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바꾸면 ~~

6. 도시농부 입문

상원통사 2015. 3. 25. 22:39

바람은 쌩쌩 불고 얼음은 꽁꽁 얼었는데, 네비게이션으로도 부족하여 몇 번씩 묻고 물어 겨우 찾아간 충북 청주의 와송농장,
주인마님 안내로 거실로 들어가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듣던 중,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와송 농사인 것 같아요.
 오래된 한옥의 기와지붕에서 자랄 정도로 생명력이 무척 강한 것이라,
 따로 물 줄 필요도 없고 거름도 안 줘도 되고, 햇볕 잘 들게 가끔씩 풀만 매주면 되요.
 나도 팔기는 팔지만 이렇게 돈 받고 판다는 것이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해요!”
몇 년 전 TV에서 와송농장을 소개하는 프로에 나왔다는 주인장의 말에 이거다 싶었다.
조금 더 나이 들어 돈벌이 못하면 시골로 내려가야 그나마 지출을 줄일 수 있어 귀촌을 생각하고 있는데,
천성이 게으른 나같은 사람이 돈 욕심 내지 않고 소일거리 겸해서 하기에 딱 좋은 농사로 보였다.


와송(瓦松)
-. 바위솔이라고도 하며, 한자 이름 그대로 기와에 나고 작은 소나무 모양을 하고 있음.
-. 와송의 다당체 올리고당은 각종 인체 암세포주에 뛰어난 항암 효능을 나타냄
-. 대장암, 폐암, 위암, 자궁경부암 등에 항암효과가 있는데 특히 폐암 세포에 대해 뛰어난 효능을 나타냄

 

구하고자 하니 도와주는 마음씨 좋은 친구가 나타났다.
집에서 30분 거리의 한가한 곳에서 소일거리 겸해서 꿀벌을 키우고 있는데,
여차저차 이야기를 했더니 흔쾌히 땅을 빌려주겠다며 쓰고싶은 만큼 쓰라고 했다.
땅이 확보되었으니 만사가 쉬워졌다.
와송 모종을 500주 주문하고, 와송 씨앗을 두 봉지 사고, 인터넷을 뒤져 와송 공부도 했다.
바람이 잔잔하고 햇볕도 제법 따뜻한 삼월의 어느 휴일 날,
일을 하지 않으면 몸이 더 아프신 어머니 모시고, 이제까지 호미자루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아내와 함께 밭으로 갔다.
벌과 함께 사는 친구는 사려도 깊었다.
와송은 물과 상극이니 맨 위쪽 물이 잘 빠지는 쪽을 쓰라고 했다.
친구에게 삽을 빌리고, 쇠스랑도 빌리고,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덮는 멀칭 비닐도 얻었다.
삽자루를 쥐어본 것이 얼마만인가, 열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고 다섯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고,
쇠스랑으로 땅을 고르고 큰 돌은 추려내며 한 이랑을 만들었다.
쉴 틈도 없이 멀칭 비닐을 깔고, 비닐 가장자리는 흙으로 덮고, 하나하나 정성들여 모종을 심었다.
근데 손에 흙 한 번 묻혀본 적이 없는 아내 손이 나보다 더 빠르다.
내가 두 개 심을 때 아내는 세 개나 심는다. 신기하고 신비로워라!
다 심은 뒤엔 비닐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돌맹이를 얹고, 일일이 모종마다 물을 주고 작업을 끝냈다.
내 농장(?)을 만드는 데 하루 해를 다 보냈으니 조금은 피곤하기도 하지만,
백세주 한 잔 쭈욱 들이킨 후, 잘 삶은 돼지고기 수육을 묵은지에 싸서 입에 넣는 즐거움은 덤으로 얻었다.

 

 


이제 와송 씨앗을 뿌릴 묘판을 만들 차례,

두 봉지면 씨앗이 6,000개이니 절반만 발아해도 3,000개, 
평균 2cm 정도의 간격을 유지시키려면 가로 50 세로 30cm의 스티로폼 박스 8개가 필요했다.
재활용 쓰레기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박스를 구하러 내려갔는데,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평소에는 그렇게 많던 박스가 찾으려니 눈에 잘 띄이질 않았다.
아파트를 두 바퀴 돈 후에야 겨우 몇 개 구했지만 그래도 부족해 뚜껑까지 이용해야만 했다.
그동안 한쪽 구석에서 바싹 말라 회색빛 먼지만 풀풀 날리고 있던 천덕꾸러기 화분 흙을 꺼내어, 

물을 붓고 한참을 주물러 촉촉하게 만든 후 스티로폼 박스에 고루고루 나눠 담고,
겨자씨보다도 작은 와송씨앗은 체로 친 고운 흙과 잘 섞어 묘판 위에 살살 뿌리고, 

분무기로 안개비를 촉촉이 내려주었다.

 


여기까지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이젠 하늘이 생명을 주고 싹을 틔우고 자라게 해주는 일만 남았다.
무럭무럭 자라서 금년의 500주가 내년에는 5,000주가 되고 그 다음엔 또 더 많이 불어나서,
재명년쯤엔 주변의 아픈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도 꿈결같이 행복한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