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다.
지금 몸 상태는 어떤 지, 왜 아무 연고도 없는 강원도 양양까지 갔는지, 직접 보고 들어보고 싶었다.
하여, 금년 첫 천주교 성지순례 나들이를 양양-강릉으로 정하고 길을 나섰다.
1994년도 전라도 땅 끄트머리 완도에 있는 현장으로 발령을 받아 그곳에서 처음 만났던 회사 선배,
첫인상이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같고 살아온 이력도 선비 내음이 물씬 풍기는 분인데,
저녁 무렵 여의도에 있던 사무실로 찾아가 소주 한 잔 걸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6년도 넘은 것 같다.
다시 뵌 그 모습은 흰머리가 조금 더 늘었을 뿐 항상처럼 마른 체구는 변하지 않았고,
표정과 혈색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나은 듯 하여 환자의 내음은 풍기지도 않을 뿐더러,
차 한 잔 앞에 놓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가는 흐트럼 없는 자세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그래, 멀리까지 와주었네, 반갑다.
맑은 공기 마시고 깨끗한 물과 오염되지 않은 음식을 먹으며 지내려고 설악산 근처로 와서,
처음에는 펜션에서 생활했는데 여러 날 지내다 보니 불편하여 아예 아파트를 얻었어.
작년 가을에 왔으니 이제 6개월 정도 되었네.
아침과 점심은 선식을 만들어서 먹고, 저녁은 퇴역 수녀님이 운영하시는 식당에 가서 건강식을 먹고 있는데,
거기에는 나 말고도 아픈 사람들이 많이 와서 이런 저런 정보도 얻고 있어.
그동안 운동 삼아 설악산에 자주 올라갔는데 요즘은 입산금지여서 가지 못하고, 주로 공원을 산책하며 지내고 있네.
나 : 친구도 폐암 수술 후 무염식에, 커피 관장에, 비타민C 정맥주사도 맞았는데 지금은 완치되었어요.
이곳에 와서 제일 처음 알아본 게 비타민C 정맥주사를 맞을 수 있는 병원이었어.
물론 비타민 C 분말도 하루에 90g 정도 먹으니 많이 먹고 있는 편이지.
공부해 봤는데, 무염식은 별 효험이 없을 것 같아 정상적인 음식을 먹고 있어.
미국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일일 권장 소금 섭취량을 오히려 늘렸다고 하더군.
나 : 큰누나도 암수술을 받고 지금은 항암치료를 받고 있어요. 근데 엄청 힘들어해요.
암세포는 일반세포보다 분열이 아주 활발해.
항암치료라는 게 분열이 활발한 세포를 찾아가 죽이는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야.
우리 몸의 혈액과 머리카락, 손톱 발톱의 세포분열도 암세포만큼 활발하니,
항암치료를 받으면 백혈구도 다 죽고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손발이 저리고 내장도 다 망가지게 되어있어.
암세포도 죽이지만 인체의 면역체계까지 파괴해 버리니 통계에 의하면 암이 아니라 합병증으로 죽는 비율이 더 높다더군.
나 : 친구가 화순에서 뜸 시술을 하고 있는데, 암환자도 몇 명 치료받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암세포는 체온이 35도에서 제일 활발하게 활동하고 37도쯤 되면 죽는다고 해.
그러니 열기가 있는 뜸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도 일리가 있어.
나도 한 번 치료를 받아볼까 생각 중이네.
나 : 일본의 무슨 박사가 암은 수술할 필요 없다는 기사를 읽은 것 같은데...
일본 의학계에서 ‘신의 손’이라고까지 불렸던 야야마 박사가 말에 따르면, 암이란 놈은 나쁜 놈과 덜 나쁜 놈이 있대.
근데 나쁜 놈은 아주 독해서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해도 나을 수 없어 어차피 죽게 되고,
덜 나쁜 놈은 치료하지 않고 가만 놔두어도 스스로 없어지니 수술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군.
나 : 크기가 조금 줄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니야, 줄어들지 않았어.
오른쪽 폐의 위쪽에 하나, 아래쪽에 하나가 있는데 5년 만에 크기가 두 배가 되었어.
다른 사람보다 성장속도가 느리기는 하지만 점점 커져가고 있으니 안타깝고,
작년 가을에 쟀을 때 지름이 40mm였는데 6개월 만에 46mm가 되어 조금은 실망스럽네.
의사 얘기로는 수술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고 떼어내는 부위도 그리 크지 않아 수술을 권하는데,
내 생각에는 오른쪽 허파 3엽 중 한 개는 다 드러내야 할 것 같아.
아직까지 특별히 아픈 곳이 없어.
폐암이라는 게, 암 자체의 통증은 느낄 수 없는데 암덩어리가 자라면서 다른 부위를 눌러 점점 아파온다고 하더군.
많이 생각했는데, 그냥 수술하지 않고 이대로 지낼거야.
사람이란 어차피 한 번 죽는 것 아닌가, 조금 빨리 죽는 것이라 생각하니 두렵지는 않아.
'죽음'이라는 무서운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선배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더 차분했고,
담담한 표정의 선배 눈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해탈하셨군요!”
내년쯤 강원도 양양 땅에 한 번 더 가려 생각하고 있다.
그 때 다시 만날 땐, 그 빌어먹을 암 덩어리가 팍 찌그러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집에 돌아온 그날 밤부터 아내는 성모님을 모신 제단 앞에 앉아 선배를 위한 기도를 시작했고,
나는 이튿날 아침 108배부터 기도문을 한 줄 더 외운다.
“선배의 지긋지긋한 암 덩어리가 쪼그라들다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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