
이런 것을 보면 북이라는 생각이 들고 북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이런 모양이 떠오르게 됩니다.
누군가가 이것을 ‘컵’이라고 하면 (-)반응이 일어날 것이고, ‘북’이라 하면 (+)반응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고 이야기 하는 모든 것은 다 그렇게 생성된 것입니다.
어릴 때 된장찌개 냄새를 맡고 된장을 먹어서 된장에 대한 정보가 저장되어 있으니까,
우리는 그 냄새를 맡으면 기분 좋은 반응이 일어나고, 그게 된장인 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서양사람들은 된장에 대한 정보가 저장되지 않았기에, 우리와는 다른 느낌(수)이 일어납니다.
이처럼 새로운 정보의 입력도 ‘수’이지만, 이미 들어와 있는 정보에 대한 작용도 '수'입니다.
식·행·상·수는 정신작용에 속한다
우리가 정신과 육체로 나눈다면 식·행·상·수는 정신에 속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 같은 느낌(수)은,
육체와 연관해서 생기는 것이기에 육체작용인 것 같기도 하지만 정신에 속합니다.
외부에서 정보가 들어올 때는 바로 느낌이 일어나게 되는 데,
그 느낌에는 좋은 느낌, 나쁜 느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느낌이 있습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느낌’은 마치 느낌이 없는 것처럼 착각을 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좋은 느낌’과 ‘나쁜 느낌’처럼 강도가 세면 느낌이 있는 줄 쉽게 알 수가 있지만,
강도가 약한 느낌은 느낌이 없는 것처럼 인식되는데, 우리에게 아무런 느낌도 없을 수는 없습니다.
마치 작은 지진은 아무리 오래 지속되더라도 우리가 느낄 수 없고, 큰 지진은 바로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오온설 : 마음을 중심으로 이 세상을 표현한 심법(心法)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행위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는 것은 느낌(受)입니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할 때, 생각이나 의지, 분별을 마음이라고 할 때도 있지만,
일상적으로 쓰는 마음은 주로 '수(느낌, Feeling)'를 말합니다.
마음이 괴롭다, 마음이 슬프다 등 고락을 표현할 때의 마음도 '수'이고,
마음을 찾는다, 마음을 관찰한다 할 때에도 주로 '수'를 찾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망상이 생긴다, 생각이 많다고 할 때는 '상'을 말하는 것이고,
‘그거 남한테 물을 것 있나, 지 마음먹기에 달렸지’, 이럴 때의 마음은 '행(의지작용)'을 말하는 것이고,
마음이 나쁘다, 마음이 좋다, 마음이 선하다 이럴 때는 '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온은 주로 마음을 중심으로 해서 이 세상을 표현한 것이므로 심법이라 합니다.
오온 중 물질적인 것은 색밖에 없고, 나머지는 다 마음을 중심으로 해서 세세하게 분석해놓은 것입니다.
십이처설 : 물질 세계에 더 비중을 높여 설명한 것, 색법(色法)
오온설이 우리 마음의 작용을 중심으로 해서 세상을 표현한 것이라면,
십이처설은 물질세계(색법)에 비중을 더 높여 설명한 것입니다.
인식대상(境)과 인식기관(根)이 부딪혀서 인식작용이 일어난다
우리의 몸은 사물을 인식하는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는데,
보는 눈(眼), 듣는 귀(耳), 냄새 맡는 코(鼻), 맛보는 혀(舌), 감촉을 하는 손(몸, 身),
이것을 오근(五根), 다섯 가지의 사물을 인식하는 뿌리라 합니다.
거기에 대응해서, 눈에 보이는 모든 대상 즉 물질의 색깔과 형상은 색(色)이라 하고,
귀에 들리는 것의 대상을 성(聲), 코의 냄새 맡는 것이 대상을 향(香),
혀의 맛보는 것의 대상을 미(味), 손에서 만져질 때 대상을 촉(觸)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육신의 근(인식기관)이 있고, 바깥 세계에는 경(인식대상)이 있어,
근과 경이 부딪혀서 인식작용이 일어납니다.
법(法) : 의식의 대상
의(意) : 법을 받아들이는 기관(뇌)
또한,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보면서 성질 못되게 생겼다 또는 착하게 생겼다고 하는데,
이것은 얼굴이 아름답다, 키가 작다, 목소리가 예쁘다, 몸에서 냄새가 난다, 피부가 부드럽다, 이런 것하고 다릅니다.
'성질'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맛도 없는 데, 이런 것을 '법'이라 합니다.
물질과 물질 사이에 서로 잡아당기는 힘인 만유인력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있기는 있는 것처럼,
법도 빛깔, 소리, 향기, 맛, 감촉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느끼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있기는 있습니다.
그 법을 받아들이는 몸의 기관을 의, 또는 의근이라 하는데,
의근은 눈, 코, 귀, 혀, 손을 기초로 하여 그 판단을 일으키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굳이 그 기관을 말한다면 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근(六根) :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경(六境) :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십이처설 : 일체는 경계(육경)와 주체(육근) 사이에 일어나는 인식작용이다
우리 몸에는 인식기관인 안·이·비·설·신·의가 있고(육근), 그 인식되는 대상으로 색·성·향·미·촉·법이 있는데(육경),
육근과 육경이 부딪혀서 인식작용이 일어납니다.
손바닥이 부딪히면 소리가 나고, 부싯돌이 부딪히면 불꽃이 일어나듯이,
근과 경이 부딪히면 반짝하고 불꽃이 튀는데 이게 감각작용(인식작용)입니다.
일체라는 것은 다 경계와 주체 사이에 일어나는 인식작용이다, 이것이 십이처설입니다.
(제18강에 계속합니다~~)
이 강의는 '정토회 > 정토TV > 법문 보기 > 근본교리'에서 동영상으로 볼수 있습니다.
'법륜스님의 법문 > 3. 근본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스님의 '근본교리'] 제19강 오온, 십이처, 십팔계 - 첫 번째 (0) | 2015.04.16 |
---|---|
[법륜스님의 '근본교리'] 제18강 오온, 십이처 - 세 번째 (0) | 2015.04.07 |
[법륜스님의 '근본교리'] 제16강 오온, 십이처 - 첫 번째 (0) | 2015.04.01 |
[법륜스님의 '근본교리'] 제15강 사성제 - 세 번째 (0) | 2015.03.18 |
[법륜스님의 '근본교리'] 제14강 사성제 - 두 번째(근현대사와 통일을 보는 새로운 시각) (0) | 2015.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