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각 바꾸면 ~~

2. 이정림의 '수필쓰기'

상원통사 2015. 1. 7. 21:37

막상 내 이야기를 적어보려하니, 글을 쓴다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막막하기에,
도서관에서 가서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다가 몇 권 빌려와 읽던 중,
이정림 님의 ‘인생의 재발견, 수필쓰기’에 좋은 말들이 있어 여기 옮겨봅니다.

                                *  *  *  *  *
수필은 우리의 삶을 의미화하는 문학이다.
의미화하지 않은 삶은 반복되는 일상의 하나일 뿐이다.
생활의 의미화, 그것이 곧 수필이고, 수필이 곧 삶의 철학이 되는 것이다.


생활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결국 사색하는 삶을 산다는 뜻이다
사색이 동반되지 않는 소재의 나열은 신변잡기에 지나지 않는다.
신변잡기에는 주제(철학)이 없다.
따라서 수필은 그 어느 장르보다 철학성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향기가 있되 진하지 않고, 소리가 있되 요란하지 않으며, 아름다움이 있되 천박하지 않은 글,

이것이 바로 수필인 것이다.


수필의 문장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첫째, 간결해야 한다.
대체로 ‘13장 내외’라는 수필이 갖는 길이의 보편적인 제한성 때문에도 수필의 문장은 간결해질 수밖에 없다.
둘째, 소박해야 한다.
소박하다는 것은 아름답기 위해 일부러 꾸미지 않는 것을 뜻한다.
감동은 진솔한 데서 오며, 진솔함은 소박한 문장에서 빛이 난다.
셋째, 평이해야 한다.
일부러 어렵고 현학적인 말을 쓰려고 과시하거나, 일부러 잘 안 쓰는 고어를 찾아내어 쓰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문장삼이(文章三易)’라는 말이 있다
보기 쉽고, 알기 쉽고, 읽기 쉬운 문장을 쓰라는 것이다.
식자층에서 흔히 저지르기 쉬운 잘못은 글을 어렵게 쓴다는 것이다.
글을 어렵게 쓰는 필자는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문장 수련이 덜 된 사람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글을 어렵게 쓰는 것이 잘 쓰는 것인 양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어려운 말을 어렵게 쓰는 것은 쉽다. 그러나 어려운 말을 쉽게 쓰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지나친 기교는 문장의 품격을 떨어뜨리게 하고, 지나친 수식은 문장의 미숙을 나타낸다.
수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미문이다.


수필의 문장에서는 감정이 여과되어야 한다.
미움, 증오, 분노, 슬픔, 기쁨 같은 감정이 원색적으로 글 속에 드러나면 글은 품위를 잃는다.
-. 수필은 소리내어 통곡하기보다 그 슬픔을 안으로 삭이는 글이다.
-. 수필은 기쁨을 활짝 드러내기보다 입가에 미소를 살짝 띠게 하는 글이다.
-. 수필은 분노를 폭발시키기보다 조용히 잠재우는 글이다.
-. 수필은 고독을 천하게 드러내기보다 안으로 스며들게 하는 글이다.
수필에서 절제는 생명과도 같다.
수필은 그 절제를 통하여 아름다움을 구축하는 품위 있는 글이다.


수필에서도 서두는 글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머리에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도록 탄력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지지부진한 설명이나 보편타당한 일반론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


한 편의 수필을 쓸 때는 분명한 주제 의식을 지니고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그 주제는 어디까지나 글 속에 묻혀 있어서 독자는 그것을 미처 감지하지 못한다.
그 주제가 독자의 가슴에 전달되는 부분은 바로 결미에서이다.
이 결미에서 작자는 글 속에 숨겨놓았던 철학과 사상을 독자에게 암시하고 느낌의 여운을 던져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결미는 교훈적이거나 설교적이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생각의 여운, 감동의 여운을 미진(微震)처럼 남겨두어야 한다.


문장에서는 결코 일필휘지(一筆揮之)라는 게 없다.
문장은 다듬으면 다듬을수록 좋아지고 완벽해진다.
그런데 퇴고가 어려운 것은 자기 글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장을 다듬는다는 것은 아름답게 꾸민다는 말이 아니다.
아름답게 꾸민 말도 그 꾸밈을 벗겨내는 것이 퇴고에서 할 일이다.


평범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시도, 그 다양한 선택 앞에서 우리는 수필을 택했다.
왜냐하면 수필은 그 평범한 일상에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히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수필의 눈으로 우리네 일상을 바라보면,

조금도 신기할 게 없어보이던 것들이 실은 더없이 귀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김열규는 “수필은 일상성에 대한 사랑이다”라고 말한다.
일상이 없으면 수필은 존재할 수 없다.
수필이 곧 생활이요 생활이 곧 수필이 될 때,

우리는 우리의 평범한 삶이 문예화되는 변신을 경이로움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체험이라고 해서 모두 글감(소재)이 되는 것은 아니다.
광부들이 사금을 골라내듯 체험에서 글감을 찾아내야 한다.
단순한 잡담에 그치는 체험은 수필의 소재가 될 수 없다.
잡담거리에 지나지 않는 체험을 소재로 삼아 글을 썼다면, 그것은 신변잡기에 그치고 말 것이다.
신변잡기는 수필이 아니다.
그 체험에서 작게라도 인생에 대한 철학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소재,

즉 독자에게 사유의 여운을 던져줄 수 있는 체험만이 수필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수필은 관조를 통하여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터득하게 하는 매우 철학적인 문학이다.


윤오영은 이렇게 말했다.
“수필가가 된 뒤에 비로소 수필이 써지는 것이 아니고,

 수필을 연마하고 연마해서 수필가를 형성해나가며,

 각고의 공을 쌓고 쌓아서 수필이 써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필과 인생은 생활의 연마 속에서 함께 형성되어가는 것이다.”


수필의 정의를 한마디로 내린다면, 수필은 ‘삶을 생각하는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그 소중함을 찾아내게 하고,

우리의 삶을 생각하며 진지한 자세를 갖도록 이끌어주는 수필,

그 수필은 결코 기술과 방법으로만 터득할 수 있는 기능적인 글이 아니다.
삶이 곧 수필이 될 때 비로소 수필과 자신은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정림>


생활의 발견만으로 좋은 수필이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발견된 생활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의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이 따라야 좋은 수필이 된다.
이것이 잡문과 수필을 구획하는 경계선이다.
일반론적으로 말하면 생활의 발견은 소재 선택이요, 그것의 가치부여가 주제 설정이다.  <유병석>

                        *  *  *  *  *
그러니까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은 수필이 아니라 신변잡기임을 이제 확실히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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