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바꾸면 ~~

4. 최완수님의 '명찰순례'

상원통사 2015. 2. 26. 20:36

까만 비닐봉지에 담겨 온 제법 묵직한 택배 하나,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고른 것이 아니었기에 그 상태가 무척 궁금했는데,
막상 받고나니 궁금함은 작은 떨림으로 바뀌어 포장을 뜯는 손끝으로 전해졌다.


구하고자 하니 보이는 것인가, 도서관 서가를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
최완수님의 ‘명찰순례’ 1권, 2권, 3권,
88년 4월부터 92년 12월까지 5년에 걸쳐 ‘월간조선’에 연재한 전국 56 사찰 답사기를 한데 묶어 펴낸 책이었다.
천주교 성지순례(111곳)도 1년만 더하면 끝날 것 같기에, 후속타로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전국 사찰순례를 떠올렸다.
오래된 절들에는 그만큼 숨은 이야기도 많을 것이고 얽힌 사연들도 많을 터인데,
보이는 대로 사진만 찍기보다, 보이지 않은 것들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아,
공부의 기준으로 삼을 책들을 찾아보았으나 다들 조금씩 부족했는데,
이 책은 우선 작가가 마음에 들고, 책 두께가 그 마음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최완수님은 언젠가 TV 강의에서 본 적이 있는데, 나직한 음성과 해박한 지식에 마냥 끌렸고,
절 한 곳에 25쪽 정도 할애하여 소개하였으니 읽을거리, 참고할 것들이 다른 책에 견줄 바가 아니었다.


즉시 집에 돌아와 인터넷 서점을 뒤져보았는데, 1권만 있고 2권과 3권은 절판상태였다.
아쉬운 대로 1권만 구입하고 나머지는 틈나는 대로 도서관에서 빌려보려 생각하다가,
혹시나 하여 중고책 전문 사이트(북코아)에 들어갔더니 다행히 여러 권이 올라와 있었다.
간사한 것이 사람 마음인지 내가 특히나 더 간사하여 욕심을 내는 것인지,
없을 때는 구하기만 해도 좋겠다던 '바램'이 여러 권이 있다는 걸 아는 순간 '욕망'으로 변했다.
어떤 이는 책의 상태를 ‘상급’이라고 적었고 다른 이는 ‘상태양호’로 적었는데,
‘상급’과 ‘상태양호’ 중 어느 것이 더 새 책에 가까운 것일까,
혹시 파는 사람들이 보지도 않고 적었거나, 상태가 안 좋은데 거짓말로 올렸으면 어쩌나,
특히나 헌 것은 눈으로 직접 보고 사야하는데, 괜히 돈 버리고 기분 상하고 후회만 남을 하수를 두는 것 아닌가,
행복한 고민 끝에 ‘상태양호’를 고르고, 주문하고, 결재하고,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던 차였다.


헌 책이기에 더 궁금했고, 기왕이면 깨끗도 하고 낙서도 없고 찢어진 곳도 없기를 바라면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겉포장을 젖혔는데, 걱정은 미소로 기대는 만족으로 바뀌었다.
20여 년의 시간이 빛바랜 흔적으로 남아있기는 하지만 한 번 펼쳐보지도 않은 듯한 헌 책을,
20여 년 전의 가격(8,500원)보다 훨씬 싼 5,000원에 구입했으니 거의 공짜나 다름 없었고,
‘첫 판 인쇄 1994년 1월 5일, 첫 판 발행 1994년 1월 10일’이라 찍힌 1권은 초판을 구한 기쁨을 덤으로 안겨주었다.

 

행복은 크고 먼 곳에만 있는 게 아니라, 좁쌀만한 크기로 주변 여기저기에 많이도 널려있다.

기분 좋은 날 기분 좋은 곳에 가서, 기분 좋은 사람과 기분 좋은 여유를 즐기기 위해,
기분 좋게 구입한 책을 짬짬이 들여다보며 날이 풀리기만을 한껏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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